대승밀엄경 상권
대당신역밀엄경(大唐新翻密嚴經) 서(序)
짐(朕)이 듣건대, 서방(西方 : 인도)에 성인(聖人 : 부처)이 있어, 말로 전할 수 없는 진리를 말하고, 가르칠 수 없는 가르침을 전하며, 일시적 방편과 영원한 진리[權實]를 활용하여, 무지한 자들[聾瞽]을 깨우쳐 일으키니, 선하게 변화시키는 것이 재촉하지 않아도 순식간에 이루어지고, 경지를 높이는 것은 범부라도 성인에 이르게 하며, 어리석은 자들을 깨우쳐 사바세계[娑婆丘陵]를 구하고, 진리에 이르는 길을 드러내어 밀엄세계[密嚴世界]를 보게 하였다고 한다.
욕망에 물든 번뇌의 세계[染]와 번뇌에 벗어난 청정세계[淨]가 나에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이들 세계가 나의 외부에서 떠도는 것도 아니니, 이 두 세계는 초나라와 월나라[楚越]가 생각 속에서 생겨났다가 바로 한 순간에 사라지듯이 그 종적을 알기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물고기가 숨고 새가 떠나가는 것과 같으니, 그 종적이 이와 같은 것이었도다!
위대하도다! 밀엄경[密嚴]이여! 삼유(三有)의 세계를 넘나들며, 불법의 세계[法界]를 두루 담아내고, 지극히 미세한 실체[極微]까지 구별하였도다.
이것은 그 가르침의 소리를 듣는다고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어찌 그 현상을 본다고 그 실재를 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미 나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오묘한 불법을 주관하게 되어 진실로 부촉(付屬)을 공손히 받들게 되었다.
이것은 식(識)의 파도를 샘물처럼 고요하게 하고, 의식[意]의 근원을 구슬처럼 맑게 하며, 아뢰야식[賴耶]이 작용하는 실마리를 꿰뚫고, 깨달음[自覺]의 깊고 맑은 세계를 밝히어, 마음의 가장 깊은 곳[心極]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니, 이렇게 할 수 있게 된 것은 오직 이 경전의 덕택이도다.
일반적으로 불경 번역(翻譯)의 자취를 살펴보면 모두 그 까닭이 있다. 그리고 비록 번역된 방언(方言)은 서로 달라도 그 본질(本質)은 반드시 번역문에 담겨있어야 한다.
이 경(經)의 경우에 범서(梵書)는 모두 게송(偈頌)인데, 앞서 이 경을 번역한 사람은 이 경을 대부분 산문(散文)으로 번역을 했으니, 이무기가 변하여 용이 될 수는 있어도, 어찌 물고기나 조개[鱗介]로 변할 수 있으며, 나라에서 집안을 일으키는 데 어찌 성씨(姓氏)를 바꿀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번역 중에 잘못된 누락, 중요하지 않은 것과 중요한 것의 혼동, 어쩌다가 다른 것을 같은 것으로 착각한 것 등을 다시 한 번 모두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진실로 올바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대흥선사(大興善寺) 삼장사문(三藏沙門) 불공(不空)은, 상법[像]시대 중생을 교화하는 동량(棟梁)이고, 애욕의 바다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는 배[舟楫]이며, 계율을 굳게 지켜 마치 계율의 구슬을 굳게 쥔 듯 하고, 마음을 갈고 닦아 명경(明鏡)을 마음에 품게 되었다.
그리하여 눈처럼 고결하게 되어 속세의 허망한 구름을 건너 부처님께서 녹야(鹿野)에서 가르치신 불법의 진리[真諦]를 부지런히 궁구하였고, 바람을 잔뜩 머금은 돛배처럼 애욕의 바다를 지나 마명대사[馬鳴]의 말씀[奧音]을 끝까지 탐구하였다.
그리고 불공대사는 범어의 문법인 팔전성[八轉]까지 터득하였고, 언어는 범어와 중국어 모두 능통해서, 번역문에서 빠뜨린 것을 살펴서 찾아내고, 불법의 궁극적 진리를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었다.
이에 조칙을 내려 경성(京城)에서 의학사문(義學沙門) 비석(飛錫) 등과 한림학사(翰林學士) 유항(柳抗) 등을 모아 불공 대사를 도와서 이 경문과 호국경(護國經) 등을 정밀하게 번역하였는데, 패엽경[貝多]과 대조하여 여러 간독(簡牘)을 번역하게 하였다.
이에 새롭게 번역된 밀엄경은 경의 원본인 패엽경과 간독을 전거로 하여 게송[頌言]으로 번역되어서, 대갱(大羹)같은 불법의 순수한 맛이 사라지지 않고, 청월(清月)같은 불법의 밝은 빛이 항상 가득차게 되었으니,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으며,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
짐(朕)의 운문은 담백하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으며, 산문도 격식에 맞지 않고 세련된 품위도 없지만, 마음만은 불법의 심오한 진리[祕賾]를 향해 한껏 달려가, 다함이 없는 불법의 세계에 머물기를 원하니, 부족하지만 겸허한 마음으로 경문의 맨 앞에 서문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