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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끝기맥 종주기 스크랩 땅끝기맥 개요 및 지도
사르리 추천 0 조회 78 12.01.02 22:1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땅끝기맥 개요..

 

땅끝기맥은 호남정맥상의 국사봉(499m)과 삼계봉(504m)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노적봉(430m)에서

북쪽으로 분기하여 소반바위산(493m), 계천산(400m), 궁성산(482m), 차일(382m),

국사봉(615m), 활성산(498m), 월출산(810m), 도갑산(401m), 월각산(456m)으로 이어지면서 영산강의 남쪽벽을 이루다가

별매산 (465m), 서기산 (511m), 복덕산(276m), 첨봉(354m), 두륜산(703m), 대둔산(672m),

달마산(470m), 떡봉(422m), 도솔봉(417m), 사자봉(106.9m)을 거쳐서

우리나라 육지의 최남단인 땅끝마을 토말에서 남해바다로 가라앉는 도상거리 약120km의 산줄기이다.

 산줄기의 동쪽으로는 탐진강, 서쪽으로는 영산강을 나누는 분수령이기도 한 땅끝기맥은

월출산 천황봉이 기맥의 최고봉이고, 두륜산과 대둔산, 서기산 외에는 500m 이하의 낮은 산세로 이어지지만

남도의 수석 전시장으로 불리듯 암릉 구간이 많은 아기자기하면서도 옹골찬 산줄기이다.

산자분수령의 원칙을 따진다면 별뫼산 이후로는 영산강이나 탐진강의 하구와는 멀어지는듯 하지만

우리나라 산줄기의 끝점까지 이어지는 명실공히 한반도를 북에서 남쪽 끝까지 이어진다는데 더 큰 의미를 둔다.

 

대간이나 정맥의 구분없이 백두산에서부터 이어지는 마루금으로는 가장 긴 산줄기이다.

백두산에서 우리나라 산줄기를 두루 거치면서 땅끝마을까지 이어지는 산줄기의 종주기도 기대할만하다.

섬을 제외한 우리나라 육지부의 최남단인 땅끝은 더불어 우리나라 바다를 구분짓는 기준점이기도 하다.

낙동정맥의 끝인 몰운대는 동해와 남해를 가르는 기준점이고, 이곳 땅끝은 서해와 남해을 구분하는 기준점이다.

송호리 갈두부락 사자봉 아래 땅끝탑에서 남서(방위각222)로 그은 선이 바로 서해와 남해의 경계선이된다.

하여간 백두산에서  내려오는 백두대간이 지리산에서 다시 호남정맥으로 노적봉까지 이어지고

이어서 이 노적봉에서 우리나라 최남단 땅끝마을까지 이어지는 실제적인 한반도를 종단하는

마지막 땅끝기맥 종주를 좌로 탐진강을, 우로 영산강을 가르며 내려가는 의미있는 산줄기라 생각한다.

 

땅끝은 한반도의 최남단으로 북위34도 17분 21초의 해남군 송지면 갈두산 사자봉에 위치하고 있다.

1530년 중종의 명에 의하여 동국여지승람을 증보하여 만든 신중동국여지승람 만국경위도편에서는 우리나라 전도(全圖)를

남쪽 기점을 땅끝 해남현으로 잡고 이곳에서부터 북쪽으로 함경북도 온성부에 이른다고 논하고 있다.

또한 육당 최남선이 조선에 관한 상식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1937년에 저술한 조선 상식문답에서는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천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를 2천리로 잡아 우리나라를 3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하였다.

 

 

탐진강(耽津江)

 

탐진강은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 궁성산(484m) 북동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남동쪽으로 흐르는 길이 56km의 강이다.

장흥군 유치면 보림사앞을 지나면서 동남쪽으로 흐르던 물길의 방향을 남쪽으로 바꾼다.

유치천과 제비내를 합류하고 장흥읍을 관류하여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강진군 강진읍 남쪽에서 남해 도암만으로 흘러든다.

하천명은 탐라(耽羅)의 사자가 신라에 조공할 때 배가 이 강 하구의 구십포(九十浦)에 머물렀다고 하여서

탐라국의 탐(耽)자와 강진의 진(津)자를 따서 탐진이라 한데서 유래되었으며,

예양강(汭陽江) 또는 수녕천(遂寧川)이라고도 불렸다.

강유역에는 용반평야를 비롯하여 부산평야, 장흥평야, 강진평야가 분포하며, 영산강, 섬진강과 더불어 전남의 3대강으로 꼽힌다.

탐진강의 하구인 구십포는 수심, 수온등이 장어가 살기에 알맞아 장어의 서식지로도 알려져 있다.

  

 

 

영산강(榮山江)

 

영산강은 전라남도 담양군, 장성군, 광주광역시, 나주시, 함평군, 무안군, 영암군, 목포시 등을 지나서

서해로 흘러드는 유역면적 3,371㎢, 길이138.75㎞의 강으로

 담양군 월산면 용흥리 병풍산(병풍산 822m)북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장성호를 이룬 후,

황룡강(黃龍江)이라 불리다가 장성읍 북서쪽에서 월계천(月桂川)을 합류한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에서 평림천(平林川)을, 송대동 부근에서 극락강을 합류하고,

다시 나주시 금천면 북쪽에서 지석천(드들강)을 합류하여 남서쪽으로 흐른다.  

이어 나주시와 함평군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영산호를 지나 영산강 하구둑의 배수갑문을 통과한 후 서해로 흘러든다.

영산강의 옛 이름은 통일신라때 나주의 옛 지명이 금성(錦城) 이었기 때문에 금천, 금강이라 했고 나루터는 금강진이라 하였다.

 고려때 신안군 흑산면에 속한 영산도 사람들이 왜구를 피해 이곳에 마을을 개척했다고하여 영산포(榮山浦)라는 지명이 생겼으며

조선초 영산포가 크게 번창하자 강 이름도 영산강으로 바뀌게 되었다고한다. 

영산강 유역은 중생대말 백악기에 속하는 화강암과 쥐라기에 속하는 편상화강암으로 덮여있다.

유역 하류부인 함평천, 고막천의 일부지역에는 역암과 사암이,

중상류 유역의 본류와 황룡강 중, 하류부 및 지석천 하류 부근에 경상계 불국사층에 속하는 화강암과

쥐라기의 편상화강암이 분포되어 있으며, 황룡강 상류부에는 안산암, 유문암 등이

주로 분포되어 있어서 일반적으로 화성암류가 널리 분포한다.

 영산강 유역의 충적평야는 화강암지역으로 저평한 구릉지를 이루고 토양배수가 불량한 편이나

 상당히 비옥하여 평야의 대부분이 논으로 이용되고 있다.

주요평야는 나주시 일대의 나주평야,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 일대의 서석평야,

함평군 학교면 일대의 학교평야 등이며, 영산강 유역에 펼쳐진 전남평야의 핵심부를 이룬다.

유역 내에서는 쌀이 주로 나며, 나주의 배, 복숭아, 포도, 나주·송정 근교의 채소, 학교의 양파, 마늘 재배가 유명하다.

영산강 유역은 예로부터 땅이 기름지고 바다와 통하는 교통의 요지로 청동기시대의 지석묘군이

영암군과 나주시 일대에서, 백제시대의 고분군이 영암군 시종면과

나주시 반남면 일대에서 발견되어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예로부터 이 강은 나주까지 조수가 밀려오는 감조하천(感潮河川)으로 바닷물의 피해가 많았고, 홍수의 위험성도 매우 높았다.

그러나 1976년에 나주댐, 담양댐, 장성댐이 완공되고, 1981년 12월에 목포시 옥암동과 영암군 삼호면 나불리 사이에

영산강하구둑이 완공됨으로써 이 일대는 가뭄과 홍수, 염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영산강하구둑의 완공으로 남해만, 영암만, 도포만 등의 바다는 영산강 유역으로 편입되었고,

영산강지구 농업종합개발사업으로 지면이 높은 갯벌은 농경지화되었으며, 물은 바닷물에서 담수로 바뀌었다

그리고 바다로 흘러들었던 독립된 하천인 삼포강(三浦江 23.5㎞), 영암천(靈巖川 14㎞),

도갑천(道岬川 18㎞) 등의 하천이 모두 영산강의 한 지류가 되었다.

 예로부터 수운이 발달해 목포~영산강(지금의 나주시 영산동) 간에 배가 왕래했으나

 1977년 10월 마지막 배가 떠남으로써 수운기능이 완전히 중단되었다.

 영산포는 농산물의 집산지로서 이 지역 경제의 중심지역으로 부상해 목포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급 성장했다.

 8.15해방 후에도 수운이 이루어져 20~30t급 어선이 20~40척 정박할 수 있었으나, 1970년대 상류의 댐 건설 이후에는

하상의 변동과 수량의 감소 및 영산강하구둑의 건설로 하류부의 수위가 낮아져 지금은 얕은 여울이 되었다.

 

 

 

땅끝기맥 개념도 및 지도

 

 

 

 

 

 

 

 

 

 

땅끝기맥 구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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