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바새계경 제1권
1. 집회품(集會品)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 기수림(祇樹林) 아나빈지 정사(阿那邠坻精舍)에서 대 비구승 천 2백 5십 인과 5백의 비구니와 천명의 우바새(優婆塞)와 5백의 걸식하는 아이[乞兒]들과 머물고 계셨다.
그때 그 모임 가운데 장자(長者)의 아들로 이름이 선생(善生)이라는 사람이 부처님께 말씀을 올렸다.
“세존이시여, 외도육사(外道六師)들은 항상 법을 설하고 중생을 가르치기를,
‘만약 이른 아침에 여섯 방향[六方]에 경례하면 수명과 재물을 늘릴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동방의 땅은 제석(帝釋)에게 속하는데 거기에 공양하는 자는 석제환인(釋提桓因)이 곧 보호하고 도우며, 남방의 땅은 염라왕(閻羅王)에게 속하는데 거기에 공양하는 자는 저 염라왕이 곧 보호하고 돕는다.
서방의 땅은 파루나(婆樓那) 천신에게 속하는데 거기에 공양하는 자는 저 파루나 천신이 곧 보호하고 도우며, 북방의 땅은 구비라(拘毘羅) 천신에 속하는데, 거기에 공양하는 자가 있으면 저 구비라 천신이 곧 보호하고 돕는다.
하방의 땅은 화천(火天)에 속하는데 거기에 공양하는 자는 저 화천이 곧 보호하고 도우며, 상방의 땅은 풍천(風天)에 속하는데, 거기에 공양하는 자는 저 풍천이 또한 보호하고 돕기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세존이시여, 불법 가운데에도 이와 같은 6방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선남자여, 나의 가르침 가운데에도 역시 6방이 있으니, 이른바 6바라밀이 이것이니라.
동방은 단(檀)바라밀이니, 왜 그런가?
시초(始初)에 나오는 자는 지혜 광명의 인연을 내기 때문이니라.
저 동방은 중생의 마음에 속하는데, 만약 중생이 능히 저 단바라밀에 공양하면 곧 수명과 재산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남방은 시(尸)바라밀이니, 왜 그런가?
시바라밀은 이름하여 우(右)라고 하는데, 만약 거기에 공양하면 역시 수명과 재물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서방은 찬제(羼提)바라밀이니, 왜 그런가?
저 서방은 이름하여 후(後)라고 하는데, 모든 나쁜 것을 뒤에 버리기 때문이니라. 만약 거기에 공양하면 수명과 재물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북방은 비리야(毘離耶)바라밀이니, 왜 그런가?
저 북방은 이름하여 승제악법(勝諸惡法)이라고 하는데, 만약 거기에 공양하면 수명과 재물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방은 선(禪)바라밀이니, 왜 그런가?
능히 3악도를 바르게 관찰하기 때문이니라, 만약 공양하는 사람은 수명과 재물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상방은 반야바라밀이니, 왜 그런가?
상방이라는 것은 곧 무상(無上)이니라. 무상이기 때문에 만약 공양하면 수명과 재물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선남자여, 이 6방이라는 것은 중생의 마음에 속하는 것이어서 외도 6사의 말과 같지 않느니라.
이러한 6방을 누가 능히 공양하는가?
선남자여, 오직 보살만이 능히 공양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어떤 의미에서 보살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보살이라고 하는 것이며, 보리의 성품을 가졌기 때문에 보살이라고 하는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만약 보리를 얻어야만 보살이 된다고 한다면,
만약 저 6방에 공양하지 못하였을 때 어떻게 보살이라고 하겠습니까?
만약 성품 때문에 보살이라고 한다면 누구에게 이 성품이 있습니까?
이 성품이 있는 자라야 능히 공양을 한다면, 만약 이 성품이 없는 자는 능히 공양을 못 할 것이니, 여래께서는 마땅히 저 6방이 중생의 마음에 속한 것이라고 말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선남자여, 보리를 얻은 것이 아니므로 보살이라고 하는 것이니라.
왜 그런가?
보리를 얻은 자는 부처라고 하나니, 아직 보리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보살이라고 하느니라.
그리고 또 보리의 성품이 없으므로 보살이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일체 중생에게 보리 성품이 없는 것이 모든 중생에게 사람이나 천신의 성품이나 사자나 호랑이 개 따위의 성품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현세에서 여러 선업(善業)의 인연이 모여 사람이나 천신의 몸을 얻고,
불선업(不善業)의 인연이 모여 사자 따위의 축생의 몸을 얻나니,
보살도 또한 마찬가지로 여러 선업의 인연이 모여, 보리심을 내었기 때문에 보살이라고 하느니라.
만약 모든 중생에게 보살의 성품이 있다면 이것은 그렇지 않으니,
왜 그런가?
만약 성품이 있다면 마땅히 선업의 인연을 닦고 6방에 공양하지 않을 것이다.
선남자여, 만약 성품이 있다면 초심(初心)도 또 퇴전심(退轉心)도 없으리라.
한량없는 선업의 인연으로 발한 보리심을 보살성품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느 중생들이 외도(外道)를 받아들여 행하다가 외도의 전적(典籍)의 전도된 학설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보리심을 발하기도 하고,
혹 어느 중생은 적정처(寂靜處)에 머물러서 선(善)을 받아들이는 인연으로 보리심을 발하며,
혹 어느 중생은 생사의 허물을 관하다가 보리심을 발하고,
혹 어느 중생은 악을 보거나 악을 듣거나 하여 보리심을 발하며,
어느 중생은 깊이 자신의 탐욕과 성냄과 우치와 인색과 질투가 가책(呵責)이 되어, 보리심을 발하고,
어느 중생은 모든 외도들의 5통(通) 신선을 보고 보리심을 발하며,
어느 중생은 세간에 끝에 있는지 끝이 없는지를 알고자하여 보리심을 발하며,
어느 중생은 여래의 불가사의함을 보고 듣고 하였기 때문에 보리심을 발하고,
어느 중생은 연민(憐愍)의 생각을 내어 보리심을 발하며,
어느 중생은 중생을 사랑하기 때문에 보리심을 발하느니라.
선남자여, 보리의 마음에 대체로 세 가지가 있으니, 하(下)와 중(中)과 상(上)을 말하는 것이다.
만약 중생에게 정해진 성품이 있다면, 무엇을 세 가지라고 하는가?
중생의 하심(下心)이 능히 중심(中心)이 되고,
중심이 상심(上心)이 되며,
상심이 중심이 되기도 하고 중심이 하심으로 되느니라.
중생이 부지런히 한량없는 선한 법을 닦으면 그 때문에 능히 더 높아지고,
부지런히 닦지 않으면 그 때문에 퇴보하여 떨어지나니,
만약 잘 닦아 나아가면 불퇴전(不退轉)이라고 하며,
닦아 나아가지 않으면 퇴전(退轉)이라고 하느니라.
언제든지 항상 모든 가없는 중생을 위하여 선행을 닦고 복덕을 쌓으면 그것이 불퇴전이며,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것을 퇴전이라고 하나니,
이러한 보살은 퇴보하는 마음과 공포심이 생기느니라.
만약 항상 모든 중생을 위하여 선한 법을 닦고 복덕을 쌓으면 불퇴전을 얻느니라.
그러므로 대희지(大喜地)에서 오래지 않아서 마땅히 아누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라고 내가 수기한 것이니라.
선남자여, 세 가지 보리에는 정해진 성품이 없나니,
만약 정해진 성품이 있다면 이미 성문(聲聞)이나 연각(緣覺)의 마음을 낸 자가 능히 보리의 마음을 생기게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비유하건대 뭇 승려에게 정해진 성품이 없는 것처럼, 이 세 가지의 성품도 마찬가지이니라.
만약 정해진 성품이 있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외도이니라. 왜 그런가?
모든 외도들은 인과(因果)가 없기 때문에 자재천(自在天)이 인(因)도 아니고 과(果)도 아니라고 한다.
선남자여! 혹 어떤 사람이 보살의 성품을 설하는데,
비유하건대 돌 가운데에는 반드시 쇠[金]의 성품이 있어서 공교한 방편을 인연으로 발하면 쇠의 작용을 얻을 수 있는 것과 같이,
보살의 성품도 또한 이와 같다는 것은 범지의 설이다. 왜 그런가?
범지들은 항상 말하기를,
‘니구타(尼枸陀) 종자에 니구타 나무가 있고 눈[眼]에 불[火]과 돌[石]이 있다’고 하나니,
이러므로 범지는 인이 없고 과가 없어서 인이 곧 과요 과가 곧 인이기 때문에, 니구타 종자에 니구타 나무가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니라.
마땅히 알라. 곧 이것이 범지의 인과설인데, 이것은 옳지 않나니, 왜 그런가?
인은 미세하고 과는 추조(麤粗)한 까닭이니라.
만약 눈 속에 결정코 불이 있다고 한다면 눈이 탈 것이며, 눈이 만약 탄다면 어떻게 능히 보겠느냐?
눈 속에 돌이 있다면 돌이 곧 눈을 막을 것이고, 눈에 만약 막는 것이 있다면 또 어떻게 보겠느냐?
선남자여, 만약 범지의 말대로 유(有)는 유(有)이고, 무(無)는 무(無)라면, 무(無)는 생(生)을 하지 않고 유(有)는 멸을 하지 않으리라.
만약 돌 속에 금의 성품이 있다면 금이 그 성품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그 성품이 금이 아니라고도 말하지 못한다.
선남자여, 인연(因緣)이 있기 때문에 화합이 있고 인연이 화합하기 때문에 본디 없다가도 뒤에 있느니라.
만약 범지의 말대로 무(無)가 아주 무(無)라면 이 뜻은 어떠한가?
금이 수은(水銀)과 합하면 금이 없어져야 하리라.
만약 유(有)는 당연히 없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 뜻은 어떠한가?
만약 중생에게 보살의 성품이 있다면 이것은 외도라고 하고 불도라고 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돌의 인연이 화합하기 때문에 금으로서의 쓰임이 있는 것처럼,
보살의 성품도 역시 이와 같은 것이다.
중생에게 의사가 있는 것을 가리켜 욕심이라 하는데,
이와 같이 선업을 행하고자 하는 인연으로 보리심을 발하는 것을 일러 보살의 성품이라고 한다.
선남자여, 마치 중생이 먼저는 보리가 없다가 뒤에는 바야흐로 있는 것처럼,
성품이라는 것도 이와 같아서 먼저는 없다가도 뒤에는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고정된 것이 있다고 말 할 수 없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큰 지혜를 구하므로 보살이라고 하느니라.
일체 법의 진실을 알고자하고, 크게 장엄(莊嚴)하고, 마음이 견고하고, 많이 중생을 제도하며,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일러 보살이 대승(大乘)을 수행한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퇴전(退轉)이요,
두 번째는 불퇴(不退)니라.
이미 32상(相)의 업을 닦은 자는 불퇴전이라고 하고,
아직 닦지 못한 자는 퇴전이라고 하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출가(出家)요,
두 번째는 재가(在家)이니라.
출가 보살은 8중(重)을 받들어 지켜서 청정함을 구족하니, 이것을 불퇴전이라고 하며,
재가 보살은 6중(重)을 받들어 지켜서 청정함을 구족하니 역시 불퇴전이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외도가 욕심을 끊고 얻은 복덕은 욕계(欲界)의 일체 중생이 소유한 복덕보다 낫고,
수다원은 모든 외도의 이견(異見)보다 나으며,
사다함은 일체 수다원의 과보보다 낫고,
아나함은 일체 사다함의 과보보다 나으며,
아라한은 일체 아나함의 과보보다 낫고,
벽지불은 일체 아라한의 과보보다 나으며,
재가자가 보리심을 발하면 일체 벽지불의 과보보다 나으니라.
출가한 사람이 보리심을 발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재가자가 보리심을 발하는 것은 불가사의라고 하니, 왜 그러한가?
재가자는 많은 악한 인연에 얽혀 있기 때문이니,
재가자가 보리심을 발할 때는 4천왕으로부터 아가니타(阿迦膩吒_까지의 모든 천신들이 모두 크게 놀라서 기뻐하고, 이러한 말을 하느니라.
‘우리가 이제 인간과 하늘의 스승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