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천왕반야바라밀경 제1권
1. 통달품(通達品)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바가바(婆伽婆)께서 왕사대성(王舍大城) 기사굴산(耆闍堀山)에서 큰 비구대중 4만 2천 명과 함께 계셨다.
이들은 다 아라한으로서 모든 번뇌가 끊어졌고 할 일을 다 마쳤으며, 모든 무거운 짐을 벗었고 자기를 이롭게 할 만한 경지를 증득한 이들이었다.
모든 번뇌로 생사윤회하는 마음[有結心]을 끊어 해탈하였으며 자재롭게 행동할 수 있어서 마치 큰 용과 같았으나 오직 아난만은 배우는 자리[學地]에서 수다원과(須陀洹果)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정명아야교진여(淨命阿若憍陳如)ㆍ마하가섭(摩訶迦葉)ㆍ교범파제(憍梵波提)ㆍ박구라(薄拘羅)ㆍ이파다(離波多)ㆍ필릉가바차(畢陵伽婆蹉)ㆍ대지사리불(大智舍利弗)ㆍ마하목건련(摩訶目乾連)ㆍ수보리(須菩提)ㆍ부루나미다라니자(富樓那彌多羅尼子)ㆍ아니루타(阿尼樓陀)ㆍ마하가전연(摩訶迦栴延)ㆍ우파리(優波離)ㆍ라후라(羅睺羅) 등으로서, 이와 같은 대중 4만 2천 명과 함께 계셨다.
보살마하살 7만 2천 명과 함께 계셨는데,
이들은 모두 매우 깊은 법성(法性)을 이미 통달하였고, 유순하여 쉽게 교화할 수 있으며,
평등을 잘 행하여 모든 중생의 참된 선지식(善知識)이며,
무애다라니(無碍陀羅尼)를 얻어 물러남이 없는 법륜(法輪)을 굴릴 수 있고,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을 공양한 적이 있으며,
다른 불국토로부터 법을 배우기 위하여 와서 모인 일생보처(一生補處)들로서 법장(法藏)을 보호하고 유지하여 삼보의 종자가 끊이지 않게 하려는 법왕(法王)의 참된 아들이며,
부처님을 받들고 법륜을 굴리며 여래의 매우 깊은 경계를 통달하여 비록 세간에 나타났어도 세상법에 물들지 않았다.
그 이름을 말하면 보상보살(寶相菩薩)ㆍ보장(寶掌)보살ㆍ보인(寶印)보살ㆍ보관(寶冠)보살ㆍ보계(寶髻)보살ㆍ보적(寶積)보살ㆍ보해(寶海)보살ㆍ보염(寶焰)보살ㆍ보당(寶幢)보살ㆍ금강장(金剛藏)보살ㆍ금장(金藏)보살ㆍ보장(寶藏)보살ㆍ덕장(德藏)보살ㆍ정장(淨藏)보살ㆍ여래장(如來藏)보살ㆍ지장(智藏)보살ㆍ일장(日藏)보살ㆍ정장(定藏)보살ㆍ연화장(蓮華藏)보살ㆍ해탈월(解脫月)보살ㆍ보현(普賢)보살ㆍ관세음(觀世音)보살ㆍ관월(觀月)보살ㆍ보음(普音)보살ㆍ보안(普眼)보살ㆍ연화안(蓮華眼)보살ㆍ광안(廣眼)보살ㆍ보행(普行)보살ㆍ보계(普戒)보살ㆍ지의(智意)보살ㆍ연화의(蓮花意)보살ㆍ승의(勝意)보살ㆍ상의(上意)보살ㆍ금강의(金剛意)보살ㆍ사자유희(師子遊戱)보살ㆍ사자후(師子吼)보살ㆍ대음왕(大音王)보살ㆍ묘음(妙音)보살ㆍ무염(無染)보살ㆍ월광(月光)보살ㆍ일광(日光)보살ㆍ지광(智光)보살ㆍ지덕(智德)보살ㆍ현덕(賢德)보살ㆍ화덕(華德)보살ㆍ문수사리(文殊師利)보살 등이다.
또 십육 현사(十六賢士)에는 발타바라(跋陀婆羅)보살이 우두머리가 되었고,
현재 겁의 보살 가운데에는 미륵(彌勒)보살이 으뜸이 되었으며,
사천왕천에는 네 왕이 으뜸이 되었고,
삼십삼천에서는 제석(帝釋)이 으뜸이 되었다.
야마(夜摩)의 모든 하늘에서는 수야마왕(須夜摩王)이 으뜸이 되었고,
도솔타천에서는 산도솔타왕(兜率陀王)이 으뜸이 되었으며,
화락천(化樂天)에서는 선화왕(善化王)이 으뜸이 되었고,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는 자재왕이 으뜸이 되었다.
모든 범천(梵天)에서는 대범왕이 으뜸이 되었고,
수타바사천(首陀婆娑天)에서는 마혜수라(摩醯首羅)가 으뜸이 되었다.
다시 여러 아수라왕이 있었는데, 사리아수라왕(娑利阿修羅王)과 라후(羅睺)아수라왕, 이와 같이 한량없는 백천의 모든 큰 아수라왕들이었다.
또한 모든 용왕(龍王)이 있었는데,
아뇩대지(阿耨大池)용왕ㆍ마나사(摩那斯)용왕ㆍ사가라(娑伽羅)용왕ㆍ바수길(婆修吉)용왕ㆍ덕차가(德叉迦)용왕이 각각 한량없는 백천(百千)의 권속을 데리고 있어 기사굴산의 길이와 너비 40유순(由旬)의 땅과 허공에 틈이 없었으며,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ㆍ사람과 사람 아닌 것들이 일심으로 합장하며 여래를 공경하였다.
이때 백천의 대중이 세존을 앞뒤로 에워싸고 공양하고 공경하며 찬탄하자 여래의 면문(面門)에서 큰 광명이 뻗어 나와 두루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를 비추고는 부처님 계신 곳으로 돌아와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면문으로 다시 들어갔다.
여기서부터 동쪽으로 10항하사의 부처님 세계를 지나 불국토가 있으니, 명호가 장엄(莊嚴)이고,
그곳 부처님의 이름은 보광(普光)여래ㆍ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장부(調御장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佛)ㆍ세존(世尊)이셨다.
이제 현재세에 모든 보살마하살을 위하여 일승(一乘)의 바른 법을 설하시니, 그 불국토에서는 성문(聲聞)과 벽지불(僻支佛)이란 이름마저 없는데, 더구나 다시 그 법을 닦는 자가 있겠는가?
모든 보살대중은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서지 않았으며,
그 땅의 중생은 음식을 먹지 않고 다만 선정을 양식으로 삼았다.
해와 달과 별의 빛은 다 나타나지 않았고 오직 부처님의 광명만이 그 나라를 비추었으며,
산과 구릉이 없이 땅이 평평하여 마치 손바닥과 같았다.
이장(離障)이라고 하는 한 보살이 있어, 백천(百千)의 보살과 더불어 부처님 처소에 이르러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며 부처님을 향한 채 머리를 조아려 예를 드리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떠한 인연으로 이런 광명이 이 국토를 비추는 것입니까?”
그러자 보광여래께서 이장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여기에서 서쪽으로 10항하사 세계를 지나 불국토가 있는데, 이름이 사바(娑婆)이고,
그 국토의 부처님 명호는 석가모니여래ㆍ응공ㆍ정변지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세존이다.
지금 그 부처님께서 모든 보살마하살을 위하여 마하반야바라밀을 설하려고 하시니, 이런 인연으로 이 광명이 비치는 것이니라.”
이장보살이 보광여래께 아뢰었다.
“그렇다면 저도 지금 곧 사바세계로 가서 석가여래께 예로써 공경하여 공양하고 바른 법을 받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지금이 바로 알맞은 때이니라.”
그때 이장보살은 부처님께서 이렇게 허락하시자 곧 한량없는 보살 권속과 함께 사바세계로 와서 기사굴산에 이르러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다시 여기에서 남쪽으로 10항하사 세계를 지나 또 다른 불국토가 있는데, 이름이 청정화(淸淨華)이며, 그 국토에 계시는 부처님의 명호는 일광(日光)으로서 부처님의 열 가지 명호를 구족하셨고 보살의 이름은 일장(日藏)이었다.
또한 여기에서 서방으로 10항하사 세계를 지나면 또 한 불국토가 있는데, 나라 이름은 보화(寶華)이고, 부처님의 명호는 공덕광명(功德光明)으로 열 가지 명호를 구족하였고 보살의 이름은 공덕장(功德藏)이었다.
또 여기에서 북쪽으로 10항하사 세계를 지나 또 한 불국토가 있는데, 나라 이름은 청정(淸淨)이고, 부처님의 명호는 자재왕(自在王)이며 보살의 이름은 광문(廣聞)이었다.
또한 여기에서 동남방으로 10항하사 세계를 지나 또 한 불국토가 있는데, 나라 이름은 화염(火焰)이고, 부처님의 명호는 감로왕(甘露王)이며 보살의 이름은 불퇴전(不退轉)이었다.
또 여기에서 서남방으로 10항하사 세계를 지나 또 한 불국토가 있는데, 나라 이름은 공덕청정(功德淸淨)이고, 부처님의 명호는 지거(智炬)이며 보살의 이름은 대혜(大慧)였다.
여기서 서북방으로 10항하사 세계를 지나 또 한 불국토가 있는데, 나라 이름은 열의(悅意)며, 부처님의 명호는 묘음왕(妙音王)이고 보살의 이름은 공덕취(功德聚)였다.
여기에서 동북방으로 10항하사 세계를 지나 또 한 불국토가 있는데, 나라 이름은 혜장엄(慧莊嚴)이고, 부처님의 명호는 지상(智上)이며 보살의 이름은 상희(常喜)였다.
여기서 위로 10항하사 세계를 지나 또 한 불국토가 있는데, 나라 이름은 부동(不動)이고, 부처님의 명호는 금강상(金剛相)이며 보살의 이름은 보당(寶幢)이었다.
여기에서 아래로 10항하사 세계를 지나 또 한 불국토가 있는데, 나라 이름은 월광명(月光明)이고, 부처님의 명호는 금강보장엄왕(金剛寶莊嚴王)이며 보살의 이름은 보신(寶信)으로서 모두 또한 이와 같았다.
그때 대중 가운데 발파라(鉢婆羅)라고 하는 한 천왕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머리를 조아려 발에 예를 올리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여쭐 말씀이 있는데 만약 부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감히 의혹을 여쭈겠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승천왕(勝天王)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여래ㆍ응공ㆍ정변지는 의심이 나서 묻는 것이라면 마땅히 설명하여 알도록 할 것이다.”
그때 승천왕이 뛸 듯이 기뻐하며 일찍이 없었던 일을 얻어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한 가지 법[一法]을 수학(修學)하여 일체법을 통달한다고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승천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진리에 대하여 매우 시원스런 질문[快問]을 하였으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라. 왕이 질문한 것과 같이 마땅히 분별하여 해석할 것이니라.”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간절히 듣기를 원합니다.”
부처님께서 승천왕께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한 가지 법을 수학하여 일체법을 통달한다는 것이란 말하자면 반야바라밀이니,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닦으면 단나(檀那:布施)바라밀ㆍ시라(尸羅:持戒)바라밀ㆍ찬제(羼提:忍辱)바라밀ㆍ비리야(毘梨耶:精進)바라밀ㆍ선나(禪那:禪定)바라밀ㆍ반야(般若)바라밀ㆍ선교방편[優波憍舍羅]바라밀ㆍ원(願:尼坻)바라밀ㆍ역(力:婆羅)바라밀ㆍ지(智:闍那)바라밀을 통달할 수 있다.
대왕이여,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단(檀)바라밀을 행한다고 하는가?
보살마하살은 청정한 마음으로서 희망하는 것이 없고,
남을 위하여 설법하되 자신의 이름이나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다만 괴로움[苦]을 멸하게 할 뿐,
자신이 설한다고 보지 않고, 듣는 자를 보지 않으니,
둘도 없고 다른 것도 없어서 자성(自性)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법 보시[法檀]바라밀을 행한다라고 하는 것이니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두려움을 없애주는 보시[無畏檀]바라밀을 행한다는 것은,
모든 중생을 부모ㆍ형제ㆍ친척과 같이 보고, 또한 모든 중생을 다 가깝고 친근하게 여겨야 할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옛날부터 세상에 와서 6도(道:여섯 가지 세계)를 유전하였으므로 모두가 일가친척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니,
만약 어떤 중생이 두려움과 어려움에 처한다면 보살마하살은 오히려 신명(身命)으로 그를 구할 것인데 하물며 괴롭힐 것인가?
그러나 또한 자신이 두려움을 없애주는 보시를 베푼다고 보지 않고 받는 자도 보지 않으니,
둘도 없고 다른 것도 없어서 자성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생활에 필요한 도구[資生]를 보시하는 바라밀을 행한다는 것은,
모든 중생들이 살아가는 데 따른 갖가지 물건[資養之物]을 보시함으로써 10선(善)을 받아들이게 한다.
그러나 자신이 선을 베푼다거나 다른 이가 보시를 받았다라고 보지 않으니,
둘도 없고 다른 것도 없어서 자성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갚기를 바라지 않는 보시바라밀을 행한다는 것은,
일찍이 보시를 행할 때는 과보(果報)를 바라지 않으니,
보살법이 그러하여 마땅히 보시를 행하되, 자신이 행한다고 보지 않고 보시의 과보도 보지 않으니,
둘도 없고 다른 것도 없어서 자성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대비(大悲)의 보시바라밀을 행한다는 것은,
모든 중생이 빈궁하고 늙고 병들었어도 구제할 자가 없는 것을 보고 대비심을 일으키며,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모든 중생의 귀의처가 되리라는 서원을 세우는 것이다.
적은 선근이라도 보리에 회향하는 것은 중생 때문이니,
또한 자신이 구제하였다는 분별도 없고 구제를 받았다는 구별도 없으니,
둘도 없고 다른 것도 없어서 자성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공경하는 보시바라밀을 행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함에 따라서 보살마하살 스스로가 물건을 가지고 그들을 싫증나게 하지 않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베풀어 주되,
자신이 공경할 수 있다고 보지 않고 그가 공경을 받는다고 보지도 않으니,
둘도 없고 다른 것도 없어서 자성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존중함을 행하는 보시바라밀을 행한다는 것은,
모든 중생이 다 스승[師僧]이고 부모라는 생각을 일으키어 존중하는 마음으로 합장하여 공경하는 것이며,
만약 재물이 없으면 착한 말로써 은혜를 베풀되,
자신이 남을 존중할 수 있다거나 다른 사람이 존중 받을 만하다고 보지 않으니,
둘도 없고 다른 것도 없어서 자성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공양을 행하는 보시바라밀을 행한다는 것은,
만약 절의 탑을 보면 곧 마땅히 향ㆍ꽃ㆍ기름등잔과 도량을 쓸고 닦음으로써 공양하며,
만약 부처님의 형상[像]을 허물거나 정법을 결손(缺損)함을 보면 마땅히 고치고 수선할 것이요,
만약 여러 스님을 보고 네 가지 공양[음식ㆍ의복ㆍ침구ㆍ탕약]을 드리되,
자신이 공양할 수 있고 그가 공양을 받을 만하다고 보지 않으니,
둘도 없고 다른 것도 없어서 자성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의지함이 없는 보시바라밀을 행한다는 것은,
‘이 보시로써 하늘에 태어나기를 원하거나 천왕(天王)이 되기를 바라거나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원하거나 혹은 인간 세상의 왕이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또한 바라거나 집착하지 않는 것이니,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보시바라밀을 통달하였다고 하느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시라(尸羅)바라밀을 행함에는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부처님께서 아함(阿含)의 가르침과 비니(毘尼:戒律) 가운데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계율의 조문)를 설하셨지만, 보살마하살은 배우되,
계의 모양[戒相]을 보지 않고, 자신이 지니되 계에도 집착하지 말아야 하며,
보는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나에게도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움에는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단지 계를 지킴으로써 얻는 것이 아니므로 마땅히 보살의 계행을 두루 배워야 할 것이다.
계의 성품은 맑고 시원하고 고요하며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자성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움에는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계를 지켜야 번뇌를 끊을 수 있는가?
번뇌에 세 가지가 있으니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다.
이 각각에는 상ㆍ중ㆍ하 세 가지 단계가 있으니, 이에 대한 대치(對治)를 알아야 한다.
탐욕이 큰 자는 부정관(不淨觀)을 닦되 몸의 서른여섯 가지 물질을 자세히 관찰[觀]할 것이며,
성냄이 많은 자는 자비관(慈悲觀)을 닦을 것이고,
어리석음이 많은 자는 인연관(因緣觀)을 닦아야 하나,
관찰하는 주관과 보여지는 대상을 보지 않는다.’
이는 둘이 없고 다른 것도 없어서 자성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우면서 다시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바르지 않은 생각을 여읠 수 있는가?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나는 고요한 행ㆍ여의는 행ㆍ공한 행을 하는데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은 떠들썩하고 어지러운 가운데에서 공한 행[空行]을 즐기지 않는다.’
이는 둘이 다르지 않음을 보아 자성을 여의었음을 아는 것이니, 곧 삿된 생각이 소멸하게 된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비록 모든 법을 여의었음을 알지라도,
죄업을 깊이 두려워하여 부처님께서 설하신 대로 마땅히 청정한 계행을 지니고,
공덕과 나아가서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를 닦고 익히어 조그마한 불선법(不善法)도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비유하면 독약은 많든 적든 다 해로운 것같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우면 항상 두려운 마음이 생겨나 믿고 행함이 서로 상응할 것이다.
보살마하살은 텅 비고 넓은 곳에서 홀로 수행하여야 한다.
어떤 사문과 바라문들이 금ㆍ은ㆍ유리ㆍ진주ㆍ마노(瑪瑙)ㆍ호박(虎珀)ㆍ산호(珊瑚)ㆍ자거(車)ㆍ백옥(白玉) 등을 보살에게 맡기어도 탐착심을 일으키지 않고 갖고 싶다는 마음을 내지 말 것이며,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차라리 자신의 몸의 살을 베어 먹을지라도 남의 재물에 대해 주지 않았으면 가지려 하지 말라’고 생각해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계를 견고히 지킬 것이며,
만약 마군[魔]과 마군의 권속이 아름다운 모습과 형상[妙色形]으로 가까이하여 보살을 시험하여도 마음이 동요되지 않고,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법은 꿈과 허깨비와 같다’라고 생각할 것이니,
둘도 없고 다른 것도 없어서 자성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비록 정성으로 계를 지켜서 사람으로 태어나 왕이 되더라도 바라지 않고 하늘에 태어나 천왕이 되더라도 바라지 않으며,
몸으로 짓는 세 가지 과실[失]을 여의고, 입으로 짓는 네 가지의 허물을 짓지 않으며, 뜻으로 짓는 세 가지의 허물을 벗어난다.
이와 같이 계를 지켜도 자신이 지킨다고 보지 않고 계의 모양을 보지 않으니,
둘도 없고 다른 것도 없어서 자성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지계바라밀을 통달한다고 하느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찬제(羼提)바라밀을 행한다는 것은,
보살마하살이 속마음으로 항상 인욕하는 마음을 내어 근심과 슬픔과 고뇌에 매달리지 않고,
또한 밖으로도 인욕을 배워서 만약 다른 사람이 때리고 욕하여도 끝내 성내지 않으며,
또한 법인(法忍)을 배워서 세존께서,
‘매우 깊은 진실한 성품은 나도 없고 법도 없어서 생겨나지도 않고 고요하니 이것이 곧 열반이다’라고 말씀하시면,
이와 같은 설법을 듣고 마음에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이와 같이 생각한다.
‘이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어떻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인가?
깊이 3독(毒)을 관찰하건대 이와 같은 탐욕과 성냄은 어느 곳에서 일어나고 어떤 인연으로 생기며 어떤 인연으로 멸하는가?’
이렇게 관찰하여 생김과 생기게 하는 법을 보지 않고, 멸하고 멸하여지는 법을 보지 않는다.
이와 같이 참는 마음이 상속하여 끊어지지 않고 밤낮[六時]으로 끊어지지 않아서 경계도 택하지 않는다.
부모나 국왕에게 나는 오로지 인욕을 닦겠으니, 그 밖의 할 수 있는 위협으로써 악을 가하여도 좋소라고 한다.
보살이 인욕을 행하는 것은 은혜를 갚기 위함만이 아니요 명리와 인의(仁義)나 부끄러움이나 두려움 때문만이 아니다.
보살마하살이란 마땅히 인욕을 행하는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해를 주며 치고 때리고 욕하여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보살마하살이 만약 국왕이나 혹은 왕과 비슷한 지위가 되어서 빈천한 사람들이 치욕스럽게 욕하고 비난한다 해도 위엄과 형벌을 보여서 나는 이 왕의 법으로 마땅히 베어서 다스리리라[治剪]라고 하지 말고 곧 이렇게 생각하라.
‘나는 지난 날 여러 부처님 앞에서 큰 서원을 세우기를, 모든 중생을 내가 다 제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리라고 하였는데, 지금 만약 성을 내면 이는 본래의 서원을 어기는 것이다.
비유하면 훌륭한 의사가 세상의 눈먼 이를 내가 다 고치리라고 맹세하는 것과 같다.
만약 자기가 실명하면 어찌 남의 병을 고칠 것인가?
이와 같이 보살은 중생의 무명(無明)의 어둠을 없애야 하는데 스스로 성을 내면 어찌 능히 그들을 구하리오.’
자신이 참는다고 보지 않고 참을 만한 것도 보지 않으니,
둘도 없고 다른 것도 없어서 자성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찬제바라밀을 통달한다고 하느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비리야(毘梨耶)바라밀을 행한다는 것은,
아직 멸하지 않은 것을 멸하게 하고,
아직 제도하지 못한 것을 제도하며,
아직 해탈하지 못한 것을 해탈하게 하고,
아직 편안하지 못한 것을 편안하게 하고,
아직 배우지 못한 것을 배우게 하는 것이다.
보살이 이와 같이 정진을 행할 때, 모든 악마들이 곤경에 빠지게 하기 위하여 보살에게 이렇게 말한다.
‘선남자여, 이 법을 닦지 마십시오. 헛되이 고통[勤苦]만 받을 뿐입니다.
왜냐 하면 내가 지난 날 이 법을 닦아 아직 멸하지 않은 것을 멸하게 하고,
아직 제도하지 않은 것을 제도하게 하고,
아직 해탈하지 못한 것을 해탈하게 하고,
아직 편안하지 못한 것을 편안하게 하고,
아직 배우지 못한 것을 배우게 하였으나,
헛되이 고통만 받았을 뿐 전혀 실리가 없었으며,
또한 나는 이제껏 살아오면서 많은 보살들이 이 수행을 배워 닦았으나, 모두 다 물러나는 것을 보아왔으니,
그대는 마음을 돌려 성문승과 벽지불승을 취하여 스스로 입멸하시오.’
보살마하살이 즉시 깨달아 알고 대답하기를,
‘악마여, 네가 다시 도를 버리라고 말하나 나의 마음은 금강과 같으니, 네가 무너뜨리지 못할 것이다.
네가 만약 장애를 만든다면 스스로 무명의 긴 밤과 같은 고통을 얻으리라’ 하니,
악마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만약 다섯 가지 바라밀을 닦아도 아직 반야바라밀을 얻지 못한 다른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정진하면, 설령 백천 겁이라도 능히 초과하는데 하물며 성문과 벽지불승이겠는가?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불법을 성취하며 온갖 악을 다 여의면 비록 정진을 행하여도 급하지도 않고 더디지도 아니하며 큰 서원을 발한다.
‘내가 몸을 얻을 때 세존과 같이 미간백호상과 정수리 위의 육계(肉髻)를 얻게 하고, 부처님께서 법륜을 굴리시니 나도 또한 이와 같도록 하여지이다.’
비유하건대 순금과 온갖 보물로 빛나게 꾸미면 국토가 장엄하고 청정[嚴淨]하여지는 것과 같이 보살의 정진도 이와 같아, 번뇌의 때[垢]를 멀리 여의는 것이다.
말하자면 게으름과 나태함과 지극히 괴로움과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함과 바르지 못한 사유와 같은 번뇌의 때를 여의면 청정함을 얻어 지혜의 공덕을 함께 장엄하여 몸이 피로하지 않고 마음에 거리끼거나 태만함이 없으며 도(道)를 막는 악법과 모든 불선함이 다 없어진다.
또한 열반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는 법을 더욱 자라나게 하면 소소한 나쁜 마음도 일어나지 않을 것인데, 어찌 하물며 커다란 악행을 저지르겠는가?
가령 시방 항하사 세계에 가득 찬 큰 불이 마치 아비지옥과 같은데, 이 세계 밖에 한 중생이라도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야 할 자가 있다면 보살마하살은 그 가운데를 지나갈 것인데 하물며 많은 중생이겠는가?
그러므로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한다.
‘위없는 보리는 결코 쉽게 얻을 수가 없다.
보살의 수행은 머리에 붙은 불을 끄는 듯이 하여 백천만 겁을 지내야 한다.’
이러한 지기 어려운 무거운 짐을 지더라도 또한 이렇게 사유해야 한다.
‘과거와 현재의 모든 부처님께서 다 이런 수행을 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셨으니, 나도 이와 같이 바로 닦고 익혀서 백천 겁 동안 지옥 속에 있을지라도 중생을 제도할 것이며, 끝내 그들을 버리고 속히 나 혼자만 열반에 들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정진하여 마음에 스스로를 높이거나 남을 낮게 여기지 않으며,
자신이 수행한다고 보거나 수행할 법을 보지 않으니,
둘도 없고 다른 것도 없어서 자성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정진바라밀을 통달한다고 하는 것이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선(禪)바라밀을 행하여 깊은 선근을 심어 대승 가운데서 세세생생 미묘한 행을 많이 익히고 선지식을 가까이 하면,
빈천하게 태어나지 않고 항상 바라문이나 찰리(刹利)의 명문 집안에 있으면서 바르게 삼보를 믿어 선한 법을 증장하며,
지난 세상의 선근으로 이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중생이 무명의 긴 밤 동안 6도(道)에 유전하며 고통의 수레바퀴가 쉬지 않음은 다 탐애로 말미암은 것이다.’
보살마하살은 싫어하며 여의는 마음을 일으켜 중생이 허망한 데서 분별하여 있다고 생각하는 것임을 안다.
경[修多羅] 가운데 가지가지 방편으로 욕심이 지나쳐 근심이 됨을 설하였으니,
창과 같고 작은 창과 같고 칼과 같고 뱀과 같고 물거품과 같으며, 냄새나고 더러워 깨끗하지 않고, 항상함이 없는데 어떻게 지혜로운 사람이 이 법을 탐착할 것인가?
그리하여 곧 머리와 수염을 깎고 출가하여 도를 닦아서 아직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으며, 아직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한다.
만약 세상의 진리[世諦]나 제일의 참된 진리[第一義諦]를 설하심을 듣고 받아 지녀서 여실하게 수행하고 법에 알맞게 관찰할 것이니,
말하자면 바르게 보고[正見], 바르게 분별하고[正分別], 바르게 정진하고[正精進], 바르게 말하고[正語], 바르게 행동하고[正業:身業淸淨], 바르게 생활하며[正命:三業淸淨], 바르게 생각하고[正念], 바른 선정에 들어가서[正定],
시끄럽고 잡된 것을 멀리 여의고,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를 구하지 않고, 공양하고 공경하며 몸과 마음으로 정진하여 항상 휴식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 마음이 많이 다녀서[行] 어떤 경계에 있는가?
선이나 혹은 악이나 무기(無記)의 경계에 있는가를 사유하여,
만약 선의 경계라면 부지런히 정진하여 선근을 더욱 기르고, 37조도품(助道品)으로 모든 착하지 못한 악법을 다스려라.
악하고 착하지 않은 것이란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이다.
탐욕에는 세 등급이 있으니, 상품ㆍ중품ㆍ하품이다.
상품이란, 탐욕이라는 이름을 듣고 온몸이 떨리고 마음이 뛸 듯이 기뻐서 욕심의 허물을 보지도 못하고, 싫어하여 여의는 마음이 생기지 않으며 자기 마음에 부끄러움도 없고[無慙], 세상에서 악을 지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無愧].
무엇을 부끄러움이 없다고 하는가?
홀로 놀며, 항상 욕심의 경계를 생각하여 마음과 마음이 상속하고, 오직 아름답고 좋은 것만 보고 허물됨이나 근심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부모나 여러 어른께서 그의 욕심을 꾸짖어도 그 어른 앞에서 다툼[諍]이 일어난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움이 없다고 하는 것이니, 이 사람은 목숨을 마치면 마땅히 악도[惡趣]에 태어날 것이다.
중품의 탐욕이란 만약 경계를 떠나면 항상 마음이 생겨나지 않는 것이며,
하품의 탐욕이란 다만 같이 말하고 웃고 나면 욕정이 곧 없어지는 것이다.
성냄에도 또한 세 등급이 있으니,
상품(上品)의 성냄이란 분노가 일어날 때 마음이 흐려지고 눈이 어지러워지며 혹은 5역죄를 짓고, 혹은 정법을 비방하나 큰 중죄 5역(逆)의 악에는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않는 것이다.
중품의 성냄이란 성을 냄으로 해서 모든 악을 짓고 곧 후회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하품의 성냄이란 마음에 싫어하고 한(恨)함이 없고, 다만 입으로 헐뜯고는 곧바로 허물을 뉘우치는 것이니 어리석음도 또한 이와 같다.
비록 이렇게 보아도[觀] 일체법이 허수아비요 꿈이요 메아리요 건달바성과 같이 허망하여 진실한 것이 아니라 전도(顚倒)된 것임을 아는 까닭에, 밖의 경계를 멸하고 속마음이 고요하여 자신이 행하는 것과 행할 법도 보지 않으니, 둘도 아니고 다른 것도 없어서 자성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선(禪)바라밀을 통달한다고 하는 것이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바른 지혜[正智]로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을 관하되,
색이 생겨난다고 보지 않고 색의 쌓임도 보지 않고 색의 멸함도 보지 않나니,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같다.
무슨 까닭인가? 자성이 다 공하여 진실한 것이 없으나,
다만 허망한 이름자만으로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모든 중생을 교화하되,
끝내 업의 과보가 없다고 설하지 않으며,
모든 법은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아, 나도 없고 남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명도 없고 양육하는 것도 없되,
업의 과보가 있다고 설하는 것이다.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수행하면 악마도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무슨 까닭인가? 선지식을 가까이 하며 보리를 도와서 세간법을 여의고 모든 여래의 매우 깊은 정법을 환희하여 찬탄하고,
부처님의 바른 지혜를 제외하고는 하늘이나 마귀[魔]나 사문과 바라문은 보살에 미칠 자가 없으니,
자신이 행하는 것과 행할 법을 보지 않고,
둘이 없고 다른 것도 없어서 자성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반야바라밀을 통달한다고 하는 것이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방편[優波憍舍羅:善巧方便]바라밀을 행함에는 보살마하살은 선교(善巧) 방편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니,
만약 꽃과 과일을 보면 밤낮으로 여러 부처님과 보살대중에게 공양한다.
이런 선근으로 보리에 회향하니, 꽃나무와 과일나무도 또한 이와 같다.
만약 여래의 경 가운데에서 매우 깊은 뜻을 설함을 듣고는 믿고 즐겁게 받아가지고 중생을 위하여 설한다면 이런 선근으로 보리에 회향한다.
만약 여래의 탑이나 형상을 보고 향이나 꽃을 공양하면 모든 중생이 파계(破戒)의 향을 여의고 여래의 청정한 계의 향을 얻게 하며,
더러운 땅에 물을 뿌리고 먼지를 쓸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위의를 단정하게 하며,
꽃으로 장식한 일산[華蓋]으로 가리워서 모든 중생이 다 뜨거운 고뇌를 여의게 하며,
승가람(僧伽藍)에 들어가서 모든 중생이 다 열반에 들어가기 원한다.
또한 만약 가람에서 나올 때는 모든 중생이 마귀의 경계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가람의 문을 열 때는,
‘출세간의 지혜로써 모든 중생을 위하여 아직 열리지 않은 문이 열리어지이다’라고 원한다.
만약 빗장이 걸리어 문이 닫혀 있음을 보면,
원컨대 악도[惡趣]와 3계[有]의 빗장이 걸려 문이 닫힌 중생을 위하여 앉을 때마다 생각하여 말하기를,
‘원컨대 모든 중생이 보리좌에 앉기 원하며,
만약 오른쪽 옆구리를 대고 누울 때는 모든 중생이 다 열반을 얻기 원합니다’라고 한다.
또한 일어날 때마다 생각하여 말하기를,
‘모든 중생이 모든 의혹을 여의고 일어나기 원하며,
만약 다리와 발을 씻을 때는 모든 중생이 번뇌를 멀리 여의기를 원하며,
부처님께 예를 드리고 탑을 돌 때는 모든 중생이 천인사(天人師:佛)가 되기 원합니다’라고 한다.
만약 외도의 삿된 견해를 교화하기 어려우면 곧 스스로 생각하여 말하기를,
‘내가 먼저 그들의 스승이 된다면 반드시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다.
우선 같이 배우는 도반이나 혹은 제자가 되어 그들 대중과 함께 지내면서도 계행과 들음이 많아 다른 외도들보다 으뜸이 된다면,
그로 인하여 항복하고 존중하므로 그런 후에 스승이 되어 말하면 반드시 믿고 받들 것이니,
이때 그의 삿된 법을 허물고 열반법을 설하여 바른 가르침에 들어오게 하여 정성스럽게 범행(梵行:청정행)을 닦아 선정과 삼매로 모든 신통을 얻게 한다.
또한 욕심이 많은 자를 보면 용모가 가장 단정한 여인으로 변화하여 그로 하여금 애착하게 하다가,
문득 무상함을 나타내 보여서 육신[色]이 변하고 배가 퉁퉁 부어오르고 문드러지고 허물어져 냄새나는 것 등을 보고는 그로 하여금 미워하고 싫어하여 여읠 마음이 일어나게 한다.
그리고 나서 다시본래 보살의 형상으로 나타나 설법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여 위없는 결과를 이루게 한다.
대승의 사람이 선지식을 여의고 이승(二乘)의 도를 배우나 그 과(果)를 얻지 못하고 어처구니없이 대승을 잃는 것을 보면,
그 근성(根性)을 보아 곧 설법하여 무상도에 들어가게 하며,
아직 발심하지 않은 자는 교화하여 발심하게 하고,
이미 발심한 이는 가르쳐서 견고하게 한다.
계를 가진 이가 가벼운 죄를 범하고서도 참회하여 죄로부터 벗어나려 하지 않고 게을리 물러나 걱정만 하며,
다시 도를 닦지 않는 것을 보면 곧 설법하여 참회하고 없애어 번뇌를 끊고 도에 이르기 위해 훌륭하게 정진[勝進]하게 하니,
보살마하살은 욕심을 적게 하여 만족할 줄 알고, 오직 법의 이로움을 구하여 중생을 위하여 여래께 공양하기를 설한다.
6바라밀을 성취하여 설법하고 공양하니 이것이 단(檀)바라밀이며,
행동과 말이 어긋나지 않으면 이것이 시(尸)바라밀이다.
만약 하늘이나 혹은 마귀가 능히 허물어 어지럽게 하지 못한다면 이것이 찬제바라밀이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서 피곤하거나 싫증내지 않으면 이것이 비리야(毘梨耶)바라밀이요,
마음을 오직 하나로 하여 다른 경계와 인연하지 않으면 이것이 선바라밀이다.
설법하고 공양함에 나와 내 것을 보지 않으면 이것이 반야바라밀이다.
자신이 행하는 것과 행할 법을 보지 않으니, 둘이 없고 다른 것도 없어서 자성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방편바라밀에 통달한다고 하는 것이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원(願:尼坻)바라밀을 행하니 보살의 발원은 진실로 삼계를 벗어나 이승의 도를 구하는 즐거움을 가지기[有] 위함이 아니다. 보살은 큰 서원을 세워서 말하기를,
‘모든 중생을 거두어들여 중생을 다 열반에 들게 하고, 그런 후에야 이 몸이 정각을 이룰 것이다’라고 한다.
또한 보살은 아직 발심하지 않은 자는 곧 발심하게 하고,
이미 발심한 이는 수행하게 하며,
이미 수행하는 이는 보리를 얻게 하고,
보리를 얻은 이에게는 법륜을 굴리기를 청하며,
이렇게 점점 나아가 몸에서 나온[分身] 사리로는 탑을 일으켜 공양하게 한다.
다시 서원을 세워서 말하기를,
‘만약 세계에 계시는 모든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셔서 모든 하늘의 마(魔)가 없어지고,
원컨대 자기 몸 밖의 인연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의 지혜로써 위없는 마음을 발하게 하소서’라고 한다.
또 원하되
‘나의 몸이 항상 세간에 있으면서 모든 중생이 원하는 것을 모두 다 성취하게 하여,
새로이 뜻을 발하는 모든 보살들이 만약 여래의 매우 깊은 법을 설하심을 듣더라도 마음에 놀라거나 두려움이 없게 하여지이다.
또한 원하옵건대, 끝없는 부처님의 도와 끝없는 부처님의 경계와 끝없는 대비를 모든 중생이 다 통달하게 하여 주십시오.’
또 원하되,
‘그리고 나의 몸은 항상 사바세계[穢國]에 태어나고 정토에는 태어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하니,
왜냐 하면 비유하건대 병든 사람은 오직 의약에 의지하다가 병이 없어지면 그에 의지하지 않는 것과 같이,
자신이 행하는 것과 행할 법을 보지 않으니,
둘도 없고 다른 것도 없어서 자성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원바라밀을 통달한다고 하느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역(力:婆羅)바라밀을 행함에 보살마하살은 능히 하늘의 마귀를 항복받고 모든 외도를 꺾으며,
공덕과 지혜력을 구족하였으므로 모든 부처님의 법을 수행하지 않음이 없고 증득하여 보지 못하는 것이 없다.
또한 신통력으로써 한 개의 모발을 가지고도 능히 염부제(閻浮提)와 나아가 사천하[四大洲]와 삼천대천세계에서부터 무량 백천세계에 이르기까지 들어 올리며,
능히 공중에서 갖가지 보배를 취하여서 모든 중생에게 베풀며 시방 무량무변세계의 모든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지니지 않음이 없으나,
자신이 행하는 것과 행할 법을 보지 않으니,
둘도 없고 다른 것도 없어서 자성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역(力)바라밀을 통달한다고 하느니라.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워서 지(智:闍那)바라밀을 행하면서 보살마하살이 5음(陰)을 관함에, 생겨나도 실제로 생겨남을 본 것이 아니고 소멸하여도 실제로 소멸한 것이 아니니 이렇게 사유하라.
즉, 이 5음은 공하여 나도 없고 남도 없으며 중생도 없고 수명도 없고 양육함도 없는데, 범부 중생이 허망하게 나[我]라고 집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5음은 내가 아니요, 음(陰) 가운데 내가 없고 나는 5음이 아니다.
내[我] 속에는 음이 없으나 범부가 어리석게 미혹하여 여실하게 알지 못하고 생사에 유전하는 것이, 마치 불바퀴[火輪]가 도는 것과 같다.
모든 법은 자성이 본래 공하여 생겨남도 없고 멸함도 없으나 인연이 모인 것을 생겨남이라 하고 인연이 흩어진 것을 멸이라 한다.
자성은 없는 것이 아니므로 생겨남도 없고, 자성은 있는 것도 아니므로 멸함도 없다.
보살마하살은 모든 경계에 한 법도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수행함을 지(智)바라밀이라 하느니라.
이승이나 외도는 능히 가리어 숨기지 못하며, 지혜로 관철하면 초발심에서 열반에 들어가기까지 다 밝게 알아서 능히 한 법을 가지고 모든 경계를 알며, 모든 경계가 곧 한 법임을 알게 된다.
무슨 까닭인가? 여여하게 하나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닦는 것과 닦는 법을 보지 않으니,
둘이 없고 다른 것도 없어서 자성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지(智)바라밀을 통달하였다고 하느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