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입능가경 제1권
신역대승입능가경서(新譯大乘入楞伽經序)
측천무후제(則天武后製)
대개 듣기로, 마라산(摩羅山) 정상은 아주 높고 험하여, 산 정상에 있는 능가성(楞伽城)은 진실로 오르기도 힘들고 들어가기도 어렵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은 먼저 부처[佛]께서 가르침을 널리 베푼 곳이요, 예전에는 성인[聖]들이 수행(修行)을 했던 곳이다. 이곳에 성주(城主)가 있었으니, 라바나(羅婆那)라고 불렸다.
라바나는 궁전(宮殿)을 타고 가서 부처의 존안(尊顏)을 뵙고 아름다운 음악[樂音]을 부처님께 바치며 부처님의 신묘한 불법[妙法]을 듣고자 기원하였다.
이 때문에 부처께서는 산 봉우리를 각종 보화로 장식하여 불법의 진리가 융성함을 나타내었고 불법의 바다[藏海]를 가리켜 그 가르침의 근본 뜻[宗]을 밝히셨다.
입능가경(入楞伽經)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부처[諸佛]가 헤아리는 마음[心量]의 현묘한 핵심[玄樞]이요, 여러 경문[群經]이 가르치는 이치[理窟]의 오묘한 열쇠[妙鍵]이다. 그 가르침은 아주 넓고 깊으며 깊은 의미를 꿰뚫어 분명히 밝히니, 태어남과 죽음도 없게 되고 있음과 없음도 없게 된다.
그래서 태어나고 죽음의 두 가지 길[去來之二途]도 끊어지고, 존재함과 존재하지 않음의 집착[斷常之雙執]도 벗게 하니, 제일의 신묘한 진리[第一義諦]요, 최상의 오묘한 이치[最上妙珍]로다. 제법(諸法)이 아무 의미 없음을 체득하게 하고, 눈앞의 대상[前境]이 허깨비임을 깨닫게 하며, 현상과 실재[假名]를 분별하는 경계를 없애고, 생사(生死)의 윤회와 열반(涅槃)에 이르는 깨달음이 같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대혜(大慧)의 물음이 앞에 진술되고, 법왕(法王)의 가르침이 이에 일어나니, 질문에 대한 108개의 가르침[一百八義]은 모든 현상의 실재[實相]를 드러내어 이 세상을 초월한 것이었고, 39개의 단락[三十九門]은 거짓된 견해를 물리치고 부처의 정법(政法)을 널리 베풀었다.
그래서 명상(名相: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거짓임을 밝혔으며, 망상(妄想)이 생각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여, 올바른 지혜[正智]에 의지하여 진여(眞如)에 이르게 하였고, 연기(緣起)를 깨달아 불법의 오묘한 이치[妙理]에 귀의하게 하였다.
현상이 일으키는 번뇌의 광풍[境風]은 이미 잠잠해졌고, 진리를 인식하는 깨달음[識浪]은 이제 분명해졌으며, 삼자성(三自性)은 모두 공(空)임을 깨달았고, 이무아(二無我)는 모두 사라졌으니, 여래의 진리세계[如來之藏]로 들어가, 해탈의 세계[解脫之門]에서 노닐 것이다.
원래 이 경문(經文)은 인도[西國]에서 온 것으로, 원가(元嘉)라는 연호를 사용한 시기[建號]에 발타(跋陁)가 이 경문을 번역하였는데, 경문을 다 모으지 못한 채 번역하였다.
그 후 연창(延昌)으로 연호를 사용할 때, 보리유지[流支]가 다시 번역하였는데, 그 뜻이 틀린 것이 많았다.
짐(朕)은 공경히 부처님께서 부촉(付囑)하신 뜻을 생각하고, 불법을 잇고 융성시킬 것을 간절히 생각하였다.
그래서 구시(久視) 원년(元年:700년), 세차(歲次)로는 경자(庚子)년, 임종이 율려를 규율한 달[林鍾紀律:6월], 염제가 주관하는 때[炎帝司辰:여름]에, 기봉(箕峯)으로 더위를 피해 가서 바람을 쐬며 영수(穎水)를 구경하였는데, 삼양궁(三陽宮) 내에 있던 이 경문[經]을 다시 내오게 하여, 삼본(三本)의 핵심 진리[要詮]를 토의하고 7권[七卷]의 가르침을 완성하였다.
삼장사문(三藏沙門) 우전국(于闐國) 출신 승(僧) 실차난타(實叉難陁) 대덕(大德)과 대복선사(大福先寺) 승(僧) 복례(復禮) 등(等)은 나란히 명성[名]은 도안[安]ㆍ혜원[遠]에 버금가고 덕(德)도 마등[騰]ㆍ법란[蘭]과 나란히 할 정도였다.
그리고 용수(龍樹)의 아름다운 뜻[芳猷]을 따르고 마명(馬鳴)의 은미한 가르침[秘府]을 캐내어서, 공덕의 향기[戒香]와 깨달음의 꽃잎[覺花]이 온 세상에 퍼지고 품은 뜻의 영롱함[意珠]와 불성의 밝은 빛[性月]이 온 세상에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들은 불법의 깊고 은미한 진리[沖微]에 도달할 수 있었고,불법의 깊은 진리[奧賾]를 펼쳐낼 수 있어서, 장안(長安) 4년[704년] 정월(正月) 15일(日)에 경문의 필사를 모두 마칠 수 있었다.
나의 생각[自惟]은 아주 엷고 얕은데 말하는 것[言謝]도 잘 꾸미기만 하여서, 사변(四辯)을 살펴보니 부끄러울 뿐이고 일승(一乘)을 엿보아도 불법을 깨달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승려와 속인[緇俗]의 요청을 물리치기 어려워 억지로 먹을 갈고 붓을 들어 글을 지었으나, 문장은 보잘 것 없고 글의 논리도 들쑥날쑥하여 점점 부끄러움만 더할 뿐이다.
삼가 생각하건, 이 경문의 은미하고 신묘한 이치는 세상에서 가장 드문 것이니, 세속의 혼탁한 어둠을 물리쳐서 등불과 같은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 끊이지 않으며, 불법을 전하는 공덕이 끊임없이 펼쳐져서 샘처럼 솟아나는 불법의 진리가 마르지 않기를 바라노라. 제목(題目)과 품차(品次)는 뒤에 열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