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달마구사론본송
1. 분별계품(分別界品)[44송]
일체 종지(種智)로써 온갖 어둠을 멸하시고
중생을 건져 올려 생사의 늪에서 나오게 하신
이와 같은 참다운 스승[如理師]께 공경 예배하고서
나 이제 마땅히 『대법장론』을 설하리라.
청청한 혜(慧)와 이에 따르는 행(行)을 대법이라 하며
또한 이를 획득하게 하는 온갖 혜와 논도 대법인데,
그 같은 승의를 포섭하고, 그것에 의거한 것이기 때문에
이 논을 대법구사(對法俱舍)라고 이름한 것이다.
택법(擇法) 이외 다른 어떠한 법도 존재하지 않으니,
온갖 번뇌[惑]를 능히 소멸할 만한 뛰어난 방편으로
번뇌에 의해 세간은 존재의 바다[有海]를 떠도는 것,
이로 인해 부처님께서는 대법을 설하셨다고 전한다.
유루(有漏)와 무루(無漏)의 법이 있는데,
도제(道諦)를 제외한 그 밖의 유위법에는
누(漏)라는 번뇌가 따라 증가[隨增]하니,
그래서 ‘유루’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무루란 이를테면 도제와
아울러 세 가지의 무위
즉 허공과 두 가지의 멸(滅)을 말하는데,
이 중의 허공은 장애를 갖지 않는 것이다.
택멸(擇滅)이란 말하자면 이계(離繫)로서
계박하는 것에 따라 각기 다르며,
마땅히 생겨나야 할 법이 끝내 장애되면
택멸과는 다른 비택멸을 획득한다.
또한 온갖 유위의 법이란
이를테면 색 등의 5온을 말하니,
역시 또한 세로(世路)ㆍ언의(言依)
유리(有離)ㆍ유사(有事) 등이라고도 한다.
유루를 취온(取蘊)이라고도 이름하며
역시 또한 유쟁(有諍)이라고도 설하며,
아울러 고(苦)ㆍ집(集)ㆍ세간(世間)
견처(見處)ㆍ3유(有) 등이라고도 한다.
색이란 오로지 5근(根)과
5경(境) 그리고 무표(無表)인데,
그 같은 식(識)의 근거가 되는 정색(淨色)을
안(眼) 등의 5근이라고 이름한다.
색(色)에는 두 가지, 혹은 스무 가지가 있고
성(聲)에는 오로지 여덟 가지가 있으며,
미(味)에는 여섯 가지, 향(香)에는 네 가지가 있으며
촉(觸)은 열한 가지를 자성으로 한다.
난심(亂心)과 무심(無心) 등을
따라 유전[隨流]하여 정(淨)ㆍ부정(不淨)이 되는 것으로서
이는 대종소조(大種所造)를 본질로 하기 때문에
이에 따라 무표라고 설한 것이다.
대종이란 이를테면 4계(界)로서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을 말하니,
능히 지(持) 등의 작용을 성취하며
견(堅)ㆍ습(濕)ㆍ난(煖)ㆍ동(動)을 본질로 한다.
땅이란 말하자면 현색(顯色)과 형색(形色)으로
세간의 언어적 관습[世想]에 따라 설정된 명칭이고,
물과 불도 역시 또한 그러하며
바람은 바로 계(界)이나, 역시 그렇다고도 한다.
이 가운데 근(根)과 경(境)은
바로 처(處)ㆍ계(界)라고 하며,
수(受)는 촉(觸)에 따른 영납(領納)이고
상(想)은 취상(取像)을 그 본질로 한다.
네 가지 온 이외의 것을 행온(行蘊)이라 이름하며,
이와 같은 수(受) 등의 세 온과
아울러 무표와 무위를
법처(法處)ㆍ법계(法界)라고 이름한다.
식(識)이란 말하자면 각각을 요별(了別)하는 것으로
이것을 바로 의처(意處)라 하고,
아울러 7계(界)라고 이름하니
6식이 과거로 전이한 것을 의계(意界)라 함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6식신(識身)이
무간에 멸함에 따라 의계(意界)가 되는 것이니,
이는 여섯 번째의 소의(所依)를 성취하기 위함이므로
그래서 18계가 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일체법을 전체적으로 포섭하는 경우
하나의 온과 처와 계에 의해 포섭되는 것으로,
자성만을 포섭하고 그 밖의 다른 것은 포섭하지 않으니
타성(他性)을 떠난 것이기 때문이다.
존재와 대상과 인식이 동일하기 때문이니
비록 두 개일지라도 계(界)의 본질은 단일하다.
그러나 단정하고 위엄있게 하기 위해
안(眼) 등에 각기 두 개가 생겨난 것이다.
적취와 생장문(生長門)과 종족,
이것이 바로 온ㆍ처ㆍ계의 뜻으로
어리석음과 근기와 즐거움 등 세 가지가 있기 때문에
온ㆍ처ㆍ계의 세 가지를 설한 것이다.
쟁근(諍根)과 생사(生死)의 원인이고
아울러 순서상의 이유[次第因] 때문에,
온갖 심소법 중에서
수(受)와 상(想)을 별도로 온이라 한 것이다.
5온에 무위법이 포섭되지 않음은
(色 등의) 뜻과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니,
거침[麤]과 염착[染]과 그릇[器] 등과
3계의 차별에 따라 5온의 순서가 설정된 것이다.
앞의 다섯 가지의 대상[境]은 오로지 현재하는 것이고
네 가지의 대상은 오로지 소조(所造)의 색이기 때문에
그 밖의 나머지는 작용이 멀거나 빠르고 분명함에 따라
혹은 그것이 위치하는 장소[處]에 따른 순서이다.
차별되고 가장 뛰어나며
다수의 법과 증상법을 포섭하기 때문이니,
그래서 한 가지 처만을 색이라 이름하고
한 가지 처만을 일컬어 법처라고 한 것이다.
모니(牟尼)께서 설한 법온(法蘊)은
헤아리면 8만이 있는데,
그 본질은 말[語]이고, 혹은 단어[名]이니
이는 색온과 행온에 포섭되는 것이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온갖 법온의
양은 그러한 논(論)에서의 설과 같다고 하였고,
혹은 오온 등의 말씀에 따른다고 하였지만
참다운 설은 행(行)의 대치이다.
이와 같은 그 밖의 다른 온 등은
각기 그것이 대응하는 바에 따라
앞서 설한 것 중에 포섭되는 것이니
마땅히 그 자상을 살펴 관찰해야 하리라.
공계(空界)는 말하자면 규극(竅隙)으로
전설에 따르면, 이는 바로 명암을 본질로 한다.
식계(識界)는 유루의 식으로서
유정의 생의 소의가 된다.
이를테면 색 한 가지만이 유견(有見)이며
열 가지의 유색(有色)이 유대(有對)인데,
이 중 색과 성(聲)을 제외한 나머지 여덟 가지는
무기이고, 나머지는 모두 세 가지의 성(性)이다.
욕계의 계(繫)는 열여덟 가지이고
색계의 계는 열네 가지이니,
향ㆍ미와 두 가지 식(識)을 제외한 것이며
무색계의 계는 뒤의 세 가지이다.
의계와 법계와 의식계는 유루ㆍ무루와 통하며
그 밖의 나머지 계는 오로지 유루이다.
다섯 가지 식(識)은 유심유사(有尋有伺)이고
뒤의 세 가지는 세 가지 경우이며, 나머지는 무심무사이다.
다섯 가지 식을 무분별이라고 설함은
계도(計度)와 수념(隨念)에 의한 것으로
그것은 의식의 근거[意地]가 되는 산혜(散慧)와
온갖 염(念)을 본질로 한다.
일곱 가지의 마음과 법계의 반은
유소연(有所緣)이고, 그 밖의 것은 무소연이며,
앞에서 언급한 여덟 가지 계와 아울러 성계(聲界)는
무집수이며, 그 밖의 것은 두 가지와 모두 통한다.
촉계 중에는 두 가지가 모두 있고
나머지 아홉 가지 색은 소조이며
법계의 일부도 역시 그러하다.
그리고 열 가지 색은 적집될 수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오로지 외적인 4계(界)만이
능히 쪼개는 것이고, 아울러 쪼개지는 것이며,
역시 태워지는 것이고, 능히 재는 것이지만
능히 태우는 것과 재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쟁론이 있다.
내적인 5계는 이숙생과 소장양이며
성계(聲界)는 이숙생이 아니다.
여덟 가지 무애(無碍)의 계는 등류이며
역시 또한 이숙생의 성질도 있다.
나머지는 세 가지이고, 실(實)은 오직 법계뿐이며
찰나는 오로지 뒤의 세 가지 계뿐이다.
안계와 안식계는 단독으로 획득되기도 하고
또한 함께 획득되거나 그렇지 않기도 하는 등이다.
내적인 것은 열두 가지로서, 안계 등이며
색계 등의 여섯 가지를 외적인 것이라고 한다.
법은 동분이며, 그 밖의 나머지는 두 가지이니
자신의 작용[自業]을 행하고, 행하지 않는 것이다.
열다섯 가지는 오로지 수소단(修所斷)이고
뒤의 세 가지 계는 세 가지 모두와 통하며,
불염법(不染法)과, 제6처가 아닌 것에서 생겨난 법과
색법은 결정코 견소단(見所斷)이 아니다.
안계와, 법계의 일부인
여덟 가지를 설하여 견(見)이라 이름하며,
5식과 함께 생기하는 혜(慧)는
비견(非見)이니, 판단[度]하지 않기 때문이다.
색을 보는 것은 동분의 안근으로,
그것을 의지처로 삼는 식(識)이 아니니,
전설에 의하면, 은폐된 온갖 색을
능히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혹 두 눈[二眼]으로 함께 볼 경우
색을 보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며,
안근ㆍ이근ㆍ의근과 그 대상은
접촉하지 않지만 나머지 세 가지는 이와 반대이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 비근 등의 세 가지는
오로지 같은 양의 대상만을 취한다.
또한 후자(제6의식)의 소의는 오로지 과거(의근)뿐이며
5식의 소의는 혹은 두 가지(俱生하는 근과 의근) 모두이다.
근(根)의 전변에 따라 식(識)도 전이하니
안(眼) 등의 근을 소의라고 이름한 것이며,
그러한 사실과 아울러 불공인(不共因)이기 때문에
근(根)에 따라 식(識)의 명칭을 설하게 된 것이다.
신(身)에 있어서 안근은 하지(下地)가 아니며
안근에 있어 색과 안식은 상지(上地)가 아니다.
색은 안식의 일체 지(上地ㆍ等地ㆍ下地)와 통하며
신에 있어 두 가지(색과 안식)도 역시 그러하다.
안근과 마찬가지로 이근도 역시 그러하며
다음의 세 가지는 모두 자지(自地)이다.
그리고 신식은 자지이거나 하지이며
의근은 결정되어 있지 않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다섯 가지 외계는 두 가지 식(識)에 의해 인식되고
영원한 것은 법계인 무위이며,
법계의 일부는 바로 근(根)이고
아울러 내계(內界)의 열두 가지도 역시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