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광대장엄경 제1권
대당신역삼장성교서(大唐新譯三藏聖教序)
황태후 어제(皇太后御製)
나는들었다. 진공(眞空)은 형상[象]이 없고 형상이 아닌 가르침이므로 그 참됨[眞]을 풀어낼 길이 없으며, 실제(實際)는 말이 없고 말이 없는 단서이므로 그 실체를 설명할 길이 없다고 하였다. 이 때문에 용궁(龍宮)의 법경(法鏡)이 삼천대천세계를 원만하게 비추고, 취령(鷲嶺)1)의 현문(玄門)이 백억세계를 고르게 넓혔다.
무사의 지혜[無師之智]를 스승으로 하려면 수다(修多)에 의지해야 하고, 무학(無學)의 종지[宗]를 배우려면 기야(祇夜)를 의거해야 한다. 금인(金人)의 감몽(感夢)으로부터 보배로운 게송이 사방으로 전해졌는데, 패엽(貝葉)의 신령한 문장은 북천축의 가르침인지라 아득히 멀었고, 관화(貫花)의 은미한 뜻은 서진(西秦)의 번역으로 더욱 새로워졌다. 이로써 대승(大乘)ㆍ소승(小乘)을 근기에 맞춰 연설하고, 반자(半字)와 만자(滿字)는 권실(㩲實)을 따라 자세히 밝혔다.
예당(睿唐)의 천하는 창성한 시기라 대대로 3성(聖)이 70년간 전해져, 순(舜)임금의 교화와 삼매 정수(定水)가 함께 맑아졌으며, 요(堯)임금의 밝음과 자비의 등불이 나란히 비추었으니, 승복을 입고 서쪽으로 간 것이 어찌 법현(法顯)의 무리뿐이겠으며, 백마(白馬)에 경전을 싣고 동쪽으로 온 것이 가섭마등[摩騰]의 무리뿐이겠는가? 오늘 백성을 교화하여 석존의 가르침을 크게 넓히게 되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마음으로 피안에 귀의하여 3명(明)의 길을 힘써 넓혔고 8정(正)의 문을 숭상하였다. 지난날엔 극심한 재앙을 만나서 두려움이 음덕을 저버렸고, 근래에는 효성이 무감(無感)하여 다시 자안(慈顔)을 등지니 노초(露草)의 한이 날로 깊어지고 풍수(風樹)의 슬픔이 애절해졌다.
장안과 낙양의 두 곳의 옛집을 모두 초제(招提)로 엮어 다함없는 곳집으로 가득 채웠으니, 이는 모두 양친[二親]이 비축한 곳이었다. 이로 인하여 대덕 등 모두 10인이 다시 경성에 모여, 중천축국 삼장 법사 지바하라(地婆訶羅)와 함께 서태원사(西太原寺)에서 경론을 번역하였다. 법사 등은 업(業)이 초지(初地)와 견주고 도(道)가 드높아서 불법의 동량(棟梁)이 되었으며 지혜의 바다에 배와 노였다.
전후로 번역한 것이 모두 10부(部)이며 때는 수공(垂拱) 원년(元年) 을유년(乙酉年) 음력 7월이었다. 번역을 완성하고[汗靑] 비단을 취하여 장식하니 감로의 지취가 이미 깊어졌고 대운(大雲)의 깨우침이 사방으로 넓어졌다. 항하사겁토록 사바세계를 널리 구제하고, 불을 전하듯 뜻이 이로부터 밝아지며, 쏟아지는 듯한 변론은 더욱 윤택해지기를 바란다.
내가 허매(虛昧)하였으나 고탁(顧託)을 공경히 받들어 항상 삼보(三寶)를 이어받아 융성하게 하여 대보(大寶)의 큰 기틀을 편안하게 하며, 8성(聖)을 발휘하여 선성(先聖)의 큰 업을 견고하게 하기를 서원하였다. 이로써 4구(句)의 은미한 말씀은 발제하[提河]에 깊이 이르러 다했고 일음(一音)의 오묘한 뜻은 암몰라 동산[菴園]에서 그윽한 뜻을 다했다. 대법고(大法鼓)를 치니 무간지옥을 진동하고 대법라(大法螺)를 부니 유정천까지 통하였다. 암실(暗室)의 밝은 횃불이요, 어두운 거리에 지혜의 달이니 보리(菩提)의 명료한 뜻이 여기에 있구나.
부질(部帙)과 조목[條流]은 뒤에 나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