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대안반수의경 상권
강승회(康僧會) 서문[序]
안반(安般)이라는 것은 여러 부처님들의 큰 가르침[大乘]으로, 세속에서 표류하는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다. 안반의 선법에는 여섯 가지가 있는데, 이것으로 6정[六情]을 다스린다.
정(情)에는 안[內]과 바깥[外]이 있는데, 눈[眼]⋅귀[耳]⋅코[鼻]⋅혀[舌]⋅몸[身]⋅마음[心]은 안이고, 색(色)⋅성(聲)⋅향(香)⋅미(味)⋅촉감[細滑]⋅사념(邪念)은 바깥이라 한다.
경(經)에서 “여러 바다의 12가지 현상[事]”이라고 한 것은, 안과 바깥의 6정이 삿된 행위를 받아들이는 것이 마치 바다가 온 세상의 흐르는 물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굶주린 사람이 꿈에서도 밥을 먹는 것은 대개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니, 마음이 이렇게 만족을 모르고 이리저리 요동치는 것은, 마음의 아주 작은 것에도 6정이 작용하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모습은 너무나 흐릿하고 어렴풋하며, 그 작용은 끊임없이 이루어져서, 보아도 그것을 그릴 수 없고, 들어도 소리로 나타낼 수 없으며, 이것을 맞닥뜨려 알려 해도 그 앞에 아무 것도 없고, 이것을 좇아서 탐구해도 뒤에 남는 것이 없으니, 지극히 은밀하고 너무나 오묘하여 그 모습을 터럭만큼도 형용할 수 없다.
그래서 범천[梵]·제석[釋]·신선[仙]·성자[聖]도 6정의 실체를 밝힐 수 없었으니,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게 마음에 심어져 고요히 생겨난 것이다.
육정의 이런 모습은 일반적인 방법으로 엿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것을 ‘음[陰]’이라고 하니,
마치 그늘진 곳에 농부[種夫]가 땅을 깊게 파서 손수 씨앗을 덮어주면 씨앗이 셀 수 없을 만큼 열매를 맺으나,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도 그 이루어진 과정을 알 수 없고, 씨를 뿌린 사람도 그 수(數)를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아래에서 하나가 썩어도 위에서는 만 가지가 생겨나고, 손가락을 한 번 튕기는 짧은 시간에도 마음은 960번을 변하게 되어, 하루 밤낮이면 13억의 생각[意]이 생겨나게 된다.
생각마다 하나의 몸통[一身]이 있으나 마음[心]은 제 스스로 알 수 없으니, 저 씨 뿌리는 농부와 같은 것이다.
이 때문에 마음의 움직임을 고요하게 하고, 생각이 날뛰지 않게 꽉 붙잡고 호흡을 시작하여 하나부터 열까지 센다.
열을 셀 때까지 잘못되지 않으면 생각이 고요한 상태가 되어 제 자리를 찾은 것이다.
짧은 입정[小定)은 3일을 하고, 긴 입정[大定]은 7일을 하는데, 고요히 다른 생각[念]은 없어지고 죽은 듯이 생각이 맑아지니, 이것을 첫 번째 선(禪)이라고 한다.
선(禪)은 버린다는 뜻이니, 13억의 더러운 생각을 버린다는 것이다.
이미 수를 세어 생각을 고요히 했고, 뜻[念]을 바꿔서 부처님의 법을 그대로 따르니, 더러운 생각은 열에 여덟이 제거되고 바로 두 가지 생각[二意]만 남게 된다.
이처럼 생각이 고요해지고 뜻이 부처님의 법을 따르게 된 것은, 수를 세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도다.
그래서 모든 더러운 것들이 씻겨나가고 마음이 점점 맑아지게 되니, 이를 일러 두 번째 선(禪)이라고 한다.
다시 그 나머지 하나를 제거하는 것은, 코끝[鼻頭]에 생각을 집중하는 것이니, 이것을 일러 지(止)라고 한다.
이렇게 생각을 한 곳에 집중하는 지(止)의 선법을 얻으면 삼독(三毒)、사주(四走)、오음(五陰)、육명(六冥) 등의 모든 더러운 것이 소멸하게 되어, 찬란하게 빛나는 마음의 밝은 빛이 명월주(明月珠)의 빛보다 더 밝을 것이다.
음탕하고 거짓된 더러운 마음은 거울이 아주 더러운 진흙탕에 놓인 것과 같으니, 눕히면 하늘을 비출 것이고 엎어두면 땅만 마주할 것이다.
그러나 총명하고 지혜롭고 성스러우며 이치에 통달한 마음은 온 세상을 비출 것이다. 하늘과 땅이 광대하여 평범한 사람은 엿볼 수 없다고 하지만, 그러한 까닭은 오직 그 마음이 더러움에 물들어 혼탁해졌기 때문이니, 온갖 더러움에 물든 마음은 저 진흙탕에 놓인 거울보다 더 심한 것이 있는 것이다.
만약 좋은 스승을 얻어 더러운 것을 깎아내고 마음을 잘 닦아내면, 마음에 남아 있던 적은 흠과 아주 작은 얼룩도 시원하게 씻기어 남은 것이 없게 되고, 이런 마음을 들어서 온 세상을 비춘다면 터럭과 머리카락 같은 아주 작은 이치까지 조금이라도 살피지 못하는 것이 없을 것이니, 마음에 묻은 흠이 없어지고 밝은 마음만이 남아서 그렇게 된 것이다.
정(情)은 생각[意]을 요동치게 하고 뜻[念]을 어지럽게 하여, 만 가지 이치 중에 하나라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
마치 시장에서 마음을 놓아버리고 제멋대로 듣는다면 많은 소리들을 들으나, 집으로 돌아와 들은 것을 생각해보면 한 사람의 말도 제대로 알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마음이 풀어지고 생각[意]이 흩어지면 그 총명함이 흐려지고 어둡게 된다.
만약 스스로 조용한 곳에 머물며 마음과 생각을 고요하게 한다면, 뜻[志]에 거짓된 욕망이 없게 되고, 귀를 기울여 고요히 듣게 되어서, 들은 불법의 모든 구절[萬句]을 조금도 잃지 않으며, 부처님의 한 마디 말씀[片言]도 분명하게 깨우치니, 마음[心]이 고요해지고 생각[意]이 맑아졌기 때문인 것이다.
이렇게 고요하게 생각을 모아서 코끝에 집중하는 것, 이것을 세 번째 선(禪)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시 그 몸을 관찰하여,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반복하여 세밀히 살피면, 몸 안의 더러운 농과 빽빽하게 곤두선 머리털을 마치 눈물이나 고름처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하늘[天]과 땅[地] 그리고 사람[人]과 사물[物]을 모두 관찰한다면, 그 흥성함은 쇠망함과 같고, 존재하는 것은 쇠망하지 않는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되어, 부처님의 삼보(三寶)를 믿게 되고, 모든 어둠[冥]은 전부 밝아질 것이니, 이를 일러 네 번째 선(禪)이라고 한다.
마음을 다잡아 고요히 하고 바른 뜻[念]으로 돌아간다면, 모든 6정의 음(陰)이 다 소멸하게 되니, 이것을 환(還)이라고 한다. 그리고 더러운 욕심이 소리 없이 사라지면, 그 마음은 곧바로 대상을 구분하는 의식작용(想)이 없어지게 되니, 이것을 정(淨)이라고 한다.
안반의 선법을 얻은 사람은 그 마음이 곧장 밝아지고, 그 밝음으로 온 세상을 관찰한다면 아무리 깊이 감추어진 것도 관찰하지 못할 것이 없다.
지나온 셀 수 없는 겁(劫)의 시간, 현재와 미래의 일들, 사람[人]과 사물[物]의 변화, 현재 존재하는 방방곡곡의 모든 세상[諸刹], 그리고 그 가운데 있는 것들을 모두 알 수 있다.
또한 세존(世尊)의 가르침과 교화, 그리고 제자들이 그 가르침을 외고 학습하는 것도,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보지 못함이 없고, 그 소리를 듣지 못함이 없게 되어, 6정의 흐릿하고 어렴풋한 모습도, 존재와 소멸의 시작과 그 이유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커지면 온 세상[八極]에 두루 미치게 되고, 가늘어지면 머리카락보다 가는 것[毛釐]도 꿸 수 있으며, 하늘과 땅을 바로잡고, 수명(壽命)을 주관하며, 거룩한 덕[神德]을 발휘하고, 천병(天兵)도 무너뜨리며, 삼천대천세계를 진동시키고, 세상의 방방곡곡을 옮겨 다닌다.
이 여덟 가지 불가사의는 범천[梵]도 측량할 수 없는 것이니, 이런 신묘한 덕의 무한함은 안반의 여섯 가지 선법[六行]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세존께서 처음 이 경전을 말씀하려고 할 때, 큰 진동(震動)이 있어, 사람과 천신이 얼굴색을 바꾸어 이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였고. 세존께서는 3일 동안 안반(安般)의 선법을 하시고 바로잡을 것[質]이 없게 되었다.
이 때 세존께서 변화되어 두 몸이 되었는데, 하나는 하등(何等)이라고 불렸고, 다른 하나는 존주(尊主)라고 불렸으니, 이 당시의 일에서 그 뜻이 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대사(大士), 상인(上人), 육쌍(六雙), 십이배(十二輩) 모두 안반의 선법을 굳게 행하였다.
이름이 안청(安清)인 보살이 있었는데, 자(字)는 세고(世高)이고 안식왕(安息王)의 정실 왕후의 자식이다. 그는 나라를 숙부에게 양보하고 고국을 떠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살펴보다가 드디어 경사(京師)에 머무르게 되었다.
또한 그는 널리 배우고 아는 것이 아주 많았으며. 신묘한 모사[神摸]⋅천체의 운행[七正]⋅세상의 변화[盈縮]⋅풍기(風氣)⋅길흉(吉凶)⋅산사태[山崩]⋅지진[地動]⋅침놓기[鍼䘑] 등의 여러 기술에 통달했다. 낯빛을 보면 병을 알았고, 새와 짐승들의 울음소리를 듣고도 어떤 짐승인지 알 수 있었다.
또한 하늘과 땅[二儀]처럼 넓고 어진 마음을 지니고 있어서 백성들의 완고함과 어리석음을 걱정하여. 먼저 자신의 귀를 세우고 자신의 눈을 열어서, 백성들의 모든 것을 잘 보고 들으려고 하였다.
그러고 나서 천천히 백성들에게 석가모니 부처님[正眞]의 6도[六度]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고, 안반의 비밀스럽고 오묘한 뜻을 번역해 주었다. 그리하여 배우는 자들이 크게 늘어났고, 그들의 더럽고 탁한 생각이 모두 없어졌으며, 맑고 깨끗한 덕을 이루는 사람들이 되었다.
나는 말세에 태어나 땔감을 짊어 질 수 있는 나이가 되자, 부모님을 여의었고 세 분의 스승도 모두 돌아가셨다. 구름과 해를 우러러보았지만 슬프게도 질정을 받을 곳이 없게 되었고, 머리를 돌려 바라보아도 눈물만이 주르륵 흐를 뿐이다.
오랫동안 쌓아온 복이 다 없어지지 않아서, 남양(南陽)의 한림(韓林) 선생님, 영천(潁川)의 피업(皮業) 선생님, 회계(會稽)의 진혜(陳慧)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이 세 분의 현자(賢者)들은 독실하고 철저하게 불도를 믿으셨고, 넓고 바른 덕을 지니고 계셨다. 또한 끊임없이 정진하셨으며 불도에 뜻을 두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으셨다. 내가 이 분들을 좇아 물음을 청하면, 세 분의 대답은 모두 진리에 딱 들어맞았고 그 의미도 서로 어긋남이 없으셨다. 그리고 지혜를 베푸시고 불법의 의미를 해석해주셔서 내가 불도를 따져서 헤아릴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니, 제 스스로는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말이 비루한 데가 많고, 부처님의 뜻을 궁구하지도 못하였기에, 삼가 명철한 많은 현인들께서 함께 꼼꼼히 살펴봐주시고, 불법의 의미에도 군더더기가 많이 있으니, 성인들께서 군더더기를 깎아내고 다듬어서 감춰졌던 부처님의 신묘한 뜻을 드러내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