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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도론 제1권
[청정에 이르는 도, 계ㆍ정ㆍ혜]
1.
”통찰지를 갖춘 사람은 계에 굳건히 머물러서
마음과 통찰지를 닦는다.
근면하고 슬기로운 비구는
이 엉킴을 푼다. (S. i. 13)”
[세존께서는 『상응부』에서] 위와 같이 설하셨다.
그러면 왜 이것을 설하셨는가?
세존께서 사왓티(사위성)에 머무실 때 였다. 밤에 어떤 천신이 세존을 뵈러 와서 자신의 의심을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다.
”안의 엉킴이 있고, 밖의 엉킴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엉킴으로 뒤얽혀있습니다.
고따마시여, 당신께 그것을 여쭈오니
누가 이 엉킴을 풀 수 있습니까?”(S. i. 13)
2. 이것이 그 간략한 뜻이다.
엉킴(jaṭā)은 갈애의 그물의 동의어 이다.
그것은 형상(rūpa, 色)등의 대상들에서 아래위로 계속해서 일어나기 때문에 서로 꼬여 있다는 뜻에서 엉킴이라 한다.
마치 대나무 덤불 등에서 가지들이 그물 처럼 얽혀 있는 것을 엉킴이라 부르듯이,
그것은 자신의 필수품(parikkhāra, 資具)과 다른 사람의 필수품에 대해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해서, 안의 감각장소(āyatana,處)와 밖의 감각장소에 대해서 일어나기 때문에 안의 엉킴과 밖의 엉킴이라 한다.
이와 같이 일어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엉킴으로 뒤얽혀있다.
마치 대나무 덤불 등이 대나무 가지들로 위얽혀있듯이,
중생의 무리라 불리는 모든 유정들이 이 갈애의 그물에 뒤얽혀있다.
그것에 의해 한데 얽혀있고, 서로 꼬여있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뒤얽혀있기 때문에 고따마시여, 당신께 그것을 여쭙니다라고 그것을 여쭙고 있다. 고따마라고 세존을 종족의 이름으로 불렀다.
누가 이 엉킴을 풀 수 있습니까?
이와 같이 삼계를 얽어두는 엉킴을 누가 풀 수 있습니까?
즉, 누가 이것을 풀 능력이 있습니까라고 그 [천신]은 질문하고 있다.
3. 이와 같이 질문을 받았을 때 모든 법에 걸림 없는 지혜를 가지셨고, 신들 가운데 신이시여, 제석들 가운데 최고의 제석이시고, 범천들 가운데 최고의 범천이시며, 네 가지 담대함(四無畏,vesā raja)을 증득하셨고 열 가지 힘(dasa bala, 十力)을 갖추셨으며, 장애 없는 지혜를 가지셨고, 모든 것을 두루 보는 눈(samantacakkhu, 普眼)을 가지신 세존께서 그에게 그 뜻을 대답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이 게송을 읊으신 것이다.
“통찰지를 갖춘 사람은 계에 굳건히 머물러서
마음과 통찰지를 닦는다.
근면하고 슬기로운 비구는
이 엉킴을 푼다.”(S. i. 13)
4. 이제 대성인께서 설하신 계 등의 분류를 가진
이 게송의 뜻을 있는 그대로 주석하리라.
승리자의 교단에 아주 얻기 어려운 출가를 하고서
비록 청정을 원하고 노력하지만
계 등을 포함하고 안전하고 바른 청정에 이르는
도를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여
청정을 얻지 못하는 수행자들이 있다.
그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고, 지극히 청정한 해석이며
대사(大寺)에 머물던 분들의 가르침의 방식에 의지한
청정도론을 설하리라. 청정을 원하는 모든 어진 분들은
나의 해설을 주의 깊게 잘 들을지어다.
5. 여기서 청정(visuddhi)이란 모든 더러움이 없어진 지극히 청정한 열반이라고 알아야 한다.
그 청정에 [이르는] 도가 청정도(vi-suddhimagga)이다.
도(magga)란 얻는 수단(adhigama)을 뜻한다. 그런 청정도를 설하리라는 뜻이다.
6. 어떤 곳에서도 이 청정도를 위빳사나를 통해서만 설했다.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모든 상카라(行)들은 무상하다고
통찰지로 볼 때
괴로움을 역겨워 하나니(厭惡)
이것이 청정에 [이르는]도다.”(Dhp. 277)
어떤 곳에서는 禪과 통찰지를 통해 설하셨다.
이처럼 설하셨다.
“禪과 통찰지를 가진 자는
열반의 가까이에 있다.”(Dhp. 372)
어떤 곳에서는 업 등을 통해 설하셨다. 이처럼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업, 영지(靈知, vijjā), 법, 계
숭고한 삶-이들을 통해 청정해진다.
종족과 재물로 청정해지는 것이 아니다.”(M. iii. 262)
어떤 곳에서는 계 등으로 설하셨다. 이처럼 말씀하셨다.
“항상 계를 갖추고 통찰지가 있고 깊이 삼매에 들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근면한 자는
건너기 어려운 폭류를 건너다. (S. i. 53)”
어떤 곳에서는 마음 챙김의 확립(satipaṭṭhāna, 念處)등으로 설 하셨다. 이처럼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 도는 유일한 길이니 중생들을 청정하게 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고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며 옳은 방법을 터득하고 열반을 실현 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 이다. (D10/i. 290)”
네 가지 바른노력(四正勤) 등에서도 이와 같은 방법이 적용 된다. 그러나 [여기서] 이 질문에 대답 하면서는 계등으로 설하셨다.
7. 여기서 이것이 [게송의] 간략한 설명이다.
‘계에 굳건히 머물러서’: 계에 머물러서, 계를 철저히 봉행하는 자를 여기서 계에 머무는 자라 부른다. 여기서의 뜻이다.
‘사람’: 중생이다.
‘통찰지를 갖춘’: 세 가지 원인을 가진 재생연결을 통해서 업에서 생긴 지혜를 가진.
‘마음과 통찰지를 닦는다’: 삼매와 위빳사나를 닦는다.
여기서 마음이라는 제목 아래 삼매를 서술했고, 통찰지라는 이름으로 오염원들을 말려버리고(ātāpana) 태워버린다(paritāpana)는 뜻에서 열(ā-tāpa)이라 부른다. 그것을 가진 자가 근면한 자(ātāpī)다.
‘슬기로운 자’: 슬기로움을 일러 통찰지라 한다. 그것을 갖춘 자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깨어있는 통찰지를 나타낸다.
질문에 대답하는 이 [게송]에서는 이처럼 세번의 통찰지가 언급되고 있다. 그 가운데서
첫번재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통찰지(jāti-paññā)이고,
두번재는 위빳사나의 통찰지(vipassanā-paññā)이다.
윤회에서(saṁsāre) 두려움을(bhayaṁ) 보기(ikkhati) 때문에 비구(bhi-kkhu)라 한다.
그가 이 엉킴을 푼다.
① 계와
② 마음이라는 제목 아래 표현된 삼매(定)와
③~⑤ 세 가지의 통찰지(慧)와
⑥ 근면함이라는,
이런 여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마치 사람이땅 위에 굳게 서서 날카롭게 날을 세운 칼을 잡고 큰 대나무 덤불을 자르는 것처럼,
계의 땅위에 굳게서서 삼매의 돌위에서 날카롭게 날을 세운 위빳사나 통찰지의 칼을 정진의 힘으로 노력한 깨어있는 통찰지의 손으로 잡아 자기의 상속에서 자란 갈애의 그물을 모두 풀고 자르고 부수어 버릴 것이다.
그는 도의 순간에 엉킴을 푼다고 한다. 그는 과의 순간에 엉킴을 푼 자가 되어 신을 포함한 세상에서 최상의 공양을 받을 만한자가 된다.
그래서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통찰지를 갖춘 사람은 계에 굳건히 머물러서
마음과 통찰지를 닦는다.
근면하고 슬기로운 비구는
이 엉킴을 푼다.”(§1)
8. 통찰지를 갖춘 사람이라고 설한 그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통찰지에 대해서는 그가 해야 할 일이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생의 업에 의해서 그에게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면하고 슬기로운이라는 것은 앞서 설한 정진으로 보존하고, 통찰지로 표현된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닦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계(戒)와 삼매(定)와 통칠지(慧)의 제목으로 이 청정도를 설하셨다.
9. 이렇게 하여
① 세 가지 공부(三學)
② 세 가지로 좋은 교법(s āsana)
③ 세 가지 영지(teijjā, 三明)의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
④ 양극단을 피함과 중도를 실천함
⑤ 악처 등을 뛰어 넘는 방법
⑥ 세 가지 형태로 오염원을 버림
⑦ 위범 등의 방지
⑧ 세 가지 오염(saṁkilesa)의 정화
⑨ 예류자 등이 되는 원인을 밝혔다.
10. 어떻게?
여기서
(1) 계는 높은 계를 공부짓는 것(adhisīla-sikkhā, 增上戒學)이고,
삼매는 높은 마음을 공부짓는 것(adhicatta-sikkhā, 增上心學)이고,
통찰지는 높은 통찰지를 공부짓는 것(adhipaññā-sikkhā,增上慧學)을 나타낸다.
(2) 계는 교법의 처음이 좋은 것을 나타낸다.
“무엇이 유익한 법들(善法)의 처음인가? 아주 청정한 계다. (S. v. 143)”라는 말씀과
“모든 악을 짓지 않음(諸惡莫作)(Dhp. 183)” 등의 말씀 때문에
계가 교법의 처음이고, 그것은 후회하지 않음 등의 덕(guṇa)을 가져오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삼매는 중간이 좋은 것을 나타낸다.
“유익함(善)을 받들어 행함(衆善奉行)(Dhp. 183)” 등의 말씀 때문에 삼매(定)는 교법의 중간이고, 그것은 신통변화등의 덕을 가져오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통찰지(慧)는 끝이 좋은 것을 나타낸다.
“자기 마음을 맑히는 것(自淨其意), 이것이 부처님들의 교법이다(是諸佛敎)(Dhp. 183)”라는 말씀 때문에, 또 통찰지가 그것의 정점 이기 때문에 교법의 끝이고, 그것은 원하거나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 평정(tādi-bhāva)을 유지하게 하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다음과 같이 설하셨기 때문이다.
“굳건한 바위 산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지자는 비난과 칭찬에 흔들리지 않는다. (Dhp. 81)”
11. 마찬기지로
(3) 계는 세 가지 영지(三明)의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을 나타낸다. 계의 증득에 의지하여 세 가지 영지를 성취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를 통해서 얻는 것은 아니다.
삼매는 여섯 가지 신통지(六神通)의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을 나타낸다. 삼매의 증득에 의지하여 여섯 가지 초월지(abhiññā)를 성취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를 통해서 얻는 것은 아니다.
통찰지는 무애해의 분류의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을 나타낸다. 통찰지의 완성에 의지하여 네 가지 무애해를 성취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를 통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4) 계는 쾌락의 탐닉에 몰두함이라 불리는 극단을 피하는 것을 나타내고,
삼매는 억압으로 오염원을 버림을,
통찰지는 근절함으로 오염원을 버림을 나타낸다.
12.
(5) 마찬가지로 계는 악처를 뛰어넘는 수단을나타내고,
삼매는 욕계를 뛰어넘는 수단을,
통찰지는 모든 존재를 뛰어넘는 수단을 나타낸다.
(6) 계는 반대되는 것으로 대체하여 버림으로 오염원을 버리는 것을 나타내고,
삼매는 억압으로 오염원을 버림을,
통찰지는 근절함으로 오염원을 버림을 나타낸다.
13. 마찬기지로
(7) 계는 오염원들의 위범의 방지를 나타내고,
삼매는 얽매임의 방지를,
통찰지는 잠재성향의 방지를 나타낸다. 또
(8) 계는 삿된 행위로 인한 오염의 정화를 나타내고,
삼매는 갈애로 인한 오염의 정화를 ,
통찰지는 사견으로 인한 오염의 정화를 나타낸다.
14. 마찬가지로
(9) 계는 예류자와 일레자의 원인을 나타내고,
삼매는 불환자의 원인을,
통찰지는 아라한의 원인을 나타낸다.
예류자는 계를 완성한 자라하고 일래자도 그와 같이 완성한 자라한다.
불환자는 삼매를 완성한 자, 아라한은 통찰지를 완성한 자라 한다.
15. 이와 같이 하여
① 세 가지 공부(三學)
② 세 가지로 좋은 교법
③ 세 가지 영지(三明)의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
④ 양극단을 피함과 중도를 실천함
⑤ 악처 등을 뛰어넘는 방법
⑥ 세 가지 형태로 번뇌를 버림
⑦ 위범 등의 방지
⑧ 세 가지 오염의 정화
⑨ 예류자 등이 되는 원인이라는 이 아홉 가지를 밝혔고,
아울러 이들 각각에 대해서 위와 같이 [계ㆍ정ㆍ혜]로 세 가지의 덕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