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01(주일)
잠언1:1-19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섬기는 것이 지식의 시작인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지혜와 교훈을 가볍게 여긴다.
(히1:7)
어떤 사람은 죄와 심판의 환경에 노출되지 않는 환경에 거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죄와 밀접한 환경에 놓여 있다. 늦은 밤 시간에 유흥가에서 술을 마시고 감정이 고조된 상태에 있다면 폭력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지나가다 어깨를 부딪쳐 시비가 붇을 수 있고, 먼저 주먹으로 맞았다고 가정을 해보자. 분노한 감정으로 주먹을 내지르면 안된다. 우리나라는 정당방위가 인정이 어렵고 쌍방 폭행으로 처벌받는다. 폭행이 성립되면 최소 벌금이 300만원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이 벌금을 줄이려면 폭행의 피해자에게 개인 합의를 해야 한다. 100만원에 합의하고 처벌불원서를 제출하면 벌금이 100만원정도로 줄어든다. 300만원 벌금 혹은 100만원 합의 100만원 벌금이다.(?) 폭력의 상해 정도에 따라 벌금이 올라가거나, 징역형에 처해지기도 한다. 이를 알고 있으면 폭력행사에 억제제가 되고, 자제력도 올라간다. 폭력에 노출되는 사람은 이런 정보가 유용할 것이다. 그러나 선량한 시민은 필요 없을 수 있다. 법은 사회질서를 유지한다. 도덕과 양심도 같은 역할을 한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종말의 심판에 대해서 기억하고 살아야 한다. 정직하게 말하면 그렇게 일상적으로 의식하지 않고 사는 것 같다. 삶은 바쁘고 복잡하고 여러 상황에 대처하다 보면 종말은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된다. 종말은 언제 올지 모르는 머나먼 미래의 일이고, 당장 눈 앞에 급하고 중요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여호와를 두려워하라” “이것이 지식의 시작이다”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무엇인가 있는 것 같다. 아니면 나의 믿음이 어딘가 잘못되어있는 것을 찾아서 교정해야 한다.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 흘림의 공로를 믿는다면 종말의 심판도 믿어야 한다. 미래의 일이라고 긴장을 풀지 말고 지금 임하는 것처럼 여기고 살아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그 다음의 문제다.
여호와를 두려워 하는 것은 종말을 기억하며 사는 것이다. 일상의 삶에서 여호와를 의식하며 사는 것이다. 여호와를 섬긴다는 것은 여호와를 사랑하고 마음에 품고 사는 것이다.
섬기는 것은 내가 아닌 그를 위한 섬김이 되어야 한다. 그의 평안, 기쁨, 그의 행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나의 관점에서, 나의 이익을 위한 섬김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기준으로 한 섬김, 여호와를 경외하는 섬김이 되어야 한다. 최우선으로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의 생각으로 가득차 있어야 한다. 생각과 관심을 그에게 집중하고 말 한마디 한 마디에 반응하며 그를 위해 존재 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고용주와 근로자의 관계가 아니라 너무나 사랑해서 자원해서 종이 된 주인과 종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여호와를 두려워 하고, 섬기는 삶은 마음을 그의 생각으로 가득채우는 것이요, 그의 뜻에 어긋나면 종말과 현재의 삶에서 법 위반으로 처벌받는 관점으로 조심하고 경계 해야 하는 것이다.
하루 세 번 여호와를 생각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겠다, 아침에 눈뜰 때, 정오에 식사 후 휴식시간에 취침 전에 하루 세 번 여호와를 생각하며 여호와를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여호와 자체를 묵상하는 시간, 말씀 묵상의 시간, 기도 시간, 찬양의 시간이 여호와를 생각하는 시간이다. 하루 세 번으로 시작하고 로레스 형제와 프랭크루박 목사처럼 1분에 1번씩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으로 확대하는 꿈을 꾸어본다.
여호와를 두려워 하고 섬기는 것은 여호와를 생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