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海霧)
윤 원욱
밤바다의 비밀을 숨기고 싶은 건지
수면 위로 피어오른 잿빛 장막이
사방을 휘감으며 모든 것을 가두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는
갯바위에 부딪혀 포말로 흘러내리며
철썩이는 신음소리만 낼 뿐이고
떼 지어 날던 갈매기는 날개를 접고
어느 곳에서 잠들어 있는지 알 수 없다
별똥별이 그려내는 밤하늘의 사선이
바다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면
밤수영을 즐기던 고래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집어등 불빛에 부나방처럼 모여든 오징어는
먹물을 튀기며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밤새 저 안개 속 망망대해에서
벌어지는 신비스러운 일상을
누가 소상하게 알 수 있겠는가 ?
여명이 밝아 올 즈음 수평선 너머
불붙은 태양이 솟구쳐 오르면
바다안개는 일순간에 사라지고
붉은 파도가 싣고 오는 새벽과 함께
혼탁한 세상의 하루가 또 시작될 것이다.
막장에서
해수면 보다 수 백 미터 더 내려간
탄광 지하갱도의 채탄막장에
이 시대의 마지막 광부가 채탄작업을 하고 있다.
탄가루로 범벅이 된 얼굴에서는
쉴 새 없이 먹물이 흘러내리고
이따금 작업복 상의를 들추어 내면
갇혀있던 땀방울들이 일제히 쏟아진다.
잠시 방진마스크를 걷어 올리고
검정 가래침을 뱉어 낸 노광부의 뇌리엔
문득 반평생 넘게 살아 온 막장의 삶이
상처에 스며든 탄가루가 만들어 낸
문신처럼 깊히 박혀 지워지지 않는다
각종 사고로 동료들이 목숨을 잃은 때나
자신도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순간에는
매번 떠나고 싶었지만 그러하지 못했다
목숨이 담보 된 하루하루의 작업이
마지못해 익숙해져버린 현실속의 막장은
거스를 수 없는 전쟁터 같은 곳이었다.
이제 머지않아 폐광이 된다는 소식에
탄광촌은 불투명한 미래에 술렁이고
곧 퇴역광부가 될 막장속의 전사는
자신의 폐부속의 탄가루가 굳어져가는
진폐라는 명칭의 상흔훈장을 받고
연신 쿨럭 거리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노년의 눈물
노년의 눈물은
소리 없이 내리는 안개비다
젊은 시절 부딪혀오던 슬픔은
두 주먹 불끈 쥐고 이를 악물면
눈물방울이 속눈썹에 매달려
버텨내던 근력이라도 있었건만
이제는 헐거워진 눈물꼭지로
잠시 견딜 힘 조차 사라져 버렸다
한 때 사나이는 평생 동안 세 번밖에
울지 않는다고 호언장담 하였으나
그 시절의 호기는 사라진지 오래다
해질녘 석양이 물들이는 붉은 노을과
이름 모를 산새의 날개 짓을 보거나
가을바람에 떨어진 낙엽의 바스락거림과
달빛에 취한 고찰의 풍경소리를 듣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찔끔 눈물이 흘러내리는
노년의 주체할 수 없는 감성의 요실금이다.
카페 게시글
태백문학30호(2023)
문학지 작품 ( 윤 원욱)
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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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9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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