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숙자 시인의 시 해설
문학적 모틸리티, 그 소통의 언어들
남진원(시인. 문학평론가)
1. 글을 여는 말
이번에 최숙자 시인의 시집 작품에 대한 해설을 쓰면서 많은 생각에 잠겼다. 좋은 시에다가 어떤 관념적인 내 기술적 표현이 오히려 시를 망가뜨리지 않을지 염려가 되었다. 순수하고 멋진 시에다가 덧칠을 하여 불편을 끼친 것은 아닌지, 이런 의문은 다른 사람의 글에다가 해설을 쓸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나는 햇수로야 45년의 문학생활이지만 ‘그간 내가 무슨 글을 썼던가?’ 하고 반문하는 시간에 잠겼다. 그리고 ‘시가 무엇인가?’ 하는 통상적인 물음에 대해 다시 고민하기도 했다.
내 자신이 스스로에게 물으면 물을수록 현명한 대답을 내린다는 게 더욱 절망적이었다.
최숙자 시인의 이 작품들이야말로 정말 ‘시의 본질이구나’ 하는 작품을 대하면서 나는 부끄러움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혼자가 아닌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행복의 의미를 시의 언어로 촘촘히 엮어놓은 작품이 최숙자 시인의 시 작품이었다. 그렇다. 행복은 ‘기쁨’ 만을 쓰다듬지는 않는다. 행복은 우울과 슬픔, 그 어떤 아픔마저도 받아들이는 수용성을 특징으로 하지 않던가.
‘우리’라는 일상의 관계 속에서 특징지어져 찍힌 언어의 발자국을 보고 나는 놀라워하였다.
또한 시인의 문체가 서사적 이미지라는 흐름을 갖고 있었다. 그런 서사적 이미지들로 인해 상상의 폭을 확장시키고, 읽는 즐거움을 배가 시켰다.
그래서여기서는 그의 작품이 말하고 있는 ‘관계’적인 이미지 내지는 의미가 획득하는 존재성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2. 관계 지움의 확장성과 문학적 모틸리티
최숙자 시인의 많은 시들이 사회적인 소통을 전제로 하는 작품들이다. 자연물에서부터 이웃, 가족 친구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시적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꼬물꼬물하는 어린 싹을 들여다 보고 / 어떤 이는 경이롭다 하고 / 누구는 개똥도 아니라고 한다 //
- 「개똥 詩 」 가운데 일부 -
- 얘야, 그거 뿌리 보면 안 된다 / 메밀밭을 매던 아버지는 / 뭔가 들킨 사람처럼 / 들어가라고 호통을 치셨다
- 「뿌리에 관한 보고서」 2연 -
「개똥 詩」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더 미세한 자극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뿌리에 관한 보고서」에서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설정되어 있다.
위 두 편에서만 이런 ‘관계 지움’이 보이는 것이 아니다. 최숙자 시인의 시 전편을 흐르고 있는 모틸리티에 관심이 간다. 이는 설정된 자아로부터 타아의 관계로 이어지는 생명의 핏줄 같은 것이기도 하다.
최숙자 시인의 관계 지움은 너와 나의 관계에서 우리로 나아가고 그것은 자연을 통해서 이어진다.
누군가 견딜 수없이 보고픈 날은
살아있는 이름 하나 묻었습니다
가슴이 아려 힘든 날에는
맵고 쓴 뿌리 한 아름 심었습니다
꽃, 절정일 때
저쪽 세상 열린다면 사슬이어도 좋으니
그 길에도 꽃을 심겠습니다
지레목이라도 좋으니
하늘 한편 빌려주신다면
그 길에도 꽃을 심겠습니다
인연 지었던 이들
혹여 길모퉁이 지나다
꽃잠이라도 쉬어가시게
멀고 먼 길
배고픈 사람 있거들랑
꽃밥이라도 드시고 가시게
- 「꽃짐」전문 -
꽃은 먼 신화시대부터 현재까지 사람들에게는 관계의 전달자로 또는 주체자로서 맺어져왔다.
최숙자 시인은 꽃에 대한 생각이 남다름을 볼 수 있다. 그는 직접 꽃을 심어 꽃길을 조성한 일이 신문의 기사로 실리기도 하였다. 다음의 글은 속초의 설악신문 2013년 3월 11일자 기사의 내용이다.
양양의 한 문인이 매년 가을이면 산책로를 화사한 꽃으로 수놓아 화제다.
양양문학회장을 지낸 최숙자(58, 사진) 씨는 지난 2008년 양양 서문리 주공아파트로 이주한 뒤, 인근에 조성된 모노골 산책로 500m에 코스모스를 심어 이곳을 산책하는 주민들에게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그는 모노골 산책로를 거닐다, 주변이 횡 하다는 느낌을 받고는 직접 코스모스 모종을 심었고, 이듬해인 2009년 가을부터 주민들은 만개한 코스모스를 보며 산책에 나설 수 있어 큰 호응을 얻었다.
“모노골 산책로는 자연경관이 좋아 많은 주민들이 찾고 있는데, 여기에 한들한들 피어나는 코스모스까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어요. 그리 큰일도 아닌데 주민들의 반응이 좋아 보람이 큽니다.”
최 씨는 코스모스에 이어 백일홍도 심어 가을이면 모노골 산책로는 화사함을 더하며 진한 꽃향기로 가득하다.
모노골을 자주 산책하는 한 주민은 “모노골 산책로를 걷다 보면 색색의 코스모스길이 마음까지 즐겁게 한다”며 “공공근로사업으로 조성됐는지 알았는데 최숙자 씨가 직접 가꿨다는 것을 알고는 정말 고마웠다”고 했다.
제5대 양양문학회 회장을 지낸 최숙자 씨는 강릉이 고향으로 지난 1989년 남편을 따라 양양으로 시집온 뒤 1993년 물소리 시낭송회 회원으로 가입,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2004년 <문학마을>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한 뒤, 시집 <내가 강을 건너는 동안>을 발간했으며, 강원도의 대표 동인지인 <갈뫼> 동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시 「꽃짐」은 꽃에 대한 사랑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는 동력이 필요하다. 동력의 중재자로 선택된 꽃은 심저에 깔려있는 관습적인 사물요소이다. 우리는 시를 읽음으로서 사물 요소의 긴장성을 알게 되고 감각적 인식에 대해 깊이를 더할 수 있다고 보여진다.
시인의 꽃에 대한 감각의 발현은 인연 지었던 사람들과의 중력적인 만남을 희구한다. 그것은 마음의 해저에 깔려 있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의 상처에 대한 치유의 방법이라 하겠다.
하지에 감자 섶을 헤치고
둥근 것을 더듬다가
그리움 한 뭉치
목울대를 밀어 올린다
동생에게 젖가슴을 빼앗기고
몰래 젖무덤 더듬던
아이
맏이여서 더 단단해져야 한다고
젖은 발을 내 보이는
풋감자를 다시 덮으며
넓고 끝없는 밭이랑에 앉아
포기마다 북을 주어도
애린 젖가슴을 내보이는
유월 감자밭
- 「둥글어진다는 것은」전문 -
시인이 시를 쓰기에 앞서서 시적 경험이 필요한데 이것은 의도적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비의도적이다. 즉, 자연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란 것이다. 시적 일상은 삶의 경험에서 묻어나는 것일 때 숭고해진다.
문학적인 면에서 볼 때, 시인의 구조는 복층적이다. 하나는 밖으로 향하는 면이고 다른 하나는 안으로 향하는 면이다. 최숙자 시인의 시적 특성은 이 두 가지를 작품 속에서 포괄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점이다.
앞의 시「둥글어진다는 것은」을 읽으면 복층적인 영상을 떠올리게 된다. 일차적으로는 6월 감자밭에서 감자를 캐는 여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여인의 모습 속에서 감자를 캐는 어머니, 어머니의 젖무덤, 덜 자란 풋 감자, 둥글어져야 하는 모습 등 어린 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모습을 담아놓았다.
이런 양상은 많은 작품에서 나타나는 시의 특징인데 예를 들면, 「상처를 품다」,「짧은 가을」등에서도 보여진다.
「상처를 품다」작품은 일월산 한 절을 찾았는데 선방에 누운 탁자이야기이다. 시인은 그 탁자를 보면서 내면적인 아픔을 들여다본다. 어느 누구인들 고통 없는 삶이 있다던가, 시인은 탁자 앞에서 그게 누구의 상처이든 그 상처에 대해 아파하고 보듬어준다. 자신과 인류를 넘어 우주의 물상을 껴안고 자신의 내면을 예리하게 들여다보며 아파하는 진솔한 모습이 마음을 그윽하게 해 주었다.
나는 또 한편으로는 시가 자연의 모방이라는 종전의 관습을 해체하는 작품들을 보면서 주체적 자아에 대한 귀결점이 무엇인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작품「오월 귀리 밭」에서 보면 작은 이미지 하나하나조차 시 전편을 능가하는 포에지이다. 한 예로, 귀리의 모습을 ‘애인의 귀고리’로 빗대어 표현한 것이 참 신선하다. 시를 환상적으로 몰아가는 테크닉은 오직 그 시인만의 개성적인 문체에 달렸다. 「오월 귀리 밭」의 첫 연은 시의 이미지 구성상 아포리즘적 선언이다. 전통과 향수를 불러오게 하는 향토적인 이미지에는 차분함과 토속성이 깃들어 있어서 자신에 대한 반성으로 함몰되게 하는 이유이다.
풋살구 물이 오르는
모노골 마가리
유배지처럼 숨어 있는
귀리 밭 눈에 띄었다
애인의 귀고리처럼 하늘대는
귀리이삭
호밀밭을 귀리 밭이라 우기던
어느 시인의 기억을 되돌려놓고
끝없이 펼쳐놓는 청귀리밭
허기를 달래주던 어머니 맷돌 소리
남루를 걸쳐도 어깨에 힘이 실리던
아버지 도리깨질 소리
가슴 먹먹한데
바람에게 들킨 탁란 한 뻐꾸기
본연을 잊지 말라며
오동나무 숲으로 날아오른다
- 「오월 귀리밭」전문 -
우리는 생활 또는 벅찬 삶의 연속선에서 행해지고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빛나는 것들’을 만난다.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한 끼의 밥’을 위하여 고달픈 노동은 얼마나 이어질 것인지를 모른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발견한 당당함은 때 묻지 않은 건강함이다. 건강성을 담보로 하는 삶의 노동 현장은 신성하기까지 하다. 최숙자 시인이 쓴 「밥을 위하여」는 땀을 위해 헌사하는 노작이며 ‘당당함’이라는 삶의 훈장이다.
개밥바라기별 눈물겨운 저녁
흙 묻은 바짓가랑이
별빛이 묻어있다
고달픈 하루를 끌고
저만치 통화를 하며 걸어오는
중년 남자
한 끼 밥을 위하여 어디를 다녀오는지
집 근처에 다 와서
여보, 밥 있어?
세상이 다 저물어도 다시 깨어나는
눈부신 고봉밥
한 그릇
- 「밥을 위하여」전문 -
고봉밥이 눈부셔야하는 당위성은 설명하지 않아도 시속에 무르녹아 있다. 관찰자 시점에서 바라보는 시인.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은 보이지 않는 허공 속에서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어 행복을 만들어낸다. 이외에도 시 「지금은 치료 중 」이나 「똥 부처」,「어떤 여자」등에서 보이는 현실 자각적 시들은 많은 공감을 불러들인다.
불을 안고 솟아오르리까
무한허공 산산이 부서져 내리오리까
바위섬
모래알 되는 세월
그 모래알 다시 바위산 되어도
끝나지 않을 먼 기다림 어찌할래요
껴안고 울지도 못할
칠월 초이레 억겁을 돌아와도
놓을 수 없는 사슬이여
하늘 강 저편
등만 보이는 그대
이쪽 강 끝에서
차라리 벼락을 안겠습니다
- 「초승달 ․ 13」 ‘견우를 위하여’ 전문 -
연작시로 쓴 「초승달」은 최숙자 시인의 삶의 얼굴이다. 그 얼굴에는 가족과 친구 뿐만 아니라 전쟁터를 누비던 아버지와 침몰한 천안함의 병사들 등 세상과 연결된 사람들의 서술적 이미지가 눅진하게 다가온다. 아름다운 작품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시인들이 우리 사회를 위해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시를 선물하는 일일 것이다. 이번에 내놓는 최숙자 시인의 시집은 사회를 위해 내놓은 선물일 것이다. 가볍게 읽히면서도 육중한 즐거움과 의미를 안겨주는 시 작품들을 대하였다.
올봄
출가한 딸이
몸을 풀었다
스물 몇 해 전
저를 쏙 빼 닮은
딸을 낳았다
일손을 제쳐두고
달려간 외할미 앞에
-응애
이보다 가슴 벅찬
시 한줄 어디 있으랴
- 「봄날 시 한편」전문 -
만남, 감격, 생명의 환희가 독립 만세 보다 우렁차다. 행복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장의 곳곳에 널려 있다. 그것은 마치 공기 같이 지구에 가득히 퍼져 있는 데도 그걸 내 안에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내는 것과 같다. 이 작품을 대하면 ‘아, 행복은 곳곳에 있구나.’ 하고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단서가 있다. 우리의 마음속에 반가움을 대하는 것, 슬픔을 대하는 것들에 대해 새롭게 대하는 두근거림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보통사람과 시인이 다른 점이 이점이다.
먼 길 떠나시던
무진년 이월 초이레
수의 밖으로 드러난
뽀얀 발
농사일에 바빠
앉으실 틈이 없던 아버지
그렇게 해맑은 발을 본 적이 없다
만져보고 싶었지만
가시는 길 흠이라도 될까
끝내 만져보지 못했다
국립묘지로 이사 하시던 날
스물세 해 닫혔던 산이
문을 여는 순간
하늘 가시는 길 얼마나 힘드셨으면
발은 다 닳아 안개 밭이다
다가선 거리만큼 멀어지는
말랑말랑한 발
안개는 여전히 수의 밖으로
뽀얀 발을 내보이고 있다
- 「안개의 발」 전문 -
세상을 떠나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묘사한 작품이다. 아버지의 뽀얀 발은 부처님의 발을 보는 듯 아름다운 보살적 이미지이다. 그리고 이미 고통과 혼란을 넘은 저 언덕, 피안의 세계에 닿아있다. 시인의 내적 정신은 ‘안개의 발’이라는 고도의 메타포를 통해 경계를 초월한 문학의 상상적 본질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하였다.
3. 맺는 말
몇 편의 작품을 통해 최숙자 시인의 시적 상징의 일부분을 읽어내려는 데 힘을 기울여보았다. 그러나 한 시인의 우주가 담긴 작품을 아무리 열심히 읽고 음미해 보아도 소경이 코끼리 더듬기와 같다는 것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가 살펴 본 몇 가지 시의 특성, 이를테면 시인의 내적 자유는 관계 지움에 의해 살아가는 행복 찾기라 말할 수 있다. 외적 자유는 즐거움을 배가 시키는 상상력의 확장 등이다. 이 모든 의미들은 구체적인 이미지, 즉 완성도 높은 표현의 자유로움에서 비롯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시적 확장성과 모틸리티는 시를 읽히게 하는 힘이었다.
이 시집의 한 부분을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이 되었기에 독자 제현의 많은 상상력을 저해한 일일 수도 있다. 이 시집을 대하는 독자들은 부디 폭 넓고 새로운 안목으로 최숙자 시인의 작품에서 또 다른 감동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2019년 5월 23일 방터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