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문학사
남진원(문학평론가)
한국문인들, 글로 만난 문우들에 대한 정겨움으로 붓을 들게 되었다. 비록 얼굴을 볼 수는 없다고 하여도 글을 통해 교감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 따스한 마음들이 손 잡아 줄 것 같았다.
[서문 생략] - 이후 게재
1970년대 후반부터 경북 상주에서는 아동문학의 꽃을 피웠다. 1977년 1월 상주아동문학회보 1호를 발간하였다. 최춘해 권태문 박두순을 중심으로하는 <<상주아동문학회>>였다. 상주아동문학회에서는 회보를 발간하는 등 정력적인 문학 창작 활동과 보급운동에 앞장 섰다.
[1978년]
1978년 발간한 [상주아동문학. 11호(1978. 11. 10)]에는 여러 편의 시들이 발표되었다. 당시 편집은 박두순이 하였다. 초대작품으로 대구에서 활동하는 조두섭의 ‘깃발’이 게재되었다. 조영일 ‘감’, 최춘해 ‘세월이 흐르는 소리’, 김재수 ‘허수아비’, 박두순 ‘이야기’ 박경숙 ‘이 비 그치면’ 등의 작품이 발표되였다.
권태문(동화작가)은 제3동화집 『아픔이란 열매』를 상재하였다. 1978년 11월 16일 상주문화원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11월 18일엔 상주문화원에서 김동리, 이원수, 박경용 세분의 문학 강연회가 있었다.
조두섭의 ‘깃발’은 이미지의 형상화가 잘 된 작품으로 힘찬 전달력이 그 특징이었다. 이처럼 약동하는 작품을 쓰기는 쉽지 않다.
푸른 파도를 휘감아
그물을 당기는 고깃배
파도는 한 조각
한 조각씩
깃발로 치솟아 오른다.
싯 푸르게
뱃머리 뒤흔들리도록
그물채로 떠오르는 기쁨도
환호성으로 터져
어머니에게, 누나에게, 우리에게
온 마을을 향해
흔드는
고기잡이 아저씨들의 손짓
섬마을로
섬마을로
아, 바다는 크나큰
푸른 깃발처럼
너울 친다.
(조두섭, ‘깃발’ 전문)
작품에서 다가오는 깊이와 감동의 폭이 커다란 파도의 울림으로 독자를 흔들어댄다. 그 작품이 바로 ‘깃발’이다. 푸른 파도가 깃발로 치솟아 오르는 그 장쾌함, 싱싱한 울림을 고요히 듣고 있다.
조영일은 1978년 상주아동문학회에 가입하였다. 이 분은 시조를 쓰는 분이다. 1944년 걍북 안동에서 출생하였고 1975년 『시조문학』 추천을 완료하였다. 2023년에 작고하였다. 2022년 뱡실에 계실 때 쓴 글이 마음을 적신다.
7월의 병실
7월 한달을 누워
보낸 2인실 병동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아침 일찍부터
다가온 따스한 볕이
여는 이승 정겹다
(조영일, ‘7월의 병실’)
늘 일상으로 다가오는 따스한 볕이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에겐 얼마나 환희롭고 정겨운가. 따스한 볕이 이승의 세계를 열어놓는다. 그 무욕과 무상의 평화스러움이 늘 우리 곁에 다가왔지만 우리는 삶속에 부대끼면서 그 침묵의 언어를 외면하였다. 이제 조영일의 시조 속에서 새로운 이승의 세계를 만난 듯하다.
1978년 12월 20일 한국아동문학회에서 회보 4호를 발간하였다. 희망의 새해가 되길 바란다는 김영일 회장의 인사말이 맨 앞장을 차지하였다. 회원들도 100여명이 늘어났다는 말도 있었다.
김요섭(동시인. 한국문협 부이사장)은 ‘아동문학과 통일세대형성’이라는 글을 발표하였다. 김요섭은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수상한 것이 기록되었다. 원주의 김성수가 신입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이상현 동시집 『생각하는 소년』이 발간되었다. 12월 28일 서울에서 제5회 합동출판기념회가 있었다.
남진원은 1977년 2월 『아동문예』에 동시 천료된 후, 한국아동문학회에 가입하였다.
조영일은 권태문 동화집 『아픔이라는 열매』서평을 발표하였다.
1978년 12월 20일 상주아동문학 창간 1주년, 12호 회보를 발간하였다. 최춘해 회장의 글 ‘ 한 해를 돌아보며’ 라는 머리글이 실렸다.
김동리, 박홍근, 이영호, 김종상, 박경용, 김문홍, 박원돈, 하청호, 김상님, 박종현 등 많은 분들이 격려를 하셨다.
이 해에 김재수 동시집『 겨울일기장 』, 권태문 동화집『아픔이란 열매 』, 박찬성시집『돌담쌓기 』작품집을 발간하였다. 남진원은 <탄마을의 아이들>이란 회보를 보냈다. 상주아동문학회에서는 시화전을 하였다. 김상남, 김성도, 김동극, 신현득, 김종상, 박인술, 권오삼, 윤운강이 격려와 축전을 보냈다. 김재수 시인은 편집후기에서 열두 번의 회보를 만들면서 아껴주신 여러분을 잊을 수 없다고 감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회장을 맡은 최춘해는 ‘흙의 시인’으로 유명하다. 경북 상주에서 태어난 시인, 최 춘 해!
1932년생 금년으로 91세가 되셨다.
호는 혜암. 이름이 ‘봄 바다’ 라는 뜻을 가진 ‘春海’이다. 대구교육대 교원교육원을 졸업하고 대구 등지에서 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쳤다.
1965년 [교육자료]에 ‘겨울 땅속’이라는 동시가, 1967년 [한글문학]에 동시 ‘이른 봄’이 추천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교단동인회, 대구아동문학회, 한국아동문학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67년 동시집 『시계가 셈을 세면』을 상재하였다.
혜암 선생은 젊은 날, ‘흙’을 소재로 많은 동시를 쓰셨다. 그래서 아동문학계에서는 ‘흙의 시인’으로 통하기도 한다.
대구에 기거하시면서 혜암아동문학교실을 열어 후학을 지도해 오고 있다. 그 결실을 맺어 ‘혜암아동문학상’ 작품 공모를 4회째 하셨다. 혜암아동문학교실의 수강생들이 모이는 혜암아동문학회도 결성을 하고 제자들이 ‘혜암아동문학’을 18번째 발간하고 았다.
혜암 선생의 작품 세계를 한마디로 언급하기는 힘들어도 대체로 아동의 밝고 순수한 세계를 바탕으로 깊은 서정성이 자리하고 있음을 보았다.
(흙·31)」상수리나무
최춘해
상수리나무는 땅을 굳게 딛고
당당하게 서 있다.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다.
으리으리한 궁궐에
정원수가 될 생각은 없다
뭇사람들이 몰려들어
칭찬해 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값비싼 귀한 몸이 되고 싶지도 않다.
나 또래와 더불어 사는 곳
남들 따라 꽃 피우며 열매 맺으며
가물면 같이 목이 마르고
너와 나, 우리가
함께 사는 곳
여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다.
소박하게 숲속의 나무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상수리나무를 눈여겨보았다. 이에 견주어 사람들 사는 모습을 떠올렸다.
으리으리한 곳에 사는 사람, 귀한 신분으로 사는 사람들 보다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 삶이 더 행복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안 것이다. 그런 까닭에 상수리나무의 생태 환경을 보통 사람들의 아름답고 행복한 삶에 비유하여 나타낸 것이라 볼 수 있다.
다시 정리해 보면,
남에게 칭찬 듣지 않고도 즐거운 사람
또래와 함께 더불어 사는 사람
어려운 일이 오면 어려움도 함께 겪으며 사는 사람
너와 나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곳이 낙원이고 천국인 것이다.
탐내는 마음을 내려놓고 사는 게 좋은 거라는 숨은 뜻도 얻을 수 있다.
아동문학의 고장, 대구에서 후학들을 지도하시고 많은 문인들을 배출한 최춘해 선생께 존경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참고문헌: 『한국현대시인사전』, 김해성 엮음, 월간 한국시사, 2004.)
한 돌을 맞은 상주아동문학회는 앞으로도 꾸준히 중단없이 계속할 것을 다잠한다고 했다. 경북 상주에서 아동문학의 싹이 트고 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면서 아동문학에 대한 애정을 본받을 만하다고 여겼다.
이 분들 중에 이미 김동리, 박홍근, 이영호, 박종현, 조영일 등은 세상을 달리 하였다. 한 번 오면 가는 것이 인생이라 하지만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