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경 제1권
1. 불설나뢰경(佛說那賴經)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舍衛國)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서 유행하시면서 대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그때 족성자가 있었는데 집과 처자를 버리고 친척들을 떠나서 사문이 되었다.
그의 아내는 단정하고 매우 아름다웠는데, 남편이 집을 버리고 사문이 되는 것을 보고 곧 다른 데로 시집을 가버렸다.
그 소식을 듣자 족성자는 마음으로 아내와 함께 놀았던 때의 일, 부부의 예를 갖추었던 일, 웃고 떠들던 일 등을 생각하게 되었다.
마음은 항상 이런 생각들로 가득 차서 잠시도 그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아내를 생각하면 앞에 있는 듯이 여겨지고 얼굴과 그 모습이 떠올라 아내가 앉고 서고 움직이는 것 같았다. 우울하고 마음이 어지러워 범행(梵行)을 청정히 닦는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되어 마침내 그의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여러 비구가 이를 알고 부처님 세존께 나아가 말씀을 드리니, 부처님께서는 그때 사람을 보내 그 비구를 불러오게 하셨다. 가르침을 받고 곧 비구가 왔고, 모두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부처님께서는 즉시 비구를 위하여 색욕(色欲)이 일어나는 마음을 털어버리라 하시고 맹목적인 애정의 허물을 버리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비구를 위하여 번뇌의 때로 인해 즐거움은 적어지고 걱정거리는 많아지며, 많은 것이 무너지며 성취하는 바가 적게 되고 절제가 없게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오직 부처님이나 여러 제자와 같이 밝은 지혜가 있는 이들만이 이를 분별할 뿐이다.
애욕으로 인해 죄가 생기게 되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으니 색욕을 초월하고 여러 가지 망상을 그치고 한가하게 머물라고 진리를 말씀해주셨다.
그때 그 족성자는 즉시 현성의 법을 증득하여 밝게 되었다.
그때 여러 비구는 일찍이 없던 일을 보고, 서로 의견을 나누며 말하였다.
“또한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족성자는 감옥과 같고 쇠사슬과 같고 수갑과 같은 집을 버리고서도처자에 대한 생각에 집착되어 스스로를 묶어 벗어나지 못하고 범행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세존께서 여래의 말씀, 온갖 신통과 지혜, 안목이 있는 말씀을 열어보이시어 그로 하여금 현성이 되도록 하셨구나.”
그때 여러 비구들은 세존께 여쭈었다.
“저희들이 이 족성자를 보건대 집에 머무는 것을 버리고 신심으로 사문이 되었는데도 오히려 처자의 모습이나 그 거동과 집안 일 등을 생각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애욕의 허물과 법률의 덕을 말씀해주시고, 생사의 어려움과 무위의 편안함을 말씀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성현이 증득하신 집착 없는 세계에 이르게 하여 주십시오. 여래(如來)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께서 아니해주신다면 누가 해주시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비구가 마음이 항상 애욕에 머물고 색정으로 미혹되어 스스로 자제하지 못하고, 뜻도 욕망에 묶여 있어 다스릴 수 없다가 홀로 부처의 교화를 입어 미혹된 애욕의 집착을 벗어나게 된 것은 단지 금생의 일만은 아니니라.
옛날 아주 오래전에 방적(方迹)이라는 이름의 한 국왕이 있었다. 궁중에 채녀(婇女)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는데, 얼굴이 예쁘고 그 자태는 남들이 미칠 수 없는 정도였다. 이들은 다른 사람 또는 음탕한 여자들과 다투고 자애로움이 없었다. 혹은 노비들과 싸우고 혹은 동자와 싸우면서 저마다 서로 싸우기도 하는 등 화합하지 못했고, 그렇게 싸우고는 즉시 궁중을 떠나버렸다.
방적왕이 이 일을 듣고는 화를 냈고, 여러 신하들이 채녀들을 찾아보았으나 그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왕은 근심에 가득 차서 기쁘지 않았으며 울거나 비애에 젖기도 하였다.
여러 부녀들이 웃고 즐기며 부부의 뜻을 나타내던 것이 생각나고, 전에 음악 연주하던 것도 나타나며, 움직이고 앉고 서고했던 것들을 생각하니, 오히려 걱정만 더 많아지고 스스로 헤어나지를 못했느니라.
그때 한 선인이 있었는데 5신통(神通)을 일으켜 신족으로 날아다니며 그 위신력이 다할 수 없으니, 그 이름을 나뢰(那賴)라고 하였다[진(晋)나라 말로는 ‘무락(無樂)’이라고 한다].
방적왕이 애욕 때문에 미혹되어 스스로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고그를 위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 애욕의 근심을 없애주려고 하였다. 공중을 날아서 신족을 보이며, 홀연히 내려와 왕의 궁궐 위에 머물렀다.
그때 왕이 이를 보고 즉시 일어나 영접하여 맞아들이고 자리를 양보하여 앉게 하였다.
그는 곧 자리에 앉은 후 왕에게 물었다.
‘대왕이여, 어찌하여 애욕에 마음을 두고 괴로워하며 생각을 많이 하고 색정을 생각하며 스스로 잘못을 깨달아 고치지 못하십니까?’
그러자 왕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실로 그렇습니다. 궁중의 채녀들이 높은 자들이나 천한 자들과 상하의 자리다툼을 하여 화합하지 못하고 드디어는 떠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걱정하고 번뇌하면서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선인은 그를 위하여 애욕의 고통과, 욕심을 버릴 경우에 얻게 되는 덕에 대하여 말해주었다. 세상 사람들은 욕심을 내서 만족할 줄 모르니, 설령 한 사람이 바라는 바를 모두 얻어도 싫증내거나 만족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를 게송으로 말했다.
일체 세간의 욕망을
싫증내어 누구도 그로 인한
위험과 해로움 없는 이 없나니
어찌하여 스스로 자신을 다치게 하는가?
일체의 모든 흐름이
다 바다로 모여도
바다를 채울 수 없듯
애착하는 것 또한 그렇게 싫증 내지 않네.
설령 범천(梵天)이 되거나
높이 올라 그에 미치기 어려울 만큼 되어도
바라는 바는 다시 그보다 더 높아
만족하지 않네.
설령 염부제(閻浮提)의
수목과 모든 풀과 잎을
다 태워도 만족하지 않나니
바람[欲]에 만족하지 않음이 이와 같다네.
만약 8배(輩)의 남자가
단정하고 용모가 뛰어나도
일체를 이와 같이 욕심이 더해진다면
위력과 단정함이 뛰어나서
[8배(輩): 4향(向)ㆍ4과(果)의 성자]
말로써 악을 증장해도
욕심을 버리는 장부에게는
경박함으로써 경박함이 되지는 않으며
만족을 구해서 만족하지는 않는다네.
대왕이여, 이를 마땅히 아시라.
만일 애욕의 일 익히면
은애가 구르며 자라나니
마치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으리라.
바로 그때 그 선인이
대왕을 위하여 강설하며
몹시 괴로운 게송을 설하여
그 마음을 열어 해탈케 하였네.
그때 선인은 방적왕을 위하여 이러한 가르침으로써 그의 마음을 열어 교화하였다.
이때 왕은 즉시 마음이 열리고 이해하여 갈구하고 좋아하는 바가 없어지고, 출가하여 도를 닦고,네 가지 범행을 닦아 애욕을 끊어버리고, 여러 가지 행을 구족하여, 수명이 다한 후에 범천에 태어났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때 방적왕이 누구인가를 알고자 하느냐?
그가 바로 이 비구이고, 나뢰 선인은 바로 나였느니라. 그때 서로 만났고 이번에도 또 만났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