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승론 상권
1. 의품(義品)(1)
[이 소제명(小題名)은 본래 고려대장경 원본에는 빠져 있으나 여러 증상을 참작하여 역자가 넣은 것이다.]
[대승의 뜻]
지금 대승의 뜻을 풀이해 들어가고자 한다.
【문】 무엇 때문에 대승의 뜻을 말하려고 하는가?
【답】 내가 중생들의 고통의 원인[苦因]을 막아주려 하기 때문이니, 지금 그대는 마땅히 잘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악지식을 가까이하여 악에 의해 잘못 이끌리게 되면 치우치게 자기 자신의 법에 집착하거나 전적으로 잘못된 견해에 집착하니 뒤바뀐 생각을 하므로 진실한 뜻을 알지 못하고 부처님의 지혜를 따르지 않으며, 성스러운 말씀을 비방한다.
성스러운 말씀을 비방하는 사람은 정법(正法)을 무너뜨리며, 정법을 무너뜨리는 사람은 큰 죄의 과보를 받게 되나니,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법을 비방한 죄는 오역죄(五逆罪)보다 중하여 악도(惡道)가 길고도 멀며 오랜 동안 고통의 과보를 받는다.”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하였다.
대승법을 비방하면
결정코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나니
이 사람이 업보를 받는 것이라고
여실한 지혜 갖춘 이께서 말씀하셨네.
지옥 가운데 떨어지는 몸을 받아 태어나면
큰 불길이 치성하게 몸을 불태운다.
불에 타는 그 고통 극심하니,
그 업보의 죄가 과연 이와 같구나.
불에 단 커다란 무쇠쟁기가
오백 세를 가득 채우는 동안
그 혓바닥 위를 쟁기질하며
두루 그 몸을 부수어 고뇌케 하네.
만약에 지옥으로부터 벗어난다 해도
다시 다른 악한 과보를 받으니
여러 감각기관이 결핍되거나 이상이 있어서
영원히 법음(法音)을 듣지 못하네.
설령 그것을 듣는다 하더라도
다시 법을 비방하는 곳에 태어나
법을 비방한 인연으로
다시 지옥에 떨어지네.
법을 비방하는 중생은 이와 같은 말을 듣고서 대승 가운데서 의심을 내나니,
존자 제바(提婆)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설하였다.
박복한 사람은
의심을 내지 않으나
의심을 내는 사람은
반드시 모든 존재의 세계[諸有]를 부수네.
의구심이 있는 사람은 모두 마땅히 법을 들으라. 듣고 나면 그 의미를 풀이하여 깨달음의 문을 열 수 있다.
깨달음의 문을 연 다음에는 신심을 내고 신심을 낸 다음에는 기쁨과 즐거움을 낸다.
기쁨과 즐거움을 낸 다음에는 이와 같은 순서대로 듣고 사유하고 수행하는 일을 하며 나아가 완전히 갖추어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는다.
대승을 비방한 원인으로 악도에 떨어졌더라도 대승을 말미암으면 모든 신업을 일으킬 수 있으니, 땅에 걸려 넘어진 사람이 땅을 의지하여 일어나는 것과 같다.
또 지혜를 바탕으로 하여 보리도에 나아가고, 또한 중생과 더불어 함께 화합된 세계를 이룬다. 만약에 중생을 떠난다면 보리도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이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중생계로부터 일체의 모든 부처님의 보리가 출생하는 것이다.
존자 용수(龍樹)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설하였다.
허공을 바탕하지 않으면 존재의 세계[有]는 있을 수 없고
또한 땅을 바탕하지 않으면 종자가 생겨날 수 없듯이
다만 번뇌를 바탕으로 하여
보리를 증득하는 일이 성립한다네.
[마하연과 3징]
【문】 그대는 『입마하연론(入摩訶衍論)』을 능숙하게 설하는데, 이와 같은 공덕을 어찌하여 마하연이라 이름하는가?
【답】 보살장(菩薩藏)이 있는 곳을 이름하여 마하연이라 한다.
【문】 부처님께서는 삼승(三乘)을 또한 마하연이라 말씀하시지 않으셨던가?
【답】 그렇다. 이 대승 가운데서는 또한 삼승을 설하고 있으니, 이를 삼장(三藏)이라 한다.
예를 들면 『보살장경』에서 부처님께서 아사세왕에게 고하신 것과 같다.
“족성자여, 장(藏)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으니, 무엇이 세 가지인가? 성문장(聲聞藏)ㆍ벽지불장(辟支佛藏)ㆍ보살장(菩薩藏)을 말한다.
족성자야, 성문승이기 때문에 삼장이라 하지 않고,
또한 벽지불승이기 때문에 삼장이라 하지 않으며,
오로지 모든 보살이 대승을 배우는 까닭에 삼장이란 명칭을 얻는다.
왜냐하면 무릇 설법자가 삼승을 구족해야만 삼장이라 이름하니, 보살은 법을 설하여 삼승(三乘)을 구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삼장이라 한다’고 설한다.
족성자여, 세 가지 종류의 학인(學人)이 있으니 성문학ㆍ벽지불학ㆍ보살학이다.
성문승자는 벽지불승을 수학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벽지불승자는 보살승을 수학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역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족성자여, 오직 모든 보살만이 비록 성문승이나 벽지불승을 수학하더라도 성문도(聲聞道)나 벽지불도(辟支佛道)를 취(取)하여 증득하지 않고, 보살승을 수학하여 보살이 행하는 법을 깊이 깨달아 알아서 항상 즐거이 수순한다.”
이러한 뜻이 있기 때문에 보살승자를 삼장이라 하며 성문승이나 벽지불승의 경우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다른 경 가운데 구체적으로 분별하여 설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다만 간략히 설명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