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보살경 제1권
[법회의 인연]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왕사성(王舍城)의 비부라산(毘富羅山:廣博脇山)에서 큰 비구의 무리 백천(百千) 명과 함께 머물러 계셨다.
또 백천의 여러 보살들과 비구니, 여러 우바새와 우바이, 천ㆍ용(龍)ㆍ야차ㆍ건달바ㆍ긴나라ㆍ마후라가ㆍ가루라 등도 있었다.
또 욕계(欲界)의 여러 천자(天子)와 색계(色界) 정거(淨居)의 여러 천자 등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이들을 위해 설법을 하고 계셨다.
이때 무리 가운데 이름이 무소유(無所有)인 보살 한 사람이 그 모임에 참여해 앉아 있었다. 그러나 무리 가운데 있던 여러 보살들은 마음에 의혹을 품거나 악을 지은 것을 뉘우치는 자, 뒤집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자, 업장(業障)이 있는 자와 법장(法障)이 있는 자도 있었는데, 여러 중생들은 그 장애 때문에 막혀서 부처님께 여쭐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들 중생을 위하여 업장을 깨끗하게 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세존께 여쭈려고 하였다.
‘이 여러 무리들을 살펴보면 많은 보살들이 앞서 지은 악을 뉘우치고자 하지만 마음의 번뇌가 극심하여 법을 들을 수 없는 자도 있었다.
다시 보살을 보면 마음의 뉘우침과 번뇌 때문에 일심(一心)으로 들을 수 없고, 그 심행(心行)을 보면 고뇌가 많이 있고, 우환이 많이 있으며, 더럽고 잡다한 때[穢雜]가 많이 있고,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과 괴로움과 슬픔과 번뇌가 많으며, 원수와 미운 자를 만나는 일이 많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일이 많았다.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고자 하지만 이처럼 한량없는 속박에 얽매여 있으니, 어떻게 하면 마땅히 아승기겁(阿僧祇劫)에서 보살행을 행할 수 있겠는가?
이미 스스로 속박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마땅히 중생의 속박을 풀 수 있겠는가?’
이때 무소유보살은 이렇게 생각하고서,
‘만약 세존께서 나에게 이 무리를 위하여 일체 중생이 지은 죄악과 의심과 뉘우침이 일체 중생으로부터 멀리 여의게 하는 까닭으로 청하여 묻는 것을 허락하실까?’ 생각하였다.
이때 세존께서는 무소유 보살마하살과 그들 여러 보살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바를 아시고 무소유 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대 무소유여, 나 역시 여러 보살들을 위하여 물듦과 집착함과 속박과 얽매임과 범(犯)함과 범하는 곳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일체의 집착하는 곳과 일체의 물든 곳, 일체의 얽매이는 곳과 일체의 장애가 되는 곳과 일체의 범하는 곳을 초월하여 여러 상(相)으로부터 멀리 떠나고자 하면 행(行)이 화합하지 않고 온갖 법(法)에서 떠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밝히기를 이와 같이 하게 되면 일체의 온갖 법은 얽매이지 않고 온갖 법은 물들지 않으며 여러 가지 법은 집착하지 않고 묶이지도 장애가 되지 않으며 범하지 않고서도 얻느니라. 이렇기 때문에 마땅히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이루어야 한다.
선남자(善男子)여, 일체지(一切智)는 중생이 얻을 수 없는 발심(發心)한 곳에 있으며 그곳에서는 법으로 얽매이고 물들고 묶이고 막히며 범하며 얻고 알아야 할 곳은 없다.
그대 무소유여, 그대는 마땅히 여러 보살들을 위하여 물어라.
여러 보살마하살과 같이 게으르지 않고 물들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묶이지 않고 막히지 않으며 허공으로서 허공의 상(想)을 여의고 장애가 없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빨리 성취하기 때문에 마땅히 일체의 곳에서 열어 보여야 한다.”
이때 무소유보살은 이미 여래의 가르침을 위하여 가지(加持)와 지혜의 힘을 청하여 많은 부처님들이 심은 선근(善根)으로 인해 능히 반야바라밀 가운데 의혹이 있지 않았다.
몸을 감추어 나타내지 않거나 집착하는 바가 없었는데, 여러 보살들을 거두어 교화하려고 하기 때문이며, 여러 복덕(福德)을 나타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착하는 마음이 있는 여러 중생들은 집착으로 가려진 행을 하여 상에 머물고, 선지식을 멀리하여 악지식(惡知識)이 거두어들이는 바가 된다.
모든 보살들은 일체 법 그 모두를 얻을 수 없음을 알아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깨달으려고 하기 때문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여러 가지 이름의 꽃들이 혹은 물과 땅에서 피어나고, 혹은 금과 은으로 된 꽃을 부처님 위에 가득 뿌리며 정성된 뜻으로 기뻐하고 뛰어나고 기묘하여 모자라거나 줄어드는 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