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문에 대한 연구

[남중희]

우리를 화나게 하는 일은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일은 아마도 모든 사람이 같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입니다. 그래서 가례家禮의 사례四禮, 즉 관혼상제冠婚喪祭에는 사람이 죽었을 때와 연관된 예의가 두 가지나 있습니다. 상례喪禮와 제례祭禮가 그것이지요. 사람이 죽어서 장사 지낼 때와 제사를 지낼 때의 예의가 사례에 있다는 것은 우리 인생에서 사람의 죽음이 그만큼 슬프고 안타깝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 상례와 제례의 예식에 따라 쓰게 되고 읽게 되는 글 중에 제문祭文과 축문祝文이 있습니다.

축문은 한자에 '축하한다'는 뜻의 '축'祝자가 들어 있어서 마치 축하하는 글로 잘못 알 수도 있지만, 원래 축문은 죽은 사람이나 조상祖上 또는 천지신명天地神明에게 제수祭需를 드리니 받으라는 내용의 간단한 요식적인 글입니다. 축하한다는 뜻은 없습니다. 만약에 어느 분이 상을 받는 자리에서 수상을 축하한다고 '축문'을 낭독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축하하는 글이라고 한다면 '축하문'祝賀文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제문祭文은 돌아가신 분을 추도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는데, 상례의 조弔, 천구遷柩, 관을 옮기는 일, 발인發靷, 장례를 지내러 상여가 나가는 일 때나, 제례의 소상小祥, 사람이 죽은 지 1년 만에 지내는 제사과 대상大祥, 사람이 죽은 지 두 돌 만에 지내는 제사 때에 씁니다.

제문은 대부분 한문으로 씁니다만 국한문이나 순 국문으로 쓴 경우도 있습니다. 제문은 돌아가신 분을 추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대부분 문집에는 그 문집을 쓴 사람에 대한 제문이 실려 있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제문은 대부분이 명문名文이라고 할 정도로 좋은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 서거정 등의 시문詩文을 모아 편찬한 시문선집인 <동문선東文選>의 권109~113에는 제문 52편, 축문 14편이 실려 있을 정도입니다.

이 한문 제문은 상례와 제례 때 낭송하므로 일정한 형식을 갖추어 쓰게 되는데, 그 결과로 좋은 제문을 모아 놓고 그 문장을 열심히 배우곤 하였습니다. 다음 문헌들은 그러한 모습을 잘 보여 줍니다.

위 사진의 <제문투식>이란 책은 제문을 쓰는 일정한 서식에 따라 써 놓은 제문을 모아 놓은 것으로, 총 72편의 한문 제문이 들어 있습니다. 제문의 주인공과 제문을 쓴 사람과의 관계에 따라 '제종조부군문祭從祖府君文', '제종조모문祭從祖母文', '제백부문祭伯父文', '제백모유인문祭伯母孺人文', '제종숙부문祭從叔父文' 등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읽기 쉽게 하기 위하여 생획자 구결까지 달아 놓았습니다.

두 책으로 되어 있는 <제문등초>는 묘갈명墓碣銘과 유사遺事 그리고 제문을 모아 놓은 것인데 한 사람에 대해 여러 사람이 쓴 제문을 한 책에 모아 놓은 것입니다. <제문등초 1>은 포은浦隱 이병휴李炳烋, 그러나 실학자 李秉烋가 아닙니다에 대한 제문만 모아 놓은 책입니다.

<제문수집기> 역시 <제문투식>과 같이 다양한 유형의 제문을 모아 놓은 것으로 모두 55장입니다.이들 문헌을 통해서 우리 선조들이 제문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문은 우리 선조들이 남겨 놓은 글 중에서도 그 종류와 양이 매우 많은 편에 속합니다. 국립중앙도서관 누리집홈페이지에 가서 '제문'을 검색하면 약 240여 개나 검색될 정도입니다.

위의 <제문투식>이나 <제문등초>, <제문수집기> 등은 책자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의 제문은 편지처럼 일정한 넓이로 접어서 피봉皮封을 만들어 그 속에 보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펴면 모두 두루마리식으로 됩니다. 그래야만 제문을 읽을 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 가면서 긴 제문을 오른쪽 아래로 내려뜨리게 되지요.

한문 제문

다음의 '한문 제문 1'은 그 크기가 세로 27.6cm이고 가로는 42.7cm인데 안동 권씨가 돌아가셔서 장례 때, 대대로 서로 친하게 사귀어 오던 인척通家인 김원로金元魯가 쓴 제문입니다. 1868년에 쓴 것으로 추정됩니다. 필자가 소장하고 있습니다.이후에 보이는 모든 제문들은 필자의 소장입니다.

'한문 제문 2'는 처남인 영양 남씨인 남구南九가 매부인 안동 권씨의 소상 때 쓴 제문입니다. 1916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크기는 세로 28.5cm, 가로 43.7cm입니다.

여기에서는 한문 제문 2편만 예시하였지만, 대부분의 한문 제문은 거의 남자가 쓴 제문입니다. 한문으로 되어 있는 제문 중에 여자가 쓴 것은 흔치 않습니다. 이 한문 제문의 내용에 대해서는 생략하기로 합니다. 한글 제문이 우리의 주된 관심의 대상이니까요.

국한 혼용 제문

그런데 국한 혼용의 제문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다음에 보이는 제문이 국한 혼용으로 되어 있는 제문입니다. 세로 36.6cm, 가로 69.6cm입니다.

이 국한 혼용의 제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維歲次 戊申八月乙未朔二十三日 丁巳은 卽我叔母任 孺人全州李氏 大祥之日也 前日丙辰에 不肖長姪斗錫은 謹以盃酒誄文은 詣于靈几之下하야 告于昊天 罔極之辭曰 嗚呼痛哉라 人生世間에 執無猶父猶子之情이리요마는 唯我叔母任은 性情이 柔順하고 才質이 賢淑하시와 同氣和睦之誼와 隣里親近之情은 兼與他人之可比者也라 叔母任에 生前 死後을 擧筆欲記하오니 紙筆로 難記로소이다 生前으로 말할진댄 貧窮한 家庭에서 生活을 維持하시며 從弟들을 生育하실 졔 困함인들 오직올있가 우리 父親은 八娚妹에 同胞로서 父親任 兄弟시고 姑母任 六兄弟로 各家庭의 出嫁하시고 叔父任은 阾里의 分居하와 朝夕으로 往來하며 和樂히 지내더니 生涯에 拘碍되여 未老面으로 移居하시니 音聞이 稀少하고 定省이 不能이라 風霜이 變迂하고 歲月이 流邁하와 丁未年을 當到하니 叔母이 病患으로 苦生하신다 消息을 들엇스나 熟水 한번 못 勸하고 蘇生하시기을 固待터니 去去益甚侵重하와 八月이라 念三日에 別世하섯다난 訃音이 來到하니 蒼黃忙懆意한 마음 忽忽 걸음걸어 柴門을 두다리고 叔母任 불으온들 黃泉으로 가신 叔母 對答이 있슬있가 從弟들의 罔極之痛과 叔父任의 叩盆之嘆 一筆로 難說이라 生送死葬은 儀禮의 該當 〇〇〇〇 諸具 고히 찰여 新山의 安葬하고 집으로 도라가셔 歲月을 보내더니 於焉間 가난 光陰朞年이 今日이라 셥셥한 졍 못 이기여 菲酒薄肴 進設하고 經行誄文봄하오니 靈若不昧하옵시기든 庶幾 欽格하옵시고 撒几筵하신 後의 函室의 고히 기셔 子孫蔭〇 도으시며 永世不忘하올이다. 嗚呼哀哉 尙饗

이 제문은 숙모님 대상 때 장질長姪, 맏조카인 두석斗錫이란 사람이 쓴 것인데,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未老面에서 쓰인 제문입니다. 제문 안에 '영리阾里'에서 '미로면未老面'으로 옮겨 산 사실을 기록하고 있어서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숙모님에 대한 제문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애절한 표현이 거의 없고 매우 형식적인 투식으로 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무신년이 대상 제사년이니 1968년으로 추정됩니다. 그 이전 시대로 추정하지 못하는 것은 표기법에서 받침에 쌍시옷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1968년 자료를 여기에 소개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설명을 드리도록 하지요.

순 국문 제문

순 국문으로 되어 있는 한글 제문도 많습니다. 여기에서는 세 편의 예를 보이도록 하지요.

한글 제문 1

'한글 제문 1'은 딸이 아버지 중상 때 쓴 제문입니다.

이 제문은 크기가 세로 46.2cm, 가로가 89.6cm입니다. 원래 제문은 두루마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편지처럼 일정한 넓이로 접어서 피봉을 만들어 그 속에 보관하였기 때문에, 이 제문도 그러한 흔적이 보이지만, 피봉은 없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 제문을 끝에서부터 약 7.5cm 간격으로 12번 정도 접어 왔을 때에 마지막 접은 곳의 표면에 '제문'이란 제목이 보이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 줄에 약 36자씩 썼는데, 모두 44행으로 되어 있으니 모두 1,594자에 달하는 장문의 제문입니다. 모두 한글로 되어 있는데, 글씨는 거의 정자로 되어 있습니다. 그 뜻을 이해하기 쉽게 괄호 안에 한자를 달거나 뜻풀이를 해서 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제문

유維歲次 정유 십이월 정유 십육일 임는 직 내 아我 현고顯考 학생부군學生府君 중상지일야中喪之一夜라 전일 석夕 신에 불초 녀식 안동 손실는 삼가 이 한 잔 술과 한 줄 걸노글로 통곡再拜痛哭고 부친 영혼 전에 올이 가로대 오호嗚呼 통며 오호 라 아버님요 하로 이털하루 이틀 가 월歲月 누구가 막아 주며 한  두  월 라 늘는늙는 사람 누구가 항거할가 이팔청춘 조흔 시 팔도강산 명싱名勝  긔경求景  분번 못 보고 두문불출 이 산중에 상시 하솔下率 몸이 매여 나주로낮으로 깃매기김매기와 밤으로 신삼기 일 활 지낼실지내실  실하膝下에 팔남매를 앞 두고 히히낙낙喜喜樂樂 사랑시며 사랑사 하나갓치 기울실키우실  매 한 태한 대 안이 치며 구중꾸중 한 분한 번 안이시고않으시고 일년 삼백 육십 일을 로갗히 보시며 고이고이 신 말삼 남형男兄弟 대야 형우공兄友弟恭=형제가 서로 우애를 다함 이러시고이르시고 녀형女兄弟 대야 칠거지훈七去之訓를 시시로 가라치며 명심불망銘心不忘하라 신 말삼 어어제 아前日의 방언형 드른 긋'듯'의 오기 갓사오나 무정한 긋 월이라 남녀 간 이십지년二十之年에 고문거벌高門巨閥=부귀한 집 택치擇取=취택하야 남취녀가男娶女嫁=남자는 장가들이고 여자는 시집보냄 次第=차례로 성년시키든니 조물造物이 불조不助함인갸 귀신이 시기함인갸 호사다마好事多魔 어인 일고 오호 통라 아버님요 년수年數 불가不過 육순여에 우연 득병야 신음신음 지내실대 호심孝心이 지극 백남伯男=큰아들은 동분서치東奔西馳=동분서주와 동일함 문약問藥 구약求藥대 백약이 모호無效로셔 성심성역誠心誠役 본이 업고 백남의 월치오빠의 아내도 시병탕약侍病湯藥=간병하는 일과 약을 끓임 공노功勞 업시 어연간 기나긴 삼년이라 월을 보낼실  불효 녀식은 가군家君이 쳔리 번방邊方에 사오년을 군중軍中에 복무올 적에 소녀의 가정을 건심근심 걱졍야 백남을 보내 돌보아 주며 중남中男=둘째 아들, 차남도 와셔 돌보아 주여시대 그래도 불족不足한 각으로 사오개월식 한 익기 실 젹에 그 상심傷心 오작오릿가오죽하오리까 아버님 병중에 기실 시에 소녀 손소 탕약  텹 못 올이오고 선진육海鮮殄肉=생선과 고기으로 구미口味 한번 몬못 도옵고 신만 기칠 적에 텬天야아 지地야아 인人야아 귀鬼야아 거년去年 금일今日애 진塵世을 하직시고 옥경선대玉京禪臺을 향신니 실푸고 실푸다 팔남매 호텬고지呼天叩地=하늘을 부르며 땅을 침 통곡한들 일  변번 나신떠나신 후 다시 오신 헌젹흔적 업사온니 애애 통라 아버님요 평애 필혼畢婚=아들 딸 중에서 맨 마지막으로 시키는 혼인을 못옵고 육순유구六旬有九에 일기를 맛치신니 둘 남동은 대성통곡 우름소리 비금주수飛禽走獸도 실푸한대 사람으로 어이 보오리가 오호 통며 오호 애라 염구殮具=염습할 때에 쓰는 기구를 수습할  소렴小殮=시체를 옷과 이불로 싸는 것을 수습옵고 삼일에 대렴大殮=소렴을 행한 다음 날 송장에게 옷을 거듭 입히고 이불로 싸서 베로 묶는 것을 수습야 칭가유무稱家有無=집의 형세에 따라 일을 알맞게 함로 초종初終 범백凡百 양례兩禮를 지낼 발인發靷 축독祝讀 소리 일월이 무광이요 북소리 둥둥 애홍哀鴻=슬피 우는 기러기 소리 거그 곡조에 대결大闕 갓튼 저 집으로 빈 절 갖히 비어 두고 창송蒼松은 울울고 북풍은 소실蕭瑟한 청산靑山으로 어이 갈고 하 소리 텬지가 캄캄하야 불분지척不分咫尺이라 정신 차려 살피본니 아버님 영가靈駕=영혼 간 곳 업고 청산류수靑山流水 벅나碧羅=푸른산 푸른 물의 비유 속에 석남 연기 남아다 오호 통라 초우初虞=장사 지낸 뒤 처음으로 지내는 제사 우再虞 삼우三虞를 맛친 후 소녀 집을 올 고례경남 밀양군 단장면 고례리 을 나 구천경남 밀양군 단장면 구천리 마을 드르선니 동리 사람 문위인問慰人事 저기어기 나 가군은 천리 박개셔 이른 줄 모러리라 훌훌이 집으로 드르간니 수개월 비인 집이라 주인을 반기난듯 방문 열고 드르슨니 찬바람이 살을 가며깎으며 인사내 어린 아 엽 고 설설 빈 방안에 혼 안 가졍 헝편 살피본니 아버님 각 가군 각 주야 눈물로 일을 삼고 월로 벗을 삼아 로 달 보내든니 텬지의 언득인가 아버님 젼에 소녀 가군을 주소晝宵=밤낮로 걱졍시든니 상喪制=상중에 있는 사람 전에 설은說恩와 신명이 도으심이갸 금년 춘간春間에 군복軍服을 이별고 고향으로 도라온니 한펀은 방가우나 아버님을 각니 서른 마음 드욱 설다 오호오호 애애라 월은 석화류수石火流水=세월의 빠름을 비유한 말라 오날 진욱이저녁이 직즉 거년去年 부녀 상대온 진윽이라 천리타향 군중에 잇든 가군를 작반作伴야 아버님을 보오러 불언천리不遠千里 왓근만은왔건만은 아버님애 가신 길은 다시 옴이 업슴니가 영혼 전에 부처 통곡한들 오고 가멀 모르온니 아버님은 아심니가 모르심니갸 히히한 촉불 아래 올닌 술잔 젹젹고 촉불 눈물만 르지며떨어지며 검막 압 한 줄 서른서러운 정곡情曲=간곡한 정 이 고하오나 아버님 엄성音聲은 요요遙遙=멀고 아득함하고 바람 소리이온니 실푸고 실푸다 아버님은 왓슴니갸 못 왓슴니갸 청풍멍월淸風明月 벅나 속에 길을 일으잃어 못오신갸 옥경선대 선녀 중에 놀기 조와 못 오신갸 서왕모西王母=선녀의 하나 요지연瑤池淵에 복숭복숭아 자시다가 오날 진윽저녁 이젓신갸 상산商山에 사호四皓 만나 바닥바둑 두다가 느젓서 못 오신갸 염나국閻羅國이 어대근대어디인데 길이 멀어 못 오심이갸 유멍幽明이 다르오나 헌젹흔적조 업온니 오면 오신 줄 알며 가면 가신 줄 어이 아리 백마산상白馬山上 돗는 달이 둥둥 고개 늠어간이넘어가니 동산에 두건조두견새는 나의 포화포 도으라고 불여기不如歸를 설피 하며 서촌에 계멍성鷄鳴聲은 나의 통곡 근치라고그치라고 오경五更=오전 3시에서 5시까지을 기별 오호 통라 아버님요 우리 팔남매 지지손至子至孫=아들에서 손자까지 전전무궁傳傳無窮=끊임없이 무궁히 전하여짐올튼니하올테니 옥경선대 선녀 중에 진사盡世事를 이저시고잊으시고 만만萬萬世世 무궁무궁옵소셔 오호 통 오호 통 상향尙饗

한글 제문 2

'한글 제문 2'는 '한글 제문 1'을 쓴 사람이 쓴 제문인데, 종상 때 쓴 제문입니다.

종상 때의 제문은 그 크기가 세로 29.6cm, 가로 98.4cm의 크기입니다. 역시 두루마리로 말지 않고 4.5cm의 넓이로 22번을 접어서 보관하였던 것입니다. 50행 22자 정도로 되어 있어서 모두 1,787자입니다. 중상 때의 제문보다도 약간 깁니다. 이제 그 제문을 보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세챠 정유 십이월 정유삭 십육일 임자는 직 오 친당親堂 아바님 상을 영결하고 구천九泉으로 도라가신 종상지일야終喪之一夜라 전일 석 신예 출가出嫁 여식 안동 손실은 호천망걱지통呼天罔極之痛을 이기지 못하와 제통곡再拜痛哭하옵고 슈항數行=글의 두서너 줄 향사享辭=제사 때 쓰는 글와 일 박쥬薄酒로 영상하影像下=영정 아래 괴좌跪坐=꿇어 앉음하와 지성통곡至誠痛哭 아뢰오니 불하신 영혼은 아람이앎이 기시와있으시어서 명명明明=아주 환하게 밝음한 상촉하香燭下 향탑香塔을 의지하와 여식 첩첩심중疊疊心中 사인쌓인 정회얼情懷를 歲歲 명찰明察=똑똑히 살핌하옵소서 오호 통라 천지엄양天地陰陽 합配合하야 만무리萬物이 장生長하고 일월성신日月星辰 긴 후 인이 최귀最貴=가장 귀함하니 인이 최귀함은 오륜五倫 이심이요 오륜지중五倫之中 부자유친父子有親 일리라第一이라 오호라 이 몸이 부모 덕으로 상 겨낫서 부모난 천지 갓고 형난 일월 갓고 친척은 초목 갓치 쥬야간 명낙하고 샤시저 변성繁盛하야 산 갓한 부모 실하膝下 천츄만千秋萬歲 바더니 무정할사 역亦 여광음관如光陰百歲關係 되단 말가 오호라 아바님 상에 기시올  도덕 군자 뽄을 바다 언으言語가 순순順順=온순하고 말삼이 관후寬厚하와 장공長空=끝없이 길고도 먼 하늘예 육족지도 심중心中 통달通達하고 좌적직괴 입적장삼 밤낫 업시 건실하야 오남삼여 팔남를 기출갓치 정을 두워 불망 길여  유월 염천炎天 더운 나 더우면 더울라 덩등 업고 쉴  업고 동지섯달 치운 나 치우면 치울라 품 안아 놀  업시 고아부아 길여야 간녀취부奸女炊婦=딸이 스스로를 간사하고 밥만 짓는 여자로 부름 법을 차려 차차 성취成娶=장가 보냄하야 남거 북갈 버려 녹코 불초한 이 여식도 삼오15살 이팔16살 기가니 요조춘窈窕=안존한 여자 춘색春色 가 잇서 봉황 을 어더 검실琴瑟 우지노난 거실것을 눈 압 보시락고보시려고 좌우로 구혼求婚하니 불원간 안동 손시 낭자가 쥰수俊秀하고 천연天緣=천생연분이 지중至重하와 히허이 출가하야 시복납歲時伏臘=새해 삼복 납향의 총칭 조헌좋은 명절 왕간 서로 하고 길흉사吉凶事 함게터니함께 하더니 차회라嗟乎이라=슬프다 인간사人間事여 고진감苦盡甘來 어 두고 헝진비興盡悲來=즐거운 일이 다하고 슬픈 일이 닥쳐온다 무삼일고 시운時運니 불하고 호사好事가 다마多魔하와 산 갓한 우리 아빠 우연 환후患候 기시오니있으시니 출천효出天大孝=천성으로 타고난 효성 오라바님 동분서쥬 단니며 서西의 약으로 치효治效하고 지걱지극 정성 월형님올케를 일컫는 경상도 방언 혼정신성昏定晨省=조석으로 부모의 안부를 물어서 살핌 걱진극진하되 명도命途=운명가 한니 잇고 사가 수 잇서 화타편작華陀, 扁鵲=중국의 명의 실업고쓸데없고 왕연 명일 별別世하니 유유창천悠悠蒼天=한없이 멀고 푸른 하늘 아차 하지며 차하인오 오호라 월리여 신구식법新舊式法이 달나 일 양예 못하옵고 삼일성복三日成服=삼일 동안 상복을 입는 일 순장할  로가薤露歌=상여가 나갈 때에 부르는 노래. 사람의 목숨이 부추 위의 이슬같이 말아 없어진다는 내용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임 한 곡조 팔자 명정銘旌 압서우고 처량이처량히 도라가서 청산 누워시니 가이 업시 서름지고서른지고 오호 통라 상가 월 일몽간一夢間 어언간 주삼연이라 휘일諱日=조상의 祭日리 부림함 검석今昔을 허송하면 기한니 업삽기로 한 잔 술 병 역코 한 점 안주 준비하야 급급히 좃차올  삼거리 나리오니 물소 잔잔하고 소월산 도라오니 송풍松風은 소소한 실푸다 아바님 이 여식은 온다 기다런가 겁겁히 좃차와서 영상항 더러 안자 일쥬一盃酒 부워 녹코 고고 통곡하니 유명이 달나심 왕을 알 슈 업고 험향歆饗이 가감 업서 통곡이 헛곡이라 오호 통며 오호 라 아바님요 아바님요 도라오소 도라오소 오날 전역저녁 도라오소 서양西洋갓치 먼먼 길도 비기飛行機만 타고 보면 오고 가고 하건마난 황천黃泉은 저 산 진 일거 차하신 후 도라올 줄 이저시니 황천이라 하난 가 인품人品 범절凡節 사난 법이 얼마나 조삽관좋길래 도라올 줄 이저신고 아모리 좃허라도좋더라도 염왕 슈유受由=말미 바다 오날 전역 도라와서 영탑하 만반진찬 만이만이 험향하고 시예 귀한 자녀 반가이 상봉하야 동낙歲歲同樂 질긴즐긴 후 일 아침 난 나 성피 운白雲 자바 타고 옥경천玉京天臺 올나가서 옥황전 문안하고 옥황전 쥬문하와 걱낙極樂世界 도라가서 안기妓生을 벗을 삼고 적송자赤松子=신선 이름럴 짝을 지여 만팔천연 기시오면 여식도  후 지부地府=저승 도라가서 이이生 부녀지정父女之情 후 부여父女 되야 이 환하옵기로 지성으로 바뤈하오니다發願합니다 오호 통며 오호 라 여자 잔소로 원 정 다하오면 외인첨시外人瞻視 미안하고 영혼전 원망키로 강강 기록도 오경五更 장야長夜 닭키 울고 구만장천九萬長天 다리 저서 건이청작으로 일 통곡하오니 불하신 영혼은 서사감임하옵소서 오호 통 상향

이 '한글 제문 1'과 '한글 제문 2'는 시집간 딸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쓴 제문입니다. 이 제문에서 딸은 아버지와 연관된, 가정의 모든 일을 회고하듯 써 내려 갑니다. 즐거웠던 일들과 슬펐던 일들을 회고하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슬퍼합니다. 그래서 이 제문을 통해 이 집안의 다음과 같은 사항을 알 수 있습니다.

① '한글 제문 1'과 '한글 제문 2'의 주인공이 살던 동네는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군 단장면 고례리와 구천리였습니다.

'한글 제문 1'과 '한글 제문 2'의 주인공이 살던 마을을 추적하기 위하여, 이 제문에 쓰인 지명에 대해 조사하였더니 이 제문에 '고례', '구천마을', '소월산', '삼거리'의 네 지명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호 통라 초우 우 삼우를 맛친 후 소녀 집을 올 고례 을 나 구천 마을 드르선니 동리 사람 문위인 저기어기 나 가군은 천리 박개셔 이른 줄 모러리라

한 잔 술 병 역코 한 점 안주 준비하야 급급히 좃차올  삼거리 나리오니 물소 잔잔하고 소월산 도라오니 송풍은 소소한

이것을 조사해 본 결과 이곳은 경상남도 밀양군 단장면 고례리와 구천리였습니다. 밀양군의 표충사 가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이 딸이 시집간 '고례리'가 있고, 고례리에서 단장천을 따라 약 4km 내려가면 '삼거리'가 나옵니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올라가면 곧 친정인 '구천리'가 있는데, 이 길을 계속 따라가면 곧 표충사가 나오는 곳입니다. 곧 이 딸은 친정에서 약 10리 떨어진 안동 손씨 집안으로 시집을 간 것이지요.

② 돌아가신 고인의 연세는 69세로 보입니다.

이 집안은 모두 8남매 집안입니다. 5남 3녀의 8남매를 둔 집안의 부친이 돌아가셨는데, 그때 고인의 연세는 69세입니다. '아버님요 년수 불가 육순여에 우연 득병야 신음신음 지내실대'라고 한 대목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3년 동안 앓다가 돌아가셨는데, '아버님요 평애 필혼을 못옵고 육순유구에 일기를 맛치신니'란 표현에서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작고하신 분은 1898년생입니다.만 나이로 따지지 않았다면 1899년생이라고 할 수 있지요.

③ 제문을 쓴 딸은 맏딸로 보입니다.

제문을 쓴 딸은 5남 3녀 중에 몇 째 딸일까요? 아마도 맏딸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왜냐하면 장남제문에서는 '백남'으로 표현하였습니다만에게는 '오라바님'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또 존칭을 사용하고 있지만 둘째 아들제문에서는 '중남'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에게는 존칭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 백남을 보내 돌보아 주며 중남도 와셔 돌보아 주여시대 이러한 사실로 보아서 이 한글 제문을 쓴 큰딸은 그 집안의 둘째 자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④ 이 한글 제문은 1957년도에 쓴 것입니다.

이 한글 제문은 '정유 십이월 정유 십육일 임'라는 간지가 있어서 그 연대를 추정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정유년'이니까 한글 표기로 보아서 대충 1897년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중상 때의 제문에 나타난 표기법으로 보아서는 이 제문이 1897년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즉 '다'의 '-'는 '하-'로도 표기되지만 '-'로도 표기되어 있는 등의 사실로 보아 그렇게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상 때의 제문에 나타난 내용을 중심으로 검토하여 보면 이 제문이 1957년도의 것임이 거의 틀림이 없습니다. 그 결정적인 증거는 “도라오소 도라오소 오날 전역 도라오소 서양갓치 먼먼 길도 비기만 타고 보면 오고 가고 하건마난”에서 '비행기'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1897년도에 서양 같은 먼 길도 비행기만 타면 오고 가고 한다는 지식을 습득하고 있었을 리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제문은 1957년에 돌아가신 아버님께 올린 제문이라서, 그 다음 해인 1958년과 1959년에 각각 쓰인 제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⑤ 이 제문을 쓴 딸의 이름은 '정순'禎順이거나 '상순'相順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성은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제문의 제목인 '제문'이라고 쓴 부분의 아래쪽에 나무 도장이 5개가 찍혀 있는데, 그 도장에 한자로 '禎順'이란 도장 1개와 '相順'이란 도장 4개가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한글 제문 3

많은 사람들이 제문을 한글로 썼으니까 그 제문은 여자가 썼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남자들도 한글 제문을 썼음을 '한글 제문 3'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한글 제문 3'은 길이가 길어서 사진 한 장으로 보이기가 힘들어 나누어서 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한글 제문 3'은 그 크기가 세로 27.0cm 가로 134.0cm입니다. 남동생이 누님의 대상 때 쓴 제문입니다. 곧 남자가 쓴 한글 제문입니다. 우선 그 내용을 보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문

유시차維歲次 정유 삼월 임인삭 초십일 신해는 우리 눈님누님 대상지일야大祥之日夜라 불초 아우는 눈님 생시에 남달은 자정慈情에도 일천 가지로 부족하온 일 일배주一杯酒로 생시에 다 못하온 말삼 대강이라도 상달上達할가 하와 정이 기록하온 제문 두으두어 줄과 비박菲薄, 변변치 못함하온 전수를 가추워 만일의 정성을 아리고자 하와 재배통곡 영결永訣 영상지하靈床之下 왈 오호 애재 우리 눈님이시여 이 불초한 아우는 우리 삼남 남달은 자정으로 지내다가 읏지 이에 이러섯나니가 인생칠십고레히人生七十古來稀는 고인古人이 시에 일넛근만 우리 눈님은 평생 기력이 건강하시고 천성이 유순 자상하시여 규범規範 내칙內則이 인생간에 드무시와 임사臨事의 득행得行과 가간사家間事의 돌보시는 일이 인생에 출중하와 인아隣我 척당戚黨과 원근遠近 향당鄕黨이 뉘 안이 칭찬 흠양하오리잇가 이 아우는 항상 백연로를 축원축원하였드니 가운이 불길하였든가 자형姊兄은 일적이일찌기 시상세상을 뜨나싯스나떠나셨으나 눈님은 백세를 납비 알고 천백새 축수터니 읏지 일조에 기택이아들 이름 소식 듯지 못하고 이에 이러섯나니가 설하슬하에 아들 딸 널은드시 두지 못하고 아들 형재형제 남부럽잔이 기러드니 이긋도 만은 드시 기택이는 으이하였나니가어이하였나이까 옛날에 조彭祖, 800년이나 살았다고 하는 중국 전설 속의 인물난 팔년을 날아도 구백년이 유재라 하난 말과 갓치 이 아우의 설푸설푸 서운하음이야 오나때나 있사오리있가만은 더욱이 영철이아들 이름 홀로 설푸고 통지통하는 양 보기 민망 절박절박하옵나니다 오호 재며 오호 통재라 남달은 아들 형재 지중지 길너더니 원수의 날니亂離 바람에 기택이 소식 모연하여 주야장춘 고대고대하더니 유수광음은 빨나셔 오나듯어느덧 칠연이라 사모한들 무선 소용이리요 오호 재 불초 아우는 남달은 자정 있지 못하나 백가지로 부족하나이다 몹씰너무 날니 피난 때 불초 아우가 죽은난지 살앗난지 오매불망 하여 가며 수백리를 달여가서 잠시 상봉하고 뜨나신 일 읏지어찌 있저리요잊으리요 대구까지 피란 가서 자식 형재 다 보내고 무산무슨 정으로 살나 하였소 남은 식구나 연명할나고 고생고생하시든 일 생각사록 원통하오 오호 재 눈님 삼연三年 전에 기택이 도라오는가 축앙축앙 빌읏드니 영영 소식 모연하고 고생 끗 영광이 온단 말도 잇난대 좀드좀더 살아서 남은 영광이나 보지 안코 한갑환갑 전에 시상세상을 뜨낫서니 이 일이 윈일웬일이요 빨은 긋은빠른 것은 시월세월이라 천도난 희한하야 작연 금일이 닷처 맛고 풍경은 불수하고 산천도 불변하온 중 종당終當 연사두로 모였난 듯 하온대 설푸다 우리 눈님 돌아오실 차 모연하오니 지금 으나어느 곳에 기시난이가계시나니까 만악천봉萬岳千峰 독피문하니 은일 종사하시난가 도화유스모연겨桃花流水杳然去, 도화꽃 떨어져 멀리 흘러가다하니 별유천지別有天地 기시은가 춘광부도옥문관春光不度玉門關, 봄빛이 넘지 못하는 옥문관하니 일그에 망연하사니 이 일이 원일이요 이왕지사 가싯거던 첫재 자형姊兄 맛내만나 보고 눈님 형재 상봉하고 오문님을어머님을 보시거든 동생 안부도 전 주시요 알일 말삼 태산하해泰山河海 부족하오나 일전에 선산善山, 지명 지형인명 회갑연에 참가드니 재욱인명 사남 두로 모여서 만반지수滿盤之酬 차려노코 히히락락喜喜樂樂하드니 별안간 통곡으 변하엿나니다 이 일이 원 일인고 하였드니 일히일비一喜一悲란 말과 갓치 경사 중에도 우리 맛눈님 생각이 나서 재욱이인명 사남 저의 으믄이어머니 생시生時를 생각하고 원 집안이 통지통하는 양 차마 보기 절박절박하였나니다 남달은 우리 눈님 남과 갓치 백연장수 못하시고 이 시상을 뜨나싯소 오날 우리 눈님 영전에 일주로 작별하니 원통하기 거지없소그지없오 오호 재요 불초 아우는 병한시도 못 와 보고 초상내 영결시도 작별 못해서니 미안 절박절박하오나 무정타 마옵소서 남달은 우리 눈님 각별히도 사랑하신 은 태산하로 심천을 기록하오리잇가 매사 분망하온 중 다만 정승을 알일 뿐이이니 명명지중冥冥之中 알우시나니가 몰으시나니가 옥경요지玉京瑤池에 다시다시 조흔 세게 맛나시여 영원 극락하앞소서 오호 재며 오호 통제 상향

아우 인현

이 제문을 통하여 이 집안의 다음과 같은 사항을 알 수 있습니다.

① 이 제문은 1957년에 쓰인 것입니다. '정유 삼월 임인삭 초십일 신해'라는 내용이 있고, 역시 '난리'라는 기록이 있어서 한국 전쟁 이후의 '정유년'이어서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② 이 제문을 쓴 남동생 이름은 '인현'입니다. 제문의 마지막에 '아우 인현'이란 기록에서 알 수 있습니다.

③ 이 집안은 3남매의 집안이었습니다.

④ 고인인 누님은 장녀였을 것입니다.

⑤ 자형이 누님보다 먼저 돌아가셨습니다.

⑥ 누님도 환갑 이전에 돌아가셨습니다.

⑦ 누님은 두 아들을 두었습니다. 큰아들의 이름은 '기택'이고 둘째 아들 이름은 '영철'입니다.

⑧ 누님의 큰아들인 '기택'이가 한국 전쟁 때 군대에 가서 행방불명되어 누님이 오매불망 잊지 않고 찾았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⑨ 한국 전쟁 때 대구까지 피난을 갔던 것으로 보아 대구 근처의 지역에서 산 것으로 보이며, 친척 중에는 '선산'에 살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결국 경상도 지역에서 쓴 제문임을 알 수 있는데, 이 제문의 표기에서도 그러한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⑩ 시집간 누님이 아팠어도 남동생이 와서 보지 못했고 초상 때에는 오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혹시 남동생인 '인현'이란 사람이 군대에 가 있을 때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남자가 쓴 한글 제문이지만 구구절절이 누님을 그리워하는 글로 가득합니다.

한글 제문의 형식

제문의 서식에 대해서는 이재李縡가 쓴 <사례편람四禮便覽>에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維

年號幾年歲次某年某月干支朔某日干支忝親備要隨所稱 某官姓某謹以淸酌庶羞之奠致祭于 某親某官某公之柩云云別爲文字以敍情意尙

饗

책의 이 부분을 사진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이 내용들을 순서대로 나누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유 연호 기년 세차 모년 무월 간지삭 모일 간지維年號幾年歲次某年某月干支朔某日干支를 제일 먼저 씁니다.

ㄱ. 유 연호維 年號, 즉 유세차간지維歲次干支를 씁니다. '유세차'란 말은 '이 해의 차례'라는 뜻입니다. 흔히 알고 있는 관용적인 말인데 제문의 첫머리에 씁니다. '한글 제문 1'에서 '유 정유'라고 쓴 부분입니다.

ㄴ. 기월간지삭幾月干支朔을 씁니다. 즉 음력으로 제사를 맞는 달과 그달의 초하루 일진이 '병인丙寅'일 경우 '오월병인삭五月丙寅朔'이라고 쓰면 됩니다.

ㄷ. 기일간지幾日干支를 씁니다. 즉 음력으로 제사를 맞는 날짜와 그날의 일진을 쓰면 됩니다. 돌아가신 날이 15일이고 그날의 일진이 임오壬午인 경우 '십오일임오十五日壬午'처럼 씁니다.

결국 제문을 올리는 시간을 명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세차'라고 하여 정해진 해의 차례를 쓰고 다음에 월일을 씁니다. 원래는 '유'維 뒤에 왕조의 연호를 쓰는데, 예컨대 '維光武一年' 등으로 쓰고 이어서 '歲次간지'를 쓰는 것이 제문의 일반적인 서식이지만, 일반인들은 이 왕호를 쓰지 않고 그냥 '유세차'라고 씁니다. 그리고 연월일은 모두 간지로 표시합니다. 그래서 '한글 제문 1'에서도 '유 정유 십이월 정유 십육일 임'라고 쓰고 있습니다. 해는 '정유년', 월은 숫자와 간지를 동시에 써서 '십이월 정유'으로 그리고 일은 '십육일 임'로 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연월일 표시로 보면 '1957년 12월 16일'인 셈입니다.

② 관칭關稱을 씁니다. 즉 제사를 받드는 신위와 제문을 쓴 본인과의 관계를 자칭自稱하는 것입니다. 부모님 제사에는 효자孝子, 조부모 제사에는 효손孝孫, 증조부 제사에는 효증손孝曾孫, 고조부 제사에는 효현손孝玄孫이라고 씁니다. 돌아가신 분께는 '불효자不孝子'나 '불효손不孝孫'을 쓰는 것이 또 '불효'가 되기 때문에 '불효'를 쓰지 않고 '효'라고 쓰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남편의 제사에는 '주부主婦'라고 쓰고 아내의 제사에는 '부夫'라고만 씁니다.

다만 졸곡卒哭 전의 초종初終일 경우, 부모의 상사喪事에는 '고자孤子', 조부모는 '애손哀孫'이라고 쓰고, 조부모가 모두 돌아가셨을 경우에는 '고애손孤哀孫'이라고 씁니다.

'한글 제문 1, 2'에서는 '직 내 현고나의 돌아가신 아버지', '직 오 친당 아바님직 吾 親堂 아바님' 이라고 표시하고 있습니다.

③ 제사의 대상을 밝힙니다. 대개 관직을 지냈으면 관직명을 기록하고 관직이 없으면 학생學生 또는 처사處士라고 쓴 다음 그 뒤에 '부군府君'이라고 씁니다. '지방紙榜'을 쓸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일반 가정에서는 대개 관직이 없어서 '학생부군'이라 씁니다.

④ 제사를 받드는 사람의 이름을 씁니다. '한글 제문 1'에서는 '불초 녀식 안동 손실는'이라고 썼습니다.

⑤ 제사를 올리는 사실을 기록합니다. '한글 제문 1'에서는 '이 한 잔 술과 한 줄 걸로글로  통곡고 부친 영혼 전에 올이 가로대'라고 하였습니다. 한문 제문에서는 '감소고우敢昭告于', 즉 '삼가 고합니다'라고 쓰는 것인데, 한글 제문에서는 보통 '올린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아랫 사람일 경우에는 한문에서는 '감소고우'의 '감'을 빼어 버리고 '소고우昭告于' 또는 '고우告于'라고 씁니다.

⑥ 제사의 대상에 대한 추모의 글이 이어집니다. 제문에서는 이 부분이 가장 길어서 돌아가신 분의 인격, 행실 등에 대한 기록이나 가족들 간에 일어났었던 다양한 일들을 기록하고 가신 이를 추모합니다. 

⑦ 끝으로 정성스럽게 제사를 올리니 흠향하라는 내용으로 끝납니다. 즉 '상향尙饗'으로 끝이 납니다. '한글 제문 1'에서도 '상향'으로 끝이 나는데, 이것은 한글 제문의 특징이 아니라 모든 제문의 일반적인 특징입니다. '상향尙饗'이란 '적지만 흠향하옵소서', 즉 '적지만 제물을 받아서 드십시오'란 뜻입니다.

마무리

한글 제문을 읽어 보면 이 제문의 주인공들과 아무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슴 뭉클한 애틋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는 것은 이 한글 제문이 그만큼 진솔하게 쓰였음을 말해 줍니다. 진솔하지 않고 단지 제문을 쓰는 투식에 따라 형식적으로 쓴 제문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진실된 감정을 글로 옮겨 놓았다고 해도 한글이 아닌 한자ㆍ한문으로 되어 있다면 역시 그 감정을 느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자ㆍ한문으로는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지언정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대개는 여성들이 한글을 통해 그리고 적절한 우리말 어휘를 사용해서 그 감정을 잘 나타낸다고 합니다만,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그 말이 곧 남성은 그렇지 못하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남자들도 앞의 누님 제문에서 본 것처럼 남동생이 돌아가신 누님을 회고하는 마음을 이렇게 애절한 표현으로 쓸 수 있는 것입니다.

한글 제문은 서민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을 대하는 심경을 담아낸 아름다운 하나의 서사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이나 주검 앞에서 진실해질 수 있어서 그 글에 약간의 과장이 있다고 해도, 사실을 과장했을 뿐이지 거짓은 없는 것이 한글 제문입니다. 한글 제문을 통해서 당시의 한 인물과 그 인물을 중심으로 본 가정의 꾸미지 않은 모습들을 들여다 볼 수 있어서, 필자는 이러한 한글 제문에 매료되어 많은 한글 제문을 수집하였습니다. 수십 편에 달하는 한글 제문을 여기에 일일이 다 소개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글 제문을 쓴 사람들이 돌아가신 분들과 어떠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인지, 그리고 주로 어느 지역에서 이 한글 제문이 쓰였는지, 어느 시기에 이 한글 제문이 주로 쓰이고 유행하였는지, 그리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기일忌日을 잊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하였는지에 대한 것을 한번쯤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글만으로도 그 양이 넘쳐서 여기에서는 쓰지 못하고, 다음의 글로 기회를 넘겨야 할 것 같습니다.

[남진희]

대단 하신 분이라고 말씀드린다는 그지체가 민망한 마음 입니다,
잘 모르지만 귀한글 인것 마는 분명한것 틀림이없습니다,
조심스럽습니다,

[남진희]

댓글 자체가 잘못된것같으나11
보고 떠나는 것도 도리가 아닌듯 싶어 죄송 한 생각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