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고삐엣유웨 아흐닛꼬샤친(껍데기는 버리고 알맹이를 찾아서)』
난다말라비왐사 큰스님
Ashin Nandamālābhivaṁ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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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하고 현명하신 최고의 선승이자 학승으로 존경받는 난다말라비왐사 큰스님은 실라난다 큰스님의 뒤를 이어 현재 국제 테라와다 불교대학ITBMU 총장으로 계시면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테라와다불교에 대한 가르침을 펼치고 있습니다.
1939년 미얀마 신꾸시 보리수 마을에서 출생한 난다말라비왐사 큰스님은 1995년 미얀마 정부로부터 “악가마하 간타 와짜까 빤디따Aggamahāgantha vācaka paṇḍita”라는 지위를 받았으며, 2000년에는 “최고의 지혜스승”이라는 “악가마하 빤디따Aggamahā paṇḍita”라는 지위를 인정받았습니다. 2003년부터 매년 미얀마를 비롯하여 독일, 프랑스, 영국 등에서 아비담마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현재 사가잉Sagaing에 있는 시따구Sitagu 국제 불교 대학SIBA과 양곤에 있는 국제 테라와다 불교대학ITBMU 총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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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껍데기는 버리고 알맹이를 찾아서
“수코 뿐냣사 웃짜요”
“sukho puññassa uccayo.”(『법구경』 118번 게송)
“선업의 모음은 행복의 확실한 원인이다.”
- 붓다
1. 선업
윤회(상사라saṁsāra)를 도는 동안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편안하고 행복하게 넘어가게 해주는 원인은 ‘선업’입니다.
“수코- 뿐냣사 웃짜요-”
“뿐냣사 : 선업의
웃짜요- : 모음은
수코- : 행복의 확실한 원인이다.”
- 붓다
우리가 하나의 생을 사는 목적은 선업을 모으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행복을 원한다면 선업을 지을 궁리를 해야 합니다. 선업을 원인으로 얻은 행복은 매우 크고 튼튼한 행복입니다. 재물을 원인으로 얻은 행복은 그에 비하면 아주 유약한 행복입니다. 그 규모로 봐서도 작고 지속되는 시간도 짧습니다. 돈으로 인한 행복은 ‘있을 때뿐인 행복’입니다. 돈이 있다는 생각을 할 때 마음에서만 행복합니다. 그렇다면 ‘있을 때뿐인 행복’이 있는 동안 내내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닙니다. 있어서 고통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있어서 행복하다는 것은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의미입니다. 있는데도 행복하지 않은 경우는 어떤 때인가요?
재물이 많은 사람은 재물로 인해 신경 쓰고 근심합니다. 소유한 재산을 잃을까 봐 근심 걱정할 때, 재물로 행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재물로 인하여 행복만이 아니라 불행도 데려옵니다. 근심도 따라옵니다. 재산이 있기 때문에 근심도 일어납니다. 이 ‘앗티수카atthisukha’라고 하는 ‘있을 때뿐인 행복’은 한 면만 행복하다고 말해야 합니다. 완전한 행복은 아닙니다. 그래서 붓다Buddha께서 “재물이 있으면 행복해지리라. 재물을 많이 모으라”라고 하지 않습니다.
반면 “선업을 모으도록 하라. 좋은 일을 해야 행복하다”라고 설하십니다. 아주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돈이 있는 것과 선업이 있는 것은 다릅니다. 돈이 있으면 ‘나에게 있다, 내가 쓸 수 있다’는 상상을 하고 있을 때에나 행복합니다. ‘내 소유의 건물이 안전한가?’
하고 근심이 들면 고통스러워지기 시작합니다. 한편에선 행복하지만 한편에선 행복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선업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지은 선업이 있다는 것은 그 존재에게 의지처가 생긴 겁니다. 내가 지은 선업을 반추해 볼 때 행복합니다. 이미 지은 선업이 사라져 버릴까 봐 불안해하다가 근심에 빠질 일은 없습니다. 붓다께서 설하신 다섯 가지 적인 ‘물, 불, 왕, 도적들, 속태우는 자식들’ 같은 위험 요소들로 인해 나의 선업들이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노심초사할 일도 없습니다. 선업은 편안한 행복만 줍니다. 그래서 ‘수코 뿐냣사 웃짜요’(선업의 모음은 행복의 확실한 원천)입니다.
선업은 이렇게 의지처가 됩니다. 윤회라는 기나긴 여행을 해야 할 때도 고통을 최대한 줄여서 편안히 가게 해 줍니다. 지은 선업이 많으면 사람으로 태어나서도 편안한 생을 살아갑니다.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이는 부유한 집안에 태어났지만 병약하여 항상 건강이 염려스럽습니다. 먹은 밥 한숟가락 소화시키기 위해 매우 애를 써야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누구나 행복하다고 볼 순 없습니다. 많은 선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인간 생에서 몸의 고통과 마음의 괴로움이 상당히 덜합니다.
이렇게 생이 두 가지로 나뉘는 것은 선업 때문입니다. 선업이 많았던 생은 풍족한 생으로 이어집니다. 선업이 적었던 생은 부족한 생으로 이어집니다. 차이점은 과거에 내가 지은 선업의 힘입니다. 힘의 차이에 따라 이번 생에서 받는 결과가 달라집니다. 윤회의 굴레를 도는 중생의 선업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보시·지계·수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