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나찰집 상권
[12인연, 생사의 근본이며 마왕의 경계이다]
12연(緣)은 생사의 근본이며, 일체 중생의 굴택(窟宅)이며, 하늘의 마왕 파순(波旬)이 살고 있는 경계이다.
만일 지혜 있는 이라면 능히 인연의 갖가지 허물을 관찰하여 영원히 생사(生死)의 허물을 끊을 것이니,
마왕의 세계는 하늘의 마군으로서, 이때 큰 근심과 걱정을 낸다.
인연의 바다는 크고 깊고 넓어서 지혜 있는 이가 들어가니,
비유컨대 큰 상인과 같이 성품과 형상을 관찰하여 곧 능히 깨달으면 일체종지(一切種智)와 위없는 보배와 모든 주술(呪術)에서 가장 묘하고 가장 좋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부처님의 성품]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무량겁에 6바라밀(波羅蜜)을 닦으시고 모든 선행(善行)을 모으시며,
모든 번뇌와 음마(陰魔)와 사마(死魔)와 번뇌마(煩惱魔)를 끊으리라 굳게 맹세하시고,
영원히 생사를 끊어 삼계(三界)를 뛰어넘어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를 성취하시고,
일체법에 무애지(無礙智)를 얻으셔서 일체 중생을 위하여 크고 밝은 등불이 되셨다.
적멸(寂滅)을 증득하신 것은 삼계의 중생을 위하여 참되고 착한 벗이 되려 함이시니,
능히 법륜을 굴리며 곧 법려(法䗍)를 불며,
큰 법고(法鼓)를 치고, 큰 법등(法燈)을 켜며,
큰 법교(法橋)를 놓고 큰 법선(法船)을 띄우며,
큰 돛을 달고 높은 소리로 외쳐서 저 언덕에 이르는 이로 하여금 큰 서원을 다하게 하시며,
일체 외도들을 항복 받고, 일체 인연 있는 이를 제도하여 모두가 믿음을 내게 하시니,
이러한 대인(大人)이 다른 법에는 미증유(未曾有)의 생각을 내지 않고, 인연법에는 매우 깊고 희유한 생각을 내시니,
오직 부처님 여래만이 능히 궁구하시며 깊은 뜻을 아시되,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비록 대선(大仙)인 황두(黃頭) 등이 자기의 지혜를 믿고 크게 교만을 낼지라도 오히려 무명(無明)에 가려지며,
유루(有漏)의 지혜로써 모든 경론(經論)을 저술할지라도 또한 사견(邪見)과 뒤바뀐 미혹[倒惑]을 면치 못하며,
비록 풀로 옷을 짓고 단식을 하며 비고 고요한 곳에서 홀로 선정을 닦고 백천 가지의 고행을 할지라도 마침내 능히 생사 가운데에서 약간의 해탈도 얻지 못하리라.
일체 중생은 무명에 덮였으므로 탐심을 내고,
탐심의 인연으로 큰 바다에 빠져 들어가서 모진 바람에 날리고 뒤덮이며,
멀고 넓은 들판과 험준한 길을 지나게 되며,
싸움터에 나아가 서로서로 해치다가 죽게 되거나, 갖가지 무량한 고뇌를 온전히 받는다.
만일 능히 12연(緣)을 깊이 안다면 이 인연(因緣)이 삼계 5도(道)에서 모든 업행(業行)을 지어 갖가지의 형상[形]이 되는 것을 보니,
비유컨대 세간에서 음악을 잘 짓는 이가 능히 여덟 가지의 소리인 궁(宮)ㆍ상(商)들을 화합하여서 소리와 음률이 상응하게 하고, 동시에 울리게 함과 같으며,
또 공교로운 화원이 여러 가지 채색을 잘 써서 수승한 형상과 이상한 모양이 빽빽이 나타나게 하는 것처럼,
12인연도 그러하여서 능히 업과(業果)를 어울리게 하고 조작하게 하여 생사에 바퀴 돌기를 끝이 없게 한다.
마치 긴나충(緊那蟲)이 세 때로 변화하되 처음은 흙빛이 되고, 중간에는 붉은 빛이 되고, 뒤에는 검은 빛이 되는 것과 같이,
12인연도 그러하여서 능히 중생을 변화하여 노(老)ㆍ병(病)ㆍ사(死)와 3유(有)와 5취(趣)와 4대(大)의 독사와 5음(陰)의 원적(怨賊)과 6입(入)의 빈 마을[空聚]을 짓게 하며,
또 능히 전륜성왕과 제석[釋]ㆍ범천[梵]ㆍ사천왕과 작은 왕으로 변화되어서 모든 쾌락을 받게 하며,
혹 사람의 몸으로서 부귀와 빈천과 수요(壽夭)가 되게 하며,
혹 지옥과 아귀와 축생의 형상이 되어서 갖가지의 고통을 헤아릴 수 없이 받게 한다.
세존께서 이에 대하여 스승이 없이 홀로 깨치시고,
지혜의 약과 도끼로 교진여(憍陳如) 등의 무명의 막(瞙)을 도려내시고,
큰 법의 비로써 우루가섭(優樓迦葉) 등의 타오르는 번뇌 불길을 끄시고,
지혜의 인연과 최상이 되는 지혜의 약으로 사리불과 목건련 등의 번뇌의 병을 고쳐 주시고,
지혜의 갈고리로 마하가섭을 부처님의 바른 길로 옭아 들이시고,
법의 사다리로 대석(大石) 바라문을 해탈당(解脫堂)에 나아가게 하신다.
이 지혜의 도끼로써 존자 마하가전연(摩訶迦旃延)과 아누루대(阿㝹樓大)와 부루나(富樓那)와 마하구치라(摩訶拘絺羅)와 난타(難陀)와 손타라난타(孫陀羅難陀) 등 모든 나한들의 몸이 있다고 하는 나무를 베시고,
이 진실한 지혜로써 능히 범왕이 내는 일체의 지혜로운 생각을 제거하시고,
이 지혜의 힘으로써 능히 천제를 제자로 삼고, 이 법다운 재물로써 빈바사라왕(頻婆娑羅王)과 따라온 8만 4천 명을 모두 배부르게 하되 줄거나 모자라지 않았으며,
이 바른 지혜의 사신으로써 정반왕[淨王]에게 말하여 법왕자가 되게 하였다.
이 큰 지혜로써 극악한 앙굴마라(殃崛摩羅)의 아비지옥[阿鼻]의 고통을 건져 주시고,
능히 바라문의 거사를 돌려 바른 도에 향하게 하시며,
능히 이렇게 크고 장엄한 불사를 지어서 지혜가 얕은 여인으로 하여금 깊은 깨달음에 들게 하신다.
이러한 지혜의 힘으로써 능히 장조범지(長爪梵志)를 꺾으시며,
능히 살차니건(薩遮尼揵)의 용맹한 힘을 망가뜨리시고,
능히 암목타(菴木吒) 바라문으로 하여금 큰 공포를 내게 하시고,
능히 시라복(尸羅匐) 바라문의 크게 지혜롭다는 상(想)을 쉬게 하시고,
이 감로수로써 어리석은 무리가 마시면 곧 큰 슬기를 이루게 하시고,
이 주력(呪力)으로써 4대(大)의 독사가 쏘지 못하게 하며, 가만히 칼을 빼어 도적이 따르지 못하게 하신다.
이 법의 눈으로써 6입(入)의 빈 마을을 보시며, 이 법의 군사로써 5개(蓋)의 원수를 무찌르시며,
능히 지혜의 원수(元首)를 보호하여 5욕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며,
이 지혜의 배로써 번뇌의 물결이 치는 큰 바다를 건너 저 언덕에 이르게 하시며,
이 지혜로써 큰 잿물의 바다를 건너되 데거나 타지 않게 하시며,
안과 밖의 모든 입(入)에서 괴로움을 악랄(惡剌)하게 받는 이들로 하여금 능히 찔러도 들어가지 않게 하시며,
능히 광명이 없이 크게 어두운 데서도 미혹하거나 빠지지 않게 하신다.
만일 어떤 중생이 능히 관찰하면 이 사람에게는 비쳐주는 광명이 되시고,
능히 중생계(衆生戒)의 평지에 편안히 서게 하시며,
염처(念處)를 얻어 휴식처를 삼고, 정근(正勤)의 길을 지나 여의(如意)의 당(堂)에 오르며,
5근(根)의 누각에 올라 5력(力)의 방에 들고, 7각(覺)의 향을 맡으며,
8정(正)의 물을 마시고, 남음이 있는 열반[有餘涅槃]의 평상에 앉아서 4선(禪)의 샘이 없는[無漏] 바람을 쐬게 하시니,
능히 이렇게 하는 이는 참으로 중생의 선지식이다.
청정한 계율을 깨뜨리지 않고 능히 선정을 닦으며,
깨달음과 지혜를 늘어나게 하여 능히 악한 갈래를 무너뜨리고,
해탈의 길을 얻어서 4제(諦)의 방소[方]를 관찰하며,
여러 가지의 소견의 잡초를 불 지르고, 신견(身見)의 돌을 깨뜨리며,
계취견(戒取見)의 큰 아수라를 쳐부수고, 마군의 5욕의 덫을 밝게 살펴서 넓은 들 험한 길을 지나가며,
열반성에 들어가서 탐욕의 그물을 파괴하고, 질투하는 비사차귀(毘舍遮鬼)를 깨뜨리며,
간탐(慳貪)을 씻어 버리고 악한 아만(我慢)을 토해 내며,
아(我)와 아소(我所)를 버리고, 3독(毒)의 뿌리를 뽑으며,
결(結)과 사(使)의 번뇌를 멸하고, 생사의 윤회를 멸하며,
사랑하는 몸의 새끼줄을 끊고 인연의 쇠사슬을 부수며,
능히 삼계의 무성하고 큰 나무를 꺾으며,
영원히 포태(胞胎)를 떠나서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슬프고 괴로워하는 큰 괴로움의 바다를 건너리라.
인연을 알고자 하는가.
체성(體性)은 깊고 미묘해
만일에 적은 지혜로써
실상을 말한다면
마치 사람이 머리로
돌산을 깨려 하는 것과 같네.
가장 큰 이 그물이
삼계(三界)를 뒤덮고
사악한 숲은
행자(行者)를 미혹케 하네.
이 악한 그물은
범부라는 사슴을 옭아매니
이 그물에 걸리는 이는
선한 법이 소멸되리라.
마전타라(摩旃陀羅)의
독화살에 맞는 것,
이는 지혜의 송곳이니
인연의 바다를 뚫어야 하리.
누가 인연의 바다를 뚫을까.
석가모니이시니
열반과 감로수와
큰 지혜를 성취하셨네.
[부처님이 12인연을 보시고 교화하시다, 비유]
이 12연은 부처님만이 능히 보시고 능히 자기의 미혹을 제거하시며, 남까지도 교화하시니, 비유하자면 다음과 같다.
[재앙]
옛날에 절타왕(折吒王)이 울선야성(鬱禪耶城)에 있으면서 부지런히 보시를 닦고, 인욕을 잘 수행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용맹스럽고 힘이 세어서 군대가 강하고 위세가 4해(海)를 조복하며, 다스리는 일을 분명히 하여 백성을 어루만지기가 어미 소가 송아지를 생각하는 것과 같았는데,
후에 울선야성 안에 괴질(怪疾)이 돌아서 죽은 이가 반이 넘었고, 성안의 백성은 매우 드물게 되었다.
비록 주문과 약으로 재앙을 물리치려 했으나, 불에다 기름을 부은 것 같아서 곱이나 더욱 심해졌고, 죽은 이가 너무 많아 길에는 사람의 자취가 없어지게 되었다.
여우ㆍ이리ㆍ삵이 마을에 가득했고, 사람의 집에까지 들어왔으며, 새매와 독수리는 해와 달을 가리도록 많이 떠다니니,
온 성안이 슬피 울고 눈물이 길가에 가득하였으며, 성안에는 시체가 쌓여 묘지(墓地)와 같았다.
이때 절타왕이 나라 안의 백성이 죽는 이가 많음을 보고 근심과 걱정하는 마음은 마치 전쟁터에서 적군에게 포로가 된 것 같았다.
근심하고 초췌하고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분하여서 죽음을 무릅쓰고, 한밤중 조용할 때에 홀로 계책을 꾸미되 뜻을 확실히 세우고 염병의 귀신을 쫓아내려 하여
아가타약(阿伽陀藥)을 두루 몸에 바르고, 주문의 새끼줄을 몸에 두르고, 여의(如意) 보배의 갑옷을 입고, 손에는 날카로운 칼을 잡고, 홀로 걸어서 전각 아래로 내려와 대궐의 문을 벗어나 성안의 네거리에 있는 신사(神社)와 탑묘 앞에 이르렀다.
두루 우물과 다리 밑과 곳곳의 숲속과 저자 안을 보니 여러 귀신이 빛깔과 모양이 같지 않고, 말소리가 같지 않은 것들이 해치는 것[殘害]이 흉악하고, 살해함에 법도가 없었다.
죽은 사람의 시체가 그 앞에 널려 있는데, 해골로 그릇을 삼아 사람의 피를 담고, 손은 뱃속을 뒤지기에 똥과 피로 더러웠으며, 혹은 사람의 창자를 몸에다 감고, 앞을 다투어 죽은 사람을 뜯어 먹느라 다투어 끌고 다녔다.
이러한 악귀들, 이(魑)ㆍ매(魅)ㆍ망(魍)ㆍ양(魎)이 성안에 가득하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