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봉 자
거미
앙증맞은 꽁무니에
명주실이 솔솔 순식간 엮어낸
거미줄이 어부의 그물보다 정교하다
함정을 쳐놓고 숨 고르며 기다리는 그의 오늘의
특별메뉴는 무엇일까
벌 나비 파리 잠자리
보름달만큼 꿈 부풀어있는
저 엉덩이 그러나 한참 뒤
검고 작은 새 한 마리가
난데없이 날아와 한 끼의 밥으로 채간다
제 그물에 함정쳐놓고
남 시선의 함정에는 무방비였던 거미
신기한 동물의 세계를 보면
그들도 먹고사는 데는 끔찍하다
강자와 약자의 운명적 만남에 입맛이 씁쓸하다
하루
새벽 문이 열리면서
어둠은 조용히 눈을 감는다
붉게 떠오르는 햇살은
창틀 사이로 비치며 설깬 잠을 닦아주고
일상에 바쁜 사람들
저마다 얼굴에 피는 웃음꽃도 다르고
삶의 무게도 각각이지만
힘차게 내딛는 발걸음으로
천금 같은 하루의 일터에
희망의 씨를 뿌린다
가을이 익어간다
감나무에 매달린 감과 함께
여기저기 가을이 붉게 익어간다
스산한 바람으로
더더욱 확장되는 가을
추위를 앞당기는 계절의 속도는
아직껏 내 손목을 지키는
고물시계 바늘보다 빠르다
한 계절 무거웠던 푸른 잎들은
새들보다 가벼워진다
익어가는 가을을 배웅하며
한겨울을 훌쩍 넘어서
서둘러 다가올 봄을 기다린다
산삼
고운 빛깔과 향기
맛이 그리운 계절
가지 끝에 매달린 이파리
바람 앞에 애처롭다
절기는 성큼 겨울을 밟고
인간에 명약 산삼도
잎을 떨구고 땅속 깊이 파고들었다
신비의 산삼은 자연에 묻혀
바람에 씨를 날리고
석류알 열매는 산새들이
먹고 나온 씨앗들이 뿌리를 내리고
계절의 바퀴를 수십 년 돌아 사람의 형태로
누에고치
보은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죽어도 누에고치처럼 살아야겠다
선반 위 생솔가지 섶에
한 잎 두 잎 뽕잎 갉아먹고
제 몸 깎아 돌돌 말아
엄지손가락만 한
하얀 눈집 곱게 지어
죄없이 펄펄 끓는 냄비의 연옥을 거처
마침내는 온몸 실실 풀어내
어머니의 물레에 감기는 고운 명주실
그 명주실로 짠 비단
목도리 따뜻한 목을 감싸주고 있는
이 겨울 하늘이 내린
그 으뜸 벌레 누에고치처럼 살아야겠다
카페 게시글
47집(2024)
두타문학 제47집 / 이봉자
궁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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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7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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