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론 상권
백론서(百論序)
석승조(釋僧肇) 지음
『백론(百論)』이란 성인의 마음에 통하는 나루이자 길[津塗]이고 진제(真諦)를 여는 중요한 논서이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 800여년에 출가한 대사(大士)가 있었으니 그 이름이 제바(提婆)이다. 현묘한 마음[玄心]을 뛰어나게 깨닫고 고상한 기개[儁氣]는 높고 밝았으며, 도(道)는 당시(當時)를 비추고 정신[神]은 세상 밖[世表]을 초월했다. 그러므로 삼장(三藏)의 중첩한 관문[重關]을 열고 십이(十二)의 깊은 길[幽路]을 평탄하게 할 수 있어 가이라국[迦夷]에서 마음껏 걷고 법(法)의 성곽과 해자[城塹]가 되었다.
당시에 외도(外道)가 어지럽게 일어나고 이단(異端)이 다투어 일어나며 삿된 변론[邪辯]이 진리를 핍박하여 정도(正道)를 거의 어지럽히게 되었다. 이에 위로는 성인의 가르침[聖教]이 점차 쇠퇴함을 개탄하고 아래로는 뭇 미혹한 이들[群迷]이 방종하고 미혹함[縱惑]을 슬퍼하여 침윤(沈淪)한 이들을 멀리 건지려고 이 논을 지었으니 바름을 지키고[防正]삿됨을 막아[閑邪]종극(宗極)을 크게 밝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바른 교화[正化]가 이것 때문에 융성하고 삿된 도[邪道]가 이것 때문에 사라졌다. 뭇 오묘함[眾妙]을 거느리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논에 백 개의 게송이 있기 때문에 백(百)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치(理致)가 깊고 그윽하여 뭇 서적의 핵심을 거느리고 글의 뜻[文旨]이 아름답고 요약되어 제작(制作)의 아름다움을 다하였다. 그러나 지극한 뜻[至趣]은 그윽하고 간략하여 그 문(門)을 얻은 이가 적다.
바수(婆藪) 개사(開士)는 밝은 지혜가 안으로 융통하고 오묘한 생각이 기특하게 빼어났다. [제바의] 현묘한 자취[玄蹤]에 깊게 계합하여 훈석(訓釋)을 지어, 가라앉고 숨은 뜻을 아름다운 글[徽翰]에 빛나게 하며, 풍미(風味)를 펼쳐 흐르게 하여 후세[來葉]에 입혔다. 문장[文藻]은 환하게 빛나고 중요한 도리[宗塗]는 깨닫기 쉽다.
그 논은 말하되 치우침이 없고 파하되 집착함이 없다. 무심하여 의거함[據]이 없기에 일은 참됨을 잃지 않고 삼가고 기대는 것[寄]이 없기에 이치가 저절로 현묘하게 회통하여 근본으로 돌아가는 도가 이에 드러나게 되었다.
천축 사문 구마라집(鳩摩羅什)은 기량(器量)이 깊고 넓으며 빼어난 정신[俊神]은 멀리 초월하였으며, 연찬하고 우러르기를 여러 해를 하여 점차 헤아릴 수 없게 되었고,항상 이 논을 맛보고 읊조려 마음의 요체로 삼았다.
먼저 친히 번역하였으나 방언(方言)이 아직 융통하지 못하여 생각하고 뜻을 찾는 사람들[思尋]로 하여금 틀린 문장에서 주저하게 하며, 수행 계위를 표방하는 사람들[標位]로 하여금 돌아가 이를 곳[歸致]에서 어긋나게 하였다.
대진(大秦) 사예교위(司隷校尉) 안성후(安成侯) 요숭(姚嵩)은 풍운(風韻)은 맑게 펴지고 충심(沖心)은 간략하고 뛰어나며, 내외(內外)를 널리 섭렵하고 이사(理思)는 겸하여 통달하였다. 어릴 적부터 대도(大道)를 좋아하고 자라서는 더욱 독실하였다. 비록 시무(時務)에 얽매여 있었으나 법언(法言)을 그치지 않고 매번 이 글을 어루만져 개탄한 바가 참으로 많았다. 홍시(弘始) 6년 세차(歲次) 수성(壽星)에 이치를 아는 사문을 모아 구마라집과 함께 정본(正本)을 상고하여 정제하고 반복해서 논변하였다.
논의 뜻을 힘써 보존하여 바탕[質]을 보존하되 조야하지 않게 하고 간략하되 반드시 이치에 부합하게 하니 종치(宗致)가 극진하게 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흠잡을 것이 없게 되었다.
논은 모두 20품이고 품에는 각기 다섯 개의 게송이 있다. 뒤의 10품은 그 사람이 이 땅에 무익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빼버리고 전하지 않았다. 밝고 식견이 있는 군자들이 자세히 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