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果集
왕유의 시 읽기. 1
출생 : 699, 중국 산시 성[山西省] 치 현[祁縣]
사망 : 759
竹里館 .
왕유
獨坐幽篁裏 독좌유황리
홀로,
그윽한 대숲 속에 있으려니,
彈琴復長嘯 탄금부장소
거문고 타고 길게 시를 읊조리게 된다
深林人不知 심림인불지
깊은 숲, 사람이 있는지 알지 못하는 데
明月來相照 명월래상조
달은 어이 알았나, 밝은 얼굴 드러낸다
왕유는 관직에 있으며 서정 시인으로,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서 주로 생활하였다. 그러나 안녹산의 반란 때에 사로잡혀 수모를 당하기도 하였다.
관직생활을 하였지만 몹시 환멸을 느껴 가까운 종남산에 은거하며 여생을 보냈다.
그리고 아내와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그는 덧없음을 느낀 것 같다.
시 ‘죽리관’ 의 내용에도 외로움이 내면에 사무치게 그려져 있다.
미술에도 조예가 있어서 남종화의 시조로 부르기도 한다.
이백·두보(杜甫 : 712~770) 등과 함께 당송 8대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대나무로 둘러쌓인 집에 가끔 별장처럼 가서 지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집의 이름을 ‘죽리관’이라 불렀다. 주위에 친구들이 없이 홀로 지냈으니 대숲 속 집에도 혼자 지내기가 일쑤였으리라. 자연히 외로움이 스며드는 것이리라. 그곳에서 홀로 있으려니 자연히 음악을 즐기고 시를 읊조리기가 빈번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다.
주위에 보고 듣는 사람이 없는 데 홀로 거문고 타고 시를 읊조리는 게 한 두 번은 즐거울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이 일처럼 지속된다면 그 무료함과 외로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거문고 뜯고 시를 읊는 일은 고독을 볼 수 있는 가장 큰 증거일 것이다.
그나마 그를 기쁘게 하는 것은 밝은 달이 대숲 속에 마치 벗처럼 얼굴을 들이미는 것. 얼마나 반가웠으랴. 그러나 달을 벗한다 할지하도 그 고적감은 완전히 딸 칠 수는 없었으리라.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 속에 한 시인의 멋진 포즈를 볼 수 있을 것 같으나 사실은 처절한 고독에 묻혀 사는 한 시인의 외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를 읽으면 달을 만나는 즐거움이나 기쁨 보다는 오히려 쓸쓸함이 더 피부에 와 닿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