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설미증유인연경 상권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이때 세존께서는 목건련(目犍連)에게 말씀하셨다.
[라후라의 출가]
“너는 지금 가비라성(迦毘羅城)에 가서 나의 아버지 정반왕(淨飯王)과 이모 파사파제(波闍波提) 부인과 그리고 곡반왕(斛飯王) 등 세 분의 숙부에게 문안하고 또 라후라(羅睺羅)의 어머니 야수다라(耶輸陀羅)를 위로하고 깨우쳐서 은혜와 애정을 끊고 라후라를 출가케 하여, 사미(沙彌)가 되어 성도(聖道)를 배우도록 하여라.
왜냐하면 모자(母子)의 사랑은 즐겁기가 잠깐인데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면 어미와 자식은 서로 알지도 못하고 아득하고 캄캄한 채 영원히 이별하여 만 가지의 고통을 받으리니, 그때 후회한들 무엇 하겠느냐?
라후라가 도를 얻으면 반드시 어머니를 제도하여 영원히 생(生)ㆍ노(老)ㆍ병(病)ㆍ사(死)의 근본을 끊고 열반에 이르게 할 것이니, 마치 오늘의 나와 같을 것이니라.”
목건련은 분부를 받들고 곧 선정(禪定)에 들어갔는데, 마치 역사(力士)가 팔 하나를 굽혔다 펴는 듯한 짧은 순간에 가비라성 정반왕에게 이르러 여쭈었다.
“세존께서 간절히 물으셨나이다. 기거하심이 경쾌하시며 기력이 평안하시옵니까?
그리고 대부인 파사파제 부인과 세 분의 숙부, 곡반왕들에게도 역시 문안을 여쭈시라 하셨습니다.”
그때 야수다라는 부처님께서 왕에게 사자(使者)를 보내 왔다는 소식을 듣고 곧 시종[靑衣]을 보내어 소식을 살펴보게 하니 시종이 돌아와서 이렇게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사자를 보내시어 라후라 아기를 데려다가 사미를 만들겠다고 하시더이다.”
야수다라는 이 소식을 듣고 곧 라후라를 데리고 높은 다락에 올라가서 감관(監官)에게 명령하여 모든 문들을 걸어 닫고 견고하게 숨게 하였다.
그때 목건련이 태자궁 문 앞에 이르렀지만 들어갈 수도 없고 또 소식을 알아볼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곧 신통력으로써 높은 다락까지 날아올라 야수다라가 앉은 자리 앞에 우뚝 섰다.
야수다라는 목건련이 온 것을 보고 기쁨과 근심이 엇갈리어 어찌할 줄 모르더니, 곧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절하며 문안드렸다.
“먼 길을 지나오시니 얼마나 수고로우셨습니까?”
목건련에게 자리를 권하여 앉게 하고 다시 물었다.
“세존께서는 안녕하시며 중생을 교화하시기에 얼마나 수고하십니까? 그런데 스님[上人]을 보내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목건련이 여쭈었다.
“태자 라후라께서 나이 이미 아홉 살이니, 응당 출가하여 성도(聖道)를 배우게 하셔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자(母子)의 사랑이 잠시 동안은 좋은 듯하지만 하루아침에 목숨이 다하여 3악도(惡道)에 떨어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서 캄캄하고 아득한 가운데 어머니는 아들을 모르고 아들은 어머니를 모르게 되옵니다.
라후라가 도를 얻으면 반드시 어머니를 제도하여 영원히 생ㆍ노ㆍ병ㆍ사를 떠나 열반에 이르게 할 것이니. 지금의 부처님과 같게 되실 것이옵니다.”
야수다라가 목건련에게 대답하였다.
“석가여래께서 태자로 계실 때에 나를 맞아 아내로 삼으시어, 태자를 받들어 섬기기 천신(天神)을 모시듯 하여 한 번의 실수도 없었거늘 부부가 된 지 3년도 못 되어 다섯 가지 욕망을 버리시고 궁성의 담을 날아 넘어 왕전(王田)으로 달아나 버리셨습니다.
부왕께서는 빨리 돌아오시기를 바랐지만 어기고 좇지 않았으며, 차닉(車匿)과 백마(白馬)만을 보내시고 자신은 도를 이루어야 돌아오리라 서원하셨습니다.
사슴의 가죽을 입으시니 마치 미친 사람과 같았고, 산택(山澤)에 숨어서 6년 동안 고행을 쌓아 부처를 이루시고 돌아오셔서는 도무지 가까이하지 않으시니, 옛날의 은혜와 애정을 잊은 것이 길가는 사람보다 더하였습니다.
부모를 떠나서 다른 나라에 기거하시니 우리들 모자는 외로움과 궁색만을 지킬 뿐 삶의 보람은 없었습니다. 오직 죽고 싶기만 하였지만 사람의 목숨이 소중한 것이어서 마침내 스스로가 끊지 못하고 독기와 원한을 품은 채 억지로 생명을 유지하니 비록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었어도 축생(畜生)만도 못하였습니다.
이런 재앙에 다시 재앙이 덮치니, 어찌 이러할 수 있으리까?
이제 다시 사자를 보내시어 나의 아들을 데려다가 그의 권속을 삼겠다고 하시니 어쩌면 이다지 가혹하십니까?
태자께서는 도를 이루시고 스스로 자비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자비라면 응당 중생을 안락하게 해야 할 것이거늘 이제 도리어 사람의 모자를 헤어지도록 하시는군요.
괴로움 가운데 더욱 심한 것은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괴로움만 한 것이 없는데, 이번 일로 미루어 보건대 무슨 자비가 있다 하겠습니까?
목건련이여, 돌아가시거든 세존께 나의 말을 여쭈어 주십시오.”
그때 목건련은 방편과 여러 가지 인연으로 마땅한 이치에 따라 두 번 세 번 거듭 권하고 깨우쳤지만 야수다라는 끝내 허락할 뜻이 없었다. 물러나와 다시 정반왕에게 가서 앞서 일을 자세히 아뢰니,
왕은 이 말을 듣고 곧 파사파제 부인을 불렀다.
왕이 부인에게 말하였다.
“우리의 아들 실달다(悉達多)가 목건련을 보내어 라후라를 데려다가 도를 들어 성스러운 법을 배우게 하려 하는데,
야수다라는 여자인지라 어리석어서 법요(法要)를 알지 못하고, 마음과 뜻이 굳은 까닭에 사랑에 얽매어 놓아줄 생각이 없는 것 같으니
그대는 그에게 가서 거듭 타일러 그의 마음이 열리도록 하시오.”
그때 대부인이 5백 명의 시종을 거느리고 야수다라가 거처하는 궁전에 이르러 여러 가지 방편으로 적당히 타이르기를 두세 번 거듭하였지만
야수다라는 여전히 듣지 않고 부인께 여쭈었다.
“제가 집에 있을 때에 여덟 나라의 왕들이 다투어서 저를 맞아가려 했건만 부모님께서 모두 허락하시지 않은 것은 석가 태자의 재주가 여러 사람보다 뛰어났던 까닭이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서는 저의 배필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태자가 그때부터 세상에 있지 않고 출가하여 수도할 것을 생각하셨다면 무슨 까닭에 간절히 저를 구했습니까?
대체로 사람들이 부인을 맞는 것은 바로 사랑과 영화를 위한 것이옵니다. 모여서 즐거워하고 만세에 대를 이어가면서 자손이 끊이지 않게 하여 종실(宗室)의 혈통을 잇는 것은 세상의 바른 예절입니다.
태자는 이미 갔거니와 다시 라후라까지 출가시켜 도를 배우게 하여 영원히 나라의 후사(後嗣)를 끊으면 무슨 이로운 것이 있겠나이까?”
황후는 그때 이 말을 듣고, 잠잠히 앉아 할 말이 없었다.
그때 세존께서 변화한 사람을 보내시어 공중에서 말하게 하셨다.
“야수다라여, 그대는 지난 세상에 맹세한 일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구나.
석가여래는 그때 보살도(菩薩道)를 위하여 은전 5백 냥으로써 그대에게 다섯 송이의 연꽃을 사서 정광불(定光佛)에게 바쳤더니, 그때 그대는 나에게 세세생생(世世生生)에 함께 부부가 되기를 간절히 구하였소.
나는 듣지 않고 그대에게 말하기를
‘나는 보살이 되어 여러 겁 동안 원력을 수행하고, 일체를 보시하여 남의 뜻에 어긋나지 않았노라. 그대의 소원이 그러할진댄 나의 아내로 맞겠노라’ 하였더니,
그대는 선 채로 서원을 말하기를
‘세세생생 나는 곳마다 나라와 성과 처자와 나의 몸까지 그대가 마음대로 보시하더라도 맹세코 뉘우치지 않겠다’고 하더니
이제 무슨 까닭으로 라후라를 아껴 집을 떠나 도를 배우게 하지 않으려 하는가?”
야수다라가 이 말을 듣고 지난 세상이 업과 인연을 환하게 깨치니, 지난 일이 어제 본 것처럼 분명하여 아들을 사랑하는 애정이 저절로 사라졌다.
다시 목건련을 불러서 참회하고 라후라의 손을 잡아 목건련에게 넘겨주며 아들과 이별하는 눈물을 흘리었다.
그때 라후라는 어머니가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어머니에게 하직하는 말을 여쭈었다.
“어머니는 슬퍼하시지 마옵소서. 라후라는 지금 가서 세존께 문안 인사만 드리고 바로 돌아와서 어머님을 뵐 것입니다.”
그때 정반왕이 야수다라를 위로하고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곧 나라 안의 호화로운 족성(族姓)을 소집하고 말하였다.
“금륜 왕자(金輪王子)는 지금 떠나 사위국으로 가서 부처님에게 도를 배우려 하오.
경들도 모두 아들 하나씩을 보내서 나의 손자를 따르게 하는 것이 어떻겠소?”
모두 즐겁게 대왕의 명령을 받드니 잠깐 동안에 50명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모두 라후라를 따라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러 머리를 숙여 절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아난을 시켜 라후라와 그들 50명의 머리를 깎으니 모든 공자(公子)ㆍ왕자(王子)들이 사문[出家人]이 되었다. 사리불에게 명령하여 화상(和尙)을 삼고 대목건련으로 아사리(阿闍梨)를 삼아 10계를 주어 사미(沙彌)가 되게 하였다.
라후라는 어린 까닭에 게으름을 좋아하고 장난에 팔려서 법문 듣기를 즐기지 않았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여러 번 타이르셨지만 그래도 듣지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때 사위국의 바사닉왕(波斯匿王)이 부처님의 아들 라후라가 출가하여 사미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대신(大臣)ㆍ부인ㆍ태자ㆍ후궁ㆍ채녀(婇女)ㆍ바라문(婆羅門)ㆍ거사 등에게 공경스럽게 둘러싸여 이른 아침에 부처님의 처소에 와서 절하고 문안을 드린 다음 부처님의 아들 라후라 사미를 찾아보고 각각 한 쪽에 앉았다.
부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시니, 왕과 여러 신하들은 자유롭게 살면서 안락을 익힌 까닭에 앉아서 오래 견디지 못하고 부처님의 설법을 듣다가 먼저 인사를 드리고 물러가리라 생각하였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왕이 비로소 깨달음을 얻게 되었는데도 신근(信根)이 아직 세워지지 못한 것을 아시고 왕과 여러 신하를 깨우쳐 이익이 되게 하리라 생각하시어, 곧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라후라 사미와 그 권속들을 불러 모두 모아 여래의 설법을 듣게 하여라.”
아난이 가서 부르니, 잠시 동안에 모두 모여 왔다.
부처님께서는 왕에게 말씀하셨다.
“잠깐만 기다려서 나의 설법을 들으시오.”
왕이 합장[叉手]하고 여쭈었다.
“저의 이 몸이 즐거움만 익힌 지 오래 되었는지라 앉아서 견디지 못하겠사오니, 바라옵건대 부처님께서는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괴로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전생에 복을 심어서 이제 임금이 되어 항상 높은 궁전에 살면서 다섯 가지 욕심[五欲]을 마음대로 하며, 출입할 때에는 앞뒤로 그대를 모셔서 발이 땅에 닿지 않게 하거늘 어찌 괴롭다고 하겠습니까?
삼계(三界)의 괴로움에는 지옥ㆍ축생ㆍ아귀의 괴로움만 한 것이 없으니, 이러한 괴로움들은 앞서 이미 말하였습니다.”
[라후라에게 설법하시다]
부처님께서 라후라에게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세상은 만나기 어렵고, 법은 듣기가 어려우며, 사람의 목숨은 보전하기 어렵고, 도를 얻기도 어려우니라.
네가 지금 사람의 몸을 얻고, 부처의 세상을 만났거늘 어찌하여 게으름을 피우면서 법을 듣지 않느냐?”
라후라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불법은 정묘한데 저의 뜻은 거칠기만 하니 어떻게 세존의 법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전에도 자주 들었지만 이미 잊어버렸으니, 정신만 피로하게 할 뿐 하나도 얻는 것이 없는가 하옵니다.
지금 나이가 어릴 때만이라도 마음대로 하게 하여 주시면, 나이가 많아진 뒤에는 저절로 나아져서 부처님의 법을 잘 들을 수 있을까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라후라에게 말씀하셨다.
“만물은 무상하고 몸뚱이도 보전키 어려운 것이거늘 네가 나이 많도록 너의 생명을 보장하겠느냐?”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소자 라후라는 할 수 없더라도 부처님께서 어찌 아들의 목숨을 보장해 주시지 않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라후라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내 스스로를 보장하지 못하거늘 어찌 너까지를 보장하겠느냐?”
라후라가 여쭈었다.
“헛되고 수고롭게 법을 듣고도 도를 얻지 못했으니, 법을 듣는 공덕이 어떻게 사람에게 이익을 준다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라후라에게 말씀하셨다.
“법문을 듣는 공덕이 비록 금생(今生)에 도를 얻지는 못하더라도 다섯 갈래[五道]에 몸을 받을 때는 많은 이익이 있나니 내가 전에 말한 것과 같으니라.
반야(般若) 지혜는 감로(甘露)라 이름하고 양약(良藥)이라 부르며, 다리[橋梁]라 말하며, 큰 배[船]라 일컫나니, 너는 이미 듣지 않았느냐?”
라후라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