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태자서응본기경 상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삶]
“내가 스스로 숙명(宿命:과거세의 삶)을 기억해 보니 수없이 많은 겁(劫) 동안 본래 범부(凡夫)였었다. 처음 부처가 되는 도를 구한 이래로 정신(精神)이 몸을 받아 5도(道:地獄ㆍ餓鬼ㆍ修羅ㆍ人間)를 두루 돌아다녔었다.
한 몸 죽어 무너지면 다시 한 몸을 받아 나고 이렇게 죽음이 한량없었으니, 비유하면 천하의 풀과 나무를 다 베어 산가지[籌]를 만들어서 내 과거 세상의 몸을 계산한다 해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것과 같았느니라.
대체로 하늘과 땅이 처음 시작되어 마지막까지 다한 것을 1겁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와 같이 천지가 생성(生成)되었다가 무너지는 것이 얼마나 거듭되었는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느니라.
왜냐 하면 유독 나만이 그 근원을 돌이켜 세간 중생들에게 탐욕의 마음이 오래도록 흘러들고 그들이 애욕(愛慾)의 바다에 빠진 것을 불쌍히 여겼기 때문에 스스로 힘써 노력할 수 있었고 특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러한 까닭에 태어난 세상마다 수고롭고 괴로워도 수고롭다 생각하지 아니하였고 마음을 비우고 고요함을 즐거워하였으며, 한 일도 없었고 탐욕도 없었다.
자기의 재물을 버려 보시하였고 지극한 정성으로 계율을 지켰으며,
겸손하고 몸을 낮추어 인욕(忍辱)하였고 용맹스럽게 정진(精進)하였으며,
일심으로 은미함을 생각하였고 거룩한 지혜를 배웠다.
어진 마음으로 천하의 중생을 살렸고,
고통과 재앙이 있는 중생을 불쌍하게 여겼으며,
근심과 슬픔이 있는 이를 위로하고 도왔으며,
중생들을 양육(養育)하였고 괴로움에 처한 사람을 구제해 주었으며,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겼고 진인(眞人)을 각별하게 존경하는 등 수없이 쌓은 공적을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느니라.
[부처님의 전생, 유동 보살]
예전 어느 때에 정광(定光)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다.
그때에 훌륭한 임금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제승(制勝)이었다. 그는 발마대국(鉢摩大國)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그 나라 백성들에겐 오래 살 수 있는 약이 많았으며 천하도 태평스러웠다.
그때 나는 보살(菩薩)이었고 이름은 유동(儒童)이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슬기로웠으며, 뜻이 크고 포용력이 넓었으며, 산천[山澤]에 은거(隱居)하면서 현묘함을 지키고 선(禪)을 닦았다.
나는 그 세상에 부처님께서 계시다는 말을 듣고는 마음속으로 혼자 기뻐하면서 사슴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걸어서 그 나라에 들어가려고 했다.
길을 가는 도중에 한 조그만 마을이 있었는데, 그 마을에는 도사(道士:外道) 5백 명이 살고 있었다.
보살이 그곳을 지나가다가 밤새도록 도를 논하고 그 이치를 설하였더니, 그 도사의 무리들은 모두 기뻐하였다. 이별할 때가 임박해지자 5백 사람은 각각 은전(銀錢) 하나씩을 주면서 전송하였다. 보살은 그 돈을 받아 가지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보살이 백성들을 보니 흔연히 바쁜 모습으로 도로를 평평하게 만들고 물을 뿌리고 쓸며 향을 피우고 하기에 길가는 사람에게 나아가 물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합니까?’
행인(行人)이 대답하였다.
‘오늘 부처님께서 성안으로 들어오신다기에 그럽니다.’
보살은 크게 기뻐하면서 스스로 생각하였다.
‘매우 통쾌하구나. 이제야 부처님을 뵐 수 있게 되었구나. 마땅히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해야겠다.’
조금 있다가 왕가(王家)의 딸이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 이름은 구이(瞿夷)였다. 그녀는 물병을 옆구리에 끼고 일곱 송이의 푸른 연꽃[靑蓮華]을 가지고 있었다.
보살이 따라가며 불러서 말하였다.
‘누이여, 잠깐만 멈추시오. 은전 1백 매(枚)를 줄 터이니, 그 손에 가지고 있는 꽃을 나에게 파십시오.’
그녀가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 장차 성안에 들어오시면 왕께서 목욕 재계(齋戒)하고 이 꽃을 부처님께 올려야 하니 팔 수 없습니다.’
또 한 번 간청하였다.
‘누이여, 다시 한 번 말하겠는데 그 꽃을 꼭 구하고 싶습니다. 2백 아니면 3백에 파는 것도 허락할 수 없습니까?’
곧 주머니를 뒤져서 5백의 은전을 다 꺼내 주었다.
구이는
〈이 꽃의 값은 아무리 높이 책정해도 몇 전에 불과한데 5백에 팔라고 하다니……〉라고 생각하다가
그 은보(銀寶)를 탐하여 다섯 송이 꽃을 주고 자기에게는 두 송이만 남겨 놓았다.
그와 이별하고 돌아오면서 마음속에 의혹이 생겼다.
〈그는 어떤 도사(道士)이길래 사슴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어 형체(形體)만을 겨우 가렸으면서도 은전의 보배를 아끼지 않고 다섯 송이 꽃을 얻고는 그렇게 기뻐할까? 아마도 범상치 않은 사람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는 곧 뒤쫓아가며 그 남자를 불러 말하였다.
‘이 꽃을 구하려고 한 이유를 진실로 나에게 말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대에게서 그 꽃을 빼앗을 것입니다.’
보살이 돌아오며 말하였다.
‘꽃을 살 때 1백 전에서부터 시작해서 5백 전에 이르기까지 서로 흥정해서 결정한 것인데 어떻게 빼앗아 가겠다고 합니까?’
그녀가 말하였다.
‘우리 왕가 사람의 힘으로 그대의 꽃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보살이 특연(慝然)히 말하였다.
‘부처님께 이 꽃을 올리고 원하는 바를 구하려고 할 뿐입니다.’
구이가 말하였다.
‘좋습니다. 바라건대 내가 후생(後生)에 늘 그대의 아내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모습이 예쁘든 추하든 간에 서로 이별하지 않을 것이니, 반드시 마음속에 간직하였다가 부처님께 말씀해 주십시오.
지금 저는 여자라서 나약하기 때문에 부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두 송이 꽃까지 모두 맡기오니 부처님께 드리십시오.’
보살은 허락하였다.
조금 있다가 부처님께서 도착하시자
국왕과 신하와 백성들이 모두 맞이하여 배알하고 각각 이름 있는 꽃을 뿌렸으나 그 꽃들은 모두 땅에 떨어졌다.
보살이 부처님을 뵈옵고 다섯 송이 꽃을 뿌리자 모두 공중에 머물더니 부처님 위에 이르러서는 마치 뿌리가 생겨나는 듯하면서 땅에 떨어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뒤에 두 송이 꽃을 뿌렸는데 그 또한 부처님의 양쪽 어깨 곁에 머물러 있었다.
부처님께서 지극한 뜻을 아시고 보살을 칭찬하며 말씀하셨다.
‘네가 수없이 많은 겁을 지내는 동안 배운 것이 청정하였고 마음을 항복 받아 목숨을 버렸으며, 욕심을 버리고 공(空)을 지켰고 생겨나지도 않았고 소멸되지도 않았으며, 치우침 없는 자비로 덕을 쌓고 서원을 행하였으므로 지금 이런 것을 얻었느니라.’
이로 인하여 수기를 주며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부터 이 뒤로 91겁이 되는 현겁(賢劫)이 되면 마땅히 부처가 되리니, 그 명호는 석가문(釋迦文)이라 하리라.’
[천축(天竺)의 말로 석가(釋迦)는 능(能)이고, 문(文)은 유(儒))이니, 뜻으로 이름하면 능유(能儒)가 된다.]
보살이 수기의 말씀을 듣고 나서 의심이 풀리고 소망이 그쳤으며, 확연히 아무 생각도 없이 고요히 선정에 들어가 문득 청정(淸靜)하여 생겨남이 없는 법인[不起法忍:無生法忍]을 얻고는 즉시 몸을 가볍게 솟구쳐 허공에 올라가 땅에서 일곱 길쯤 떨어진 채 오르락내리락하더니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의 발에 예를 올렸다.
그러다가 땅에 습기가 있어 질척거림을 보고는 곧바로 가죽옷을 벗어 땅에 깔았지만 진흙을 덮기에는 부족하였으므로 다시 머리를 풀어 땅에 펴고는 부처님으로 하여금 그 위를 밝고 지나가시게 하였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다시 칭찬하시며 말씀하셨다.
‘너는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여 뒤에 부처가 되고 나면 마땅히 5탁(濁)의 세계에서 모든 하늘과 사람들을 제도하되 어렵지 않음이 틀림없이 나와 같을 것이니라.’
보살이 정광부처님을 받들어 섬기고 진 땅에 꿇어앉아 말씀드렸다.
‘계율을 받들어 행하고 법을 잘 보호하겠습니다.’
보살이 목숨을 마치자 즉시 제일천상(第一天上)에 태어나서 사천왕(四天王)이 되었으며,
그 하늘의 수명이 다하자 인간 세계에 내려와 태어나서 전륜성왕(轉輪聖王)인 비행황제(飛行皇帝)가 되니, 7보(寶)가 저절로 이르렀다.
그 7보는 첫째 금륜보(金輪寶)요, 둘째 신주보(神珠寶)이며, 셋째 감마보(紺馬寶) 주모갈(朱髦)이요, 넷째 백상보(白象寶) 주모미(朱髦尾)이며, 다섯째 옥녀보(玉女寶)요, 여섯째 현감보(賢鑒寶)이며, 일곱째 성도보(聖導寶)가 그것이다.
8만 4천 살이 지나 수명을 마치자 곧바로 위로 올라가서 제2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나 천제석(天帝釋)이 되었다가 목숨이 다하자 또 제7 범천(梵天)에 올라가 범천왕(梵天王)이 되었다.
이와 같이 올라가서는 천제(天帝)가 되고, 내려와서는 성주(聖主)가 되기를 각각 서른여섯 번을 반복하여 한 바퀴 돌고 나면 다시 시작하고
이렇게 변화하여 때를 따라 나타나곤 하였는데, 때로는 성제(聖帝)가 되기도 하고, 혹은 유림(儒林)의 종주가 되기도 하였으며, 국사(國師)와 도사(道士)가 되는 등 곳곳마다 화현한 것을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느니라.
보살은 91겁 동안 도덕(道德)을 닦고 부처님의 뜻을 배워 십지행(十地行)을 통하였고, 일생보처(一生補處)에 있으면서 뒤에 제4 도술천(兜術天)에 태어나서 모든 천인의 스승이 되어서는 공을 이룩하고 뜻을 성취하였으며, 신비한 지혜가 한량없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