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야바라밀다경 제578권
10. 반야이취분서(般若理趣分序)
반야이취분(般若理趣分)은, 대개 모든 모임[諸會]의 가르침[旨歸]을 규명하고, 쌓인 경전[積篇]의 계통[宗緖]을 꿰뚫으니, 불법의 말씀[詞筌]을 엿보아 권속을 일으키게 하고, 가르침의 형상[意象]을 밝혀 구체적 언설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순식간에 덕보(德寶)가 모이면, 금강(金剛)의 지혜가 지극하게 되는 것이요, 환하게 관조(觀照)가 밝혀지면, 원경(圓鏡)56)의 지혜도 존경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위로는 천궁(天宮)에 모여, 자재(自在)57)함을 마음의 표식[心表]으로 삼는 것이요, 옆에서는 보전(寶殿 : 부처를 모시는 건물)을 열고, 마니(摩尼)58)에 의지하여 임시방편의 언설[說摽]을 일으키는 것이다.
따라서 반야이취분은 반야(般若)의 빼어난 규범[勝規]을 밝힌 것이요, 이에 여러 수행의 근원이 되는 창고[淵府]이니, 이 때문에 대지(大地)를 마음껏 달리고, 상승(上乘 : 대승)에 올라탈 수 있는 것이다.
이미 하나[一]를 얻음으로 불법의 진리[眞]를 본받았고, 또 만 가지 가르침을 베풀어 세속을 교화하였으니, 수행과 계위[行位]가 둘 다 쌓여서, 산과 같은 덕이 우뚝 솟아 아름다운 언덕이 된 것이요, 말씀과 뜻[句義]이 모두 온전하여서, 바다와 같은 가르침를 받아들이고 그 주변을 맑게 한 것이다. 참된 정기(淨器)를 관장하여 넓은 대륜(大輪)에 들어가니, 본성의 자국[性印]이 차곡차곡 찍혀 문채[文]를 이루고, 지혜의 덮개[智冠]가 우뚝하게 덮여져서 품성[質]도 월등히 좋아진다.
그런 후에야 관정위(灌頂位)에 즉하고, 총지문(摠持門)이 열리게 된다. 그럼으로써 번뇌가 사라진 고요한 마음[寂滅心]으로 평등성(平等性)에 머무르게 되고, 희론(戲論)을 제거하여 강설할 것이 없게 하며, 망령된 생각[想思]을 없애서 생각할 것이 없게 되니, 충분히 투기와 분노도 한 마음[共情]이 되고, 사랑하고 원망하는 것도 같은 것[等觀]이 되는 것이다.
이름과 문자[名字]는 임시로 빌려온 것이나, 법계(法界)의 지극히 깊은 가르침과 같은 것이요, 집착과 번뇌[障漏]를 아직 다 없애지는 못했으나, 보리(菩提)의 아득한 가르침과 크게 다르지 않는 것이다.
신실하도다. 마음에 가득하고 생각이 멀리 가리킨 것이여, 뜻[義]이 선명하고 문장[詞]이 분명한 것이여. 반야이취분의 이치[理]를 말하면, 이치는 환중(環中 : 우주변화의 원리)에 깊이 담겨있고, 그 뜻[趣]을 언급하면, 그 뜻은 온 세상[垓表]에 텅빈 듯 어리어 있다.
비록 일축(一軸)의 단일한 번역[單譯]일지라도, 모든 분[諸分]을 갖추었으니, 만약 이 가르침에 머무르지 않고 이 가르침을 잇지 않으며, 이 글을 음미하지 않고 읊지 않는다면, 어찌 멀리 있는 열반으로 인도할 나루터[遙津]를 가리킬 수 있으며, 비밀스럽게 감추어진 지혜[密藏]를 찾아 의지할 수 있겠는가?
56)
원경(圓鏡) : 원만한 거울이란 말로, 온 세상에 꽉 채워져 온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란 뜻이다.
57)
자재(自在) : 일상의 삶 그대로가 부처님의 도리에 합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아가고 물러감에 아무런 장애가 없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걸리고 막힘이 없이 통달한 것이다.
58)
마니(摩尼) : 여의주(如意珠), 또는 보주(寶珠)를 말한다. 이 구슬은 용왕의 두뇌 속에서 나온 것이라 하며, 사람이 이 보배를 가지면 유독(有毒)한 것이 해하지 못하고, 불 속에 들어가도 불에 타지 않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