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야바라밀다경 제576권
8. 나가실리분서(那伽室利分序)
서명사 사문 현측 지음
실려있기를, 오직 청정한 규범[淸規]38)은 겉으로 드러난 생활을 깨끗하게 씻어주어, 이에 금령(襟靈 : 마음과 영혼)에까지 빛이 비추게 하고, 신령한 이치[神理]는 내면의 숨겨진 마음을 강건하게 만들어, 순식간에 사업(事業)발휘시킨다고 하였으니, 만약 모든 동(動)과 적(寂)의 올바름을 제대로 묻고 따지지 않는다면, 장차 따르고 받아들임에 잘못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묘상(妙祥)39)은 사위성(舍衛)40)에서 가르침을 묻고, 용상(龍祥)41)은 탁발[分衛]42)의 항목을 묻게 되어, 발을 올리거나 내리는 것을 의도하지 않고도 내딛고, 손을 굽히거나 펴려고 하지 않고도 내놓게 되었으며, 생각하되 생각하지 않음으로 사유(思惟)하고, 행하되 행하지 않음으로 행하게 된 것이니, 먹을 것도 허깨비 음식[幻食]으로 보고 오히려 매달려있는 박[懸匏]과 같이 여기며, 의지하는 것이 없는 것으로 의지하여, 고요히 있는 깨끗한 우물[冽井]43)과 같게 여긴 것이다.
그사이에 관법[觀]은 자유롭게 되어 방편[術]이 공(空)임을 깨닫고, 마음[襟]도 깨끗하게 되어 선정[定]도 바다처럼 넓어지니, 생령(生靈)44)을 품어 물의 본성으로 만들고, 공덕(功德)을 비워 보배로운 곳간으로 만들며, 여섯 가지 진동[六動]45)도 평안하게 여겨 흔들리지 않게 되고, 세 가지 수레[三乘]46)를 타고 달려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래서 주재함과 주재하지 않음이 없이, 심왕(心王)47)을 물리쳐 이로움을 보이고, 친함과 친하지 않음이 없이 좋은 벗들이 많아져 멀리서부터 모이는 것이다. 이는 근사녀[近事]가 바리때를 잡을 때, 선현의 팔뚝[脩臂]이 존재하지 않음을 보고 놀라게 하고, 부처님[應供]께 마음을 합하자, 가슴을 두드리던 근심이 이미 사라지게 한 것이다.
비유컨대 신기루의 누대[蜃樓]48)가 빼어난 경치이나, 기운이 쌓여 이루어진 것임을 알아 오르지 않는 것이요, 거울에 비친 봉황[鸞鏡]49)이 아름다운 모습이나, 그 모습이 오직 공(空)임을 깨달아 더 이상 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까운 것에서부터 먼 것을 비추고, 참된 실재로 인해 세속의 삶을 세우게 되어, 위태한 인생은 이슬이 맺힌 것과 같이 위태한 것임을 알고, 허깨비인 몸[幻質]은 거품이 떠 있는 것 같이 덧없음을 알게 되니, 번개가 순식간에 푸르고 붉은 빛을 번쩍이는 것과 같고, 구름이 하늘에서 수레 덮개처럼 비추는 것과 같다.
문장은 간략하나 이치는 풍성하며, 옛날에 감춰져 있던 것을 여기에서 전하는 것이니, 비록 하나의 축(軸)이고 단일한 번역[單譯]일지라도, 세 번만 반복하여 보아도 진실로 깊이 음미할 것이 많을 것이다.
38)
청규(淸規) : 교단의 기구나 일상생활에 대해 규정한 것으로, 청정대중의 규칙이라는 뜻이다.
39)
묘상(妙祥) : 묘길상(妙吉祥)ㆍ묘덕(妙德)으로도 불리는 문수보살이다. 석가모니불을 왼쪽에서 보좌하는 보살로 부처의 지혜를 상징한다.
40)
사위(舍衛) : 중인도, 교살라국(憍薩羅國)의 도성으로, 석가가 살았을 때는 바사의왕ㆍ비유리왕이 살았고, 성 남쪽에는 기원정사가 있었다. 석가모니가 25년간 설법교화(說法敎化)하였다는 곳이다.
41)
용상(龍祥) : 나가실리(那伽室利) 보살을 말한다. 용길상(龍吉祥)이라고도 한다.
42)
분위(分衛) : 수행자가 남의 집 문 앞에 가서 옷과 밥을 얻는 일을 말한다.
43)
열정(冽井) :『역경(易經)』정괘(井卦)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구오는 깨끗하고 차가운 샘물이니 먹을 만하도다(九五 井冽寒泉食)” 여기서는 이 내용을 ‘깨끗하고 시원한 물을 간직한 우물은 평소에는 있는 것도 잘 느끼지 못하지만, 사람들이 물을 필요로 할 때는 언제든지 먹을 물을 제공한다’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44)
생령(生靈) :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말한다.
45)
육동(六動) : 세상에 상서로운 일이 있을 때 생기는 여섯 종류의 진동을 말한다.
46)
삼승(三乘) : 부처가 중생의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설법한 세 가지 가르침으로, 첫째 성문승(聲聞乘, 성문을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부처의 가르침), 둘째 연각승(緣覺乘, 연기의 이치를 주시하여 깨달은 연각에 대한 부처의 가르침), 셋째 보살승(菩薩乘,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수행으로 미래에 성불할 보살을 위한 부처의 가르침)이다.
47)
심왕(心王) : 대상의 전체를 주체적으로 인식하는 마음 작용으로, 육식(六識) 또는 팔식(八識)으로 분류한다.
48)
신루(蜃樓) : 신(蜃)은 대합(大蛤)을 말하는데, 중국의 전설에 따르면, 대합이 토해 내는 기운이 누대(樓臺)나 성곽의 형상처럼 보인다고 해서 신기루라고 한다.
49)
난경(鸞鏡) : 《태평어람(太平御覽)》에 보면, “옛날 계빈국왕(罽賓國王)이 난조 한 마리를 얻고는 매우 사랑하였으나 3년 동안이나 울지 않았다. 어느 날 그 새에게 거울을 보여 주자 제 형체를 보고는 매우 슬피 울다가 끝내 죽고 말았다.”는 내용이 있다. 난조(鸞鳥)는 봉황새의 일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