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헤나우에 석양이 저물 때 Abendgang auf der Reichenau
마르틴 하이데거 (1889~1976, 독일 철학자·『숲길_무엇을 위한 시인인가?』의 저자)
은빛 등대불이 저 멀리 어스름한 둑길 쪽
호수로 흘러나가고,
나른한 여름 저녁 이슬 맺힌 정원에는
수줍어 구애하듯 밤이 내린다.
달빛 비치는 산마루 사이엔
오래된 옥탑 지붕 위에서
마지막으로 우짖던 새소리 걸려 있다.
밝은 여름날이 내게서 이룬 것은
내겐 결실 맺기 힘든 것,
그것은 영겁의 세월에서 오는
황홀한 운송이기에,
아주 소박한
잿빛 황무지에서 쉬고 있노라. (신상희 역)
[단상] 아름다운 풍경과 내면의 시다. 내면적인 사람이어야 풍경을 보고 풍경의있음을 본다. 남부 독일 콘스탄츠 호에 있는 섬 라이헤나우에 저녁놀이 내려 앉는다. 하루 중 가장 깊고 아름다운 시간이 일몰이라면,‘라오콘 군상’에서 보듯이 가장 아름다운 인간은 고요한 존재이며 참된 아름다움은 다른 고요다. 사막의 은수자隱修者 에바그리오 폰시코는 모든 것과 결별했지만 모든 것과 결부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예술적 산문에는 단절과 이음의 보다 승화된 국면이 있다. 고요와 침묵 가운데 여름밤은 깊어가고, "어스름한 둑길 쪽/ 호수로 흘러나가"는 등대의 불빛은 억새처럼 은은하기만 하다. 그것은 귀향자에게 주어지는 은총이자, 대지에 머무르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존재의 표지다. 두레박처럼 밤이 내리고 달빛이 뜨락을 비출 때 저 멀리 산마루가 바라다 보이는오래된 옥탑 지붕 위엔 마지막 새소리가 종鐘과도 같이 걸려 있다. 그것은 사이-존재, 고요한 파문이다. 대지는 시간들보다 오래되고 신들보다 위에 있다는 말씀. 그것은 시원의 시원, 유래의 유래. (김상환)
*깊은 겨울밤 오두막 산장을 내리치는 사나운 폭설이 맹위를 떨치면서 모든 것을 뒤덮고 감춰버릴 때, 바로 그때 철학의 지고한 시간은 피어오른다.
(하이데거 산문, 『사유의 경험으로부터』)
첫댓글 "내면적인 사람이어야 풍경을 보고 풍경의 있음을 본다." 멋진 말이군요. 풍경은 밖이기도 안이기도 하군요. 시는 깊이와 높이, 그리고 너비의 확장이죠. 모든 풍경은 시로 태어날 때 영원한 생명을 얻죠. 시는 파동이기도 입자이기도 하죠. 정말이지 채우 김상환 시인님의 글은 아름다운 사색입니다.
아름다운 시와 풍경과 사유입니다.
김상환 시인님! 시와 사유가 또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