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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 례
_ 동서트레일 32구간
_ 쌍천 (雙川)
_ 금대마을
_ 속리산 둘레길
_ 속리산둘레길 8구간 (연풍선비길)
_ 미선나무 자생지, 괴산
_ 대학찰옥수수 생산지
_ 일가정(一可亭)
_ 연풍항교(延豊鄕校)
_ 연풍현과 김홍도
_ 천주교 연풍성지
_ 수옥폭포(漱玉瀑布)와
마애이불병좌상(磨崖二佛並坐상)
_ 조령산휴양림
_ 오가리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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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서트레일 32구간
괴산 연풍지역의 구간으로
쌍곡삼거리에서 연풍초등학교까지로
구간거리는 17.3km이다.
2026년 8월 현재 미개통구간이지만
괴산군에서 2025년 11월에
기본조성을 마친 상태이다
_ 구간 지도
먼저 구간전체에 대한 지도이다.
괴산군에서 관련구간의 조성을 위하여
만든 노선도이다.
아래의 사진은
괴산군이 동 구간을 조성하며
구간을 쪼개어 그린 세부 설계지도이다.
32구간6에서 32구간1까지
서에서 동으로 진행하는 지도이고
마지막 구간은 33구간의 일부이며
괴산군이 조성을 담당한 구간이다.
* 쌍천 (雙川)
동서트레일 32구간은
대부분의 구간이 쌍천을 따라 걷는다.
쌍천은
연풍면소재지의 북쪽하천인 원풍천과
남쪽하천인 삼풍천(일명 개지천)이
합쳐져 흐르는 하천이다.
원풍천은
충청북도 괴산군의 연풍면과
문경시 문경읍 경계에서 발원하여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행촌리에 이르며
삼풍천(일명 개지천)은
충북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
백화산에서 발원하여 행촌리에 이른다.
쌍천은 연풍면에서 상류가 되는
두 하천이 만나 연풍면을 흐르다
장연면 남쪽을 지나고
칠성면 쌍곡리에서 남쪽에서 흘러온
행목동천과 합류하며 그 뒤
칠성면 도정리에서 달천에 합류한다.
지명은
원풍천과 삼풍천 2개의 하천이
합쳐진 데서 유래한 것이며,
연풍면 일대를 흐르는 하천이므로
'연풍천'이라고도 부른다.
* 금대마을
_ 개관
뒤로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서고
앞으로는 쌍천(연풍천)과 넓은 들판이
펼쳐진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마을이다.
산과 물, 들판이 어우러진 이 풍경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아가기 좋은 환경이었으며,
마을 어귀에는 '금대마을자랑비'가
세워져 있다.
_ 금대마을 이름의 유래
'금대(琴臺)'는
거문고 금(琴) 자와 대(臺) 자를 쓰는데,
예전 마을 주변에 칡넝쿨이 무성하여
서로 얽힌 모습이 마치 거문고 줄을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이후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 때
칡이 많았던 갈길리(葛吉里)의 '갈(葛)'
자와 금대리(琴臺里)의 '금(琴)' 자를
따서 오늘날의 갈금리(葛琴里)라는
행정명이 만들어졌다.
_ 금대마을 소궁뎅이 전설
금대마을에는 풍요를 기원하는 흥미로운
이야기인 '소궁뎅이 전설'도 전해 내려온다.
옛날 금대천에서 놀던 검은 송아지
한 마리가 어느 날 황금빛 송아지로 변해
사라졌고, 그 뒤 냇가에는 송아지를
꼭 닮은 바위가 생겼다고 한다.
이 바위는 머리는 윗마을을,
엉덩이는 금대마을 쪽을 향하고 있었는데,
주민들은 소의 엉덩이가 마을을 향하고
있으니 좋은 거름과 복이 마을로 들어와
해마다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 소궁뎅이 전설 구체적 이야기
충청북도 괴산면 연풍면에 사이좋게
살아가는 마을이 두 개 있었습니다.
두 마을은 금대천이라는 냇가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윗마을은 흉년이 들어 먹을것이 없는도
아랫마을사람들은 풍요롭게 지냈는데
이는 송아지덕분이라고들 했습니다.
전해지는 전설은 이러합니다.
어느 날 검은 송아지가 윗마을에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새카만 송아지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아니. 무슨 송아지가 숯처럼 새카맣지?”
윗마을 사람들은 낯선 송아지를
내쫒아 버렸습니다.
혹시 송아지 때문에 불길한 일이
생길까봐 걱정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윗마을 사람들에게 내쫓긴 송아지는
어슬렁어슬렁 아랫마을로 갔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까만 털을 가진
송아지가 있다니!”
아랫마을 사람들은 낯선 송아지를
보았지만 내쫒지 않았습니다.
대신 먹을 것을 나눠주고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짚도 넉넉히 깔아주었습니다.
검은 송아지는 신이 나서 아랫마을
곳곳을 뛰어다녔습니다.
어느새 아랫마을 사람들에게 송아지는
가족처럼 소중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송아지는 아랫마을 사람들 누구나
주인처럼 따르며 좋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랫마을 곳곳을 누비고 다닌 송아지는
산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어디에선가 갑자기 휙 나타났던 것처럼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습니다.
아랫마을 사람들은 검은 송아지를 찾기
위해 산 곳곳을 해매고 다녔습니다.
사람들이 애타게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때 송아지가 뛰어놀던
냇가인 금대천에 뭔가 번쩍이는게
휙 나타났습니다. 반짝이던 것은
바로 황금빛 송아지였습니다.
송아지는 온몸에 털이 황금색으로
반짝거렸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눈이 부시고
아름다웠는지 감탄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바로 그때 황금 송아지가 아랫마을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넙죽 인사를 하곤 사라져버렸습니다.
그 날 이후 송아지가 뛰어놀던 냇가인
금대천 근처의 밭에 송아지 모양을
꼭 닮은 바위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바위는 주둥이를 윗마을 쪽으로,
엉덩이는 아랫마을 쪽으로 향했습니다.
그 뒤 아랫마을은 풍년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검은 송아지 모양의
바위 궁뎅이가 아랫마을을 향하고 있는
것에 거름이 풍부해져서 풍년이 들고
곡식이 잘 익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소궁뎅이 금대마을”로 바꾸었습니다.
사람들의 믿음처럼 그 검은 송아지는
하늘에서 나들이를 왔다가 소궁뎅이
금대마을 사람들의 고마운 마음을 느끼고
은혜를 갚고자 바위가 되었는지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_ 금대마을 이야기기록관
금대마을에는
괴산군이 주민 주도의 마을 역사 보존과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추진한
'마을기록화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마을기록관이 있다.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지
기록관 안에는 먼지가 많고 창고같다.
위의 사진에서 보여지는
『소궁뎅이 금대마을 이야기』의
그림판이 전시되어 있으며
1950년대이후 마을에서 쓰였을 법한
여러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어
한번쯤 들러볼만 하지만
관리가 않되있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_ 노송의 온기를 품은 금대마을숲
쌍천이 흐르는 금대교 아래쪽
하천과 밭 사이의 작은 소나무숲이다.
규모는 작지만 마을 입구를 지키는
숲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숲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노송이 서 있고,
그 아래에는 돌로 만든 제단이 남아 있다.
150년 안팎의 소나무 14그루를 중심으로
말채나무와 개옻나무, 어린 뽕나무 등이
나무들이 같이 살아가고 있다.
마을의 허한 기운을 보완하는
'수구막이 비보림'으로
앞으로는 하천이 흐르고
뒤로는 산이 감싸는 지형에서
마을 어귀를 지키며 바람을 막고
좋은 기운이 흩어지지 않도록 하는
풍수적 의미를 담고 있다.
보호수 아래 남아 있는 제단은
자연을 마을의 수호자로 여기며
살아왔던 오랜 기억을 전하고,
노송들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마을 어귀를 지키고 있다.
작은 숲이지만 풍수와 신앙, 생활과
전설이 한데 어우러진 숲으로
마을의 어제와 오늘을 정겹게 이어주는
생생한 '마을 역사서'이자 정신적 울타리다.
* 속리산 둘레길
_ 마을과 사람, 숲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상생하는 길이며
_ 충북 보은군과 괴산군, 경북 문경시와
상주시를 연결하는 속리산 권역의
총 208.6km의 도보 여행길이다.
_ 우리나라의 한가운데 위치해
전국 어디서나 접근이 용이하다.
_ 2017년 보은길을 시작으로
2022년 괴산길, 2023년 상주길,
2024년 문경길까지 총 15개 전구간이
개장되었다.
_ 천년고찰 법주사를 감싸 안은
백두대간의 중심축인 속리산과 청화산,
대야산, 희양산, 백화산 등 명산들이
기암괴봉, 수림, 계곡, 폭포 등과
어우러진 자연경관과
_ 생태 환경적 가치와 숲길, 마을길,
옛길을 잇는 역사 문화적 가치가 풍부해
2023년 9번째의 국가숲길로 지정됨
* 속리산둘레길 8구간 (연풍선비길)
_ 동서트레일 32구간과
거의 일치하는 속리산둘레길 8구간은
일명 연풍선비길로 호칭된다.
_ 일부구간의 진행이 다르지만
시작과 종료지점은 동일하다.
(쌍곡삼거리에서 태성삼거리의 구간을
도로길, 천변길이냐의 차이이다
: 도로는 속리산둘레길,
천변은 동서둘레길이다)
_ 코스는
쌍곡삼거리~태성삼거리~교동교
~갈길경로당~금대마을회관
(소궁댕이금대마을)~유하교
~호소사열녀각~연풍초등학교로
이어진다.
_ 약 14km/5시간정도가 소요된다.
* 미선나무 자생지, 괴산
동서트레일 32구간의 인근에
미선나무 자생지가 있다.
세계적 희귀종인 우리나라 특산식물,
미선나무는 충북진천에서 최초발견되어
보고되었으며 이후에 괴산, 부안, 옥천,
원주, 대구 등에서 자생지가 보고되었다.
괴산 3곳, 부안 1곳, 옥천 1곳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그 중에도
괴산의 자생지는
장연면 송덕리, 장연면 추점리,
칠성면 율지리의 세 곳에 있으며
세 곳 모두 천연기념물로 관리된다.
_ 세계적 희귀종, 미선나무
세계에서 단 1속 1종밖에 없는
우리나라 특산 식물이자 희귀 수종으로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이며
봄이 시작되는 3월 말에서 4월 초순경 잎보다 먼저 피는
연분홍빛 또는 순백색의 꽃이
은은하고 감미로운 향기를 뿜어낸다.
열매의 모양이 둥근 부채를 닮아
'미선(尾扇)'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_ 미선나무 자생지의 환경적 특징
(배수가 잘 되는 토양)
주로 산록의 경사면, 계곡 주변,
혹은 강가의 자갈이 섞인 토양이나
바위 틈에서 자라며,
습기가 차는 곳보다는
물빠짐이 좋은 곳을 선호합니다.
(햇빛이 잘 드는 반음지~양지)
숲 속 깊은 곳보다는
햇볕이 비교적 잘 드는 숲의 가장자리나
낙엽수림 아래에서 생육한다.
(경쟁에 취약한 생태)
번식력이나 생장 속도가 주변의 다른
키 큰 나무들에 비해 우세하지 못해,
자연상태에서는 숲이 우거지면 햇빛을
받지 못해 쇠퇴하기 쉽다.
_ 자생지 최초 발견 및 관리
우리나라 1세대 식물학자인
고(故) 정태현 박사가 1917년에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서 최초로 발견하였으며
일본인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이
1919년에 세계 학계에 신종 보고하였다
동 자생지는
최초 발견된 역사적인 상징성 등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나 훼손이 심해
천연기념물 목록에서는 제외되었다.
현재는 지자체와 연구기관에서
복원 노력 및 보호 속에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 대학찰옥수수 생산지
_ 벼과의 1년생 초본식물인 옥수수는
국민적 간식식품으로 동서트레일
32구간이 지나는 괴산군 장연면이
'대학찰옥수수'의 주산지입니다.
_ 옥수수는
'쫀득한 식감과 구수함'을 원할 때는
강원도나 괴산 지역의 찰옥수수를,
'아삭한 식감과 극강의 단맛'을 원할 때는
제주 및 남부·충청 일부 시설재배지의
당도가 높은 초당옥수수를 찾습니다.
_ 괴산의 대학찰옥수수는
괴산군 장연면 방곡리 출신의
故최봉호 전 충남대학교 교수가
1991년 시험 재배를 시작으로 12년간의 연구 끝에 개발한 고유 품종으로
대학교수가 개발해 농가에 보급되어
'대학찰옥수수'라는 이름을 얻었다.
_ 일반 옥수수에 비해 당도가 높고,
껍질이 얇아 치아에 끼지 않으며 쫀득쫀득하게 씹히는 식감이 일품으로
한 번 맛보면 매년 찾게 되는
중독성 있는 단맛을 자랑한다.
* 일가정(一可亭)
청주 경씨가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된
연풍면 유하리 마을 입구 층암절벽 위에
동향으로 위치한 정자이다.
조선 고종 때 종4품관리였던
경광국(慶光國)이 1913년 향리로
돌아와서 지은 정자이며
층암절벽에는
'유산동문(柳山洞門)', 경광국(慶光國),
노옹(老翁), 일가정(一可亭) 등의
각자를 볼 수 있다.
※ 경광국(慶光國)
조선 고종때
의금부관리로 북부부사를 역임했으며
개화파와 친분이 두터웠고
갑신정변때는 신안의 지도로
유배되기도 했다. 유배해제후 중국으로
망명하였다가 7년 만에 귀국하였다.
귀국후 희천, 영해군수를 지냈으며
말년에는 고향인 연풍 유하리에서
여생을 보냈다.
※ 유산동문(柳山洞門)
옛 사람들은 '산수가 수려하고
경치가 빼어나 신선이 사는 곳'을
동천(洞天)이라 하고
동천의 입구를 동문(洞門)이라 했는데
경광국은 산수를 벗하여 선비들과
시를 즐기면서 사는 세상을
유산동문으로 생각한 듯 하다.
* 연풍항교(延豊鄕校)
1. 위치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교촌리에 있다.
옛 연풍현이 있던 곳의 인근이다.
※ 향교는
_ 조선 시대에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국가에서 설립한 공식 교육기관으로
약 330개정도가 설치되었는데
_ 조선 시대 지방 행정 구역인
부(府), 목(牧), 군(郡), 현(縣)의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행정 중심지에 의무적으로 1개씩 설립했다.
_ 연풍향교는 연풍현에 설치된 향교이다.
2. 역사 및 건립 배경
_ 창건 : 1515년 (조선 중종 10년)
_ 수난과 복원
한국전쟁시 건물이 불에 타 소실되었으나 1978~79년에 복원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_ 문화재 지정
1981년 12월 26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3. 건축 및 배치 특징
조선 시대 향교의 전형적인
건축 양식과 공간 구성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인
전면에 강학 공간인 명륜당이
후면엔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이 있다.
4. 석전제와 소장자료
_ 석전제
매년 음력 2월과 8월에 석전제(제향)로 선현들을 추모하고 있다.
_ 소장자료
『청금록(靑衿錄)』
향교에 등록된 유생들의 명부.
『도유사선생안(都有司先生案)』
향교운영을 담당하던 임원들의 명단
『연풍향안(延豊鄕案)』
연풍 지역 향반(사림)들의 명부
* 연풍현과 김홍도
1. 조선 시대의 지방 행정 구역과 연풍현
_ 조선시대에는 8도 아래에 기초 지방 자치단위로 오늘날 시, 군, 구의 기초가
된 부(府)·목(牧)·군(郡)·현(縣)을 두었다.
_ 각 고을의 중요도, 인구 규모, 전략적
요충지 여부에 따라 등급이 나뉘었으며,
파견되는 지방관의 품계도 달랐다.
_ 이중에 현 (縣)은
가장 규모가 작은 지방 행정 구역으로,
다시 인구와 중요도에 따라
대현과 소현으로 나뉘었으며
_ 규모가 큰 현에는 종6품의 현령(縣令)이
작은 현에는 종6품 또는 정7품~종9품의 현감(縣監)이 파견되었다
_ 연풍현은 작은고을인 소현이었으며 현감이 배치되었다.
2. 연풍현의 동헌과 향청 등
지금의 연풍성지, 연풍초등학교에는
연풍현의 동헌과 향청, 객사가 있던 곳이다.
_ 연풍동헌(延豊東軒)
현판 이름은 풍락헌(豊樂軒)이며
<백성이 풍요롭고 즐거워야 한다>
영조 42년(1766년)에 처음 지어졌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 연풍보통학교의
교사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교실, 강당으로
전용되며 크게 훼손, 변형되었으며
1972년 관아유적 보존필요성으로
과거의 위치에서 현재의 위치로
자리를 옮겨 복원되었다.
<현재는 연풍초등학교내에 복원되 있다>
_ 연풍향청(延豊鄕廳)
조선 시대(숙종 대 건립 기록 등)
연풍현의 수령을 보좌하고
향리를 감찰하며 민정을 대변하던
향청 건물이었으나
일제강점에는 일제 헌병주재소 및
경찰지서로 강제 전용되었으며
1963년에 천주교회에서
이 건물을 매입하여 연풍공소의 성당으로
사용하였고 현재는 연풍성지의 한켠으로 조성되었습니다.
3. 연풍현감 김홍도
_ 연풍현감 부임
1791년(정조 15년) 정조의 어진 제작을
성공적으로 마친 공로를 높이 평가하여,
화원 출신으로서는 파격적으로
1792년 연풍현감으로임명하였습니다.
_ 재직 기간
1792년부터 1795년까지 약 3년 동안
연풍현의 현감으로 재직하며 연풍지역의 아름다운 명승고지를 접하며 영감을 얻기도 했다.
_ 재직시의 추정작품
제작시기를 정확히 특정할 수 없으나
호귀응렵도 (豪貴鷹獵圖)는 연풍현감 시절에 그린 작품으로 추정합니다.
<'응렵(鷹獵)'은 매를 날려 꿩을 잡는
사냥을 뜻하는데, 당시 연풍 지역의
지형적 특성과 사냥 문화를 보여준다.>
또한, 대표작 중 하나인 ‘모정풍류’ 등은 실제 배경지가 오늘날 괴산의 명소인
수옥폭포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_ 아들 '연록(延祿)'의 탄생
마흔이 넘도록 자식이 없었던 김홍도는
연풍현감으로 재직할 당시 인근의 사찰인
조령산 상암사에서 정성을 들여
늦둥이 아들을 얻었다.
연풍현감의 녹봉을 시주하여
얻은 아들이라는 뜻을 담아 이름을
'연록(延祿)’이라고 지었습니다.
* 천주교 연풍성지
1. 주요 시설 및 특징
오랜 세월 흩어져 있던 순교 자취를
수집하고 정비하여 오늘날의 경건하고
아름다운 성지로 만들어졌습니다.
_ 연풍향청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조선 시대 수령의 행정을 보좌하던
관청 건물(향청)로,
과거 천주교 박해 시기 및 공소 시기를
거쳐 현재는 성지 내에 고즈넉한 한옥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_ 형구돌 (처형석)
성지 내에서 발굴된 실제 처형 도구입니다.
가운데 구멍이 뚫린 커다란 돌로,
병인박해 당시 신자들을 묶어 질식시켜
죽이거나 처형할 때 사용했던 아픈 역사의
물증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_ 성 황석두 루카 탄생 200주년
기념성당 (연풍성당)
성인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2014년에 건립된 현대적이면서도
아늑한 분위기의 성당입니다.
_ 다섯 성인상 및 순교자의 언덕
황석두 루카 성인을 비롯한 순교자들을
기리는 조형물들과 십자가의 길,
대형 십자가 등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2. 순교지 연풍의 역사
_ 산릉에 속한 험지인 연풍에
경기도와 서울을 중심으로 일어난
박해를 피해 순교자들의 피난처로 1790년대 후반 한, 두명의 교우가
자리잡게 된다.
_ 남부여대(男負女戴)로 보따리를 싸서
박해의 서슬을 피해 연풍으로 몰리나
박해자인 포졸들도 연풍주막에 머물며
신자를 색출하여 공을 세우고자 했다.
_ 1791년 신해교난과 이어진 1801년 신유박해 등 조선시대 대규모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든 곳중의 하나가
험준한 지형의 연풍이었다.
_ 1801년 신해교난때는 교인 추순옥,
이윤일, 김병숙, 김말당, 김마루 등이
1866년 병인박해때는 황석두(루카),
김 마르티노, 김 마태오 등의
연풍성지에서 순교하거나
연풍지역출신사의 순교가 있었다.
※ 성 황석두(루카, 1813~1866)
_ 한국 천주교회의 대표적인
평신도 지도자이자 순교자이다
_ 연풍출생이며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하였으며 묘지는 연풍성지에 있다.
_ 한국 103위성인중의 한 분으로
"지상의 과거가 아니라 하늘의
과거에 급제했다"고 선언하고
작두를 들이대는 등 집안의 극심한
반대와 위협에도 굳은 믿음을 지켜
온 가족을 신자가 되었으며
_ 평생을 교회에 헌신했으며 피신을 권고하는 주교를 따라 같이 순교하는 신앙의 절개를 지킨 분이다.
3.연풍성지 조성
_ 1963년부터 옛 연풍향청을
연풍공소로 사용하며 주변은 정비하여
성지조성작업을 하게됩니다.
_ 작업도중 1964년에 박해의 증거인
형구틀이 발견되어 이 형구틀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절두산성지로
이전 보존됩니다.
이후 1972년, 19992년 추가로 형구틀이
발견되어 연풍성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_ 연풍출신의 성 루카 황석두성인의
유해를 성지에 안장하여 성지기틀를
마련합니다.
_ 2013년에는 성 루카 황석두성인 탄생
200주기 기념성당인 연풍성당이 건립되고
주변이 정비되어 아름다운 순례·휴식의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 수옥폭포(漱玉瀑布)와
마애이불병좌상(磨崖二佛並坐상)
괴산 연풍면 원풍리의 조령신 자락에
인접하여 있어 같이 둘러보기에 적당하다.
가. 수옥폭포
_ 괴산 연풍면 원풍리에 위치한 폭포로
이름 그대로 '구슬을 씻어내는 듯한
깨끗한 물'이 흐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_ 높이 약 20미터에 달하는 단애에서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줄기가
여름이면 주변의 울창한 송림과
가을이면 절정을 이룬 단풍과 어울리며
뛰어난 풍광을 자아내어 조령계곡의
수려한 경치 중 제8곡에 해당한다.
_ 수옥폭포 아래에 세워진 정자
'수옥정'은 1711년(숙종 37년)
연풍현감 조유수가 세운 것으로
훼손된 시기를 알 수는 없지만
그 터만 남겨져 있던 것을
1960년 현대식으로 복원하였다.
나. 마애이불병좌상
_ 대개의 마애불과는 달리
두 분의 부처님(석가여래와 다보여래)이
나란히 앉아 있는(병좌, 並坐) 희귀한
형태를 하고 있는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독특한 양식입니다.
_ 높이 약 12m의 자연 암벽 위쪽에
네모난 감실(불상을시기 위해 파놓은
방 형태의 공간)을 파고
그 안에 두 부처님을 도드라지게
새겨 넣었습니다.
_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의 지방 문화재적 특성과
독창적인 불교 미술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 조령산휴양림
가. 인기가 높은 휴양림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새재로
(백두대간 조령산 기슭)에 위치한
자연 휴양 공간으로,
아름다운 숲경관과 가성비있는
이용 요금으로 인기있는 휴양림이다.
나. 자연환경
울창한 노송(소나무 군락)과
참나무류가 넓게 분포하고 있어
깊은 숲의 정취를 느낄 수 있으며,
맑은 계곡과 산림욕장이 잘 조성되어 있다
다. 주변즐길거리
_ 트레킹
과거 선비들이 한양을 가기 위해 넘었던 역사 깊은 연풍새재 옛길 및 조령관문이 휴양림과 이어져 있어,
가벼운 산책부터 트레킹까지 가능하다.
_등산 코스
휴양림을 기점으로
신선봉, 마역봉(마패봉) 등을 연계하는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_ 수안보 온천 연계
차량으로 약 10분 거리에
수안보 온천 관광지가 있어,
등산이나 숲 산책 후 피로를 풀기 위한
온천욕 코스를 함께 묶기 좋다.
_ 관광코스
가까운 곳에 수옥폭포와
마애이불병좌상이 있어 관광에 좋다.
* 오가리 느티나무
1. 수령이 오랜 우리의 나무종류
_ 가장 오랜 생명력을 자랑하는
은행나무, 마을을 지켜온 대표적인 장수목인 느티나무, 살아서 천 년이고
죽어서 천 년인 주목, 바람과 바위 틈을 견디는 고목인 향나무, 느티나무와 같이
당산목으로 많이 심은 팽나무 등이 있다
2. 노거수가 많은 우리의 느티나무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느티나무는 수령이 몇백 년은 보통이고
천 년을 훌쩍 넘어가기도 한다.
전국 지자체가 관리 하고 있는
고목은 약 1만3천 그루인데,
7천1백여 그루가 느티나무이며
19그루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오래된 느티나무는 대부분 한 그루씩인데
오랜 세월 한 자리를 홀로 지키고 서 있기
때문에 마을의 정자나무 나 당산나무로
자리매김해 왔다.
느티나무는 겉으로는 무르고
약해 보이지만 사람이 닿을 수 없는
높이까지 키를 키우고,
밑동은 몇 사람이 두 팔 로 보듬어야
겨우 안을 수 있을 정도까지 자라
수백 년 비바람을 견뎌낼 만큼 강하다.
그 중에도 괴산군(槐山郡)은
지명이 '느티나무(회나무)가 많은
산골 고장'이라는 뜻의 이름이며
괴산군 보호수 150여그루중
120여 그루가 느티나무이다.
3. 괴산 장연면 오가리 느티나무
_ 상괴목, 하괴목과 또 다른 한그루가
더하여 세 그루의 노거수 느티나무로
마치 정자 같다고 하여 삼괴정이라고
부르며 수령은 약 800년으로 추정된다.
_ 하괴목은 동쪽으로 뻗은 가지가
오래전에 부러져 말라죽었고
속으로 구멍이 나 있다.
_ 민속적·생물학적 가치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되고 있으며
마을 사람들은
매년 정월 대보름마다 하괴목 아래에서
성황제를 지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