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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참모의장 발탁 시 언론 인물평
◆ ROTC 출신으로 군서열 1위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 ◆ 특수부대 등 다양한 근무의 군사전문가 ◆ 책임감과 의리, 보스기질을 갖춘 무골 ◆ 호방한 성격에 친화력이 풍부하고 신의를 중시 ◆ 만능 스포츠맨 |
학력
- 1954 전농초등학교 졸업
- 1957 배재중학교 졸업
- 1960 배재고등학교(75회) 졸업
- 1964 고려대 사학과(60학번) 졸업
- 2003 서울대 AMP 53기수료
- 2003 연세대 AMP 55기 수료
- 2004 고려대 AMP 55기수료
군사 경력
- 1964.02 ROTC 2기 육군소위 임관
- 1964.07 2사31연5중대 소대장 (소위)
- 1968.07 9사28연3대대 군수장교 (대위, 월남 전 참전)
- 1970.07 8사10연5중대 중대장 (대위)
- 1971.09 8사10연대 인사/정보주임 (소령)
- 1974,07 육본인사운영감실 인사통제장교 (소령)
- 1976.03 육본인사참모부 진급방침장교 (소령)
- 1978.01 5사35연1대대 대대장 (중령)
- 1979.08 수경사30단 부단장 (중령)
- 1981.11 특전사3여단 부여단장(참모장/대령)
- 1983.08 3사22연대 연대장 (대령)
- 1984.12 국방부 인사국 인사과장 (대령)
- 1986.01 51사단 부사단장 (준장)
- 1987.01 제3사관학교 행정부장 (준장)
- 1989.06 37사단 사단장 (소장)
- 1991.01 육군교육사령부 참모장 (소장)
- 1991.12 육본정보참모부 부장 (소장)
- 1993.10 11군단 군단장 (중장)
- 1995.10 1군사령부 부사령관 (중장)
- 1996.10 2군사령부 사령관 (대장)
- 1998.03 합동참모본부 합동참모의장 (대장)
※ ‘68.6.24~69.7.17’ : 백마부대(9사단) 대위로 월남전 참전
■ 상훈
- 미국공로훈장(2등급) : 3회(1998.5/ 1999.3/ 2000.7)
- 통일장(1998.10)
- 보국훈장 국선장(1995.10)
- 보국훈장 천수장(1992.12)
- 대통령표창(1988.10)
- 보국훈장 삼일장(1984.10)
- 인헌무공훈장(1981.4)
- 보국포장(1980.10)
- 자랑스러운 배재인상(1997)
- 자랑스러운 ROTCian상(1998)
- 자랑스러운 고려대학교 문과대학인상(2009)
■ 민간 경력
- 민주당 안보특위 위원장(2000.4~2002.10)
- 한국토지공사 사장 (2001.10~2004.11)
- (사)국민화합실천연대 고문(2007.10~2008.12)
- 재향군인회 고문(2000.1~현재)
- 한나라당17대 이명박 대통령후보 안보담당고문(2007.10~2008.2)
- 통일정신문화원 고문(2011.3~현재)
- 대한민국 성우회 고문(2000~현재)
- 안보선진화포럼 이사장(2013~현재)
■ 김진호대장 인물 탐색
김진호대장은 호방한 성격에 자기소신이 뚜렷하고 책임감과 신의를 바탕으로 보스기질의 전형적인 무골(武骨)장군이다. 군 경력은 월남전 참전을 비롯하여 야전 및 교육기관, 정책부서, 특전사, 수방사 등 특수작전 부대에서의 다양한 근무를 통해 폭넓은 군사지식과 탁월한 지휘통솔력을 발휘하였으며, 군 퇴역 후에는 한국토지공사 사장을 역임하였다. |
▲ 문무를 겸비한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무인
- 건군 이후 ROTC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군내 서열 1위이자 우리 군의 군령 최고사령관인 합동참모의장에 오른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무인이다.
- 근무경력은 소신이 뚜렷하며 책임감과 의리, 보스기질을 갖춘 덕장으로 월남전 참전, 야전 및 교육기관, 정책부서 그리고 특전사, 수도방위사령부 등 특수작전부대에서도 근무한, 다양한 군 경력의 소유자로서, 폭넓은 군사지식과 탁월한 지휘통솔력을 겸비한 장군이다.
- 민족사학을 전공한 사학도로서 한국 현대사 분야에 정통하며, 특히 3사관학교 행정부장(준장, 1988년) 재직 시 ‘한국현대사의 역사왜곡 문제를 발견’하고 군 장병들에게 ‘한국현대사의 올바른 인식’을 시킬 필요성을 느껴 이때부터 ‘한국현대사의 올바른 인식’이라는 교재를 직접 집필하여 장병들에게 민족의 정통성을 올바르게 인식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해 온 문무를 겸비한 장군이다.
- 2군 사령관 재임시절에도 “현대사와 안보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라는 교재를 직접 집필하여 장병들에게 교육 자료로 제공하는 등 문무를 겸비한 장군으로서 명성에 걸 맞는 활동을 펼쳤다.
▲ “제1차 연평 해전”을 압도적 승리로 이끈 합참의장
- 합참의장 재임 중, 1998년 6월 강릉잠수정 침투사건(북한군 9명 사망), 1988년 11월 강화도간첩선 침투사건, 그리고 1998년 12월 남해 여수해안으로 침투해온 북한 반잠수정 격침작전(북한군 6명 사망) 등 네 차례에 걸친 북한의 해상도발을 포함하여 북한의 각종 대남책동을 우리 장병들의 피해 없이 단호하게 저지하는 등 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함으로써 지휘통솔력이 탁월한 장군으로 찬사와 존경을 받았다.
- 특히 1999년 6월 휴전 이후 남북한 간 최초 최대 교전이라 불리는 제1차 연평해전 당시 예리한 통찰력과 정확한 판단력으로 해상 작전을 비롯한 지·해 ·공 통합작전을 완벽하게 지휘해 북한의 어뢰정 1척 격침, 경비정 1척 반침, 경비정 5~6척을 대파하고, 북한군 1백여 명의 사상자를 발생케 한 반면, 우리 군은 경미한 피해만 입는 대승을 거두었다.
- 1999년 제1차 연평해전은 한국 해전사(海戰史)에 길이 남을 대승을 거두는 쾌거를 이루어 군과 국민들의 사기를 크게 높인 합참의장으로 평가 받고 있다.
▲ 미 국방수뇌부와 두터운 교분으로 ‘한·미 안보동맹 강화’에 크게 기여
-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재발해서는 안된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지금까지도 미 국방수뇌들과도 두터운 교분을 쌓고, 한미 안보동맹유지에 다각적인 역할을 다하고 있어 국가안보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미국 정부가 수여하는 공로 훈장을 3회나 수상하였다.
- 아울러 합참의장 재직 시는 ‘한-미간 긴밀한 공조체제를 바탕으로 북한의 도발을 단호하게 대처’했다는 평가는 물론, 미 국방수뇌들과의 교분을 바탕으로 한미 군사관계 및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그 어느 때 보다 긴밀하고 공고하게 구축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 원칙과 예의를 중시하는 소신파
- 자신의 일이나 주변의 일이 잘못된 것을 보고는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정의롭게 지적하고 당당하게 대처하는 원칙과 예(禮)를 중시하며, “상하가 뜻이 같으면 생사와 위험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소신과 철학을 평소에 실천해 온 장군이다.
- 2군 사령관으로 승진 보직 시 서울의 모일간지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에서 ‘군단장시절 당시 대통령이신 YS부친을 자주 찾아뵌 인연으로 진급된 것“처럼 폄하 보도한 것에 대하여, 사실이 아닌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해당 언론사를 “명예훼손”으로 제소하여 2년여 기간 동안(9차 공판) 소송 진행 중 해당 언론사의 공식사과문을 받고 소송을 취하했다. 이때 많은 군 선후배들이 군의 명예를 지켜 준 본보기라며 찬사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 소외된 자(者)와 약자(弱者)를 배려하는 인간미
- 소외된 자(者) 약자(弱者)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는 인간미 넘치는 장군이다. 그래서 군 시절 부사관의 역할과 위상 강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우렸다. 일 예로 1999년 2월 합참의장 북미지역 해외출장 시 통상 공식 해외 방문행사에는 장성급을 대동하던 관례를 깨고 합참 주임원사가 수행토록 함으로써, 8만 5천여 부사관의 긍지와 사기를 높였다. 방문국인 케나다 및 미국 부사관단으로 부터는 격식과 형식을 배제하고 실질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지휘관’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 언행일치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철학 견지
- 생활 철학은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목표 지향보다는 과정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언행일치의 솔선수범을 좌우명으로 삼아 항상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이러한 성품과 인품이 상대방을 감동 시키는 원동력이 되어 친화력이 탁월한 장군으로 정평이 나 있다.
▲ 후배들이 말하는 인간 김진호는 ‘의리의 장군’
- 부하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유별나 한번 인연을 맺은 부하는 평생 부하임을 자처할 정도로 존경과 신망이 두터운 장군이다. “궂은일에는 부하들의 방패막이로, 공을 내세울 일이 있을 때는 부하들을 먼저 앞장세우는 경우”가 많아 이와 관련한 군내에 수많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으며, 후배 장교들 사이에는 “의리의 장군”으로 회자 되고 있다.
▲ 전역 후 “안보선진화포럼”설립, 안보 전문가로의 활발한 활동
-전역 후에는 폭넓은 군사지식과 안보 전문지식은 물론 미국 수뇌부와의 두터운 교분 관계 등을 바탕으로 국가안보 전문가로의 활동을 지속하면서
국가안보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특히 김대중정부 당시 민주당 안보특위 위원장을 맡아 김대중정부의 안보정책분야에 올바른 정책제언을 아끼지 않았다.민주당 안보 특위활동에서 소신 있는 정책제언 등을 통하여 당시 대다수 국민들과 보수단체에서 우려했든 집권당의 안보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한 예로 이라크 파병 논의 시 주요책임자가 ‘행정병과 위주의 장병만 파병’을 고집했으나 김진호장군은 ‘적의 공습에 대비한 전투병과 병력의 혼합 파병을 강력히 제안’하여 관철시킨 바 있다.-이명박대통령후보 때에도 안보전문가로서의 자문 역활을 지속하면서 국가 안전보장에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하였다.-지금은 안보전문가로서의 역량과 역할을 더욱 확대하고 국가안보 분야에 체계적인 연구발전을 기하고자 국내 유수의 안보 전문가들과 함께 "안보선진화포럼"을 설립하여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 만능스포츠 맨
- 중·고교 시절의 탁월한 빙상 실력과 고려대 재학시절 럭비선수로 활약한 바 있는 만능 스포츠맨으로 테니스, 축구 등 구기 종목은 수준급 이상이며 바둑은 아마 4단 실력이다.
▲ 부자간 고대 ROTC동문
- 부인은 심기숙 여사이며, 슬하에는 1남 1녀를 두었으며, 맏딸은 숙명여대를 졸업했고, 아들 김상우도 고려대학교 출신으로 ROTC 31기로 군 복부를 마쳐 부자간 ROTC출신이다.
■ 김진호장군 전역 후 '안보분야 정책 제언'사례
▲ “연합사 전시작전권 전환” 관련 특별기고
* 기고Ⅰ: “미 핵항모 신속배치 연평해전 확전 막아”(동아일보, 2006.9.25)
- 노무현 정부 시 재향군인회가 한미 연합사령관의 전시적전 지휘권환수 반대를 위한 1,000만 명 서명운동 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군 원로를 매도하고 군복무를 비하 발언에 대한 반론제기의 글
* 기고Ⅱ: “병사에서 장성까지 이렇게 매도해도 됩니까” (동아일보,2006.12.25)
- 노무현 대통령이 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군 원로를 매도하고 군복무를 폄하한 발언에 대해 공격하는 요지의 글
-김진호장군은 “남북대치 상황에서 한미 동맹은 선택이 아닌 생존”이라는 소신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문제 발언(“군대 가서 썩힌다” “주권 없는 나라라는 인식,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잡는 것은 잘못이라는 한미동맹관” 등)에 대한 공격성 반론제기의 글
▲ 천안함 폭침 시, 이명박 정부의 소극적인 대북제재 조치에 대해 강력한 대북제재 조치를 촉구하는 특별기고
* 기고 Ⅰ: 북한의 개성공단 폐쇄 위협 발언에 대한 비판 및 긴급제언
(“공단 폐쇄하면 북한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것” 조선일보, 2010. 5. 28)
- 개성공단 폐쇄 시 ‘북한은 연 수천만 달러와 4만 여명의 임금이 사라지는 등 북한의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협약파기하면 앞으로 북한에 투자할 나라는 없다’ ‘공단 폐쇄로 인한 폐해는 북한 권력 내 갈등을 초래할 것이다’ 등의 요지로 북한에 경고
- 천안함 폭침 후 북한의 개성공단폐쇄 위협에 대해 정부의 의연한 대처촉구
* 기고 Ⅱ: 북한의 심리전에 흔들림 없는 우리 정부의 대북제재조치 촉구
(“우리 약점만 보여주고 후퇴하나” 조선일보, 2010. 6. 8)
-정부의 대북제재 조치 시 북한의 “대남 심리전 재개”에 대해 정부의 미온적 태도를 질타하고 강력한 대응을 요구하는 내용
▲ 임동원 전 국정원장의 대북관 의혹제기 연설
(“임동원 전 국정원장을 반역자로 규정” 국내 전 매체 보도)
- 18대 대통령 선거 10여일을 앞둔 2012년 12월 5일 오후 2시 부산역 광장에서 국민행동본부가 주체한 '노무현-김정일 대화록 전문공개촉구 국민대회'에서 안보관련 분야 정책 추진 시 임동원 전 국정원장의 행적을 지적하고 임동원을 반역, 이적행위자로 고발하는 공개 연설
■ 김진호 한국토지공사 사장 재직 시 업적
▲ 개성공단 시범단지 조성으로 ‘남북공동 번영의 장을 열었다’
- 2003년 6월 30일 착공한 역사적인 개성공단공업지구(개성공단) 조성함으로써 남북한 공동번영의 장을 열은 토지공사 사장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 재무개선 노력 통해 부채 1조원 줄이고, 신용평가 AAA 등급 받는 등
획기적 발전 도모
- 김진호 사장은 한국토지공사사장으로 취임 후 지속적인 재무개선노력을 통해 2001년-2002년 사이에 부채를 1조원을 줄이는 성과를 달성 했다.
- 이러한 업적 달성 효과로 한국토지공사가 2002년 국내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가장 높은 신용평가등급(AAA)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