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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 일반 석탑이 아니고 모전석탑을 세우는 이유는 땅이 흔들리기 때문이다.땅 밑에 지축을 흔들정도의 큰 수맥이 흘러서 탑이 제대로 서 있기가 곤란한 곳에는 모전석탑을 세워서 충격과 소음을 흡수시킨다고 한다.물론 석굴암에도 큰 수맥이 흐르고 있고 밖으로도 하천이 흐르고 있었다. |
▶ 아미타여래삼존석굴 ◀ ◀
▶ 군위 아미타여래삼존석굴(軍威 阿彌陀如來三尊 石窟)
경상북도 군위군 팔공산 절벽의 자연동굴에 만들어진 통일신라 초기의 석굴사원으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경주 석굴암 석굴(국보 제24호)보다 연대가 앞선다. 이 석굴에는 700년경에 만들어진 삼존석불이 모셔져 있다.
통일신라의 원효대사가 삼국의 통일과정에서 죽어간사람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웠다는 군위삼존석굴(軍威三尊石窟:국보제109호)은 경주 토함산 석굴암보다 제작연대가 빠르다. |
▶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은 삼국시대 조각이 통일신라시대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높은 문화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자연 암벽을 뚫고 그 속에 불상을 배치한 본격적인 석굴사원이라는 점에서 불교 미술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 배향공간에서 왼쪽으로 오면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로 가는 다리가 나오는데 그 다리가 석불교이다.
▶군위 삼존불을 참배하러 올라갔으나 자물쇠가 채워져 있어서 당황했다. 내려와서 종무원에게 물어보니 1년에 단 하루 부처님 오신날에만 참배가능하다고 해서 완전히 맨붕이 빠졌다. 그러나 불가능은 없는 법 경내에 계신 스님께 정중히 합장하고 부산지역단 포교사라고 말씀 올리고 참배하고 싶다고 간곡히 말씀을 올리자..
▶ 스님께서는 군위 삼존불을 친견하게 해 주시었다..감격!! 또 감격!! 고마우신 스님의 법명은 우암스님이셨다.
▶ 본존불
본존불인 극락도사 아미타불이시다. 사각형의 대좌 위에 양 발을 무릎 위에 올리고 발바닥이 위로 향한 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이다.옷은 얇게 걸치고 있어서 당당한 신체의 굴곡을 드러내고 있으며, 옷자락은 넓은 무릎을 거쳐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 아래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큼직한 육계가 있으며, 얼굴은 몸에 비하여 큰 편으로 삼국시대 불상에서 보이던 친근한 미소 대신 위엄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 흐린 날씨인데도 굴안은 습하지 않은 이유 경주 석굴암과 다른 점이 중앙에 아미타불 좌측에 관세음보살 우측에 대세지보살이 계신 이 석굴에 이끼가 끼지도 않고 습하지도 않았다.왜 그럴까? 토함산 석굴암은 영하의 온도에서 극진히 보관하는데도 자꾸 상태가 안좋아지는데..그 이유는 석굴암은 사람들이‘건드렸기’때문이라고 한다.토함산 석굴암을 다시 복원하면서 뭔가를 분명히 잘못 건드려 그렇게 된 것이라는 것이다.(수맥의 흐름과 습기와의 관련 설도 있다).제2석굴암은 있는 그대로 그냥 놔두었는데도 이끼 하나 끼지 않고 뽀송뽀송하다. |
▶ 무엇보다 삼존불의 숨은 1%는 바로 이 부분이다.부처님의 신비함과 위대함을 장엄하게 하기 위하여 발산되는 빛을 표현한 광배(光背). 그 중에서도 머리에서 발산하는 빛을 형상화한 두광(頭光, Siras· Cakra)의 모습이 기가 막히다.(전체적으로 보면 신광이라고 할 수있으나 머리부분만을 표현해서 두광이라고 하였다) 두광을 본존불의 몸이 아닌 천장에 새겨 놓았다. 법당의 불상이 아니니까 표현하는 방법에서 다른 곳하고는 완전히 다르게 나타낸 것이다. 우암스님의 설명을 자세히 듣고 다시보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두광 간다라(Gandhara) 불상에서 많이 유행한 형식으로, 처음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원판(圓板) 모양으로 표현되었다가 보리수잎이나 연꽃무늬·불꽃무늬·당초무늬 등을 장식한 화려한 모양으로 변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삼국시대의 불상 가운데 선방사삼존불상(禪房寺三尊佛像)이나 삼화령미륵삼존불상(三花嶺彌勒三尊佛像)의 두광 등에서 나타나며,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면 보주형(寶珠形) 두광 등으로 보다 다채롭게 진전된다.<인용/편집> |
▶ 아미타불의 수인은 아미타정인이나 설법인, 항마촉지인을 주로 취하는데 본존불의 수인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손가락이 땅을 향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다.그러나 자세히보면 촉지의 모습은 아니다.
▶ 같은 양식을 보여주는 좌우의 보살상
본존불이신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관음보살이, 오른쪽에는 대세지보살이 수행하는 형태를 갖추게 되는데 이를 아미타삼존(阿彌陀三尊)이라고 부른다.
★ 대세지보살 [大勢至菩薩]
아미타불의 왼쪽에서 자비문(慈悲門)을 관장하는 관음보살과 함께 대세지보살은 오른쪽에서 아미타불의 지혜문(智慧門)을 상징하고 있다.그는 자신의 독특한 지혜광(智慧光)으로 이 세상의 모든 중생을 비추어 보고 삼도팔난(三途八難:세 가지 나쁜 세상과 여덟 가지 재난)의 고통에 떨어져 허덕이는 중생들을 구원해 준다고 한다.
아미타불의 협시로서의 대세지보살은 성관음보살의 모습과 대체로 일치하며 다만 성관음이 관발(冠髮)에 화불(化佛)을 지니고 있는데 반해, 대세지보살은 보배병을 얹고 있는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정토교의 경전인 ≪관무량수경 ≫에는 이 보살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이 보살의 몸 크기는 관음보살과 같으며 원광(圓光)을 지닌 채 온 세상을 폭넓게 비추고 있다.머리 꼭대기의 육발(肉髮) 위에는 한 개의 보배병을 이고 있다. 그 외의 신체적 모습은 관음보살과 동일하다.” |
▶ 관세음보살상[觀世音菩薩]
관세음보살상은 새롭게 수용된 중국 당나라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관세음보살은 단독 형상으로 조성되기도 하지만 아미타불의 협시보살로 나타나기도 하며 지장보살(地藏菩薩), 대세지보살과 함께 있기도 한다.
▶ 관세음보살의 형상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으며 손에는 버드나무가지 또는 연꽃을 들고 있고 다른 손에는 정병을 들고 있다.그런데 관세음보살님을 상징하는 정병을 들고있는 모습이 너무나 세속적(?)이라서 한참을 쳐다보았다.중생의 질병을 치료해준다는 버드나무 가지가 꽂힌 정병의 의미를 그 시대의 분들은 저렇게 표현을 했나보다.^^
♣ 정병 원래 인도에서 수행생활을 하는 승려가 마실 물을 담던 수행도구 가운데 하나였으나, 중국에 관음신앙과 함께 전파되면서 부처나 보살에게 바치는 맑은 물을 담는 불교의 의식구로 그 의미와 기능이 확장됐다 |
▶ 2015년 12월 말에 다시 찾아갔을때는 불행하게도 군위삼존불을 친견 할 수가 없었다.
▶ 2015년 말까지 문화재보존처리를 위해서 보수중...
▶ 담당자이외는 출입금지..심지어는 안타깝게도 멀리서조차 삼존불을 친견 할 수없었다.
▶ 너무 아쉽지만 다시 오리라는 다짐하고 멀리서 인증샷!
♣ 팔공산 [八公山]
높이 1,193m의 산이다. 대구광역시 중심부에서 북동쪽으로 약 20㎞ 떨어진 지점에 솟은 대구의 진산이다. 남쪽으로 내달리던 태백산맥이 낙동강 금호강과 만나는 곳에 솟아 행정구역상으로는 대구광역시 동구에 속하지만, 영천시·경산시·칠곡군·군위군 등 4개 시·군이 맞닿는 경계를 이룬다. 주봉인 비로봉(毘盧峰)을 중심으로 동·서로 20㎞에 걸쳐 능선이 이어진다. 예로부터 부악(父岳)·중악(中岳)·공산(公山)·동수산(桐藪山)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으며 남쪽에 문암천(門岩川), 북쪽과 동쪽에 한천(漢川)·남천(南川)·신녕천(新寧川) 등 여러 하천과 계곡이 발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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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 조계종 포교사단 부산지역단 석암 이창재포교사
첫댓글 몸소 답사하여 세세히 살펴보신 석조문화재~~
음미하며 읽는데도 시간가는 줄 모를정도의 많은 자료들 감명깊게 감상했습니다.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_()_
많은 공부가 됐습니다. 이 또한 재능기부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