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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이화산악회 백두산 산행기-
1. 준비
백두산 산행기를 쓰려고 하니 어디서부터 시작하여 끝마무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참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번 경험은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기에 글이 조금 길고 지루하더라도 처음부터 차근차근 쓰기로 하였다. 이번 산행에 참가한 회원은 물론 참가 못한 회원들도 궁금한 점이 많을 것이고 훗날 백두산 산행을 할 경우 참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백두산 산행기는 출발과 도착 과정, 중국 시가지의 모습을 생략하고 산행 시작부터 이야기를 써나가지만 나는 글의 시작을 산행 준비 과정과 출발 모습부터 시작하여 심양에서의 마지막 밤을 끝으로 마감하려 한다.
백두산 산행을 처음 계획한 것은 2년 전인 1999년이다. 분단으로 가보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민족의 영산 백두산. 비록 우리 땅을 거쳐서 갈 수는 없더라도 중국땅 만주 벌판을 달려서라도 가보고 싶은 게 비단 산악인만의 바람이던가. 우선 결심을 확고히 하기 위해 참가 신청을 받으면서 모두들 2년 만기 100만 원 짜리 적금부터 가입을 하였다.
다음으로 백두산 산행을 맡길 만한 산악회를 물색하기 시작하였다. 관광이 아닌 산행 위주로 계획하였기 때문에, 북백두 쪽 천지와 장백폭포를 관광하고 연길, 용정에 가서 곰쓸개나 먹고 쇼핑하고 돌아오는 관광 상품이 아닌 백두산 산행 전문 산악회를 찾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두서너 군데 회사를 알아내서 신중한 검토 끝에 작년 겨울 고어텍스아웃도어클럽과 첫 접촉을 시도하였다. 코스와 일정, 비용을 놓고 여러 차례 협의를 가진 후 금년 봄 자세한 계획을 수립하여 참가 신청자를 상대로 1차 설명회를 3월 22일 본관 204호에서 가졌다. 이후 백두산 산행에 관한 관심과 호응이 점차 커져가면서 참가 신청자가 40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5월 30일까지 여권을 제출 받아 단체 비자를 신청하고, 부서별로 해외여행 허가서를 결재 받고, 산행 경비를 입금시키고, 개인별로 부족 장비 구입을 주선하였다. 5월 29일. 우리 나라로 말하면 국립공원관리공단인 '중국 길림성 장백산 국가급 자연보호구 여유국장'의 초청장이 왔다. 만반의 준비가 끝났다고 보고 출발날짜만 기다리며 2차이자 마지막 설명회를 가졌다.
6월 25일 참가자 거의가 모여 백두산 비디오 화면을 감상하고 산행 설명을 들은 후 아웃도어클럽장과 질의 응답 시간을 가졌다.
출발 전날. 가방과 배낭 하나에 짐을 꾸려 보았다. 예상외로 짐이 많았다. 그 목록을 보면,
(장비) 윈드 재킷, 긴 바지 2벌, 반바지 하나, 긴 소매 셔츠 2벌, 반소매티 3벌, 갈아입을 속옷 상하 3벌, 양말 5켤레, 등산화, 샌들, 판초 우의, 등산 스틱 2개, 선글라스, 랜턴, 주머니칼, 방석, 장갑, 모자 2개, 스카프, 무릎보호대, 휴지, 칫솔, 치약, 면도기, 수건, 보온병, 수통, 컵, 선크림
(먹거리) 오징어포, 커피믹스, 비스킷, 사탕, 빵, 잼, 육포, 미숫가루, 양갱 5개, 홍삼편 5갑, 초콜릿 1봉지, 땅콩 캔, 볶은고추장, 우황청심환 2개.
(기타) 태극기, 교기, 이화산악회기,
한번쯤 비를 만날 것에 대비하여 옷을 많이 준비하였지만 그래도 너무 많이 가져가 현지에서 바퀴도 없는 무거운 가방을 들고 이동할 때마다 팔이 빠졌다.
2. 출발
7월 4일. 교내 대강당 옆에는 아침 9시가 넘자 이화산악회 백두산 산행 참가 회원들이 저마다 배낭과 커다란 가방을 들고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인천공항까지 우리를 태워 줄 버스가 도착하자 40명의 대부대가 버스에 올랐다. 총무처장, 자연사박물관장, 몇 분 과장 그리고 함께 못 가는 회원 몇몇의 부러운 전송을 받으며 9시 30분 버스는 출발하였다.
2년 전부터 준비해 온 백두산 산행 팀이 이제 장도에 오르는 역사적(?) 순간이다. 버스에는 우리말고도 이번 산행을 총지휘하는 아웃도어클럽 윤치술 대장과 서울대 도서관 산우회원 3명이 같이 타고 있다. 약간의 흥분과 설렘 속에 버스는 인천공항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인천공항에는 공항으로 직접 나온 우리 회원과 또 같이 산행할 15명(이후 우리와 구분하여 18명을 B팀이라 불렀다)이 더 있었다. 총 58명이다.
오후 1시 30분. 드디어 중국 북방항공의 비행기가 인천공항을 출발. 1시간 30분 후인 현지 시간 2시에 심양공항에 내렸다. 밖에는 제법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며칠째 내리는 비라고 하니 슬며시 걱정이 된다. 이번 산행 일정을 위해서 날씨가 좋아야 할텐데.
대가중인 전용 버스 2대에 나눠 타고 심양 시내로 들어갔다. 시내에서 움직이는 차량들은 대부분 외제차들이다. 벤츠, 폭스바겐, BMW. 우리가 타고 가는 버스도 벤츠다. 거리에는 LG와 삼성 광고가 많이 보여서 반가웠다.
기내식을 들었지만 특별히 준비한 북한 냉면을 먹기 위해 우리가 들른 곳은 북한에서 운영한다는 칠보산 호텔내의 옥류관 식당이었다. 냉면이 나오는 동안 종업원인 북한 처녀들이 나와서 노래 서비스를 한다. 노래방 기계를 틀고 "반갑습네다" "아침 이슬" 등을 특유의 방울 굴리는 목소리로 부른다. 생글생글 눈웃음을 치며 TV에서 보던 표정 그대로다. 나중엔 우리 일행의 손을 잡아끌고 같이 부르기도 하고 춤도 추고 조화로 만든 꽃다발을 건네 주기도 한다. 조화를 보니 얼마나 많이 써먹었던 것인지 꾀죄죄하다. 나는 얼른 꽃다발을 옆 사람에게 선심 썼다. 냉면은 우선 그릇부터 특이했다. 얇고 넓적한 쟁반에 받침이 붙어 있는 것이 얼른 멀리서 보고 신선로 그릇인 줄 알았다. 호기심에 맛있게 먹었다. 입이 짧은 송기용 총무과장은 내게 반 이상 덜어낸다.
냉면 식사 후 열차 시간까지 요녕성 박물관을 관람하고 대청성 문을 지나 거리 산책을 하였다. 청태조 궁은 관람 시간이 지나 문을 닫아서 구경을 하지 못하였다. 다시 버스를 타고 거대한 모택동 동상이 있는 광장 구경을 하였다. 동상의 높이는 모택동의 생일을 뜻하는 12.26m라고 한다. 광장에서는 시민들이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고 있었다. 우리 일행들도 같이 따라한다. 조성숙, 김평운 선생도 무거운 등산화 발을 움직여 가며 열심히 따라해 본다. 중국 사람들은 우리를 구경하고 우리는 중국 사람들을 구경한다. 심양 구경을 대강 마치고 아직도 배가 부른데 대청화라는 만두 전문 중국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였다. 여러 가지 요리 뒤에 나오는 만두는 그 종류가 다섯 가지가 넘었다.
통화로 가기 위해 심양역으로 갔다. 세상에! 이게 언젯적에 지은 역인지 수리는 언제 했는지 천장 텍스는 군데군데 뻥 뚫려져 있고 그 사이로 불에 검게 탄 서까래까지 보인다. 화장실에 다녀온 사람들마다 황당했던 경험담에 열을 올린다. 우리 나라 50년대를 연상케 했다.
개찰이 시작되고 깜깜한 플랫홈에서 안내가 잘 안된 탓에 우왕좌왕하다 뛰어서 맨 끝에 매달아 놓은 침대 칸에 올랐다. 다른 칸과 통하는 출입구를 잠가놓은 우리만의 전용 칸이다. 그런데 침대 칸에 당초 계획대로 인원 배정을 해 놓고 보니 이상하게도 침대가 모자란다. 알고 보니 12칸인 줄 알았던 침대 칸이 11칸이다. B팀과 서로 약간씩 양보하여 침대 배정을 끝냈다. 밤 10시. 드디어 열차는 캄캄한 만주 벌판을 달려가기 시작했다.
-침대열차-
침대 칸을 보면 1칸이 좌우 3층으로 6인용으로 되어있다. 맨 첫 칸인 우리 조는 짐이 무거워 맨 아래 침대에 짐을 모아두고 나머지 침대에서 5명이 자기로 했다. 그때 역무원이 다가왔다. 짐을 놓아 둔 우리 침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뭐라고 ?q라?q라 한다.
-역무원 1 : "@&^%寢臺#$我%^就寢&*&!"
-우리들 : "???"
-역무원 1 : "*&^$#@*&^%$!"
-우리들 : "이 친구 뭐라 그러지?"
알고 보니 이 침대는 자기가 자야겠으니 내 놓으란다. 웃긴다. 역무원 휴게실이 엄연히 따로 있고 베게개지 놓여 있는걸 아까 봤는데 승객보고 침대 하나를 내놓으라고 생떼를 쓴다. 졸라 열받네, 이거! 하지만 어쩌랴. 사회주의국가에서. 근데 조금 있으니 아까 역무원 1을 따라서 다른 역무원 하나가 또 온다. . 이 역무원은 바로 위 2층 침대를 가리키며 또 ?X라?X라 해댄다.
-역무원 2 : "@&^%寢臺#$我%^就寢&*&!"
-우리들 : "어쭈, 이 짜식들이 아주 웃기네!"
결국 우린 엄한 강일구 선생을 옆칸으로 방출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밤중인데 밖에서 기적 소리가 요란하고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열차가 한바탕 요동을 치는 바람에 잠을 깨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창 밖을 보니 갑자기 열차가 방향을 바꿔 아까와는 반대 방향으로 달린다. 심양에서 출발할 때 맨 뒤쪽에 있던 우리 침대 칸이 이번엔 맨 앞칸이 되어버린 셈이다. 열차는 새벽이 밝아오는 만주 벌판을 신나게 달린다. 더 이상 잠자긴 글렀다. 일어나서 침대를 기어 내려와 세면 도구를 들고 수도로 갔다. 수도꼭지를 튼다. 이런! 녹물이 조금 나오더니 아예 물이 끊겨버린다. 할 수 없이 어제 남겨둔 생수병의 물로 대강 양치만 하고 들어왔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옥수수 밭, 그리고 간간이 보이는 붉은 벽돌집들.
엊저녁의 그 엽기 역무원과는 간단한 영어 단어조차도 안통해서 이번엔 한문 필담으로 대화를 하였다. 通化 到着時間? 하고 써서 보이면 그 역무원은 손가락 여섯 개를 펴 보인다.
엊저녁에도 자꾸만 내 차표를 보고 저쪽 침대로 가라고 손짓을 해 대기에, 全員 一行, 自律座席이라고 이행 시를 써 보이니 그제야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3. 도착
-통화역-
7월 5일. 열차는 심양을 출발한 지 8시간 만인 아침 6시에 통화에 도착하였다.
짐을 모두 역구내에 모아놓고 감시를 붙여 두고 역 밖으로 빠져나갔다. 우선 식당으로 들어갔다. '石磨豆腐王'이란 다소 거창한 간판이 붙어 있는 중국식 뷔페 식당이다.
식사 후 통화 시내를 구경나갔다. 당초 열차 시간이 아침 8시 40분이었는데 예고 없이 이 열차는 없어지고 10시 35분 열차로 시간이 늦춰졌다고 한다. 사회주의국가이니 항의해도 소용없다고 한다. 일부는 사우나를 한다고 목욕탕으로 갔고, 나머지는 삼삼오오 흩어져 시장 구경을 갔다. 시장에는 갖가지 과일이 진열되어 있고 생선과 돼지고기만 파는 코너도 있다. 누군가 '리쯔'라는 과일을 사서 먹어 보라기에 맛을 봤다.
-통화시내-
구경을 마치고 10시 35분에 다시 침대 열차를 탔다. 어제 밤 열차에는 승무원이 남자였는데 오늘 낮에는 승무원이 모두 여자다. 점심은 통화 식당에서 준비한 도시락이었는데, 반찬이 맞지 않아 서울서 가져간 볶은고추장에 밥을 비벼먹으니 한결 개운하였다. 나중에 중국 여자 승무원이 오더니 고추장을 좀 달랜다. 우리가 먹던걸 지나가다가 본 모양이다. 고추장으로 밥을 맛있게 먹는 게 신기하다.
오후 3시. 송강하에 내렸다. 백산기획 최희주 선생님과 직원들, 그리고 장백산 서파보호구 직원들까지 대거 환영을 나와서 반긴다. 역 밖에는 전용 버스 2대가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버스가 서백두 입구인 서쪽 산문을 향하여 달렸다. 산문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4시 20분. 여기가 고도 1000m 지점이라고 한다. 시간이 계획보다 지연되어 윤대장과 의논 끝에 금강대협곡은 내일로 미루고 오늘은 왕지부터 보기로 했다. 서쪽 산문에서 버스로 자작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임도를 40분 정도 간 후 버스에서 내려 걸어서 왕지로 향했다.
-서파산문-
4. 서백두의 비경
눈앞에 펼쳐지는 놀라운 광경. 온통 들꽃 천지다. 천상의 화원이 이럴까. 온통 보라색 붓꽃이 군락을 이루고 그 사이로 걸어가며 너 나 할 것 없이 탄성을 지른다. 붓꽃 군락지가 끝나고 온통 흰색 꽃인 바이칼꿩의다리 군락지가 나타난다.
왕지가 가까워 질 무렵 갑자기 시커먼 소나기구름이 몰려오더니 환영의 인사로 빗방울을 뿌린다. 허겁지겁 숲속으로 들어가니 눈앞에 호수가 나타난다. 왕지다. 그리 크지 않은 잔잔한 호수 수면에는 수초가 떠 있고 태고의 신비를 머금고 전설이라도 간직한 듯한 분위기로 맞는다.. 되돌아 나오는 길에 모두들 야생화 속에 파묻혀 사진을 찍고 어쩔 줄을 모른다. 하늘은 언제 비를 뿌렸냐는 듯 어느새 활짝 개고 저 멀리 백두산 봉우리가 손짓을 하고 있었다.
-왕지 가는길-
-왕지-
숙소인 백운봉산장으로 돌아오니 저녁 7시 15분. 모두들 방을 배정받고 씻은 후 저녁 식사를 하였다. 서백두 유일의 숙박 시설인 백운봉산장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원래는 장백산 임업국 소관 건물이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이를 개조하여 산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전력은 산장 앞을 흐르는 계곡물을 이용하여 자가 발전으로 자체 공급하고 있다고 한다. 걱정했던 화장실은 남녀 출입구 구분이 좀 애매했지만 수세식이었고, 공동 샤워장은 1층이 여자용이고 2층이 남자용인데 수압이 약하고 더운물을 쓸 수 없었지만 씻을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열 명씩 원형 식탁에 둘러앉아 먹는 산장의 식사는 그런대로 먹을 만하였다. 특히 윤대장이 만드는 방법을 교육시켰다는 김치찌개 맛이 그럴 듯했다.
-백운봉산장-
저녁식사 후 윤대장과 일정을 협의하는 자리에서 귀하다는 백두산 사주(뱀술)를 마시게 되었다. 술을 잘 못하는 나도 몸에 좋다는(?) 말에 넉 잔이나 마셨는데, 주당으로 소문난 김문갑 선생이 어쩐 일인지 피하며 사양한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캠프파이어를 한다고 산장 마당에 장작불을 피웠다. 하늘에는 보름달이 훤히 떴는데 마침 월식을 막 시작하고 있었다. 북두칠성이 백운봉산장 지붕 위로 걸려있다. 장백산 서파여유국 맹범영 국장이 나와서 환영의 인사말을 했고, 곧 윤대장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캠프 송을 부르며 흥을 돋우었다. 그러나 윤대장이 뱀술을 너무 과음한 탓인지, 내일의 일정을 위한 휴식 배려인지, 여흥을 짧게 끝내고 각자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