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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 ◉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
The Rich Man and the Beggar Lazarus.
(누가복음 16:19-21)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세상에서 존경을 받으며 부요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의 형편은 어떠하였습니까? 복음을 전하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사명이니 그들의 양식입니다. (요4:34 잠18:20)
이를 위하여 예수님과 사도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앞에 섰습니다. 부자의 대문에 누워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는 거지와 같습니다.
고난과 핍박이 그칠 날이 없으니 상처투성이의 모습입니다(사53:5). 진리라고는 전혀 모르는 개와 같은 자들이 그 상처를 핥습니다. (시22:16-18)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을 조롱하며 가는 곳마다 핍박합니다. (마7:6)
(누가복음 16:22-24)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사람은 짐승과 달라서 육체의 삶이 그 전부가 아닙니다.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 에 따라서 남겨놓은 행위의 열매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배척하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후회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도 입술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이기에, 불 속에서도 아브라함을 "아버지 아브라함…"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요8:39)
육체의 삶은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후회한들 다시 돌이킬 수는 없습니다.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저들의 혀를 시원하게 할 수 없듯이, 사도들을 보내어 음부에 처한 그 영혼을 위로하거나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지나간 행위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그 말씀의 불은 계속 타오르고 있습니다. 복음은 온 세상 땅 끝까지 전파되고 있습니다. 저들의 악한 행위는 복음이 가는 곳마다 말씀의 불에 뜨겁게 살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25-26)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예수님과 사도들은 세상에서 명예도 부(富)도 목숨도 다 잃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스리는 왕같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살아서 말씀으로 우리들을 다스리고 있는 것입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마19:27-29)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12:2)
아브라함을 향한 부자의 간청은 계속 됩니다.
(누가복음 16:27-29)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사람들에게 주어진 육체의 삶은 단 한번으로 족합니다. 다시 재생(再生)하여 세상을 살 수 없습니다.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이 큰 구렁텅이(a great gulf fixed)를 건넜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행위는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형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체념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간청합니다.
죽은 사도들을 형제들에게 보내어 자신들의 이 고통을 전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아직 세상에 남아있는 형제들이라도 이곳에 오지 않게 하여야 되겠다는 애절한 마음에서 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여기서 "모세와 선지자들이 세상에 있다"는 의미는 성경에 이 일들이 이미 예언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에 예언된대로 해를 받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와 선지자들의 예언, 곧 성경을 보고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거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행26:22-23 18:28)
뜨거운 불속에서도 부자의 간청은 계속 됩니다.
(누가복음 16:30-31)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목이 곧은 패역한 자들입니다. 설사 죽었던 베드로와 요한, 사도 바울이 그들 앞에 다시 살아나서 '하나님의 심판, 불의 고통을 직접 목격하고 왔노라'고 할지라도 회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구원받는 길은 오직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행17:2-5 18:28)
사랑하는 믿음의 형제 여러분! 이제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새롭게 깨달을 때도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기준은 사람들의 시각과 같지 않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계3:17 마7:22-23 계2:9 마5:3 고후6:10 삼상16:7)
예수님과 사도들은 거지 나사로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세례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야생꿀을 먹었으며, 예수님의 제자들은 밀이삭을 비벼 먹기도 하였습니다. 또 복음을 전하다가 많은 이들이 순교당하였습니다.
그러한 믿음의 선진들은 지금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워 영원한 위로와 안식을 상급으로 받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품'은 믿음의 세계, 곧 영원한 안식입니다. (마3:2 눅6:1 히11:36-37)
반면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경우는 어떠합니까? 그들은 세상에서 존경받으며 사도들보다는 부요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외식하는 교훈은 결국 교회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악한 행위는 성경에 기록되어 영원한 부끄러움이 되었으니 이것이 음부에서의 고통이요,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는 것입니다. (눅16:24-25)
이것이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그 연기가 꺼지지 아니하고 세세토록 올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계14:10-11)
그러므로 성도들에게는 잠간 스쳐가는 육체의 삶이 전부가 아닙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리는 영원한 삶이 진실로 중요합니다. 영생(eternal life), 그 영원한 삶은 말씀을 온전히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셨음을 알지 못하였기에 영생에 참여하지 못하고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 (요17:3)
Now this is eternal life : that they may know you, the only true God, and Jesus Christ, whom you have 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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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들의 해석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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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천국과 지옥은 실재하는가, 주요 일간지, 2012), 예수님은 지옥에 대해서 18번이나 말씀하셨다. 바울도(살후1:7-9), 베드로도(벧후2:4), 사도요한도(계21:8), 다 지옥이 있다고 했다. 영국의 캔터베리 대주교였던 주지 캐리는 “성직자들이여, 교인들에게 지옥을 가르치라, 성직자들은 세상의 종말과 천국과 지옥의 실재를 선포해야 한다”라고(The Times 98.7.23) 말했다.~ 예수님을 안 믿는 것이 제일 큰 죄이다. 죄 때문에 지옥 가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아서 지옥에 가는 것이다.
류광수(행복한 선물 2006. p.25-26,41).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살 수 있었던 사람이 죄 때문에 죽음의 저주를 받게 되었다. 죽은 후에는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으로 가게 되었다. 지옥은 나쁜 짓을 한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니라 죄의 문제를 해결받지 못한 사람이 가는 곳이다.~ 포항제철의 철을 녹이는 뜨거운 불과 비교도 안 되는 것이 유황불이다. 지옥에서는 자살도 할 수 없다. 육신은 자살할 수 있어도 영은 자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무수(부산제일교회 전도지, 1990), 뾰족한 못들이 촘촘하게 박혀있는 철판이 사람을 샌드위치처럼 만드는 곳, 사람들의 목을 길게 뽑아도 목이 끊어지지 않는 곳, 큰 도끼로 사람의 머리통을 찍어 반으로 쪼개는 곳, 천정에 사람을 거꾸로 매달아 펄펄 끓는 가마솥에 넣었다 뺐다 하는 곳, 사람의 사지가 갈기갈기 찢기는 곳, 사람의 몸을 김밥처럼 둘둘 마는 곳,, (교인 송○○의 지옥체험기, 1990.12.13).
송태근(쾌도난마 요한계시록2, 2013. p.100), 마귀가 갈 장소는 영원한 불로 예비되어 있다. 그런데 요즘 복음주의를 가장한 일부 학자들은 하나님의 속성상 지옥은 존재할 수 없고, 우리를 옳은 길로 이끌려고 하나님이 상징적으로 설정한 가상의 장소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옥은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이다.
신성종(국민일보 / 2011.9,30), 얼마 전 미국 랍 벨 목사의 ‘사랑이 이긴다’(Love wins)로 인해 ‘천국과 지옥 논란’이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신 목사는 “자기가 보지 못했다고 천국과 지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만일 지옥과 천국이 없다면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기꾼이 되는 것이다”고 했다.(원문보기)
안식일교회(요한계시록 1963 p.74,24), 이 짐승(두뿔 가진 짐승, 미국)과 거짓 선지자가 함께 산채로 유황불붙는 못에 던지운다. 이 불못은 노아때 홍수가 불못 같았던 것같이, 하나님께서 땅을 깨끗게 하실 때 땅은 끝없는 불못같이 보이는 곳에 던진 바 되는 것이다.
이송오(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91, 1999 p.5), 지구의 중심부에는 공동(空洞), 즉 속이 텅빈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말하기를 지구의 외곽은 두께가 32km 이내라고 한다. 32km를 지나면 뜨거운 용암이 끓는 곳이 있는데, 그곳을 성경에서 지옥이라고 부른다(막9:43,45).
정동수(영원히 불타는 지옥을 두려워하라, 2019, YouTube 37:30~), ①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눅16:23)... 눈도 있고 입도 있는, 모든 것이 다 달린 몸으로 지옥에 들어간다. 지옥은 영원무궁토록 불타는 용광로이다. ② 지옥에 들어가면 벗어날 수 없으니 화가 나서 통곡하며 이를 갈게 된다. 이런 말씀이 성경에 7번 나온다.(YouTube 38:30~), ③ 지옥에서는 그들의 벌레가 죽지 않는다(사66:24). 사람을 계속 태우더라도 불이 미처 닿지 않는 곳에는 시체가 썩어가니까 구더기가 있다. 그 몸이 영원무궁토록 죽지 않으니 구더기도 영원히 죽지 않는다.(YouTube 39:40~), ④ 지옥은 바깥 어두움, 칠흙 같은 암흑이다(마8:12 유11). 우주공간의 언저리로 나가면 사람이 발견하지 못한 암흑의 세상이 있다. 엄청난 온도로 새까맣게 태우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지옥불이 계속 타는데도 칠흑 같은 어두움, 블랙홀이 있는 것이다.(YouTube 41:30~)
조용기(요한계시록 1976 p.247), "지옥"이란 음부로써 유황불 못에 들어가기 전의 대합실이다. 구원할만한 사람은 모두 구원시켰고, 남은 영적인 쓰레기 인간들을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게헨나"에 던지는 것이다.
천주영(천국지옥간증, 천사모TV 2024), 지옥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 영원한 고통(20:20), 사방이 캄캄하고 끔찍한 비명소리,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악취, 집이나 나무도 없고 오로지 형벌 받는 사람 뿐, 모두 벌거벗은 채로 받는 형벌, 통닭구이처럼 꿰어 유황불로시커멓게~
Billy Graham(불타는 세계, 1968, p.215), 악과 죄의 창시자는 영원히 하나님의 우주로부터 축출을 당하여 다시는 인간을 괴롭히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나는 세계가 결국 불에 의하여 소멸되리라고 믿는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과학이 세계를 삼켜버릴 수 있는 무기를 창조해냈기 때문이다.
Emanuel Swedenborg(천국과 지옥, 2003, p.262), 천국은 세상에서 사랑과 신앙으로 산 사람들로, 지옥은 지옥적 사랑과 신조로 산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또 마귀와 사탄은 지옥을 통칭하는 말이다. 마귀는 악마들이 모여 사는 뒤쪽 지옥을, 사탄은 악령들이 모여 사는 앞쪽 지옥을 말한다.
G. E. Ladd(반즈성경주석 1990 p.350), 마귀와 그의 사자들은 영물(靈物)들로서, 육체적인 존재들이 아니다. 문자적인 이 불못이 어떻게 비육체적인 존재들에게 영원한 고통을 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추측하기가 불가능하다.
Hal Lindsey(계시록, 신세계의 도래 1976 p.250), 사탄의 기적과 복술로 불신자들을 매혹하던 거짓선지자와 로마의 적그리스도(짐승), 그들은 지옥불에 산 채로 던져질 것이다.
H. Kraft(국제성서주석 1983 p.397), 악마에게 형벌을 가하는 그 "영원한 불"(마25:41)이란, 지하로 내려가서 악마와 악마의 군대를 전멸시키는 불과 다른 것이다.
James B. Green(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대조해설, 1981 p.52). 사람의 타락과 죄의 형벌,, 오는 세상에서 받을 죄의 형벌은 위로의 하나님으로부터 끊임없는 영원한 지옥불 속에서 영육이 가장 슬픈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John R. Cross(엠마오 길에서 만난 사람, 2006), 사람은 오직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만 회개할 수 있다.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면 지옥 형벌에 들어가기 때문에 천국으로 갈 기회는 전혀 없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하나님과 분리된 채로 영원히 지옥 불 못에 있게 된다. 또 지옥에서는 영원한 고통을 잠시만 줄여 달라고 애원해도 아무도 도와줄 수가 없다. 은혜와 자비는 오직 이 세상에 있을 때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p.213).
모든 사람은 영원한 사망선고를 받은채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불 뱀에 물린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우리도 역시 죽어가는 자들이다. 머지않아 육체는 죽을 것이고 영혼은 둘째 사망, 곧 영원한 지옥 불 못에 들어갈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의 빚을 갚으셨다(p.264).
Neale Donald Walsch(신과 나눈 이야기, 1997 p.71,88), 지옥은 잘못된 사고로 너희가 겪는 고통이다. 그러나 "잘못된 사고"란 용어조차도 틀린 것이다. 잘못된 것 같은 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지옥은 기쁨과 정반대되는 것이다.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음이다. 그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는 있으되 체험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못난 존재다. 그것은 바로 지옥이며, 너희 영혼에게 그보다 더 끔찍한 건 없다.~ 악마같은 건 결코 없으며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
Nostradamus(대예언 지구의 종말은 오는가 1981 p.91), "유례없이 뜨거운 열과 번개"는 핵무기에 의한 최종 전쟁의 암시로 생각된다.
Robert H Mouncev(뉴인터내셔널주석 1987 p.326), 상징의 의미론(意味論)과 과장법(誇張法)은 적절하지 않다. 이 고통은 어린양과 그의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일어난다.
Robertson(원어연구해설 1986 p.383), 천국의 실상을 문자적으로 취급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옥에 대해서도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천국이나 지옥에 대한 상징적 표현들로서는 그 실상을 이해하기에 부족하다.
Theodore H. Epp(계시록의 실제적 연구 1989 p.159),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불못에 던져져서 고통받는데, 후에 그들은 사단과 모든 불신자들과 연합할 것이다(계20:10-15).
Watchman Nee(계시록연구 1995 p.210), "산 채로" 이는, 그들이 다 죽고 부활했기 때문에 그들의 육체는 두번 죽을 수 없다. 그러므로 산 채로 지옥에 던지우는 것이다.
W. Hendriksen(요한계시록 1989 p.189), 지옥에는 하나님의 진노만이 있을 것이다. 불과 유황불로 고통을 받게 된다. 이 심판이 너무나도 공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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