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넘긴 山 좋구나 발걸음도 사뿐사뿐
방방곡곡 뻗어 있는 철도 끝에 바로 오를 수 있는 산(山)이 있습니다. 매달 한 차례씩 주말매거진에서는 간편하게 기차 타고 가는 명산(名山)을 소개합니다.
충남 가야산(伽倻山·677.6m)은 호서지방 명산이자 생명의 산이다. 아산과 예산을 가르며 남북으로 길게 뻗은 능선은 어지간한 바람은 다 막아내 내포 평야를 지켜 준다. 산수화풍(風)의 봉우리와 기암 능선은 경관만 빼어난 게 아니다. 산아래 들녘과 건너편 산봉이 파노라마로 펼쳐질 만큼 조망 또한 좋다. 숲 우거지고 맑은 물 흐르는 골짜기도 여럿 있다. 그 깨끗한 물이 들판으로 흘러들어 곡식을 살찌운다. 그뿐인가. 2대에 걸쳐 천자(天子)가 나온다 할 만큼 명당자리가 산기슭에 있는가 하면, 산자락이 납작 엎드리기 전에 온천수까지 뿜어내는 곳이 가야산이다.
- ▲ 먹구름과 흰구름은 꼬리를 물려 쫓고 쫓겼다. 그 틈을 타고 파란 하늘이 열리면서 황락저수지가 영롱한 빛으로 빛났다. 가야산 석문봉 북릉에서 해미읍성 방향으로 바라본 풍경. / 영상미디어 허재성 기자 heophoto@chosun.com
먹구름이 눌러대도 푸른빛을 잃지 않은 논밭을 지나 산 안에 들어서는 순간 적막감이 엄습했다. 여러 날 이어진 가을장마는 산 안의 소요와 혼탁함을 산 밖으로 밀어냈다. 보이는 것은 숲 울창한 골짜기요, 들리는 것은 물소리와 풀벌레 소리. 그 자연의 소리는 가을을 재촉하는 듯했다.
그래서 여름을 넘긴 산은 너무도 좋다. 좁은 바윗골을 타고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옥녀폭포 위로 올라서자 갑자기 어두워진다. 안개는 골짜기를 한층 깊고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한다.
점점 가팔라지는 산길을 따라 능선에 올라섰다. 숲은 터졌으나 여전히 안개의 바다다. 더 오르면 뭔가 보이지 않을까 싶어 쉼 없이 석문봉에 올라섰다. 하늘이 열렸다. 발아래 서산의 신수 저수지는 쪽빛 연못처럼 아름답게 내려다보이고, 하늘에서 흰 구름과 먹구름은 쫓고 쫓기는 듯 꼬리를 물고 물리며 하늘을 휘젓고 다녔다. 구름 사이로 드러난 파란 하늘에서 맑은 햇살이 쏟아졌다. 가을이 내려오고 있었다.
산행길잡이
가야산 정상인 가사봉(袈裟峰·677.6m) 일원은 통신시설이 몰려 있어 통제되고 있다. 때문에 두 번째로 높은 석문봉(石門峰·653m)을 중심으로 산행이 이뤄진다.
석문봉 산행 기점은 남연군묘(南延君墓·충남도기념물 제80호)가 대표적이다. 남북으로 펼쳐진 가야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은 원래 가야사(伽倻寺)라는 사찰이 있었으나,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1820~1898)이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올 자리라는 풍수가의 말을 믿고 사찰에 불을 지르고 탑을 부순 뒤 경기도 연천에 있던 부친 남연군 이구(李球)의 무덤을 옮긴 것이다.
남연군묘를 기점으로 하는 석문봉 등로는 옥양폭포(일명 옥녀폭포)가 있는 일조암계곡을 경유하는 직등 코스, 관음사와 옥양봉(621m)을 경유하는 능선코스, 그리고 상가저수지를 거쳐 계곡과 609m봉 남쪽(혹은 북쪽) 갈림목을 경유하는 코스 등 세 가닥이 있다. 대개 계곡 코스로 정상에 오른 다음 옥양봉을 거쳐 다시 남연군묘로 내려선다. 약 3시간 30분. 난이도는 모두 ☆☆☆(☆ 5개 기준).
좀 더 긴 산행을 원하면 옥양봉을 거쳐 석문봉에 올라선 다음 가사봉 북동쪽 8부 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르다 헬기장 갈림목에서 북쪽 산길을 따라 남연군묘로 내려서도록 한다. 4시간 30분, ☆☆☆☆.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용현자연휴양림에서 일락산(516m)~석문봉~원효봉(605m)~원효암으로 이어지는 능선종주코스는 6시간 이상 걸리는 뻐근한 코스다. 휴양림 직전 보원사지에서 능선으로 올라붙은 다음 가사봉을 향해 종주하기도 한다(☆☆☆☆). 어느 쪽에서 산행을 시작하든 일락산을 거쳐 일락사로 하산하면, 해미읍성을 답사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 ▲ 안개 속에 군무를 추는 소나무 숲. 일락산 북릉.
● 열차 편으로 충남 가야산을 가려면 예산역이나 삽교역에서 하차해야 한다. 2개 역 모두 천안~익산 간 장항선 구간에 속해 있다. 서울 용산역발 장항선 출발시각 05:45, 06:30, 08:08, 09:35(새), 10:35, 12:20, 13:35(새), 14:25, 16:05, 17:35(새), 18:35, 19:55(새), 20:20. 1시간 50분 안팎 걸리며, 요금은 무궁화 8000원(삽교역 8500원), 새마을 1만900원(1만2600원).
경부선과 장항선 분기점인 천안 출발 시각은 06:55, 07:40, 09:20, 10:42(새), 11:44, 13:42, 14:38(새), 15:35, 17:14, 18:45(새), 19:45, 21:01(새), 21:30. 약 40분 소요, 요금 무궁화 2500원(2700원), 새마을 4500원(4700원). 문의 및 예약 1566-7788, www.ko rail.com. 예산역 041-335-7788, 삽교역 041-337-7788.
예산역 부근 예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09:05 출발하는 남연군묘행 예산교통(041-332-7494) 노선버스를 타든지(요금 2500원) 예산역이나 삽교역에서 택시를 이용한다. 요금 삽교역 1만5000원, 예산역 2만5000원. 예산개인택시 (041)331-2049. 일락사로 하산할 경우 해미읍내 택시를 불러야 한다. 요금 1만원. 해미개인택시 (041)688-2250.
● 산행 들머리인 덕산 일원에는 덕산온천관광호텔(입욕료 5500원·041-338-5000, www. ducksanhotel.co.kr), 덕산싸이판온천(6000원·041-338-8862) 등 대중온천탕을 갖춘 숙박업소가 여럿 있다. 리솜스파캐슬(041-330-8000·www.resom.co.kr)은 온천테마파크로 이름난 곳이다.
일락산 북쪽 용현계곡에는 숲속의 집(7동)과 산림문화휴양관(객실 13개)을 갖춘 자연휴양림이 조성돼 있다. 예약은 국립자연휴양림 홈페이지(www.huy ang.go.kr). 관리사무소 (041)664-1971, 8.
● 삽다리(삽교) 일원은 돼지곱창 요리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연탄불에 구워 먹는 곱창구이와 갖은 양념을 첨가한 곱창전골이 있다. 삽교역 부근 할머니곱창(041-338-2641)은 지역주민들이 최고로 꼽는 음식점이다. 구이 1인분 8000원, 전골 소 1만원, 중 1만5000원, 대 2만원.
덕산읍내 또순네식당(041-337-4314)은 다른 지역에서는 먹기 어려운 밴댕이찌개를 내놓는다. 허름하지만 이른 아침부터 주민들로 붐비는 식당이다. 밴댕이찌개 6000원, 갱개미(가오리)무침·주꾸미볶음 소 2만원, 대 2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