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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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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스크랩 이어령 박사의 간증
금비산 추천 0 조회 41 11.03.03 07:4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이어령 박사의 간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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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겸손으로 시작하는 인사

 

오늘 저를 여러분과 함께 만나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밤이 저에게는 가장 아름답고 값진 시간입니다. 거룩한 성탄절을 앞둔 주일에 제가 존경하옵는 김삼환 목사님의 초청으로 이 자리에 섰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저기 말단에 앉아서 기도하는 것도 황송한데, 믿음이 공고하지 않고 전혀 한 일도 없는 제가 이렇게 높은 단에 서서 저의 신앙고백을 하는 것은 참으로 분에 넘치는 일입니다.

 

정말 묘한 것은, 주님을 만나는 방식이 천이면 천, 만이면 만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똑같이 만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저처럼 평생 글을 쓰고 학생을 가르치는, 흔히 말해 글을 하는 사람, 지성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과 만나는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저는 2년 전 어느 큰 교회에서 다른 분은 간증하고, 저는 “나는 왜 예수를 안 믿는가?” 라는 주제로 거꾸로 간증하는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2년 후인 오늘 “나는 왜 예수를 믿어야 했나” 라는 간증을 하리라곤 꿈에도 생각을 못했지요.

 

당시 저는 일본에서 외롭게 지내면서 여러 가지 저작물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자취하면서 지냈는데 어느 날 그 부흥회에 초청되었던 겁니다. 보통 때 같으면 가지 않았을 텐데, 그땐 제가 너무 외로웠거든요. 또한 당시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1)”를 이미 막 썼을 때였습니다. 그 시는 내가 무신론자라는 것을 강력히 주장하면서도 어떤 무언가에 ‘아름다운 시 한 줄을 쓰게 하옵소서.’라는, 즉 시를 쓰는 영감을 주십사 기도를 드리며 쓴 것이지 하나님을 믿으며 쓴 시가 아닙니다. 외로웠을 때 그저 무릎 꿇고 기도한 것일 뿐 기독교가 뭔지, 하나님이 누구인지 제대로 몰랐을 때, 그래도 뭔가 얘기를 해줘야겠다는 마음에서 쓴 것이죠.

 

이걸 바탕으로 그 부흥회에서 “내가 왜 이 나이 될 때까지 하나님을 믿지 않았는가”라는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믿으시는 분들에게는 혹시 새로운 믿음으로 거듭나게 할 수 있고 주님과의 또 다른 만남도 있을지 모르겠다는, 그런 인간적인 발로였던 것입니다.

 

근데 그날 그곳으로 가기 전에 우리 운전기사가 거리만 보고 운행시간을 잘못 계산하는 실수를 했습니다. 가까운 곳이니까 30분이면 간다는 것입니다. 그 말만 듣고 식사를 하면서 시간을 맞추려고 30분을 더 기다리다 식당을 나오는데, 식당 주인이 얘기를 듣고는 교통체증 때문에 한 시간이라도 갈까 말까 하는 거리라고 일러주더군요.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기사보고 빨리 가자고 다그치면서 출발했는데 시작부터 빨간 불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가 모처럼 교회에 가는 착한 일을 하려는데 이러 시깁니까. 왜 빨간 신호를 주십니까.’ 그러자 파란 불이 탁 들어오는 겁니다. 그때 ‘야~ 하나님이 진짜 계시긴 하는 모양이다.’

그러고 가는데 또 빨간 불이 들어오는 거에요. ‘그러면 그렇지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비록 주님을 안 믿는 내가 오늘 모처럼 그 많은 사람이 모인 부흥회 자리에서 뭔가를 얘기하고 봉사하려고 그러는데 신이 있다면 이러실 수가 있나.’ 그 순간 또 파란 불이 들어오는 겁니다. 이렇게 몇 번을 거듭해서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는 동안에 유신론, 무신론 논박을 계속하면서 교회에 다다른 것이죠.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딱 30분 만에 도착을 한 겁니다. 빨리 가봤자 적어도 한 시간 거리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또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계신다, 안 계신다, 그러면 그렇지를 몇 번 되풀이하는, 그런 회의와 믿음을 반복하면서, 그리고 스스로 티격태격하면서 왔는데 결론은 30분 안에 도착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우연이었겠지요. 그날 재수가 좋았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제가 그 짧은 시간에 막혔구나! 뚫렸구나 하면서 일희일비하는 그때 그 생각을 해보면 ‘참으로 시련과 시험의 시간이었구나.’하는 걸 느낍니다.

 

이런 혼란스런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는 다른 것에는 거짓말을 잘하지만, 종교에 대해서는 거짓말을 못합니다. 그것만은 꼭 지킵니다. 왜냐하면 성서를 보니까 모르고 거짓말하는 사람은 그래도 하나님께서 다 구제해주시는데 알고 거짓말하는 사람은 아주 엄격하게 다스리시더군요. 그래서 세례받은 후로는 절대로 제가 어디 가서 믿는다 어쩐다 이런 얘기 안 합니다. 이런 불확실한 마음 때문에 저는 그간 간증하러 안 다녔습니다. 실제로 이런 갈팡질팡하는 속마음을 솔직히 말하면 사람들이 비웃겠지요. ‘저 사람 세례받았다면서 저런 소리 하러 다니는구나’하면서 조롱거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고백하건대 세례받은 지 1년이 되었지만, 지금 저는 아직도 식사 전 기도도 제대로 못 합니다. 70년 동안 굳어진 그 버릇 어디 남 줍니까?

어느 날. 식(食)기도를 안 하고 배가 고파 숟가락을 먼저 들었는데 집사람이 “여보 당신 또 식기도 안 한다.” 이렇게 얘기를 하더군요.

그럴 때 제가 “아이쿠 내가 잊었어. 미안~” 이런 솔직한 말을 해야 하는데 “아냐. 식기도는 다 먹고 난 다음 감사드리는 게 진짜야. 먹어보지도 않고 ‘감사합니다.’ 외치는 거. 그거 다 위선이야.”이랬습니다.

 

하지만, 집사람이 50년 이상 저랑 살았는데 절 모르겠습니까.

“아직도 그 변명하고, 둘러대고, 그런 지적인 조작! 머리 굴리는 거! 그거 여전히 못 버렸군. 그거 하나님이 다 아셔요.” 이러더군요.

 

제가 그런 거짓말을 할 때는 표정이나 목소리가 달라지거든요. 자신이 거짓말하는 것을 무엇보다 자기 자신은 잘 압니다. 그러니 거짓말 탐지기가 작동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아시기 전에 이미 나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게 바로 내 마음 가운데 있는 영성이고 심성이면서 바로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밖에 있지 않습니다. 믿으면 내 안에 하나님이 함께 거하시는 겁니다. 이것을 요즘 전 뼈저리게 느낍니다.

 

 

지적 호기심과 의심 그리고 준비된 믿음

 

저는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과 의심이 참 많았고 질문을 잘했습니다. 제가 처음 교회에 갔을 때 목사님이 노아의 방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이 지은 죄로 하나님께서 하늘 아래 있는 이 세상 모든 생명을 전부 홍수로 정죄하셨고 단, 노아의 방주에 들어간 생명만이 구함을 받았다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의심 많은 제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모든 생명을 멸하시고 노아의 방주에 들어간 생명만 살려줬다고 했는데 그럼 물고기는 어떻게 됐대요. 물고기는 노아의 방주로 안 들어가도 안 죽지 않습니까. 물에서 사는데…” 그러자 목사님이 매우 화를 내시면서 “사탄아. 물러가라!” 이런 말씀을 막 하시는 거에요. 사실 전 그동안 이런 짓만 하고 다녔습니다.

 

저에게는 20년 지기 목사 친구가 있는데 평소에 그를 많이 도와줬습니다. 단,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데 선을 분명히 긋고 시작했기에 그 목사는 저에게 절대로 예수 믿으라는 말을 안 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 목사를 만나기만 하면 계속 기독교의 여러 가지 잘못을 조목조목 따져댔습니다. 성서 이야기부터 기독교계와 교회의 부패에 대해서 계속 비판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정말 예수님을 안 믿을 사람이었다면 정작 그렇게 기독교에 대해서 욕하고 다니지 않았을 겁니다. 비유를 해보면, 보통 애들이 그러죠. “쟤 밥맛 없어 정말.” 그런데 청첩장에 보면 대개 배우자가 바로 그놈이에요. 무관심했더라면 전 이 자리에 서지 못했겠지요. 그게 모두 관심이었고 하나님은 저를 그렇게 쓰셨던 겁니다.

 

제가 젊었을 때. 지금 보면 섬뜩할 정도로 기독교에 대해 독설을 서슴지 않았어요. 우리가 먹을 양도 부족한데 뭐 때문에 하나님께 바치느냐고 공격적으로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니 하나님이 저에게 그렇게 시킨 거에요. 왜냐하면 이렇게 지독하게 말하던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걸 보여주시기 위해서였죠. 모태 신앙자 즉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을 섬긴 사람은 그러려니 했겠지만, 저처럼 잘난체하고 안 믿었던 사람이 믿었다는 사실을, 더구나 그간 내 행적을 잘 아는 친구들은 이런 나를 보면서 골똘히 생각할 겁니다. 결국, 기도라는 걸 생각하게 하는 거죠. 의심이 사라지는, 그런 믿음의 씨앗을 생각하겠죠. 내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핍박하고 틈만 있으면 쥐꼬리만 한 내 지성이 최고인 줄 알고 그것을 자랑해왔던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인간으로 변했는가를 하나님은 미리부터 준비하여 보여주신 거라 생각이 됩니다.

 

우리는 믿기 이전에 이미 믿음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에 비길 바는 아니지만, 그분이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탄압하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주님을 만나지 못하셨겠지요. 만나는 방식은 이렇게 다양합니다. 마치 사랑하는 법처럼 말입니다. 한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 사람도 있고 티격태격하다가 만나는 사람도 있듯이 저 역시 아주 특이하게 주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만나기 이전에 과거 어렸을 때부터 했던 것들이 뭔가 지금과 연관된, 보이지 않는 끈에 의해서 계속 이어져 왔음을 알게 됩니다.

 

 

제비 이야기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호기심이 많아 선생님께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어느 날. 가장 느린 짐승과 가장 빠른 짐승에 대해 배우는 과학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칠판에 거북이, 달팽이 등을 그려 놓았는데, 맨 위에 제비를 그려 놓으셨습니다. 그중에 제일 빠른 짐승은 어떤 것인가를 물어보셨지요. 어린 나이인데도 저에게는 참으로 그 질문이 유치했습니다. 저는 좀 고차원의 호기심이 있었고, 곧바로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제비 둥지에는 여러 마리의 새끼들이 자기 얼굴보다 더 큰 입으로 먹이를 달라고 벌리는데, 신통하게도 어미는 새끼들을 구별하여 알아보고 물어온 먹이를 차례로 골고루 공평하게 나눠 주는 겁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인간처럼 일일이 구별하여 알아보는 것일까요? 먹이를 주는 기준이 도대체 뭡니까”

 

이때만 해도 선생님은 좀 짜증스러운 인상이었습니다. 근데 연달아 그다음 질문을 했지요.

“선생님. 정말 이상합니다. 모든 새는 사람이 무서워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둥지를 트는데 어째서 제비는 뭘 믿고 사람 집에다 집을 짓고 사느냐는 것입니다.”

 

그제야 선생님이 화가 나서 “너. 나와!” 부르시더니 제 뺨따귀를 그냥……

선생님은 자기를 놀리면서 수업을 방해하는 줄 알고 그리 노하셨는데, 전 정말 궁금해서 그런 질문을 한 것이거든요.

 

이후에 첫 번째 질문의 해답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더군요. 과학으로 밝혀진 사실인데, 벌레를 먹은 새끼는 입을 덜 벌린다는 것입니다. 배고픈 놈이 더 많이 벌린다는 것이죠. 그 입 크기를 알아보고 어미 제비는 먹이를 주는 것입니다. 어미는 고민하지 않고 입만 보면 누가 배고픈 새끼인지 알아보는 것이죠. 그러니까 입 큰 녀석에게 먹이를 던져주면 아주 정확하고 공평하게 들어가는 것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입을 크게 벌려라! 그럼 먹이를 줄 것이다.” 이런 얘기^^

 

그런데 요즘은 그게 슬픈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먹이를 물어오는 시간이 1분도 채 되지 않았답니다. 그만큼 벌레들이 많았다는 것이죠. 하지만, 지금은 농약에다가 환경오염으로 벌레가 많이 없어졌기 때문에 먹이를 물어오는 시간이 10분에서 20분 정도 걸린답니다. 그 시간에 먹이를 먼저 먹은 놈은 이미 소화가 다 되어 배고픈 놈처럼 입을 크게 벌리는 것이죠. 그러니 어미가 헷갈릴 수밖에요. 이걸 정보이론에서 “노이즈(잡신호)”라고 합니다. 최근 제비 개체 수가 적어지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렇게 먹이를 주는 코드가 혼란스러워졌다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질문은 풀렸고, 두 번째. ‘유독 제비는 뭘 믿고 사람 집에다 집을 짓고 사는가.’ 이건 도대체 어디에도 명확한 해답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세례받고 나서 ‘아, 그게 믿음이었구나. 믿으니까 안 잡혀먹히는구나.’하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믿으면 축복받는 것입니다.

 

성서를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신전에 제비가 둥지를 트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 제비 같은 미물도 신을 믿고 둥지를 트는데,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신전 앞에서 믿음으로 둥지를 튼다면 주님께서 당연히 보호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이걸 깨달으니 그 어렸을 때 내가 품었던 의문이 풀렸고 결국 이게 믿음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믿음 그리고 눈물

 

여러분이 성경을 얼마나 읽으셨는지 몰라도 저는 대학에서 기호학, 수사학을 가르치면서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그 문장 전체를 점검하고 또한, 그 비유법을 분석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사람이 쓰는 레토릭(rhetoric,수사법)이라 볼 수 없는 놀라운 문장입니다. 한편 구약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은 굉장히 무서운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징벌을 내릴 때는 아주 혹독하고 갑작스럽게 들이치십니다. 사람을 과녁으로 삼기도 하시지요. 이렇게 징벌을 주시는데도, 이렇게 당하는데도, 인간은 하나님을 찾고, 찬양하고, 그 무언가 심상에서 끓어오르는, 참을 수 없이 나오는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건 단지 하나님이 사전에 은사를 주셔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Give and Take?” 여러분이 교회에 나오셔서 그날로 축복받고 모든 게 다 잘된다면 얼마나 쉬운 일입니까. 그러나 안 주시는데도, 오히려 박해를 받는데도, 일이 안 풀리는데도 믿는 것. 이것이 정말 어렵고 참된 신앙임을 저는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세례를 받을 때 머리에 물을 막 부어주더군요. 그때 말할 수 없는 눈물이 눈에서 막 쏟아졌습니다. 왜 울었는지 당시 나 자신도 몰랐습니다. 생각해보니 그것은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사람이 강한 체하지만, 정말 얼마나 고독하게 삽니까. 한참 싸울 때 누군가 옆에서 진정 위로해주면 눈물 나지요. 내 인생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역성드셨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동안 강한 척하고 요란하게 글 쓰고 잘난 체했던 내가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주님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세례받기 전. 사실 저는 사람들 앞에서 세례를 받는 게 너무 쑥스러워서 목사님께 부탁했었습니다. 당시 일본에 가서 강연해야 했는데 내친김에 거기 호텔 방에서 몰래 받기로 했지요. 다락방에서 기도드리는 마음으로 조용히 치르려고 했습니다. 이런 마음이 든 사정에는 아직도 공고하지 않은 내 믿음도 작용했던 겁니다. 근데 상황이 잘못되었습니다. 차라리 우리나라 교회에서 떳떳하게 받았으면 별일 없었을 텐데, 강연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이 뉴스거리로 만들고자 그 세례받는 현장에 전부 몰려 온 겁니다.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카메라가 들이대는 데도 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만 했습니다.

 

이 눈물이 무엇인가. 바로 오늘 얘기하려는 주제입니다.

 

지성은 울지 않습니다. 분석하고 심판하고 의를 따지기 때문에 지성은 차고 명증하고 투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성의 눈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이죠. 눈이 흐려지면 제대로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슬프고 고통스러워도 지성의 눈은 아주 맑고 명료한 호수처럼 되어야 합니다. 결국 제가 흘린 눈물은 지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감성, 감정 그리고 사랑이죠. 이것은 지성의 무력함이요. 지성으로는 도저히 안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건 의로운 하나님 이전의 것입니다. 즉 사랑의 하나님이죠. 의로움이라는 거. 이거 자기 입장마다 전부 다릅니다. 인간은 가치관에 의해서 모두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서로 싸우고 괴로워하고 할퀴고 증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런 입장이 없습니다. 세상 어디든지 사랑은 똑같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눈물이 있거든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눈물을 흘려주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우문우답을 하더군요.

“기독교인이 세운 미국이 남북 전쟁을 할 때. 남군, 북군이 모두 하나님께 똑같이 서로 저주하는 기도를 드렸을 텐데 과연 하나님이 누구 편을 들었겠는가?”하는 어리석은 질문을 하더군요. ‘그런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 하나님이 있었겠나’라는 반론이지요. 그러나 그런 기도는 절대로 하나님이 받아주시지 않습니다. 아마 이렇게 하셨겠지요. “그래. 그렇게 타일렀는데도 그처럼 서로 잔인하게 싸우느냐. 전쟁을 한다니 어쩔 수 없구나. 단, 전쟁을 하되 부상당해 목마르고 배고파하는 포로가 있다면 그에게 빵과 포도주를 주도록 해라.” 하나님은 이런 사랑의 하나님이시지 선과 악을 판별하는 의롭고 지적인 하나님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지적인 하나님이었다면 저는 지적 능력을 소유한 지성인으로서 제가 굴복할 때까지, 끝까지 하나님께 대적했을 것입니다. 지성은 서로 대결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사랑 앞에서는 지성이고 뭐고 간에 다 소용이 없어집니다. 눈물을 흘렸던 그 느낌을 증폭시켰더니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주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할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 라고 하지 않습니까. 내가 만일 우리 딸아이에게 사랑을 안 해주었다면 교인인 우리 딸이 그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 어릴 적 아버지께 학대받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그 “아버지”란 대목에서 말을 흐릴 겁니다. 어머니가 사랑하는 것은 다분히 살갗으로 느껴지는 육체적인 사랑이죠. 당신 몸으로 나았으니까요. 하지만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는 건 법입니다. 질서, 이성, 이런 겁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이성 속에 담겨 있는 사랑만이 아니거든요. 정의의 하나님이지만, 그런데도 애틋한 사랑이 있는 하나님. 그게 바로 아버지입니다.

 

근데 오늘날 아버지들이 아주 형편없어졌습니다.

아버지의 권위 즉,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못하면서부터, 그런 아버지 없는 사회(Fatherless Society)가 되면서 기독교도 점점 무너지고 있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 어머니”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느냐. 간혹 페미니스트는 과거 남자들이 만들었기 때문이라고도 그러는데, 그런 차원의 얘기가 아닙니다.

 

제 딸은 미국 검사였습니다. 딸아이는 비행 소년들을 데려다가 전도하는 봉사를 했습니다. 대부분 아이들이 회개하면서 이런 말을 했답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이런 나쁜 짓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사랑을 통해 가르쳐만 줬어도 자신은 오늘 이 자리에 있지 않았을 거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아버지가 없어지므로 해서 신은 죽었다는 소리가 나온다고 저는 봅니다. 아버지가 신이라는 얘기가 아니고 비슷하다는 것이죠.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을 아는 것은 내 아버지가 진정 누구인지, 즉 아버지의 진실한 역할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아버지가 타락하고 권능이 없어지고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방황하고 구제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질서, 법, 정의, 지성 위에 “+”된 사랑. 이게 아버지입니다.

 

여성이 지성이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모성애는 거의 100%가 사랑입니다. 하지만, 남자는 경우가 다릅니다. 아버지의 사랑. 그 속에는 회초리도 있고 껄끄러운 수염도 있고 어떤 질서의 분위기와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직접 인간의 몸으로부터 나온 육체의 연장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이렇게 아버지의 영혼이라는 것을 담고 태어난 것이죠.

 

 

무지개

 

사실 전엔 이런 걸 몰랐습니다. 그런데 우리 딸애가 겪은 것을 같이 느끼면서, 내가 딸을 사랑하고 딸아이가 나를 사랑하는 관계를 십 배, 천 배 증폭해보면서 종교가 무엇인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이런 면에서 기독교가 우리에게 더 친숙해졌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글 쓰는 사람이기에, 제가 쓴 시 중 하나와 연관하여 말씀드립니다. 그 시에서 저는 “사랑이란 일종의 눈물이 흐르고 나야 무지개가 뜨는 것과 같다”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그 시를 쓰게 된 동기는 이렇습니다. 어느 날 제가 자동차를 타고 가는데 강원도의 어떤 분이 라디오를 통해 어릴 적 체험담을 얘기하는 걸 들었습니다. 이런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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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흰 쌀밥을 못 먹습니다.

어렸을 때. 언니들이 4학년이 되면 처음으로 도시락을 싸 가는데 그게 그렇게도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4학년이 되길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드디어 4학년이 되었고, 도시락을 싸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에게 조르고 졸라서 처음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간 날. 그저 점심때만을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점심때가 되었고 도시락 뚜껑을 열고 먹으려고 하는 순간…… 완전 꽁보리밥인 겁니다. 아주 새까만 보리밥 말이죠.

 

어머니는 미망인이었고, 우리는 가난했습니다. 딴 애들은 전부 흰 쌀밥을 싸왔는데 나만 꽁보리밥인 거에요. 창피하니까 얼른 뚜껑을 닫고 바깥으로 뛰어나왔습니다. 그렇게 학교에서 도시락 먹는 것이 꿈이었는데… 가난했기 때문에 꽁보리밥을 싸주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젓가락 하나도 안 댄 도시락을 보셨습니다. 그렇게 도시락 싸달라고 노래를 부르더니 웬일이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냥 배가 아파서 못 먹었다고 했습니다. 거짓말을 한 겁니다. 그 말을 듣고 어머니가 혀를 차시고 그냥 가시더군요.

 

그 다음날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꽁보리밥이면 어떠냐. 난 그냥 먹겠다. 너희들 날 비웃으려면 그리해라.’ 그러면서 열어보니 하얀 쌀밥인 겁니다. 보리밥이라서 내가 안 먹은 걸 아신 것이지요. 이 흰 쌀을 구하러 다니시느라고 얼마나 애쓰셨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막 쏟아져 못 먹는 거에요. 다시 뚜껑을 얼른 닫고 또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어머니가 이번에도 안 먹은 걸 보셨습니다.

“왜 또 안 먹었니” 물어보셔서 ‘오늘도 배가 아파서…’ 라고 말하려다가 그냥 어머니 품에 안겨서 울었습니다. 어머니도 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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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의 눈물이 무슨 눈물입니까. 가난의 눈물입니까? 그게 아니지요.,

딸은 어머니에게 상처주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한 거고 어머니는 뻔히 알면서도 애가 기죽지 말라고 흰 쌀밥을 싸주었지요. 그때, 둘이 끌어안고 울었을 때, 그들은 가난하고 슬펐지만 가슴에는 무지개가 뜬 거지요. 바로 사랑의 무지개 말입니다. 마치 비가와야 하늘의 무지개가 뜨는 것처럼 이렇게 서로 모녀가 부둥켜안고 사랑하는 그 순간에 이 눈물은 흐르는 것이고, 가난의 고통은 극복되는 것이고, 가슴에는 무지개가 뜨는 겁니다.

 

이게 인간입니다. 가여운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얼마나 측은하시겠어요. 저것들이 저렇게 가난한데도, 그래도 눈물을 흘리면서 서로 사랑하는구나, 그렇기 때문에 죄를 지었는데도 용서해주시고 구하시려고 내려오신 것입니다. 어머니와 딸이 이런 사랑을 나누면 거기에 바로 예수님이 거하시는 겁니다.

 

요즘 연속극을 보면, 상대방의 아픈 곳만 골라서 말을 팍팍 쏴요. 증오에 가득 찬 소리들입니다. 부부간에, 모녀지간에, 부자지간에 대화하는 거 보면 끔찍합니다. 이렇게 교회가 많은데도 우리 주변에는 증오의 소리만 가득 차있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의 마음이 넓어도 이런 연속극을 보는 한 그 속에는 하나님이 안 계십니다.

 

 

아버지의 간증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제 딸은 미국에서 잘 나가던 검사였습니다. 딸 자랑하는 건 불출이지만, 이 아이는 이화여대에서 삼 년 만에 영문학과 불문학을 복수 전공했고 또한 올 에이로 졸업한 녀석입니다. 미국 가서 검사 일을 할 때 한국에서 배운 영어실력을 갖추고도 원주민보다 영어를 더 잘했습니다. 참 똑똑한 애입니다. 난 이 애를 사랑했지만, 얘가 너무 똑똑하고 지적이니까 관념적으로만 사랑했지 정말 가슴속 깊은 사랑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암에 걸리고 가정에 우환이 들고 눈까지 안 보이게 되는 실명위기가 왔습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이미 악화되어 보름이면 못 본다는 것입니다. 그때 딸은 하와이에 와 있었습니다. 손주가 과잉행동을 하는 아이입니다. 특수학교에 입학시키고자 온 것이죠. 망막이 찢어져 가고 있어서 눈이 반밖에 안 보인다는 딸의 전화를 받고서 우리 부부는 급히 하와이에 갔습니다.

 

딸아이가 암에 걸렸을 때 검사직을 관두었습니다. 얘가 똑똑하고 잘 나갔을 때는 걱정도 안 했는데 이런 상황에 이르니 처음으로 측은하게 느껴지더군요. 불행해지고 약해지니까 냉정한 저도 눈물이 나는 겁니다. 고이는 겁니다. 그리고 딸이 앞으로 내 얼굴을 못 본다고 생각하니까 이거 미치는 거에요. 이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그 맑은 큰 눈, 어머니의 품에 안겨 생명을 준 자기 아버지라는 사람을 처음 바라봤던 그 눈. 바로 내 모습을 봤던 그 눈. 그 빛이 사라져서 나를 못 본다는 건, 내 지식으로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눈이 멀어가는 딸아이를 보았을 때. 정말 눈물이 막 쏟아지죠. 하지만, 내가 흘리면 얘가 가슴 아파할까 봐 못 울었습니다. 태연하게 “걱정하지 마라. 너는 하나님도 믿고 그러는데 괜찮아질 거야.” 이렇게 말해줬지요. 근데 갑자기 딸애가 소원 하나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 소원은 이 아버지가 자기를 따라서 교회에 나가줬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번만이라도… 그게 꿈이라는 겁니다. 눈이 안 보이는 자기가 구제받아야 할 텐데 오히려 몸 성한 자기 아빠보고 안 됐다, 불쌍하다, 그러면서 교회에 나가라는 겁니다. “아빠. 난 괜찮아. 앞을 못 보는 목사님이 계시는데, 나보다 훨씬 행복하고, 설교를 하시는 걸 보면 눈 뜬 사람보다 더 많은 걸 보셔. 하나님이 많은 걸 보여주시더라고… 난 각오가 되어 있어. 걱정 마.”

 

나중에 안 거지만, 당시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아버지가 딸이 눈을 못 본다는 것을 너무 슬퍼하는 거 같아, 그것 때문에 가슴이 아팠답니다. 마치 자기 자식에 대한 아픔처럼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을 하니까 못 견뎠다는 거에요. 딸애가 설거지하다가 그릇을 깨뜨렸을 때 아빠가 우는 걸 보고 안타까움을 참을 수가 없었답니다. 자기는 정말 괜찮은데…. 이게 진정 우리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래. 내가 지금 뭘 못 들어주겠니. 교회에 나갈게.” 그때 전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던 거죠. 안 믿었지만, 이처럼 자식이 원하는데… 그래서 평생 처음 진심으로 교회에 같이 따라나갔습니다.

 

제가 따라간 곳은 하와이언, 주로 원주민들이 다니는 아주 조그만 교회였습니다. 여기처럼 큰 오르간도 없고, 조그만 전자피아노와 컴퓨터 영상으로 주님의 찬양과 말씀을 전하는 아주 초라한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더군요. 서로 손을 붙잡고 찬양하면서 말입니다. 솔직히 전 노래와 춤을 멋쩍어서 못합니다. 지금도 저는 “할렐루야!”란 말을 크게 소리치지 못합니다. 지성인이라는 게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창피해서 못하는 거죠. 하지만, 딸애가 옆에서 원하니 저도 같이 쫓아서 했습니다. 근데 목사님이 각자 차례로 소원 하나를 말하라고 했습니다. 여럿이서 빌면 성령이 내려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무릎 꿇고 처음으로 주님께 소원을 빌었습니다.

 

‘하나님. 저하고 계약 하나 하십시다. 만일 우리 딸이 정말 세상을 볼 수만 있다면 그때부터 제가 가진 모든 능력 즉, 글 쓰는 것과 입담을 하나님을 위해 쓰겠습니다.’ 그렇게 절실하게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제발 눈 좀 뜨게 해달라고 말이죠. 하지만 현지 병원에서는 현대 의학으로 도저히 안 된다는 겁니다. 찢어진 각막을 잘못 건드리면 마치 뜯어진 스타킹이 더 뜯어지는 것처럼 될까 봐 수술도 못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이와 상의했죠. 아무래도 미국은 소송이 빈번해서 혹 잘못되면 그리 될까 봐 병원에서 엄살을 떨 수도 있으니 우리나라에서 수술을 받자고 했지요.

 

며칠 동안 같이 기도도 하고 그랬는데 아이가 기분이 많이 좋아지고 조금씩 보인다고 하더군요. 그때만 해도 제 기도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얼마 안 되어 딸아이가 귀국했고, 서울대학병원에서 검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진단 결과는 놀랍게도 각막이 찢어진 적도 없고 찢어졌다가 붙은 흔적도 없고 완전한데 왜 그러냐는 거였습니다. 영어가 서툴러서 미국 의사들의 말을 잘못 들으신 거 아니냐고 되묻더군요. 그 순간 저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아이구, 이제 난 끝났다.’보통 약속한 것은 지켜야 하는 법인데 이거 하나님하고 맺은 약속 아닙니까. 전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교인으로서 모든 생활이 바뀌어야 한다는 걸 생각하니… 내 주위에 말썽 많은 친구들. 이것들이 와서 나를 얼마나 괴롭힐까 걱정이 되더군요. 그래서 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야. 이건 기적이 아니야. 실로 기적이라는 건 영생을 얻는 거야. 난 성경의 말씀을 알고 있어. 오병이어! 주께서 오병이어 갖고 기적을 만드셨다고 했어. 그 떡! 그거 죽는 떡이야. 잠시 배부른 것뿐이지. 주님께서 말씀하셨어. 영원히 배부르고 영원히 주리지 않는 영생의 떡인 나를 두고서, 왜 죽는 떡을 보고 기적이라고 부르느냐고 말씀하셨어. 얘가 눈이 나은 거. 설령 기적이라 치자. 그렇다고 얘가 영원이 사냐. 잠시 조금 봐 주신 것뿐이지.’

 

한편 이런 사정을 듣고 온 큰 교회 목사님이 오시더니 “이제 믿으시는 거죠?”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그때 제가 “아직 제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으니 못 믿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목사님이 대단히 실망하고 가시더군요. 이렇게 전 그 약속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의사들이 진단하길 반쯤 찢어져 나간 각막으로는 복구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얘는 처음부터 찢어지지 않았다는 거죠. 내 기도 덕분은 아니라고 보지만, 어쨌든 나는 ‘눈만 뜨기만 하면…’이라고 말씀드렸고 이것이 이루어졌으니 그 약속을 지켜야 하는데 자꾸만 거부를 하는 겁니다. 사탄은 굉장히 집요하기 때문에 절대로 한방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근데 결정적인 순간은 그 다음 날에 찾아왔습니다.

딸아이가 너무 기분이 좋아진 거에요. 그날 아침. 딸애가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새벽기도를 하러 나가려는 중이었습니다. 저도 아침 일찍 일어났지요. 그날따라 너무 청명한, 그야말로 탄산수 같은 그런 맑은 공기에 먼동이 확 터오는 아침이었습니다. 우리 집은 좀 높은 위치에 있습니다. 얘가 마당 계단을 막 뛰어내려 가는데, “아빠!” 하면서 날 쳐다보며 교회 다녀오겠다고 반갑게 인사를 하더군요. 그 모습이 너무너무 행복해 보이는 거에요. 어둠 속에서 매일 눈물로 지새던 애가 그렇게 밝을 수가 없는 거에요. 바로 그때 내가 만약 ‘나 세례받을 게’ 이 한마디만 해주면 딸아이한테는 완벽한 아침! 일평생 가장 완벽한 행복의 아침이 되는 겁니다. ‘내가 이걸 못 해주겠느냐, 네가 이렇게 살았는데…’ 그래서 내가 뭐라고 그랬느냐면 “얘야. 너 목사님 만나면 나 세례받는다고 그래라.” 이렇게 제 입에서 저절로 나와 버린 겁니다

 

딸애는 그날 교회에 가서 15분 동안 이런 자신의 경험을 간증했답니다. 거기서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렸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목사님이 딸아이의 아빠가 누구인지 밝히면서 그분이 세례받기로 했다고 광고를 했답니다. 거기에 일간지 기자가 있었는데 그 다음날 대문짝만 하게 기사가 나고 말았습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말이죠(-_-;)

 

저는 그때부터 꼼짝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교묘하게 사람을 쓰시는구나. 너무 하시다.’하면서 목사님께 전화로 이것 좀 막아달라고, 내가 준비가 안 되었다고, 세례받을 때 요란 떨고 싶지 않다고, 이번 외국 강연회에 가는데 거기서 몰래 받으면 안 되겠느냐고 간청을 했습니다. 어쨌든 이지경이 된 것이지요. 세례받은 날. 일본에서 기독교집회 특별강연을 했는데 거기에는 일본의 재계 CEO들이 참석을 했습니다. 그들은 비기독교인으로서 초청받은 사람들이었지만 목사님 말씀보다는 제 말이 더 설득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나를 자신과 똑 같은 비기독교인으로 알고 있었는데 제가 “세례받았습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릅니다…”이렇게 강의하니까, 어떤 분은 저의 강연을 듣고 그날 바로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질투하시더군요.^^

 

 

고해의 시

 

결국 제가 말씀드리려고 한 것은, 지성은 이 눈물에 무력하다는 겁니다. 영성이 뭔지 몰라도 인간은 눈물을 흘리는 순간 죄를 씻고 가슴을 씻는 것이죠. 사랑은 눈물입니다. 인간이 완전하다면 사랑도 기쁨과 행복으로만 끝나겠지만,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죄인이기 때문에 인간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고통의 시작인 겁니다. 아픔의 시작이죠.

 

아이가 아프다고 했을 때 우리 인간은 속수무책이지만 같이 아파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멀쩡한 사지를 가졌어도 옆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가슴 아파합니다. 그게 사랑입니다. 오늘 저의 강연에 앞서 노숙자와 장애인을 위한 찬양과 간증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고통을 내가 보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런 나의 고통을 덜기 위해서라도 그분들이 빨리 일어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게 어떻게 지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건 지성의 세계가 아니라 그 문턱을 뛰어넘어 더 높은 세계에 이르는 작은 계단입니다.

 

이러한 심정을 저는 시를 통해 표현했습니다.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1)”는 제가 신을 믿지 않았을 때 교토에서 쓴 것입니다. 당시 너무 외로웠기에, 모든 사람이 다 놀다 간 주말 깜깜한 밤에, 텅 빈 연구실과 그 큰 숙소에서 내방에만 불이 켜져 있었을 때, 먼데서 보면 그게 별빛처럼 보였을 때 그리고 오는 사람도 가는 사람도 사랑할 사람도 미워할 사람도 없는 그 깜깜한 밤에 혼자 앉았을 때, 그때 그 절대 고독을 통해서, 자기 연민을 통해서, 어렴풋하게 뭔가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시로 썼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제단에

꽃 한 송이 바친 적이 없으니

절 기억하지 못하실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만드셨습니까.

그리고 처음 바다에 물고기들을 놓아

헤엄치게 하셨을 때

저 은빛 날개를 만들어

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를 때

하나님도 손뼉을 치셨습니까.

아! 정말로 하나님

빛이 있어라 하시니 거기 빛이 있더이까.

사람들은 지금 시를 쓰기 위해서

발톱처럼 무딘 가슴을 찢고

코피처럼 진한 눈물을 흘리고 있나이다.

모래알만 한 별이라도 좋으니

제 손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아닙니다. 하늘의 별이 아니라

깜깜한 가슴속 밤하늘에 떠다닐

반딧불만 한 빛 한 점이면 족합니다.

좀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당신의 발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

때묻은 손으로 조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아 그리고 그것으로 저 무지한 사람들이

가슴속을 풍금처럼 울리게 하는

아름다운 시 한 줄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하나님

***

 

이렇게 그 시를 쓴 겁니다. 잘 보시면 “아름다운 시 한 줄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글 쓰는 사람으로서 아름다운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가슴을 울리고 싶었지 믿음과 신앙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려 하지 않았던 거죠. 그때까지 저는 무신론자였습니다. 근데 믿고 나서 쓴 시(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2)를 대조해서 보십시오.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닙니다.

어렴풋이 보이고 멀리에서 들려옵니다.

어둠의 벼랑 앞에서

내 당신을 부르면

기척도 없이 다가서시며

“네가 거기 있었느냐”

“네가 그 동안 거기 있었느냐”고

물으시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달빛처럼 내민 당신의 손은

왜 그렇게도 야위셨습니까

못자국의 아픔이 아직도 남으셨나이까.

도마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나도

그 상처를 조금 만져볼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혹시 내 눈물방울이 그 위에 떨어질지라도

용서하소서

아무 말씀도 하지 마옵소서.

여태까지 무엇을 하다 너 혼자 거기에 있느냐고

더는 걱정하지 마옵소서.

그냥 당신의 야윈 손을 잡고

내 몇 방울의 차가운 눈물을 뿌리게 하소서.

***

 

이렇게 무신론자의 기도와 하나님을 알고 난 후의 기도의 차이는 큽니다.

여기서 눈치 채셨는지 몰라도 하나님에게 위로받고 나의 아픔을 구제받기 위한 마음보다도 하나님을 알고 난 후에는 하나님이 너무 외롭다는 거, 하나님의 손이 너무나도 파리하다는 거, 차갑다는 거, 거기에 내 눈물을 뿌리고자 하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죠.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인간은 각자가 고독하고 혼자 태어나 죽는 법인데 비로소 우리는 누구를 진실로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인간에 대한 사랑이 아닙니다. 끝없이 변절하고 끝없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영원한 것이 아니기에, 인간에 대해 진실로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그건 고통이고 번민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을 사랑하고 찬양하는 것. 그것은 오직 한 분인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은 것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며

 

끝으로 죽음이라는 테마가 결국은 기독교의 구제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 온갖 정의로움 등 여러 가지 교회 활동이 많습니다마는, 교회에 나가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과 내가 마주 서는 겁니다. 그 순간에는 민족도 국가도 커뮤니티도 교회조차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조국이 귀중해도 내 죽음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민족이 아무리 소중해도 내 죽음을 한치도 움직이지 못합니다. 우리는 죽어야만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지상에서 쌓아 올린 모든 가치는 덧없는 것이고 아무 값어치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분명히 예언합니다. 틀림없는 예언을 합니다.

백 년 후에 우리는 이렇게 마주 볼 수가 없습니다. 내 목소리도, 들으시는 여러분도, 목사님도, 풍금 소리도,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시각장애인도, 눈뜬 자도 이 자리에는 없습니다. 분명합니다. 그러나 단 하나의 기적이 있다면, 그건 영원한 삶을 믿는 것입니다. 그게 극락이 아니라도 좋고 천당이 아니라도 좋고 최후 심판일에 나팔 소리와 함께 죽은 자가 거듭나는 날이 안 온다 할지라도 살아있는 동안 그 영생을 믿느냐 안 믿느냐가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이걸 내가 여섯 살 때 알았다면은 여러분 곧이들으시겠습니까. 이 시를 읽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이건 “메멘토 모리”라는 제목의 시인데, 이 제목은 “죽음을 기억하라.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알아라” 라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목숨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의 기저귀를 차고 나온다.

아무리 부드러운 포대기로 감싸도

수의(壽衣)의 까칠한 촉감은 감출 수가 없어.

잠투정을 하는 아이의 이유를 아는가.

- 중략 -

애들은 미꾸라지 잡으러 냇가로 가고

애들은 새둥지 따러 산으로 가고

나 혼자 굴렁쇠를 굴리던 보리밭 길

여섯 살배기 아이의 뺨에 무슨 연유로

눈물이 흘렀는가.

너무 대낮이 눈부셨는가.

너무 조용해 귀가 멍멍했는가.

굴렁쇠를 굴리다 흐르던 눈물

무엇을 보았는가.

메멘토 모리

훗날에야 알았네.

메멘토 모리

어렸을 때 그 찬란했던 여름.

 

정적의 그 보리밭 길을 굴렁쇠를 굴리며 지나갔을 때 저는 한 없이 울었던 걸 기억합니다. 친구가 없어서, 외로워서, 집이 가난해서, 그러한 물질의 풍요와 우정이 없어서 울었던 게 아닙니다. 뭔지 모르지만, 그 대낮 속에서 죽음을 봤던 것이죠. 내가 죽는다는 생명의 한계를 알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울었는데… 그땐 몰랐지요. 지금 보니까 바로 죽음에 대한 인식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주님 곁으로 가는 것의 마지막 테마는 우리가 보통 물질에 투자하듯이 영생을 얻는 투자의 일부분으로 교회에 부지런히 나와야 합니다.

 

아주 장난꾸러기이고 지금도 무신론자임을 훈장처럼 차고 다니는 친구 녀석이 저한테 살그머니 오더니 귀에다 대고 “진짜 믿는 거야? 진짜야?” 그러더군요. 그래서 저는

“응, 그래.” 그랬죠. 그랬더니 그 친구가

“정말 믿어져?”

“그렇다니까.”

“교회도 나가고?"

“응”

“교회에서 사람들이 막 미친 듯 손드는 거 보고 정말 믿어져?”

“그럼. 믿어지지” 그리고 결국 제가 이렇게 되물었어요.

“왜 믿는지 아냐? 자네 한번 길 지나가는 사람에게 천 원 달라고 해봐. 소매치기를 하던 뭔 짓을 하든 한번 가져와 보게” 그랬더니 친구가 멍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얘기했죠.

“힘들지? 근데 이상하게도 말이야. 교회를 갔더니 소매치기나 강도도 아닌데 헌금 시간 되니까 돈을 다 내놓더라고. 그게 쉬운 일이냐? 그게 가짜라면 그걸 내놓겠어? 그 사람들이 바보야? 너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들이야. 그래도 안 믿겠니? 그렇게 자네가 잘 났으면 어서 가서 길가는 사람에게 돈 달라고 해봐. 과연 단돈 천 원이라도 주나…”

 

그랬더니 그 친구가 갑자기 화제를 돌리면서 목사들의 비리를 얘기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답했죠.

“그래~, 당연하지. 그런 목사들 많아. 그러니까 더욱더 우리는 교회에 다녀야 되는 거야. 자네 지금 이상한 교회, 이상한 목사 많다고 그랬지? 병원마다 모든 의사가 명의인가? 당연히 아니지. 그렇다고 병들었을 때 병원 안 가나? 식당 가면 모든 메뉴가 다 맛있어? 설령 극장에 가서 보는 영화가 재미없다 할지라도 다니다 보면 그중에 명화가 있는 법이야. 자네도 한번 가보게.”

 

외롭고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된다고 했을 때, 이젠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고 했을 때, 그때 가야 할 곳이 있다면 얼마나 축복받은 것입니까. 배고플 때 식당가면 해결되고 심심할 때 극장이나 PC방 가면 해결되고 도서관에서 책 읽으면 무료한 시간이 달래지지만, 종국에 가서 도서관도, 극장도, 최고급 레스토랑도 어딜 가도 자신의 허전한 마음을 채워줄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갈 데가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아셔야 합니다. 그걸 저주하거나 비웃지 마세요. 그렇게 하면 자신의 영적 가능성을 모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버려진 돌

 

저는 아직도 믿음이 공고하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끝없이 회의를 하고 밤잠을 설치며 땀을 흘리면서 제 자신이 미워질 때가 있습니다. 지금 전 간증하러 여기 섰습니다만, 여러분의 믿음만큼 강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간증한다는 것은 그래도 믿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몇 번이고 하나님을 의심하고 정말 이건 믿는 게 아니야 해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님과 동행하신 제자들도, 심지어 물 위를 걸어오시는 그분을 보고도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배신하지 않았습니까. 하물며 우리 같은 사람이 때론 하나님을 배신하고 안 믿는다고 생각하고 가끔 탈선한다고 해도 너무 괴로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건 우리 힘으로 믿어지는 게 아니라 주님의 힘으로 믿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가 설령 이상한 생각이 들고 시험에 들어서 마귀의 장난에 빠진다 할지라도 여러분이 이내 마음을 잡고 믿으시면 저 같은 사람처럼 조금씩 그 계단을 올라갈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 여기 성공하신 분도 있고 실패하신 분도 있을 겁니다. 저는 요즘 부끄러운 경험을 했습니다, 유명 라디오 방송 주관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에 대해 투표를 했는데 제가 뜻밖에도 8위를 했더군요. 아무리 생각해도 난 성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또 성공한 사람이라면 자랑 안 합니다. 하나님은 유명하다고,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그 이유로 우리를 쓰시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지배하고 이 세상을 관장한 것은 제왕들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정치가, 재벌 등 실물 경제를 쥐는 사람이겠죠. 그들은 자신의 신전을 매번 지었습니다. 하지만 그 신전을 지을 때 자기 표준으로 돌을 고릅니다. 그들이 짓는 신전은 지상의 신전이지 하늘의 신전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안목은 자기 기준으로 돌을 판단하여 신전에 갖다가 초석을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그 외 돌들은 쓸모없는 기준미달의 부스러기 돌로서 전부 내버리죠. 과연 그 신전에 쓰인 돌들이 선택받은 성공한 돌들일까요.

 

그건 성공이 아닙니다. 오히려 버려진 돌! 내버린 돌! 그게 바로 하나님이 쓰시는 돌이라 이겁니다. 지금 가난하고 고통스럽고 불행한 사람들이 현실에 신전을 짓는 데는 쓸모가 없는 돌이지만, 하나님이 오실 때는 참으로 쓸모 있는 귀한 귓돌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모두 그런 분들입니다. 이건 절대로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교회는 20명부터 시작했습니다. 명일동 버스 차장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누구도 돌보지 않는, 내버려진 돌들을 주어다가 만든 신전입니다. 그 20개의 돌이 이렇게 엄청 큰 돌이 되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수 만개의 돌로 이루어진 실로 큰 신전이 되었습니다. 버려진 돌을 주어다가 이렇게 주님이 키워 주셨습니다. 한편으로 그분의 종이시자 그런 사역을 담당해오신 목사님을 존경합니다. 여기 교회 다니시는 여러분이 자화자찬하시기에 뭐하니 이렇게 제가 와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여러분이야말로 버려진 돌들이지만, 이제 하나님의 귓돌로 쓰신 여러분이라는 걸 오늘 이 밤 확인시켜 드립니다.

 

저 역시 그런 돌 중의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간증의 시간을 갖게 해주심으로써 이렇게 귀하게 귓돌 중 하나로 만들어주신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그에 답한 시를 읽어 드리고자 합니다.

 

길가에 버려진 돌

잊혀진 돌

비가 오면 풀보다 먼저 젖는 돌

서리가 내리면 강물보다 먼저 어는 돌

바람 부는 날에는 풀도 일어서 외치지만

나는 길가에 버려진 돌

조용히 눈 감고 입 다문 돌

가끔 "행인"의 발부리에 채여

노여움과 아픔을 주는 돌

걸림돌

그러나 어느날 나는 보았네

먼 곳에서 온 길손이 "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여기 귓돌이 있다 하셨네

마음이 가난한 자들을 위해 집을 지을

귀한 귓돌이 여기 있다 하셨네

그 길손이 지나고 난 뒤부터

나는 일어섰네

눈을 부릅뜨고

입 열고 일어선 돌이 되었네

아침 해가 뜰 때

제일 먼저 번쩍이는

일어서 외치는 돌이 되었네

***

 

여러분. 신의 은총이 여러분 교회에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혹여 남들이 “하나님이 정말 계시냐?”라고 물을 때는 이렇게 하십시오.

“네. 계십니다. 우리 교회를 보세요. 이게 증거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귀한 목사님과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리면서 이만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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