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정 이 랑
공중에 집짓고 사는 자여 온종일 떡하니 벌린 입술 무엇을 토해놓고 싶은 것이냐 말 많은 사람들 세상 내려다보며 그들이 스스로의 마음에서 멀어질 때 목젖까지 드러내고 꾸짖는 커다란 音聲 머리 위에는 손잡은 바람과 구름, 밤이면 어둠과 별빛마저 한곳에 묶어 놓고 또 무엇을 섞어놓고 싶은 것이냐 이곳 저곳 기웃거리기만 하는 나를 네 몸통 후려치던 힘으로 출렁이는 바다 한 척 배같이 밀어 넣고 싶은 것이냐
<연보>
1969년 음력 12워 8일 나주정씨 29대손으로 부친 정석진 모친 김영자 사이의 1남 4녀 가운데 차녀로 태어났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할아버지 산소에 제사를 지내려고 큰집식구들과 함께 간 그곳에서 독사진을 찍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이후로 집에서는 본명인 은희라는 이름보다는 ‘거심이’라고 불렀다. 고집이 세다고 해서 그렇게 불려짐.
1977년 경북 의성군 다인면 다인초등학교에 실제 나이 9살 입학. 당시 과수원 농사를 짓던 부모님 슬하에서 자매들과 사과, 복숭아, 자두, 살구, 배... 많은 과수들과 냉이, 쑥, 달래, 민들레, 질경이 등 식물들과 접할 수 있었던 것이 좋았던 초등학교시절 『프란다스의 개』라는 책을 도서실에서 우연히 빌려 읽게 되어 이 다음에 이런 멋진 글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되겠다고 맘먹음.
1983년 다인중학교에 입학. 그곳에서 서지월 시인을 만나 시를 본격적으로 쓰겠다는 맘을 가졌다. 집에서부터 학교까지 30분 넘는 길을 걸어다녔던 산골소녀는 학교로 책을 팔러 나온 사람에게 전집을 사서 『빨강머리 앤』이라는 소설을 3년 내내 일고 또 읽고... 그래서 주인공 앤처럼 되고 싶었던 열정으로 졸업.
1986년 다인종합고등학교 실업계에 입학. 문인이 되는 길은 무조건 신춘문예에 등단을 해야 된다고 결심하였다. 그래서 방학내내 소설을 썼다. 제목은 「산새가 된 소녀」였다. 동아일보 중편소설에 투고를 했다. 당시 미성년자는 투고를 받아 주지 않았다. 나중에 신춘문예 담당기자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어린나이에 그 열정이면 이 담에 꼭 훌륭한 작가가 될 것이라며 열심히 쓰라는 격려였음.
1989년 다인종합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로 올라와 <우진서적>이라는 곳에 취직을 하였다. 무조건 책하고 가까이 있으면 그 어떤 힘든 일이라도 다 이겨내겠다고 생각했다. 남동생과 자취를 하면서 월급 12만원으로 사회생활에 뛰어듬.
1990년 시창작전문강좌인 <대구시인학교>에 입학을 하고 거기에서 중학교 국어선생님이었던 서지월 시인을 만나 시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문예공모며 문학기행을 다니면서 많은 문인들을 접함.
1997년 7년 간의 긴 공부 끝에 「꽃씨를 뿌리며」외 4편으로 『문학사상』신인발굴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1998년 등단하고 1년만에 <대산문화재단 문학인창작지원금> 수혜시인으로 선정. <대구시인학교>회원들과 19일가나 중국 옛 고구려땅을 밟고 왔음.
1999년 대구MBC 사보와 신문 기자로 활동. <시원>의 동인이 됨.
2000년 대구MBC 사보기자로 활동하면서 지금의 남편 우희명을 만나 5월 6일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결혼식을 함. 그 해 9워 30일 아들 승현을 낳음.
2001년 대구 서문시장에서 남편 우희명과 <서문시장정보센터>를 운영.
2005년 등단하고 9년만에 첫시집 『떡갈나무 잎들이 길을 흔들고』(시안 황금알) 발간. 현재 대구 서문시장에서 홈패션 전문몰을 운영하고 있음. |
첫댓글 못 들어서 아쉬워요. 수업날 4년 동안 해온 모임을 졸업 앞두고 정리하는 날이라 안 갈 수 없어서 가다보니 수업에 빠지고 말았네요.
종 ! 감명깊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