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일까요? 이 문제를 생각해 보기 위해 한 번 역사의 한 조각을 살펴볼까요.
"신라 제27대 왕은 선덕여대왕(善德女大王)이니, 성은 김씨이고 아버지는 진평왕이다. 632년에 왕위에 올라 나라를 다스리는 16년 동안 미리 안 일이 세 가지가 있었다."
위의 내용은 우리의 역사에 여왕이 다스리던 때가 있었음을 말해 줍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500년 전인 632년에 신라의 선덕왕이 여왕으로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선덕여왕이 즉위한 일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것은 이미 지나간 과거에 일어난 일이지요. 그러니까 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이미 지나간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현재의 우리가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과거의 기록이 있기 때문입니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와 같은 책을 보면 신라 시대에 일어났던 여러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에 우리의 역사에 여왕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록해 둔 것이지요. 이러한 점에서 보면 역사는 '기록된 과거의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선덕여왕이 앞날을 미리 알아낸 세 가지 일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선덕여왕은 모란꽃 그림을 보고 향기가 없다는 것을 알았고, 백제의 적군이 숨어 들어온 일을 밝혔으며, 자신이 죽을 날을 미리 알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으로 선덕여왕이 명민하고 슬기로웠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삼국사기》에서는 선덕여왕에 대해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삼국사기》(보물 525호)
"사람으로 말하면 남자는 높고 여자는 낮다. 신라는 여자를 추대하여 왕위를 잇게 하였으니, 진실로 난세의 일이며 이러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보수적인 유학자였던 김부식은 여왕 자체를 매우 낮추어 평가했습니다. 이처럼 역사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과거의 사실'과 '기록된 사실'이라는 의미이지요. '과거의 사실'은 객관적인 것입니다. 신라에 여왕이 있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기록된 사실'은 역사가가 주관적으로 다시 구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록하는 사람에 따라 달리 표현될 수 있습니다. '기록된 과거의 사실'인 역사책에는 역사가의 주관적인 해석이 담겨 있는 것이죠. 그렇다고 역사가가 있지도 않은 사실을 조작하거나 왜곡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가는 기본적으로 객관적인 과거의 사실을 전하려 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실을 선택하고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여 주관적인 해석이 담기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볼 수도 없고, 이미 지나가 버린 역사를 우리는 왜 공부할까요. 그것은 과거의 세계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과거의 세계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카(E. H. Carr)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습니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역사를 배우면서 과거 세계와 만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역사를 공부하는 일이야말로 과거 세계와 현재의 인간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만남의 광장인 것입니다. 이 만남에서 우리는 많은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첨성대(국보 31호)동양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대
과거의 세계를 만남으로써, 우리는 과거의 사실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가 인간적으로 성숙해지는 데 도움을 줍니다. 현재는 과거의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역사 속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슬기와 노력으로 극복한 조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과거에 펼쳐진 역사적인 경험이 우리에게 지혜를 일깨우고 용기를 북돋워 줍니다. 즉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과거의 사실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서 출발하여, 현재를 사는 우리의 성장을 약속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곧 미래를 향한 바른 안목을 길러나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과거는 현재로 이어지고, 현재는 다시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