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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동백이와 함께한 외륜봉 종주
만보 직장 김형두 선생님 산행기~
서백두에서 북백두까지
-김형두-
-2001년 이화산악회 백두산 산행기
-1. 준비
백두산 산행기를 쓰려고 하니 어디서부터 시작하여 끝마무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참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번 경험은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기에 글이 조금 길고 지루하더라도 처음부터 차근차근 쓰기로 하였다. 이번 산행에 참가한 회원은 물론 참가 못한 회원들도 궁금한 점이 많을 것이고 훗날 백두산 산행을 할 경우 참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백두산 산행기는 출발과 도착 과정, 중국 시가지의 모습을 생략하고 산행 시작부터 이야기를 써나가지만 나는 글의 시작을 산행 준비 과정과 출발 모습부터 시작하여 심양에서의 마지막 밤을 끝으로 마감하려 한다.
백두산 산행을 처음 계획한 것은 2년 전인 1999년이다. 분단으로 가보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민족의 영산 백두산. 비록 우리 땅을 거쳐서 갈 수는 없더라도 중국땅 만주 벌판을 달려서라도 가보고 싶은 게 비단 산악인만의 바람이던가. 우선 결심을 확고히 하기 위해 참가 신청을 받으면서 모두들 2년 만기 100만 원 짜리 적금부터 가입을 하였다.
다음으로 백두산 산행을 맡길 만한 산악회를 물색하기 시작하였다. 관광이 아닌 산행 위주로 계획하였기 때문에, 북백두 쪽 천지와 장백폭포를 관광하고 연길, 용정에 가서 곰쓸개나 먹고 쇼핑하고 돌아오는 관광 상품이 아닌 백두산 산행 전문 산악회를 찾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두서너 군데 회사를 알아내서 신중한 검토 끝에 작년 겨울 고어텍스아웃도어클럽과 첫 접촉을 시도하였다. 코스와 일정, 비용을 놓고 여러 차례 협의를 가진 후 금년 봄 자세한 계획을 수립하여 참가 신청자를 상대로 1차 설명회를 3월 22일 본관 204호에서 가졌다. 이후 백두산 산행에 관한 관심과 호응이 점차 커져가면서 참가 신청자가 40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5월 30일까지 여권을 제출 받아 단체 비자를 신청하고, 부서별로 해외여행 허가서를 결재 받고, 산행 경비를 입금시키고, 개인별로 부족 장비 구입을 주선하였다. 5월 29일. 우리 나라로 말하면 국립공원관리공단인 '중국 길림성 장백산 국가급 자연보호구 여유국장'의 초청장이 왔다. 만반의 준비가 끝났다고 보고 출발날짜만 기다리며 2차이자 마지막 설명회를 가졌다. 6월 25일 참가자 거의가 모여 백두산 비디오 화면을 감상하고 산행 설명을 들은 후 윤치술 아웃도어클럽장과 질의 응답 시간을 가졌다.
출발 전날. 가방과 배낭 하나에 짐을 꾸려 보았다. 예상외로 짐이 많았다. 그 목록을 보면,
(장비) 윈드 재킷, 긴 바지 2벌, 반바지 하나, 긴 소매 셔츠 2벌, 반소매티 3벌, 갈아입을 속옷 상하 3벌, 양말 5켤레, 등산화, 샌들, 판초 우의, 등산 스틱 2개, 선글라스, 랜턴, 주머니칼, 방석, 장갑, 모자 2개, 스카프, 무릎보호대, 휴지, 칫솔, 치약, 면도기, 수건, 보온병, 수통, 컵, 선크림
(먹거리) 오징어포, 커피믹스, 비스킷, 사탕, 빵, 잼, 육포, 미숫가루, 양갱 5개, 홍삼편 5갑, 초콜릿 1봉지, 땅콩 캔, 볶은고추장, 우황청심환 2개.
(기타) 태극기, 교기, 이화산악회기, 한번쯤 비를 만날 것에 대비하여 옷을 많이 준비하였지만 그래도 너무 많이 가져가 현지에서 바퀴도 없는 무거운 가방을 들고 이동할 때마다 팔이 빠졌다.
2. 출발 7월 4일. 교내 대강당 옆에는 아침 9시가 넘자 이화산악회 백두산 산행 참가 회원들이 저마다 배낭과 커다란 가방을 들고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인천공항까지 우리를 태워 줄 버스가 도착하자 40명의 대부대가 버스에 올랐다. 총무처장, 자연사박물관장, 몇 분 과장 그리고 함께 못 가는 회원 몇몇의 부러운 전송을 받으며 9시 30분 버스는 출발하였다.
2년 전부터 준비해 온 백두산 산행 팀이 이제 장도에 오르는 역사적(?) 순간이다. 버스에는 우리말고도 이번 산행을 총지휘하는 아웃도어클럽 윤치술 대장과 서울대 도서관 산우회원 3명(김성중 한국의 산하 운영자 일행)이 같이 타고 있다. 약간의 흥분과 설렘 속에 버스는 인천공항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인천공항에는 공항으로 직접 나온 우리 회원과 또 같이 산행할 15명(이후 우리와 구분하여 18명을 B팀이라 불렀다)이 더 있었다. 총 58명이다.
오후 1시 30분. 드디어 중국 북방항공의 비행기가 인천공항을 출발. 1시간 30분 후인 현지 시간 2시에 심양공항에 내렸다. 밖에는 제법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며칠째 내리는 비라고 하니 슬며시 걱정이 된다. 이번 산행 일정을 위해서 날씨가 좋아야 할텐데. 대가중인 전용 버스 2대에 나눠 타고 심양 시내로 들어갔다. 시내에서 움직이는 차량들은 대부분 외제차들이다. 벤츠, 폭스바겐, BMW. 우리가 타고 가는 버스도 벤츠다. 거리에는 LG와 삼성 광고가 많이 보여서 반가웠다.
기내식을 들었지만 특별히 준비한 북한 냉면을 먹기 위해 우리가 들른 곳은 북한에서 운영한다는 칠보산 호텔내의 옥류관 식당이었다. 냉면이 나오는 동안 종업원인 북한 처녀들이 나와서 노래 서비스를 한다. 노래방 기계를 틀고 "반갑습네다" "아침 이슬" 등을 그녀들 특유의 은방울 굴리는 목소리로 부른다. 생글생글 눈웃음을 치며 TV에서 보던 표정 그대로다. 나중엔 우리 일행의 손을 잡아끌고 같이 부르기도 하고 춤도 추고 조화로 만든 꽃다발을 건네 주기도 한다. 조화를 보니 얼마나 많이 써먹었던 것인지 꾀죄죄하다. 나는 얼른 꽃다발을 옆 사람에게 선심 썼다. 냉면은 우선 그릇부터 특이했다. 얇고 넓적한 쟁반에 받침이 붙어 있는 것이 얼른 멀리서 보고 신선로 그릇인 줄 알았다. 호기심에 맛있게 먹었다. 입이 짧은 송기용 총무과장은 내게 반 이상 덜어낸다.
냉면 식사 후 열차 시간까지 요녕성 박물관을 관람하고 대청성 문을 지나 거리 산책을 하였다. 청태조 궁은 관람 시간이 지나 문을 닫아서 구경을 하지 못하였다. 다시 버스를 타고 거대한 모택동 동상이 있는 광장 구경을 하였다. 동상의 높이는 모택동의 생일을 뜻하는 12.26m라고 한다. 광장에서는 시민들이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고 있었다. 우리 일행들도 같이 따라한다. 조성숙, 김평운 선생도 무거운 등산화 발을 움직여 가며 열심히 따라해 본다. 중국 사람들은 우리를 구경하고 우리는 중국 사람들을 구경한다. 심양 구경을 대강 마치고 아직도 배가 부른데 대청화라는 만두 전문 중국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였다. 여러 가지 요리 뒤에 나오는 만두는 그 종류가 다섯 가지가 넘었다.
통화로 가기 위해 심양역으로 갔다. 세상에! 이게 언젯적에 지은 역인지 수리는 언제 했는지 천정 텍스는 군데군데 뻥 뚫려져 있고 그 사이로 불에 검게 탄 서까래까지 보인다. 화장실에 다녀온 사람들마다 황당했던 경험담에 열을 올린다. 우리 나라 50년대를 연상케 했다.
개찰이 시작되고 깜깜한 플랫홈에서 안내가 잘 안된 탓에 우왕좌왕하다 뛰어서 맨 끝에 매달아 놓은 침대 칸에 올랐다. 다른 칸과 통하는 출입구를 잠가놓아 우리만의 전용 칸이다. 그런데 침대 칸에 당초 계획대로 인원 배정을 해 놓고 보니 이상하게도 침대가 모자란다. 알고 보니 12칸인 줄 알았던 침대 칸이 11칸이다. B팀과 서로 약간씩 양보하여 침대 배정을 끝냈다. 밤 10시. 드디어 열차는 캄캄한 만주 벌판을 달려가기 시작했다.
-침대열차-
침대 칸을 보면 1칸이 좌우 3층으로 6인용으로 되어있다. 맨 첫 칸인 우리 조는 짐이 무거워 맨 아래 침대에 짐을 모아두고 나머지 침대에서 5명이 자기로 했다. 그때 역무원이 다가왔다. 짐을 놓아 둔 우리 침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뭐라고 쏼라쏼라 한다.
-역무원 1 : "@&^%寢臺#$我%^就寢&*&!(쏼라쏼라)"
-우리들 : "???"
-역무원 1 : *&^$#@*&^%$!(쏼라쏼라)
-우리들 : "이 친구 뭐라 그러는 거지?"
알고 보니 이 침대는 자기가 자야겠으니 내 놓으란다. 웃긴다. 역무원 휴게실이 엄연히 따로 있고 베개까지 놓여 있는걸 아까 봤는데 승객보고 침대 하나를 내놓으라고 생떼를 쓴다. 열받지만 어쩌랴. 사회주의국가에서. 근데 조금 있으니 아까 역무원 1을 따라서 다른 역무원2가 또 온다. . 이 역무원2는 바로 위 2층 침대를 가리키며 또 쏼라쏼라 해댄다.
-역무원 2 : "@&^%寢臺#$我%^就寢&*&!(쏼라쏼라)"
-우리들 : "어쭈, 이 짜식들이 아주 웃기네!"
결국 우리가 져주는 수 밖에 없었다. 역무원이 갑이고 승객이 을이다. 우린 엄한 강일구 선생을 옆칸으로 방출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밤중인데 밖에서 기적 소리가 요란하고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열차가 한바탕 요동을 치는 바람에 잠을 깨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창 밖을 보니 갑자기 열차가 방향을 바꿔 아까와는 반대 방향으로 달린다. 심양에서 출발할 때 맨 뒤쪽에 있던 우리 침대 칸이 이번엔 맨 앞칸이 되어버린 셈이다. 열차는 새벽이 밝아오는 만주 벌판을 신나게 달린다. 더 이상 잠자긴 글렀다. 일어나서 침대를 기어 내려와 세면 도구를 들고 수도로 갔다. 수도꼭지를 튼다. 이런! 녹물이 조금 나오더니 아예 물이 끊겨버린다. 할 수 없이 어제 남겨둔 생수병의 물로 대강 양치만 하고 들어왔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옥수수 밭, 그리고 간간이 보이는 붉은 벽돌집들. 엊저녁의 그 엽기 역무원과는 간단한 영어 단어조차도 안통해서 이번엔 한문 필담으로 대화를 하였다. 그런데 웃기는건 간자체를 쓰는 중국사람이 우리가 써보이는 진짜 한자를 잘 못알아 본다. 어찌어찌하여 通化 到着時間? 하고 써서 보이니 그 역무원은 손가락 여섯 개를 펴 보인다. 엊저녁에도 자꾸만 내 차표를 보고 저쪽 침대로 가라고 손짓을 해 대기에, 全員 一行, 自律座席이라고 이행 시를 써 보이니 그제야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3. 도착 -통하역-
7월 5일. 열차는 심양을 출발한 지 8시간 만인 아침 6시에 통화에 도착하였다. 짐을 모두 역구내에 모아놓고 감시를 붙여 두고 역 밖으로 빠져나갔다. 우선 식당으로 들어갔다. '석마두부왕(石磨豆腐王)'이란 -아마도 맷돌로 갈아 만든 두부를 말하는 모양이다- 다소 거창한 간판이 붙어 있는 중국식 뷔페식당이다.
식사 후 통화 시내를 구경나갔다. 당초 열차 시간이 아침 8시 40분이었는데 예고 없이 이 열차는 없어지고 10시 35분 열차로 시간이 늦춰졌다고 한다. 이 또한 사회주의국가이니 항의해도 소용없다고 한다. 일부는 사우나를 한다고 목욕탕으로 갔고, 나머지는 삼삼오오 흩어져 시장 구경을 갔다. 시장에는 갖가지 과일이 진열되어 있고 생선과 돼지고기만 파는 코너도 있다. 누군가 '리쯔'라는 과일을 사서 먹어 보라기에 맛을 봤다.
구경을 마치고 10시 35분에 다시 침대 열차를 탔다. 어제 밤 열차에는 승무원이 남자였는데 오늘 낮에는 승무원이 모두 여자다. 점심은 통화 식당에서 준비한 도시락이었는데, 반찬이 맞지 않아 서울서 가져간 볶은고추장에 밥을 비벼먹으니 그나마 한결 개운하였다. 나중에 중국 여자 승무원이 오더니 고추장을 좀 달랜다. 우리가 먹던걸 지나가다가 본 모양이다. 고추장으로 밥을 맛있게 먹는 게 신기하다.
오후 3시. 송강하에 내렸다. 백산기획 최희주 선생님과 직원들, 그리고 장백산 서파보호구 직원들까지 대거 환영을 나와서 반긴다. 역 밖에는 전용 버스 2대가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버스가 서백두 입구인 서쪽 산문을 향하여 달렸다. 산문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4시 20분. 여기가 고도 1000m 지점이라고 한다. 시간이 계획보다 지연되어 윤대장과 의논 끝에 금강대협곡은 내일로 미루고 오늘은 왕지(王池)부터 보기로 했다. 서쪽 산문에서 버스로 자작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임도를 40분 정도 간 후 버스에서 내려 걸어서 왕지로 향했다.
-서파산문-
4. 서백두의 비경
눈앞에 펼쳐지는 놀라운 광경. 온통 들꽃 천지다. 천상의 화원이 이럴까. 보라색 붓꽃이 군락을 이루고 그 사이로 걸어가며 너 나 할 것 없이 탄성을 지른다. 붓꽃 군락지가 끝나고 온통 흰색 꽃인 바이칼꿩의 다리 군락지가 나타난다.
-고산화원-
왕지가 가까워 질 무렵 갑자기 시커먼 소나기구름이 몰려오더니 환영의 인사로 빗방울을 뿌린다. 허겁지겁 숲속으로 들어가니 눈앞에 호수가 나타난다. 왕지다. 그리 크지 않은 잔잔한 호수 수면에는 수초가 떠 있고 태고의 신비를 머금고 전설이라도 간직한 듯한 분위기로 맞는다.. 되돌아 나오는 길에 모두들 야생화 속에 파묻혀 사진을 찍고 어쩔 줄을 모른다. 하늘은 언제 비를 뿌렸냐는 듯 어느새 활짝 개고 저 멀리 백두산 봉우리가 손짓을 하고 있었다.
숙소인 백운봉산장으로 돌아오니 저녁 7시 15분. 모두들 방을 배정받고 씻은 후 저녁 식사를 하였다. 서백두 유일의 숙박 시설인 백운봉산장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원래는 장백산 임업국 소관 건물이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이를 개조하여 산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전력은 산장 앞을 흐르는 계곡물을 이용하여 자가 발전으로 자체 공급하고 있다고 한다.
걱정했던 화장실은 커텐으로 가려져 있어 남녀 출입구 구분이 좀 애매했지만 그래도 수세식이었고, 공동 샤워장은 1층이 여자용이고 2층이 남자용인데 수압이 약하고 더운물을 쓸 수 없었지만 씻을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열 명씩 원형 식탁에 둘러앉아 먹는 산장의 식사는 그런대로 먹을 만하였다. 특히 윤대장이 주방장에게 만드는 방법을 교육시켰다는 김치찌개 맛이 그럴 듯했다.
-백운봉산장-
저녁식사 후 윤대장과 일정을 협의하는 자리에서 귀하다는 백두산 사주(뱀술)를 마시게 되었다. 술을 잘 못하는 나도 남자에게 좋다는(?) 말에 넉 잔이나 마셨는데, 주당으로 소문난 김문갑 선생이 어쩐 일인지 피하며 사양한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캠프파이어를 한다고 산장 마당에 장작불을 피웠다. 하늘에는 보름달이 훤히 떴는데 마침 월식을 막 시작하고 있었다. 북두칠성이 백운봉산장 지붕 위로 걸려있다. 장백산 서파여유국 맹범영 국장이 나와서 환영의 인사말을 했고, 곧 윤대장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캠프 송을 부르며 흥을 돋우었다. 그러나 윤대장이 뱀술을 너무 과음한 탓인지, 내일의 일정을 위한 휴식 배려인지, 여흥을 짧게 끝내고 각자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5. -들꽃 천지-
-만보 부부-
7월 6일. 새벽 5시에 기상. 6시에 아침 식사. 7시에 산장을 출발하였다. 어제의 임도를 버스를 타고 가다가 맑고 차가운 시냇물을 만나 수통을 채웠다. 산장을 출발한 지 50분만에 고산화원에 도착하였다. 나지막한 전망대가 둘 있고, 야생화가 만발하여 저마다 자태를 뽐내고 있다. 고산화원 뒤쪽으로는 침엽수림이 둘러쳐져 있고 저 멀리 백두산이 아침 햇살을 받아 빛을 내고 있었다. 모두들 감탄사를 연발하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40분 정도 꽃밭 속에서 다들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금강대협곡으로 향했다. 고산화원에서 20분 거리다. 버스에서 내려 걸어서 20여분. 울창한 원시림을 지나가니 눈앞에 거대한 협곡이 펼쳐진다. 용암이 휩쓸고 간 계곡이 수많은 세월과 함께 침식 작용으로 깊고 깊은 협곡을 이루었다고 한다. 가까이 접근하기가 조심스럽다. 평균 깊이 100m, 폭 100m, 길이 20km가 넘는 대협곡은 수직 절벽 아래 곳곳에 기기묘묘한 만물상을 조각해 놓았다. 마치 공룡의 뼈가 서 있는 것 같기도, 낙타등 같기도 하고. 저 아래 까마득한 협고 바닥으로는 계고굼ㄹ이 마치 콜로라도 강뭉처럼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금강대협곡-
금강대협곡을 구경하고 다시 버스로 1시간 정도 임도를 달려갔다. 금강폭포를 찾아가는
길이다. 금강폭포 가는 초원 길은 서백두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해도 좋다.
들꽃 사이로 한 줄로 서서 걸어가는 일행의 모습은 환상적이다. 모두가 꽃밭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금강분지 드넓은 초원에서 바라보는 백두의 은빛으로 빛나는 모습,
아프리카 초원의 킬리만자로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금강분지-
금강분지 초원 끝자락에서 모두 둘러앉아 도시락을 펼쳤다. 풀밭 위의 점심 식사. 그러나 백두산 파리란 놈들이 떼거지로 달려들어 물어뜯고 쏘는 바람에 혼이 나간 채 점심을 먹었다. 환영 치고는 지독한 환영이다. 한 번 물린 자리에서는 피가 나왔다. 내겐 아직도 그때의 상처가 남아있다.
금강분지를 지나 30분 정도 개울을 건너고 급경사를 내려가니 금강폭포가 숨어 있었다. 높이 70m. 지형이 험해서 찾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한다. 2단으로 쏟아져 내리는 폭포는 더위를 잊게 해 준다. 땀을 식히면서 사진을 찍느라 법석을 떤 후 내려왔던 급경사를 힘들여 다시 올라왔다. 송기용 선생이 점심 먹은 게 체했는지 대열 맨 나중에 핼쑥한 얼굴로 따라왔다.
버스를 타고 1시간쯤 가니 길가에 '溫泉'이라고 쓴 간판이 보였다. 5분쯤 걸어 내려가니 계곡 물이 흐르고 유황 냄새와 함께 바닥에서 신기하게도 물방울이 보글보글 솟아오른다. 진주온천이다. 물방울이 진주 같다 하여 그렇게 이름을 붙인 모양이다. 출발 전 비디오에서 본것처럼 멍청한 도롱뇽이 또 두 마리나 뜨거운 물에 몸이 익어서 자빠져 있다. 모두들 개울 바닥 모래에 발바닥을 비비며 뜨겁다고 아우성이다. 노천 온천은 위쪽과 아래쪽 모두 두 곳에 있었는데 위쪽 온천은 계곡물이 같이 섞이지 않아서 발을 넣을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 한바탕 법석을 떨고 다시 고산화원 한 곳을 더 들렀다가 백운봉 산장으로 돌아왔다. 오후 5시 10분.
저녁 식사 후 내일의 천지 외륜봉 종주 팀과 별도의 관광팀 안내 문제를 상의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6. 천지 일출
7월 7일. 새벽 0시 30분 기상. 고양이 세수로 잠을 몰아낸 뒤 배낭을 메고 1시에 산장 앞에 모였다.
1시 30분. 4륜구동 지프 8대에 나눠 타고 어둠 속을 뚫고 천지를 향해 출발하였다. 임도를 지나 구불구불 천지로 오르는 길은 휘영청 보름 달빛만 적막하다. 2시 40분. 청석봉 아래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모두들 비장한 모습으로 모리에 해드랜턴을 켜고 출발 지시를 기다린다. 간단한 주의 사항을 듣고, 일렬로 천지를 향해 출발하였다. 천지 못 미쳐서 시원한 물소리가 들린다. 천지에서 흘러나오는 물일까? 계곡물을 수통에 담고 일행을 뒤쫓는다. 시야가 뿌옇게 밝아온다. 일출을 놓칠 새라 발걸음을 재촉하여 출발한 지 40분 만에 5호 경계비에 도착하였다
-서파 천지 오르는 계단-
-5호 경계비-
-일출을 기다리며-
천지다! 여명의 천지가, 이를 둘러싸고 있는 봉우리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토록 염원하던 천지를 보는 순간이다. 순간 가슴이 뭉클해진 건 나뿐만이 아니리라. 서로 서로 감격의 악수를 나눈다. 천지를 내려다보며 모두들 한동안 침묵을 지킨다. 그리고 생각난 듯 다시 터지는 환호성. 시간은 3시 50분. 하늘은 맑고 동쪽 봉우리 뒤로 붉은 빛이 감돌고 있다. 카메라 셔터 터지는 소리로 부산하다. 배낭에 매단 온도계를 보니 영상 10도. 바람 때문에 체감 온도는 영하에 가깝다. 모두들 윈드 재킷에 달린 모자를 쓰고 동쪽 하늘만 주시하고 있다.
4시. 그런데 갑자기 양쪽 봉우리 위로 안개가 몰려온다. 안개는 순식간에 천지로 빨려 들어오고 지금 막 붉게 물드는 건너편 봉우리를 가리기 시작한다. 행여 일출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조바심이 인다. 해야 빨리 떠라.
4시 5분. 드디어 일출이다. 해는 안개 사이로 나타나는가 하면 곧 사라지고, 그러다가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그 때마다 환성이 터진다. 누군가의 선창으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가 터져 나온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애국가를 부른다. 비록 구름 한 점 없는 완벽한 일출을 아니더라도, 그 어렵다던 백두산 일출을 보다니. 지리산 일출을 보고 감격했던 우리가 비록 남의 나라 땅에 서서 보지만 우리 국토의 시작 백두산에서 또다시 일출을 보다니. 우리가 평소 덕을 많이 쌓은 보람인가?
7. 외륜봉 종주
우리는 대열을 정리하고 교기와 산악회기를 펼쳐들고 단체 기념 사진을 찍었다. 태극기는 준비해 왔지만 꺼내지 못하였다. 예민한 문제이니 삼가해 달라는 부탁을 미리 받았기 때문이다. 이제 여기서부터 천지 외륜봉 종주가 시작이다. 그런데 출발 전 종주 포기자가 속출한다. 전혀 예상치 않았던 회원도 포기자 대열에 끼어 든다. 8명의 우리 회원이 지프 있는 주차장으로 하산한다. 몸이 안 좋아 백운봉 산장에 누워 있는 송기용 선생을 포함하면 모두 9명이다. 여기까지 어떻게 찾아온 우린데. 아쉬운 이별. 청석봉을 향하여 새벽 안개 속으로 대열을 지어 출발하는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내려가는 그들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한동안 올라가서 뒤돌아보니 어느덧 지프가 대기하고 있는 곳까지 다 내려간 그들의 모습이 보인다.
청석봉 가는 길은 안개와 바람이 세차게 불어 옷과 모자를 여며야 했다. 나무 한 그루 없고 발 아래로는 만병초가 깔려 있어 폭신폭신하여 양탄자 위를 걷는 듯했다. 길 옆으로는 7월인데도 아직 녹지 않은 눈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천지를 출발하여 30분 정도 오르니 마천우 능선이 나타났다. 오른쪽으로 천지를 끼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대열을 지어 산행하는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야생화들이 군락을 이루며 세찬 바람에 꽃잎이 떨고 있었다.
-청석봉을 향하여-
경사가 급한 너덜 지대를 지날 때에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행여나 돌더미를 잘못 건드려서 뒷사람이 다칠까봐 모두들 발걸음을 조심하였다. 선두에서 윤대장이 길이 험하니 모두 조심하라고 무전기 교신을 해왔다. 무전기는 모두 3대. 선두 외에도 중간의 내가 1대, 그리고 후미의 김영환 선생이 1대 가지고 있다. 대열을 재정비한다. 여자가 앞장서고 남자가 그 뒤를 잇는다. 이런 산행 방법이 이후의 산행을 서둘지 않도록 만들어 체력 소모가 덜하였다. 4시 55분. 청석봉(2,662m)에 도착하였다. 발 아래 천지는 구름에 가렸다 보였다 하고 내려다보니 아찔하다. 깔대기 처럼 깎아지른 내륜쪽은 도저히 내려갈 수가 없을 정도로 가파르다. 자칫 미끄러지면 천지 속으로 굴러 빠질것만 같다.
-운무에 가린 청석봉-
청석봉을 내려가며 너덜 지대에서 아침 식사를 하기로 했다. 좀 위험한 곳이지만 대장의 지시대로 자리를 잡았다. 시간은 6시 20분. 백운봉 산장을 출발한 지 5시간 만이고, 천지 일출을 본 지 2시간 만이다.
다들 배낭을 풀고 아침 식사를 꺼낸다. 아침 식사라야 산장에서 싸준 밀가루 떡이다. 생긴 모양이 마치 흰 손수건을 접은 것 같아 나는 내키지 않아 받지도 않았었다. 그러나 보기보다 맛이 좋은지 다들 맛있게들 찢어 먹는다. 나는 준비해 간 비스킷에 잼을 발라서 먹었다. 그런데 윤대장은 도무지 식사를 못한다. 생긴 모습으로는 아무 거나 다 먹을 것 같은데 보기와는 딴판이다. 여태껏 미숫가루로 식사를 때우고 있는 모양이다.
식사 도중 다른 산악회 일행이 지나간다. 서울에서 온 A산악회로 짐작된다. 그 중 한 명이 느닷없이 "여기 인솔자가 누구야? 정신 나갔소? 이렇게 위험한 곳에서 식사를 하면 어떻게 해요!" 하고 큰 목소리로 우리 대장을 나무라며 지나간다. 충고치고는 말 뽄새가 약간 고약하다. 그래도 머나먼 이국 땅에서 만난 동포끼리 좀 좋게 말 못하나? 나 같으면 이렇게 말하겠다.
"어이구~ 반갑습니다. 식사들 맛있게 하시네요. 여긴 위험한 곳이니 조심들 하세요. 그럼 먼저 갑니다. 뒤에 오세요" 이러면 어디가 덧나냐? 이 동포야!
-백운봉을 향하여-
아침 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다시 백운봉을 향하여 출발한다. 이제 날씨는 아주 맑고 천지도 그 푸른 빛을 더하며 신비스러운 구석구석을 다 드러내고 있었다. 자연히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청석봉과 백운봉 사이에 넓은 초원과 계곡이 나타났다. 백운봉은 말 그대로 정상에 흰 구름이 드리워 있고, 여기서 흘러내리는 물이 한허계곡의 발원을 이루고 있었다. 발길이 절로 멈춰지고 휴식을 취하게 된다. 7시 30분.
한허계곡의 상류 초원에서 때아닌 산상음악회가 열렸다. 윤대장이 배낭에 짊어지고 온 우클렐레를 뜯으면서 하모니카를 분다. You are my sunshine, 설악가 등을 모두 흥겹게 부르니 시간의 흐름이 일시 정지한 듯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연상되는 평화로운 정경이다. "내 어이 잊으리요 꿈 같은 산행을, 잘 있거라 백두야 내 다시 오리니...." 우리들의 노랫소리는 백두산 골짜기로 멀리멀리 아름답게 퍼져 나갔다.
-산상음악회-
아쉬운 휴식을 끝내고 백운봉 능선으로 올라섰다. 다시 긴 휴식. 간식이랑 미숫가루 등을 타 마시면서 올라온 초원을 뒤돌아서 본다. 골프장 수십 개를 합쳐서 펼쳐놓은 듯한 드넓은 초원이 펼쳐지고 저 멀리 만주 벌판의 임해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600리 임해라고 했다. 외륜봉 종주가 12시간 코스라고 해서 모두들 걱정했었는데, 이렇게 여유 있는 산행일 줄 몰랐다. 종주를 포기하고 그냥 내려간 우리 일행은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그새 보고 싶은 얼굴들이 떠오르며 살짝 미안한 마음이 인다.
-600리 임해-
11시 20분. 백운봉 아래에 도착하였다. 백운봉(2,691m)은 중국쪽 봉우리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라고 한다. 정상은 가파르고 푸석거려 위험한 코스라고 해서 모두 지름길로 우회하고, 앞서간 선발팀 중 송준만 교수 등 몇몇 베테랑만 올라갔다. 지금 생각하면 올라가지 않은 게 조금 아쉽다.
우리는 봉우리 아래 능선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자리를 잡았다. 앉은 자리에서 고개만 뒤로 돌리면 바로 천지가 내려다보인다. 멀리 천지 건너편 북한 쪽으로 장군봉(2,750m)이 마주하고 있다. 이렇게 멋진 점심 장소가 또 있을까? 도시락을 펼치고 가지고 간 고추장이랑 장아찌랑 모두 꺼내 놓고 먹으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점심 식사후-
점심을 마친 후 천지를 배경으로 사진들을 열심히 찍고, 12시에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조금 가니 녹명봉의 바위 봉우리가 나타났다. 천지를 오른쪽으로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봉우리를 내려가니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용문봉의 자태가 나타난다.
-7월인데도 눈이 남아있다-
용문봉 아래의 끝없는 초원 지대. 저 멀리 북쪽 천지인 천문봉이 보이고 올라가는 자동차길이 아득히 보인다.
이제 오늘의 종주 산행도 마무리에 접어들었다.
-하산길 능선에서 내려다 본 장백폭포의 위용-
용문봉 아래로는 승사하 계곡이 시작되고 장백폭포가 위용을 뽐내고 있다. 장백폭포의 물은 송화강으로 흘러간다. 그 옛날 빙하가 지나간 거대한 초원과 구릉 지대를 지나 내리막길을 내려가니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눈 녹은 물인지 등산화를 벗고 발을 담그니 뼈 속까지 시리다. 10초를 못 견딜 정도로 차갑다. 계곡 아래로는 옥벽폭포가 쏟아 내리고 있다. 깎아지른 봉우리 절벽 뒤로 멀리 오늘 우리가 묵을 국제호텔이 보였다. 12시간의 산행에 체력을 모두 쏟아 붓고 기진맥진 할 무렵 소천지가 나타났다.
오후 4시. 드디어 산행 끝. 백두산 천지 외륜봉 종주를 무사히 마친 것이다. 좋은 날씨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가슴이 뿌듯하다.
-저 아래로 국제호텔이 보인다-
8. 북백두
오늘이 백두산에서 보내는 마지막 일정이다. 모처럼 편안한 호텔 방에서 숙면을 마치고 새벽 5시에 기상했다. 어제 호텔 사우나에서 온천욕을 한 덕분인지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호텔을 나와 지프를 타고 천지 주차장까지 20분 정도 올라갔다. 차에서 내려 5분도 채 안 올라가니 천문봉(2,670m)이다. 날씨는 쾌청. 북쪽에서 보는 천지의 모습은 또 다르다.
우리가 어제 하루종일 종주하면서 천지를 싫도록 봤기에 망정이지, 처음 이 천지를 보는 사람은 얼마나 가슴이 벅차 오를까? 천지 건너편 저 멀리로 북한땅 장군봉이 보이고, 어제 종주했던 청석봉, 백운봉 그리고 녹명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기가 정녕 우리가 지나온 길이고 봉우리더란 말인가?
-북쪽 천지-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며 모두들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천지를 마치 자기들 것인양 독점한 전용 사진사들이 우리 일행에 잔뜩 기대를 걸었다가 돈벌이를 못해 실망하고 온갖 욕설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카메라가 더 좋고 우리도 자존심이 있지. 사진 안 찍으려면 빨리 내려가라는 둥 그들의 갖은 악담을 오기 하나로 버티다가 올라온 지 30분 만에 쫓기듯 내려왔다.
버스로 바꿔 타고 장백폭포로 올라갔다. 백두산 천지의 물이 달문을 거쳐 승사하 계곡으로 흐르다가 68m 높이에서 내리꽂히고 있었다. 천지 물은 어떻게 일정한 양을 저렇게 일년 내내 흘려내려 보낼까. 감히 넘볼 수 없는 영산다운 명산의 풍모이다. 장백폭포는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고 하니 더욱 그러하다.
-장백폭포-
종주길에 본 천지 모습
호텔에 돌아와 8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9시에 호텔을 출발하여 오후 1시 30분에 연길에 도착하였다. 연길은 조선족이 많이 살고 있고 연변 자치주에 속해서 그런지 길거리의 간판마다 한글이 병기되어 있어 반가웠다. 북한 냉면으로 점심을 마치고, 용정으로 가서 멀리서나마 해란강과 일송정을 바라보고, 대성중학의 교정에 세워져 있는 저항 시인 윤동주의 시비를 돌아본 후 연길공항으로 가서 오후 6시발 항공편으로 심양으로 다시 돌아왔다.
심양에서는 평양관이라는 북한식당에 가서 저녁 식사를 푸짐하게 들고, 금도호텔에서 중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게 되었다. 밤늦게 샤워를 하고 있는데 717호실에서 김영재, 김영환 영자 돌림 두 선생의 호출이 있어 무슨 일인가 방문을 열었더니, 이게 웬 일인가. 한방 가득히 둘러앉은 회원들의 환성과 박수가 터진다. 방바닥에는 맥주랑 안주가 가득하고, 이어 건배와 함께 술잔이 오가며, 제대로 된 뒤풀이 겸 평가회가 시작된다. 종주를 같이 못한 분들의 아쉬운 심정을 직접 듣고 내 마음이 잠시 무거워진다. 좀 더 신경을 못써줘서 미안할 뿐이다.
이번 산행에서 특히 무거운 장비를 짊어지고 비디오와 사진 촬영에 온 힘을 쏟은 김영재, 석진호, 윤석준 선생님, 후미에서 묵묵히 대열을 정비해 주신 김용완, 김영환 선생님, 총무와 재무 일을 맡아 준 김평운, 이재창, 이경옥 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그리고 낙오 없이 끝까지 무사히 산행을 마쳐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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