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에게 물소 한마리로 덮을 수 있는 만큼 땅을 약속받은 노인이 고기를 최대한 얇게 썰어 넓은 땅을 얻은 후 그 자리에 사원을 짓고, 해발 1500m 분지에 가득 찬 호숫물을 문수보살이 단칼에 산허리를 베어내 인간에게 삶의 땅을 선사한다."
이런 신화와 전설이 가득한 도시가 네팔 카트만두다. 중세와 현대, 삶과 죽음, 선과 악이 동시에 공존하는 카트만두는 어느 거리를 가도 깊은 신앙심과 신상을 마주치게 된다.
이 땅을 처음 여행한 유럽인 윌리엄 프릭 패트릭은 "집이 있는 만큼 사원이 있고, 사람들만큼이나 신상이 있다"고 말했다. 카트만두 현재 모습은 앨범 속에서 30년 전 우리 흑백사진 한 장을 보는 듯 문명사회와 좀 동떨어져 있다. 자기 종교와 고유한 정체성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신상 앞에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네팔의 다양한 인종과 종교, 그들이 품고 있는 많은 신들을 알지 못하고서는 결코 그들 생활과 종교적 세계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죽은 신에서부터 살아 있는 처녀 신 '쿠마리(생리를 하기 이전인 소녀)'까지 아주 다양한 신과 신상들이 도시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처럼, 그들에게는 생활이 종교고 종교가 곧 삶의 일부이다. 신은 사람 마음이 투사되어 조작된 추상물이라는 정신분석학적 해석이 사람 수만큼 신의 수가 많은 카트만두에선 왠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스와얌부 나트"의 불교 첨탑
이른 아침 카트만두 풍경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전기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아 거리는 어둡고, 짙은 안개라도 낀 날이면 한 치 앞을 분간하기조차 힘들다. 또한 히말라야 고산들이 병풍처럼 도시를 감싸고 있지만 값싼 연료를 사용하여 카트만두 시내를 매캐하게 하니 오염된 공기가 온 종일 여행자 어깨를 짓누른다.
카트만두는 네팔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15~18세기 말라 왕조 시대 달발, 파탄, 박타푸르 등 독립된 세 왕국 문화유산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도시다. 이 세 왕국은 15세기 카트만두 계곡 일대를 통일한 초기 말라 왕조 마지막 왕인 야크샤 말라(Yaksha Malla) 세 아들이 각각 왕국을 맡아 18세기까지 번영을 누렸던 왕국이다.
카트만두 시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이 구왕궁이 자리한 달발 광장이다. '달발'은 왕 또는 왕궁을 지칭하는 말로, 광장 주변엔 다양한 볼거리들이 산재해 있다. 16~17세기에 지어진 말라 왕조 왕궁, 네팔 사람들에게 매우 사랑받는 원숭이 신 '하누만', 여섯 개 팔을 가진 시바 신 '칼리 바이라브' 석상, 힌두 양식과 불교 양식이 혼합된 18세기 중엽 쿠마리 사원 등이 그것이다.
시내에서 2㎞ 정도 벗어나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자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사원인 스와얌부 나트가 있는데, 일명 몽키 사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사원 주위에 야생 원숭이들이 군락을 이루어 여행자와 신도들이 주는 먹이로 살아가고 있다.
이 사원이 지어진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을 때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사원 중앙부에는 티베트 불교 성지이자 세계 최대 스투파(불탑)인 보다나트가 있고, 거기에 새겨진 부처 눈이 오늘도 변함없이 불교 신도들 삶을 지켜보고 있다. 특히 이 사원은 불교사원이면서 내부에 힌두사원이 같이 있어 네팔의 독특한 사원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가는 길=우리나라에서 히말라야 설산으로 뒤덮인 카트만두까지는 대한항공이 10월부터 매주 2회(월ㆍ목요일) 운항한다. 인천에서 카트만두까지는 7시간5분 소요, 돌아올 때는 6시간 걸린다.
△시차=한국보다 3시간15분 늦다.(인도보다는 15분 빠르다.)
△비자=인도인을 제외한 모든 외국인은 네팔 입국을 위한 비자를 발급 받아야 하며 관광 비자 구비서류는 비자신청서 1매, 여권, 사진 1매, 주민등록등본 1통으로 현재 한국에는 명예 네팔 영사관(02-555-9040)에서 비자를 발급 받을 수 있으며 네팔 입국시 현지 공항이나 국경에서도 바로 발급 받을 수 있다.
△쿠마리 사원=바산타푸르 광장 동쪽에 있는 쿠마리 사원은 네팔의 살아 있는 여신이 사는 곳으로 어린 여자아이를 숭배하는 것은 네팔의 오랜 불교 전통이다. 쿠마리 사원은 안뜰이 있는 3층짜리 건물로 불교사원 양식과 힌두교 특색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달발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정문의 섬세한 조각이 돋보이며 1층에 크게 나 있는 네 개의 창문은 아름다운 공작무늬 장식으로 유명하다.
첫댓글 재밌는 이야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