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최민숙
신선한 발상이 주는 재미
『달력을 보면 사회가 재밌어!』(정세언 글, 이유진 그림, 상수리, 2013)
오래 전에 『늑대와 춤을』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그해, 모든 상을 휩쓸며 당시 무명의 케빈 코스트너를 감독상을 받은 감독이자 작품상을 받은 배우로 만들었다. 정말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인기였다. 백인 남자가 인디언에게 ‘늑대와 춤을’이라는 이름을 받으면서 인디언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는, 지금으로 보면 지극히 평범한 줄거리였는데도 말이다. 이 영화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인디언의 삶을 통해 ‘진정한 삶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현대인의 삶에 대한 성찰마저 불러 일으켰다.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인디언의 삶이 백인의 삶보다 위대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가 주는 감흥도 있었지만, 극중의 인디언식 이름이 주는 신선함과 기발함도 인기의 큰 요인이었다. 이름을 그렇게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은 문화적인 충격이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제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영화를 본 사람들이 인디언의 이름을 줄줄이 열거하거나 인디언식 이름 짓기에 골몰하던 기억은 너무나 선명하다. ‘늑대와 춤을 춘다고 이름을 ‘늑대와 춤을’이라고 했다는 거야. 정말 이상해.’, ‘주먹을 쥐고 일어선다고? 그게 뭐야?’라는 낯설음은 ‘그렇게 이름을 지을 수 있다니.’, ‘그럴 수도 있구나, 그렇게 살 수도 있구나. 정말 신기하다. 재미있다’로 받아들여졌다.
쏟아지는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실을 알려 주는 지식책, 정보책의 고민은 독자에게 새로움과 신선함을 내세우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어린 독자들에게 새롭고 신기하다는 감탄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데 어린이 책을 만드는 이들의 고민과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요컨대 새로운 알맹이를 발견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것을 어떻게 요리하고 차려 놓아 새롭고 신선하게 보이느냐의 문제가 지식책의 화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달력을 보면 사회가 재밌어!』(정세언 글, 이유진 그림, 상수리, 2013)는 그 시도와 발상을 눈여겨볼 만한 책이다. 연말이 되면 여러 개의 달력을 놓고 이 달력들을 어디에 둘까 생각해 보게 된다. 어떻게 된 셈인지 늘 마음에 드는 달력을 고르는 영순위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제 마음에 드는 달력을 골라 휙휙 넘기며 빨간 날을 확인하다가 가끔 달력에 쓰인 기념일의 의미를 물어보는 경우가 있는데, 제대로 알려 준 적이 별로 없다. 어물어물하다가 “노는 날도 아닌데, 별로 안 중요해.”라고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부끄러운 답변을 했다. 달력 때문에 아이의 질문에 당황했던 적이 어디 그뿐이던가. 개천절과 제헌절을 헷갈리는 아이를 타박하자 “왜 그날이 개천절인데?”라고 되물어 순간 당황하기도 했고, 발음하기도 어려워하던 6·25가 무엇을 기념하는 날이냐고 물어봐 대난처했던 적도 있다. 이 책을 보면서 아이들 질문에 어물쩍 넘어갔던 그때가 생각나며 ‘아, 이런 날도 있구나.’ 하고 기념일의 의미를 새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달력을 보면 사회가 재밌어!』는 우선 ‘달력을 보면’에 주목한다. 달력을 보면서도 무심코 지나치던 그 많은 기념일의 의미를 다양한 방법으로 되짚어 준다. 그뿐만 아니라 기념일이 어떻게 정해졌는지 그 유래까지 쉽고 간결하게 설명해 준다.
이 책은 1년의 기념일 가운데 64일을 골라 주제별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64일도 많은 날인데 이것도 간추린 것이라니, 달력 안에 얼마나 많은 날들이 숨어 있나 생각하며 달력을 보니 4월에도 기념일이 15일이 된다. 무심코 지나치던 달력 속 그 많은 날들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아이들도 그 점을 느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책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자. 64일의 기념일은 세시풍속, 역사, 법, 경제, 직업, 가정, 인권, 건강, 과학, 환경, 문화 등 11개의 주제로 분류하여 제정된 시대 순으로 정리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기념일은 직업에 관련된 날들과 역사에 관한 날들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장래에 관심이 크고, 알고 싶은 것도 많다. 그런데 정작 아이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고, 진로와 관련해 폭넓은 고민거리를 던져 주는 책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출간된 몇 권의 책들도 펼쳐 보면 잘 알려진 직업을 소개하며 지극히 상식적인 정보를 나열하는데 그쳐 실망하게 된다. 이 책에는 달력에 있는 상공의 날, 스승의 날, 철도의 날, 경찰의 날, 소방의 날, 농업인의 날들을 함께 모아 각 날의 의미와 유래, 그리고 그날 해 보면 좋을 일들을 요모조모 설명해 주면서 사회 속에서 직업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한다. 농업인의 날이 있다는 것도, 농업인의 날이 갖는 의미도 매우 흥미롭다.
농업인의 날
11월 11일은 농업인의 날입니다. 농민은 평생을 흙과 함께 살아요. 그런 의미에서 토, 흙이란 한자가 겹친 토월토일을 농업인의 날로 정했어요. 이 한자를 숫자로 풀면 11월 11일입니다. 농업인의 날은 우리의 문화와 삶이 새겨진 농사에 대해 생각하는 날입니다. 농업의 중요성을 되새기고, 농민으로서의 자부심을 높이는 날이지요. (…·…)
가래떡데이
흔히 11월 11일은 빼빼로 데이라고 말하죠? 빼빼로 대신 가래떡을 주고받는 건 어떨까요? 농업인의 날을 맞아 우리 쌀과 농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리는 거예요. 건강을 위해서도 가래떡이 훨씬 좋아요.
(위 책, 98쪽)
달력을 보면서 사회를 설명한다는 발상은 신선하지만 한편 민감한 문제를 다뤄야 해서 조심스럽다. 특히 민감한 근현대사가 그렇다. 그러나 이 책은 어려운 문제를 쉽고 간결하게 풀어간다. 6·25뿐 아니라 3·1절부터 5·18 민주화 운동, 6·10 민주 항쟁, 그리고 11월 3일 학생 독립운동 기념일까지 아이들에게 설명하기 다소 어려운 역사적인 날들을 빠짐없이 챙겨 내고 있다. 그중 6·25에 대해 설명한 부분을 살펴보자.
6·25 사변일
6·25 전쟁은 허리띠 같은 38선을 중심으로 남한과 북한을 갈라놓았고 많은 이산가족들을 만들었어요. 피난을 가다 헤어진 가족들, 전쟁에 나갔다 소식이 끊긴 아들이나 아버지들……. 이산가족 1,000만 명에 전쟁고아는 10만 명이나 됩니다. 또 남북의 군인을 합쳐 440만 명이 죽거나 다치고, 전 국토가 폐허가 되는 엄청난 피해도 입었지요. 6.25 사변일은 이런 아픔을 잊지 말자고 만들어진 날입니다.
왜 꼭 통일을 해야 할까요? 먼저 아직도 가족과 떨어져 사는 이산가족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쟁의 위험성이 없어져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지요. 과도한 군사비도 절약할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통일이 되면 우리나라가 더 크게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북한의 지하자원으로 자원 해외 의존도를 낮출 수 있고 대륙과 연결된 지리적 특성을 활용할 수 있을 거예요. (위 책, 48-49쪽)
전쟁이 일어난 이유와 통일이 되어야 하는 이유까지 특유의 간결한 서술로 잘 설명하고 있다. 욕심 내지 않고 아이들에게 줄 것만 간결하게 추렸기에 기념일에 담긴 의미를 어렵지 않으면서도 선명하게 전달해 준다.
이밖에도 여러 다양한 기념일을 소개하고 있다. 『돈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와 『로미오와 줄리엣』을 쓴 셰익스피어가 사망한 4월 23일이 책의 날이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이다.
물론 이 책이 모든 어린이의 기호를 다 만족시켜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달력을 보면’에 더 초점을 맞춰 월별로 기념일을 찾아보면 어땠을까. 기념일을 주제별로 전하다 보니 정작 달력을 찾아보는 즐거움을 누리기에는 아쉬운 점이 있다. 물론 부록에서 월별로 어떤 기념일이 있는지 찾아볼 수 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또 첫 번째 장, 세시풍속은 아이들이 교과서나 여러 책을 통해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앞부분에서 지루함을 느끼고 책을 덮어 버린다면, 의미 있고 재미있는 다른 내용을 맛볼 기회조차 갖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달력에 나온 기념일과 관련된 체험학습 정보는 다양한 정보를 전달한다는 의미보다는 정보를 반복하고 학습하라는 의미가 더 크게 느껴져 아이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또한 비록 어린이 책일지라도 정보책인 만큼 일부라도 정보의 출처를 실어 주었다면 더욱 신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사실이 아닌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의미 있게 느끼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던 사실을 즐겁게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 아닐까. 『달력을 보면 사회가 재밌어!』는 신선한 발상이 주는 재미로 충분히 그 가능성을 보여 준다. 늑대와 춤을 추는 일이 놀랍고, 신선하고, 즐거울 수 있다면 인디언의 이름을 굳이 다 외우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래도 그 일은 우리들 마음속에 오래오래 남아 있을 테니까.(*)
최민숙
‘청소년책읽기’ 모임에서 청소년 책을 읽으며 함께 공부하고 있다. 날마다 길고양이들을 만나러 다니고 그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정말 좋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