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하는 혼 (이케다 SGI 회장 대담록)
제1회 남아프리카 공화국 넬슨 만델라 前 대통령
세간의 훼예포폄(毁譽褒貶)을 뛰어넘어 ‘영원한 것’을 추구하며 공명하는 혼, 이케다 SGI 회장과 세계 지도자가 나눈 대화를 교우(交友)의 궤적과 함께 소개한다.
◇
나는 싸운다! 이상이 있기에
그에게는 이상이 있었다. 이상이 있기에 어떠한 역경에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격리정책)를 철폐해 모든 인류가 사이좋게 생활하는 ‘무지개 나라’를 건설하고 싶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감옥에서 27년 반, 1만일을 견뎠다.
감옥에서 편지에 이렇게 썼다.
“달성하고 싶은 이상을 지니지 않은 인간은 굴욕이나 패배로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쟁취하는 사람은 팔짱을 끼고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아니라 격투장에서 옷이 폭풍우에 갈기갈기 찢기고 중상을 입어가며 싸우는 사람입니다.”
석방되고 8개월이 지난 1990년 10월 31일, ‘정의의 암굴왕 넬슨 만델라 전(前) 대통령’은 이케다 SGI 회장을 만나기 위해 도쿄에 있는 세이쿄신문사를 방문했다.
“만감의 경의를 담아 ‘민중의 영웅’을 환영합니다!”
이케다 SGI 회장이 다가가 굳은 악수를 나눴다. 유명한 만델라 전(前) 대통령의 웃는 얼굴이 한층 더 빛났다.
“일본에 오면 꼭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케다 SGI 회장은 인류의 ‘영원한 가치’를 창조하며, 그 가치로 사람들을 연결하는 단체의 리더로서 세계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가치로 사람들을 연결한다. 그것이 바로 만델라 전(前)대통령의 생애를 건 이상이자 청년에게 의탁하려는 미래였다.
◇
올해 아흔 네 살인 영웅은 남아프리카의 이스턴케이프에 있는 고향 쿠누 마을로 돌아가 ‘무지개 나라’의 앞날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다.
석방되고 23년, 민주화로부터 1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요하네스버그 근교에 있는 소웨토 지구의 자택은 기념관으로, 맹우인 올리버 탐보와 함께 세운 법률사무소 등, 만델라 전(前) 대통령과 관련된 장소는 ‘명소(名所)’가 되어 끊임없이 상찬 받는다.
한편 해방운동을 모르는 세대도 늘어나 ‘정신의 계승’이 커다란 과제다.
이케다 SGI 회장은 여기에 초점을 두고 만델라 전(前) 대통령과 두 번에 걸쳐 회견했다.
1990년에 만났을 때는 청년 5백 명 그리고 학생과 함께 영웅을 맞으며 이렇게 말했다.
“’만델라’는 월등히 뛰어난 인물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우수한 인재가 되어 활약하지 않으면, 만델라 전(前)대통령의 사업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청년입니다. 신념과 영지의 청년을 육성할 수 있는가 어떤가, 그것으로 결정됩니다.”
1995년 7월, 도쿄 영빈관에서 나눈 대화에서도 “걸출한 지도자 만델라 대통령이 이끄는 동안에는 괜찮겠지요. 문제는 그 후입니다. 세계도 그것에 주목합니다.” 하고 말했다.
만델라 전(前) 대통령은 틀림없이 현대의 ‘거성(巨星)’이다. 그러나 만델라 전(前) 대통령이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청년 만델라는 부정에는 즉시 분노의 주먹을 휘두르지 않으면 못 견디는 열혈한(熱血漢)이었다.
그러나 감옥이라는 ‘고투의 용광로’에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강철 같은 의사가 웃는 얼굴 속에 녹아 들어 침착하고 큰 키를 똑바로 펴고 걷는 ‘왕자’의 풍경을 단련했다.
독방의 침대는 다리를 쭉 뻗을 수 없을 정도로 좁았고, 무더위 아래 채석장에서 강제 노동을 했다. 교도관들은 적대심을 드러냈다. 고생만 하신 어머니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고, 아내도 투옥되었다. 흑인 동포가 잇달아 희생되었다. 그러나 꾹 참고 견디는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오로지 자신은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는 신념만이 그를 지탱했다.
“정신이라는 무기는 역동적이다”
“어떤 의미에서 죄수를 자유로운 몸으로 평민을 왕으로 쓰레기를 순금으로 바꾼다.”
“이 단단한 벽 속에 가둘 수 있는 것은 내 육체뿐이다.”
약해지려는 마음을 일으키고, 두려운 마음과 싸우며 스스로 희망을 만들어 낸 인간 만델라의 궤적을 안다면 우리는 그것을 ‘멀리 떨어진 나라의 전설’에서 자신의 ‘살아 있는 인생 교과서’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가 싸운 인권투쟁은 아프리카 역사의 한 페이지가 아니다. 차별이 사람의 마음에 깊이 자리 잡는 한 그 투쟁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 자신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케다 SGI 회장은 만델라 전(前) 대통령의 인생에 관해 쓸 때, 늘 힘주어 주장했다.
“우리를 위한 투쟁이기도 했다. 일본인을 포함해 모든 ‘인간’의 존엄을 위한 투쟁이었다.”
“만델라 전(前) 대통령을 비롯한 ‘자유의 투사’ 여러분은 인류를 대표해 남아프리카 땅에 태어나 투쟁했다.”
◇
1995년 7월 5일, 이케다 SGI 회장과 다시 만난 만델라 전(前)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다.
“5년 전 회견에서 훌륭하게 환영해 주신 일을 분명히 기억합니다. 소카대학교 학생 여러분도 참으로 따뜻하게 맞아 주었습니다. 잊을 수 없습니다.”
“이케다 SGI 회장의 커다란 영향력을 더욱 발휘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 지난해, 만델라 전(前) 대통령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앞으로도 귀하가 국제창가학회(SGI)의 회장이자 소카대학교의 창립자로서 일본과 세계의 청년들에게 계속해서 힘을 실어 주시기를 염원하는 바입니다.”
미래에 희망을 보내고자 끊임없이 투쟁하는 두 사람의 혼은 지금도 공명하고 있다.
◆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 흑인 해방 운동의 지도자다. 1918년 7월에 태어났다.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들어가 반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운동에 참가했다. 잇달아 체포되고 활동 정지 처분을 받았으나 1962년 8월 5일, 다시 체포되었다.
1964년, 국가 반역죄로 종신형 판결을 받았다. 27년 반 동안 감옥에서 투쟁하고 1990년 2월 11일에 출옥했다. 199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1994년에는 대통령에 취임했고, 1999년 정곌ㄹ 은퇴한 후에도 국민에게 더없이 크게 존경 받고 있다.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상, 하)’ ‘넬슨 만델라-나 자신과의 대화’ ‘신념에 살다’를 비롯해 많은 자서전과 평전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