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중 님의 말 :
얼마전 같은 동료 회사 직원에게 작은 카드 하나를 받았다. 이게 뭔가 싶어 카드를 열어 내용을 확인해 보았더니 약혼식 초대장 이었다. 대충 훑어 본 후 동료 녀석을 보고 고개를 까닥이며 가겠다고 답을 표했다. 그 당일 날 혼자 방 안에서 사진을 보다가 잠시 어릴적 회상에 잠겨 있었다. 그게 벌써 8년 전 이라니. 까마득 하다. 고등학교 때 였나.. 중학교때 였나.. 망신이란 개망신을 다 보인 그 놈에게 남 모를 감정이 생긴 후론 줄곧 쫒아다니기 일쑤였다. 마냥 좋아서 그렇게 쫒아 다녔었는데.. 결혼은 했을까. 뭘 하고 살려나. 문득 그리워지는 그의 생각에 넌지시 웃음이 입가에 번졌다.주머니에 고이 잠들듯 있던 핸드폰이 울리길래 꺼내 보았더니 왜 안나오냐는 동료 녀석의 전화 였다. 아 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구나. 회사 사람들은 거의 다 가다시피 한 그 약혼식에 하마터면 늦을 뻔 했다. 약혼식 장에 도착 하고 나니 사람들이 북적북적 한게 분위기도 제법 그럴싸 했다. 근사하게 꾸며진 장식 하며 테이블도 그렇고 음식들도 꽤나 맛있어 보였다. 식장에 도착 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이나 지난듯 싶었는데 식은 약속된 시간이 지나도 시작을 알리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데 저만치 멋지게 차려입고 앉아 있는 한 사내의 모습에 눈길이 갔다. 아마도 동료 녀석의 파트너 인가 싶어 괜히 흡족한 미소를 띄웠는데 왠지 모르게 낯이 익은거 같기도 하고.. 눈을 깜박 깜박 거리며 시선을
두었더니 일어나 걸어 나오는 사내. 어딘가 씁쓸하게 웃으며 약혼식이 미뤄 졌다는 말을 하는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곧 이름이 들려왔고 흠칫 했던 순간 초대장을 다시 살펴보니 익숙한 그 이름이 기억 저편에서 새록새록 꿈틀거렸다. 아니.. 당신은..? 하.. 이혁수...라고?
이혁수 님의 말 :
흘러가는 시계초침에 시선을 고정하고 가만히 앉아있었다.집안끼리 성사시킨 약혼식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마음도 맞는 여자였다.아니, 아마도 좋아했을지도.가만히 그녀를 기다리며 뇌리를 스치는 기억에 씁쓸한 웃음을 입가에 지었다.아버지의 권력에 휘둘려 누군가를 좋아 해 본적이 없는 내가 유일히 좋아했던 녀석.참 하얗고 예쁜 녀석이었는데.뭐, 지금은 완벽히 노말이지만. 흘러가는 시간에 양측 부모님들이 초조해졌는지 내게 다가왔다. "미안하네 이서방..이녀석이.. 빨리 데리고 올테니 하객들한테 연기된다는 말좀 전해주구려." 급히 말을 내뱉은 그녀의 아버지가 재빨리 밖으로 사라졌다. 핸드폰을 꺼놓은 그녀로 봐서는 아마도 안 올것 같은데. 약혼 전 그녀는 내게 이야기했었다. '넌 정말 좋은놈인것같아. 하지만, 난 널 사랑할 순 없어.알수도있겠지만 난 사랑하는 남자가 있거든. 내 옆자리엔 네가 있을 수 있겠지만 마음까지는 못줘. 그냥 알아두라고 혁수씨. 보아하니 혁수씨도 날 좋아하는것 같지는 않으니깐.' 아아, 꽤나 쿨한 여자였지. 쓴 웃음을 입가에서 거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한번 살펴보곤 마이크를 들고 입을 열었다."죄송하지만 약간의 문제로 약혼식이 지연되겠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마. 지연이아니라 연기가 되겠지만. 아아, 그녀가 안오는걸보면 아예 파혼이 될지도.밀려오는 짜증에 담배생각이 간절했기에. 밖으로 걸음을 옮기는 중. 시야에 들어선 한 남자. 마치 염색한듯 옅은 갈색 머리카락에 짙은 검은 눈동자.어디서 많이 본것 같은데?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남자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나는 망치로 머리를 세게 맞은 듯 그렇게 그자리에서 몸이 굳어버렸다.김..재중? 기묘한 기분이 심장 끝에서부터 올라오기 시작했다. 녀석과 눈이 마주친 그 순간에 나는 녀석이 어릴적 내 첫사랑이라는것을 깨닭았다. 늘 나를 이상하리만큼 두근거리고 당황하게 만들던 그 눈빛. 쟤가 어떻게? 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나는 녀석의 앞에 서있었다.아..뭐라고하지? 잘지냈니? 여긴어떤일로?하..미치겠네. 속으로 온갖 잡생각을 늘어뜨리며 녀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 우선 확인부터 해야지. "김재중?"
김재중 님의 말 :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더니 그와 내 눈이 마주쳤다. 아..씨..언제 온거야. 나 어떡해야되? 어떡하지.. 순간 일렁이는 듯한 그 눈빛에 마른 입안을 침을 삼켜 축여 내었다. 아..어떡하지? 짧은 시간내에 수많은 생각이 교차하고 있을때 쯤 내 이름을 부르며 어느새 내 앞에 보란듯이 서 있는 그의 얼굴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김재중?" 내 이름을 입에 담아내는 그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더 갈데도 없지만 의자 등받이 쪽으로 몸을 밀착하며 주춤 거렸다. 괜시리 주위를 한 번 쓰윽 훑어 보고는 의자를 짚고 벌떡 일어나 고개를 돌린채 눈을 깜박 거리며 마음을 고쳐 먹었다. " 사람..잘못 보셨는데요..하하하 " 옆에 있던 의자에 걸쳐 놓았던 자켓과 가방을 급히 챙겨 품에 안고선 나를 보는 시선이 신경이 쓰여 한 번 힐끔 거려 주고 발걸음을 옮겼다. 아..씨.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렇게 재회 할 줄이야.. 네 놈의 앞길을 위해서는 지금 피해주는게.. 좋겠지? 고개를 까닥 거리기도 하고 내젓기도 하며 식장의 문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저 아래서부터 올라오는 쪽팔림에 문에 다다라 괜히 또 남는 아쉬움에 한 번 더 힐끔. 돌아본 후 고개를 돌렸다. 따라오면 안돼 혁수야..
이혁수 님의 말 :
이름을 부르자 미세하게 몸을 움찔걸리는 녀석. 왜저러지? " 사람..잘못 보셨는데요..하하하 " 순간 녀석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뭐야 김재중. 내가 너도 못알아보겠어? 설마 내 첫사랑도 못알아 보겠어 내가? 순간 밀려오는 불쾌감에 미간을 찌푸렸다. 뭐라고 입을 열 찰나, 녀석이 미끄러지듯이 눈 앞에서 사라졌다. 어? 쟤 어디가. 누군가 쫓아오는듯 급하게 밖으로 걸음을 옮기는 녀석의 모습에 눈썹을 휘며 뒤따라 걸었다. 오호, 지금 쌩까는거지 김재중? 문을 열려는 찰나, 녀석의 손을 잡았다. 순간 몸을 타고 전해져오는 이상한 기분에 잠시 녀석과 맞닿은 손을 응시했다. 순간, 느껴지는 녀석의 시선에 던지듯 녀석의 손을 놓았다. 아. 쪽팔리게 이게뭐야. 몇년만에 만난건데. 마주쳐오는 검은 눈동자를 마주 볼 수 가 없었다. 마치, 그때의 이혁수로 돌아간듯 미약하게 울리는 심장이 느껴졌다. 뭐야. 나는 내 심장이 아주 멈춘줄 알았는데? 그녀를 볼 때도 이러진 않았는데? 밀려오는 당황감에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너 지금 나 쌩까는거냐? 내가 널 못알아볼것같냐 김재중?"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나 화났어 라는 오라를 풀풀 풍기며 녀석을 바라봤다. 그래 김재중 아니라고 더 해보시지.
김재중 님의 말 :
막 가까워진 보기만 해도 으리으리한 그 문을 열려던 찰나 내 손을 감싸오는 따스한 체온에 앞서 나가려던 행동을 멈추었다. 그 때문에 돌아서 가까이 서있는 녀석을 다시 시야에 담을 수 있었다. 내 시선에 손을 놓더니 말했다. "너 지금 나 쌩까는거냐? 내가 널 못알아볼것같냐 김재중?" 순간 쿵.하고 내 속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흐흠.." 이왕 이렇게 된 거 고집이 강한 녀석인데 더 빼도박도 못하겠고. 이대로 쌩까고 나간다면 앞으로 벌어질 일이 눈에 훤히 보이는 것 같아 두 눈을 지긋이 내리 감았다 떴다. 화난 황 소 마냥 씩씩 대는 것 같아 보이는 그 오오라가 나를 주춤하게 만들었다. 작게 한 숨을 포옥 내쉬고 손을 들어 녀석의 손을 잡아 밖으로 같이 나왔다. 약혼식은 보아하니 오늘 제대로 이루어 질 것 같지도 않으니 잠깐은 내가 빌려가도 되겠지. 식장에 나와 문에 기대어 녀석을 다시 바라보다 고개를 돌린 후 말을 이었다. " 어쩌자고 따라왔어. 그래 나 맞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