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랑드롱(1935.11.08 ~, 프랑스)
It is God's grace.
It itself is an absolute immortal handsome being from God.
- 절대자 唯一神이 보낸듯한 이런 절대불멸의 미남은 가톨릭 사제나 개신교 목회자가 되었으면 더없이 더 좋았겠는데 유럽절대 강대국 프랑스에서 온전히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성장과정이 기대와 달리 너무나 바닥급으로 미흡하여 생고생만을 하층신분계층에서 골라하다가 유럽 중산층 이상의 신분계층은 결코 지원하지 않는 스크린 배우가 20대 중반에 겨우 되어 세계적 펜을 뭇으로 사로잡고 있다. 엄청나 보여도 실상으로 길게 보면 차선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도 그는 神이 보낸 者로 종신토록 世波에 짓눌러 고군분투하는 우리 개개인 無名 모두를 위한 신의 配慮이고 天使인 것이다. -
<불세출의 절대미남 속에 잠겨 있는 양아치성의 천박성, 그럼에도 그는 뭇 여성은 물론 모든 남성에게도 절대 친절한 남자였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강했다. 그러면서도 계급은 하층띠가 물씬, 하지만 돈과 여성, 그리고 펜들이 어마어마무시하게 세기적으로 따르는 또 하나의 절대강국 프랑스의 고급 만색의 장미였다.
또 그는 17세에 프랑스 식민지 인도차이나 전에 자원입대한 프랑스해군 일반병사 출신이다. 실제로 전장에 1953년 투입되어 적에게 포위되는 등 실전경험도 나름있다. 5년간 복무 중 절도와 군지프차량 무단운행 전복사고 등으로 군영창 경험도 도합 11개월 있다. 인도차이나 정글전에로의 17세 자원 일반 하급해군병사!!! 일언하면 그는 본질적으로 겁쟁이가 아니다. 도리어 다른 젊은이에겐 드문 위대한 별도의 커다란 점이 있다. 비록 절대 미색의 깊은 물결 속에 간간이 비춰지는 비천하고 불우한 태생의 양아치성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것이 오히려 나귀간에서 태어난 예수 처럼 낮은 곳에서부터 만인을 사랑할 수 있는 신의 빛을 무한히 받은 것이다. 보석처럼 찬란해보이지만, 예수처럼 낮고 빈천한 모습으로 그 모두를 위해 시궁창 같은 자신의 고독을 가슴으로 멸하면서 어둠 속의 흑장미처럼 촛불마저 그 모두를 삼킨 암흑에서 그와 모두를 위한 성자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실제로도 르노와르 영상에서의 권총소지는 그의 실제적 장미빛 붉은 비애감에서 우러 나오는 만색 발광의 깊고도 긴, 연속의 가 없는 모습이었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정글전에서의 하급병사로서의 막다른 고독감이 배어 있었다.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적 긴 비애감이 그의 허술한 커다란 빈틈을 가리고 있었다. 도리어 센바람에 나부끼는 그 빈틈의 큰 바구니로 수 많은 여성 팬들이 혼자 안심하고 비에 튀긴 짧고 젖은 잠옷차림만으로도 잠입을 할 수가 있었다. 단독무장 충전한 말단 하급병사로서의 그!!! 너무나 미색출중했지만 아무런 권한 없이 그는 홀로 낮은 언덕에서 비를 맞고 다가오는 뭇 여성인 그녀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이 모두에게 보였다. 그는 가난하고 낮은 홀로만 서 있는 여인들의 모두를 위한 따뜻하고 영롱한 양지밭에서 그녀만를 기다리고 있는 그 혼자로서의 목자인 것이다. 다시 잠들면 그림자로 사라지지만 그래도 실재하는 모습으로 흠뻑 느낄 수가 있었다.>
출연작품수: 80편(대표작 - 태양은 가득히(1960), 한밤의 살인자(1967), 미스터 클라인(1976) 등)
고독과 우수의 배우
위험할 정도로 잘 생긴
절대 미남이지만 멜로배우가 아닙니다.
그는 멜로에는 등장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항상 고독과 우수 속의 방황자일 뿐 이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음산한 풍경 속에서 혼자서 무엇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무엇은 바로 영화 속의 자기 자신입니다.
그리고는 사라지지 않으면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항상 고독합니다.
그래서 친구를 사귄다죠.
신의 계시를 입은 성직자는 고독을 이기기 위해 모두를 그냥 보고 있을 뿐입니다.
신이 나의 가슴에 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보이는 사실만을 전달할 뿐입니다.
신을 말하기는 하지만 믿으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냥 신이 있다고만 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신을 표현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신을 믿습니다.
'알프스 산자락의 밤의 눈내림소리가 진짜 사랑이다.
그녀와 더불어 이야기하다가 신의 은총 속에 먼 곳의 늑대 하울링을 꿈결로 느껴야한다.
진짜로 들린다면 그건 이미 고독과 함께 오고 가는 사랑이다.
꿈속에서도 외로움은 길지 않다.
오직 가슴 속에서 우수의 빙점처럼 들리면서 사라진다.
그것도 자주 & 자주.'
그러나 푸르고 푸른 淸操象牙의 온전한 불변의 Adonis는 결코 아닙니다.
夜雪에 홀로 핀 또 하나의 자색의 황금빛 신의 은총, 그 모두를 위한 치명적 장미인 것입니다.
보석처럼 단단하면서 황금처럼 부드러운 춤추는 빛결의 또 하나의 鐵로 물든 萬色紫色의 황금빛 장미인 것입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부러진 차가운 가지를 숨기기 위하여 여인들의 따뜻한 온기가 필요합니다.
여인이면 된다. 여인이면 다 따뜻하다. 적어도 따스는 합니다.
끝없이 가이 아름답지만 미의 역사에 그는 없습니다.
신에게 그가 원한 것입니다. 태양처럼 그냥 저녁에 사라지고 싶다고.
뭇여성을 위하여 당신이 원하신다면 귀족의 Adonis보다는 차라리 남루한 차림의 치명적 장미가 낫다고.
신은 그에게 글의 물결을 지웠습니다. 그는 저녁에 서 있어도 저녁을 모릅니다. 저녁이 그를 숨겨줍니다. 또 하나의 여인이 되어.
그는 여인의 품 그 속에서 찬란한 Adonis의 광채를 남루한 모습의 치명적 자태로 감추고 모든 여성의 모성애를 울립니다.
하늘과 별이 풀내음으로 그를, 혹은 그들을 비춥니다.
창백하지만 따뜻한 늦게 나온 달을 길잡이로 삼아 긴 강을 따라 그는 그냥 白痴처럼 걸어 갑니다.
모든 여성을 사랑으로 물들게하지만 그는 그의 차디차게 낮아야만 하는 분수를 압니다.
저녁 속의 이 길이 나의 길이다. 지켜야하는 신의 계시가 된 것입니다.
모통이에서 만나는 모든 여성에게 그는 그리움의 별이 되어 다음 길을 청합니다.
일부러 청함이 아닙니다. 저절로 청함입니다.
그는 신의 빛 성직자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신의 사랑을 넘어서고자 하였다. 마치 우리의 어머니 이브처럼.
신의 使者로 모든 여성을 낙원으로 홀리기보다는 남루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그리움의 고통을 나누고자 합니다.
모든 여성이 모성적 공황으로 그를 그리워하지만 그는 어머니 이브를 위하여 신의 눈을 감았습니다.
'나는 당신의 아들입니다. 면류관의 또 하나의 독생자보다는 먼저 당신의 아들입니다.'
남루한 모습으로 저녁 속에 그를 숨기고 homme fatale의 알랑드롱으로 명명하여 빛나지만 혼자서는 텅빈 존재로 살아갑니다.
어머니의 그에 대한 선물은 저녁이었습니다. 부러진 장미의 저녁입니다.
비록 차갑고 서늘하지만 긴 강가와 더불어 즐겁고 기쁘고 행복한 길입니다.
별도 늦게 뜨고 달도 기울어 나오지만 풀내음과 더불어 행복한 천국의 길입니다.
신은 그에게 만색의 장미로 여인의 꿈을 끝없이 주었지만,
그는 어머니의 길을 따라 부러진 가지를 저녁의 빛으로 숨기고 긴 강을 따라 걷고자 합니다.
신의 빛으로 가려진 부러진 가지를 어머니를 위하여 만색의 장미로 저녁 속에 숨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