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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量子)이론으로부터 양자(量子)신학
From Quantum theory to Quantum theology: A leap of faith
믿음의 도약
M M J Dasson & J H Koekemoer
Department of Dogmatics and Christian Ethics (Sec A)
University of Pretoria
번역 : 김용웅 2016년 2월 29일
요약
이 기사(논문)은 개혁주의(改革主義)적 변증법(辨證法)적 패라다임 안에서
신학적 사고(思考)를 위한 인식론(認識論)적 모델로서 다중적인 가치를 가진
논리를 소개하는데 목적이 있다. 오늘 날 개혁주의의 변증법적 신학은 종교
내적 노출과 과학적인 발견인 포스트-모던주의 문화에 의하여 도전을 받고 있다.
그것은 후속해서 새롭고 예측할 수 없는 세계관을 이끌고 있다. 결과적으로 발전된
합리성에 근거한 인식론적인 전환을 초래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수 백 만의 심령 가운데 희망과 믿음을 심어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양성, 불확정성 그리고 개연성(확률)을 수용하기 위하여
특별히 개발된 인식론적인 모델로서 다양한 가치를 가진 논리가
출현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1. 소개
이 논문의 기본 전제는 현대로부터 모든 가설을 수반하여
포스트모던으로의 예증의 전환이다.
(cf Schoeman 1990; Van Aarde 1990.Van Aarde )
포스트 모던은 이미 신학과 과학적 인지(지각) 두 곳에
각각 영향을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호 서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 드레(Drees,1991)의 양자 이론의 신학적 해석과 응용)
Ammer 1992; Van der Lubbe et al 1992;
더 나아가, 바젤르만(Wasserman, 1992)은 우리들의 세계관은
우주의 모습과 부합하는 실재의 해석에 의하여 불가피하게
영향을 받고 있다. (cf Martin 1987; )
반 아르켈(Van Arkel 1988)Van Arkel 1988; Hawking 1988; Pannenberg 1991)
이 반세기 동안 과학적인 발견은 그것이 우리들의 세계관을 극적으로 변경해버렸다.
특별히 특수와 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 이론이다.
(cf Hawking 1988; Penrose 1989; Polkinghorne 1989; Lucas 1992),
비록 고전 물리학의 많은 자취가 과학과 신학에 분명히 있어다 하더라도 -
고전 물리학으로부터 양자 물리학으로의 변화가 분명하게 설명되어왔다
(cf Van Aarde 1988:61; Vorster 1988:45; Penrose 1989:167)
이 논문에서 저자는 다중 가치 논리를 설명하겠다.
이 조목은 주창자 쾨케뫼 박사, 교수 (Prof Dr J H Koekemoer)과의 논제에 근거한다.
논제는 석사(M Div) 학위의 요구의 한 부분으로서 제출되었고 승낙을 득하였다.
양자역학(量子力學)의 포스트모던의 해석과 현대신학에 응용으로서
프레토리아 대학(University of Pretoria)의 신학 교수는 우선 비록
그것이 양자 세계관으로 이끄는 길을 간단하게 살펴보는데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2. 우리들의 양자(量子) 세계
2.1 뉴턴의 업적
브라운(Brown)은 다음과 같이 고전 물리학의 기간을 설명한다.
이성(理性)의 시대가 고적 물리학을 위한 기초공사를 놓은 과학적
사상의 거인을 초래했다.
코페르닉크스(Copernicus), 브루노(Bruno), 케플러(Kepler), 데칼트(Descrtes)
그리고 갈릴레오(Galileo)는 우주에서의 운동을 설명하는데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이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했다.
물리적 사실의 다양한 것의 눈부신 발견은 약간의 수학적 공식이 확실한 세대로서
이성(理性)시대를 재 분리하기 위하여 도왔던 것을 설명했다.
우주의 기계적인 철학이 과학적 사상을 지배하기 이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한번 알려지지 않고 변덕스러웠던 우주는 가차 없이 커다란 시계를 똑딱거리게 하였다.
모든 사건은 알려진 힘의 결합에 따라 쉽게 설명되었다.
만일 사건이 정상에서 벗어났다고 보이면 더 많은 사실의 발견이
완전한 설명에 대한 대답을 도왔다. (Brown 1990:478)
환원주의와 가차 없는 결정론의 설명의 명료함은 뉴턴 학설의 검증이었다.
더 한층 모호한 비-물리학의 세계(역사, 정신의학, 신학)는 극한적 결정론과 진리가
불변의 절대성에 근거한다는 개념(관념)의 조건에서 잠자리에 있었다.
반 아르켈( Van Arkel (1988:223)은 우리의 현재 신학이 어떻게 풍성하게
사색의 이러한 라인에 의하여 영향을 받았는가를 언제나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을 주장했다.
브라운(Brown, 1990:479)는 고전 물리학의 기본적 가설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1) 물질적 사실주의(objective realism) 인간의 관찰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리적인
세계의 원인이다.
(2) 물리적 역량(physical sufficiency) 운동의 각 행동 또는 우주에서의 변화는 포함된
물리적인 모든 요인(인자)의 분석에 의하여 설명 될 수 있다.
(3) 귀납적 타당성 (inductive validity) 시종일관된 관측으로부터 추리를 이끌어내는 것은
지식을 얻는 유효한 수단이다.
(4) 상층의 제한(upper limit) 어떤 종류의 영향도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만 들 수
있을 것은 없다.
아인슈타인의 연구의 측면에서 고전적 그리고 양자물리 사이의 전환을 고려할 수 있다.
비록 그의 발견이 고정된 자연법칙의 개념에 근거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는 불확실한 것, 손에 잡히지 않는 물질에 대하여 언제나 문을 열었다.
2.2 양자물리학 (Quantum Physics)
운동에 관한 뉴턴 법칙은 공간에서의 절대 위치의 개념에 종식을 가져왔다.
그는 절대적 위치의 이러한 부족으로 인하여 매우 심려하였다.
왜냐하면 절대적 신(神)의 개념과 (Hawking 1988:18) 절대적 진리 안에서
철학적 신념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1925년 아이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절대 시간의 개념을 변화시켰다.
그러나 이 이론의 괄목할 만한 결과는 몇 년 전까지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공간과 시간이 고정 값을 가진다. 라는 것이 예전의 생각이라면
이제는 역동적인 성질이라는 점이며 물체가 움직일 때 힘이 작용하며
공간과 시간의 곡면에 영향을 준다. 순차적으로 시공의 구조는 물체가 움직임과
힘이 작용하는 길에 영향을 준다. 공간과 시간이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영향을 받는다. (Hawking 1988:33)
막스 프랭크(Max Plank)의 양자 가설(4)은 고전물리학의 불굴의 결정론을
포기해야만 했던 첫 번째 징후이었다. 다시, 이 가설의 내포(의미)는
베르너 하이젠버르그 (Werber Heisenberg)의 유명한 불확정성 원리를
공식화할 때인 1926년 까지 현실화 되지 못했다. 더 이상 분리할 수 없고
관찰할 수 있는 위치와 속도가 잘 정의된 입자인 양자(量子) 상태는
위치와 속도의 결합을 한다. 불확정성 원리는 우리가 보는 세상에서
방식에 대하여 풍성한 내포(의미)를 유지한다. 곧, 일반적으로 양자역학은
관찰(관측)에 대한 단순한 한정적인 결과를 예측하지 않는다.
대신 다르게 나오는 가능성의 수치를 예측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의
각각이 유사함을 말하여 준다. (Hawking 1988:55)
폴킹혼(Polkinghorne 1988:44)는 뉴턴 역학의 명료함과 정밀성 대신
사건의 더 한층 퍼지 근거(fuzzy account)로서 만족해야만 한다.
과학자(科學者)들이 아원자(亞元子) 세계의 광대한 복잡성을 탐구하기를
계속하면서 더 한층 놀라운 발견이 이루어 졌다. 변경 없이 관측하고
측정하는 객관화할 수 있는 외부 세계의 아이디어조차 포기해야만 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보는 것을 바꾸지 않고는 실재를 관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지금부터 주제는 실재와 더불어 관계성에서 분리할 수 없는 부분을 다루어야 한다.
사람은 입자(粒子)의 위치(位置)와 속도(速度)의 두 가지 모두를 결코 확실하게 할 수 없다.
사람이 입자의 위치를 측정하거나 아는 것이 정확하면 정확할수록
다른 것을 아는 것이 덜 정확해 지며 그 반대도 성립한다. 양자역학에서
다른 흥미로운 개념은 파동(波動)과 입자(粒子) 사이의 구별이 없다는 것이다.
곧, 입자는 때로는 파동처럼 행도하며 입자는 파동처럼 행동한다.
이른바 파동/입자의 이중성(二重性))이다.
이 개념의 보다 더 흥미로운 점은 입자 또는 파동의 상태는 관측자에 의하여 결정된다.
만일 입자를 찾으며 입자와 같은 것을, 파동을 찾으면 파동과 같은 것을 찾게 된다.
(Polkinghomr 1989:60). 쉬뢰딩거 공식은 다른 사례이다. 곧 모든 것은 측정의 수단에
의하여 어떤 정보를 추출할 때까지 모든 것은 순탄하며 연속성에 있게 된다.
파동 다발(packet)의 붕괴(崩壞)의 충격적인 불연속이 발생한다.
이런 저런 유사한 사례가 해석자들로 인간의 의식이 실재의 본질에 영향을 미치며
그것이 실제를 창조하는 부분에 역할을 한다는 것을 믿도록 한다.
(Polkinghome 1989-60~69)
양자 세계의 신비와 수수께기는 너무나 많다.(cf Penrose 1989: 225-301).
이 논문의 목적을 위하여 자신을 제한할 것이다. 1935년에 EPR 실험이 진행되었다.
이름은 아인슈탄인, 포돌스키, 로젠(Einstein, Podolsky, Rosen)의 첫 글자를 인용했다.
비록 그것들이 물리적으로 상호작용을 하지 않고 정말 멀리 떨어져 있었을지라도
입자 사이의 순간적인 연결이 형성되었다. 그 속도는 빛 보다 더 빨랐다.
(비-국지성, 위치성 개념이다.) 아인슈타인의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라는 일반 상대성 이론과는
상충되는 이론인 각각의 입자가 닫지 않는 두 입자 사이에 대한 영향을 제안한다.
한 장소에서 발생한 일이 어떤 떨어진 장소에서 동일한 모멘트로
일어난다는 것을 얻었다. (Sharpe 1992:138).
루카스(Lucas(1992:18)는 EPR-실험이 우주의 전체를 연결된 단순함으로 설명하는데
사용할 수 있음을 설명했다. 마틴(Martin 1987:370)은 다른 것 중에서도
물리학과 우주론에서 20 세기의 혁명은 전체적인 새로운 감각을 위한 갈증에서
역학(뉴턴)으로부터 포괄적(양자) 파라다임으로의 기본적인 전환을 주장하였다.
알렌 우트케(1986)는 상대성 이론과 양자 이론이 우주의 전체론적 개념에 기여에 대한
두 가지 주요 요소가 됨을 설명하였다. 양자 이론과 전체론 사이의 함축(의미)는
전체론적 파라다임이 이루어지고 있는 안에서 명백하고도 특별한 일이다.
(반 아르데: Van Aarde 1988: Vorster 1988, Van Arkel 1988).
그럼에도 양자 이론의 해석하는 방법은 분명히 신학에 대한 인식론적인
성향을 가질 것이다.
3. 해석
3.1 이가(二價) 대(對) 다가(多價)
2가(bivalence)는 두 개의 가치를 의미한다. 각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두 가지인 참 또는 거짓을 의미한다. 다가(Multivalance)는 세-개
또는 그 이상의 가치를 의미한다. 아마도 두 가지만을 의미하는 대신 무한한 옵션이다.
그것들의 명백한 의미 때문에 2가와 다가는 각각 역학과 전체론적 파라다임의
제목 아래 분류될 수 있다. 본 논문에서 저자는 양자 이론의 모든 다른 해석이
이러한 두 가지 제목 아래 또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많은 과학자들이 불확정성 원리와 양자이론의 상대성을 2가적
세상의 조건 아래에서 설명하려고 한다는 것을 저자는 확신한다.
곧, 단순성에 대한 정확성을 취급하는 해석으로 뉴턴의 업적의
2가적 인식론을 사용한다. (Kosko 1994). 모든 이러한 해석은
2가로 취부하려고 한다. 따라서 또한 양자의 불확정성을 설명하거나
해석하는데 2가적 논리는 부정확하다는 것을 발견한 과학자들은
그러므로 인식론적 전환을 요구한다. 후자들은 다가적 실재를 증명하여
양자이론을 인지하려고 한다. 곧, 해석에서 보다 더 정확한 것을 찾고
출품(결과)이 실재에 근접하는 것을 말한다.(Kosko 1994)
폴킹홈(Polkinghome)은 두 가지 공격적 선의 가능성을 설명한다.
곧, 실증철학적(positivist) 접근 또는 사실주의(실존주의; realist) 색깔로
두 가지는 2가적 인식론을 사용한다. 실증주의는 내적 객관으로 동의한
인식을 강조하는 접근이며 그것의 의미의 실험과 진실은 관찰할 수 있는
절차서와 사양서에 의존한다. 실존주의(사실주의)는 세상이
어떠한 관측자의 독립적인 존재를 가진다는 신념을 강조하는데 있다. - - -
(Polkinghome 1989: 78).
브라운(Brown; 1990)에 따르면 세 개 이상의 보다 인기 있는 해석은
(1) 실증주의적 견해( 자신의 실재를 창조한다.)
(2) 한정적인 유신론적 견해(제한된 능력을 가진 신에 관한 이론)
두 가지는 2가이며
(3) 범신론적 견해(나눌 수 없는 전체로서의 우주, 동방 신비주의
눈을 통하여 본) 이 것은 다가(多價)이다. 다가적 해석은
또한 그리스도 세계관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4. 다가적 실재(MULTIVALUED REALITY)
4.1 다가적(다중가치적) 실재
1930년에 얀 루카시비쯔(Jan Lukasiewicz), 버트란드 럿셀(Bertrand Russell)
그리고 막스 블랙(Max Black) 같은 논리학자들은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성원리와 양자 역학을 취급하기 위한 다중가치 논리를 생각했다.
그것은 모든 사물이란 동일한 정밀성을 동시적으로 측정할 수 없다는 가정이었다.
불확정한 세계에서 정확하게 한다는 것은 유연하고 융통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다중가체적 논리의 원리는 거짓과 진실(참) 사이의 무한한 선택의
스텍트럼의 연속성을 정의하는 것으로 결정한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정도의 문제이다.(Kosko 1994)
모든 것은 어느 정도에서 참과 거짓이다. 이중적 논리는
모든 것이 참인가 거짓인가를 말한다. A 또는 A가 아닌가,
거짓말 하는가 거짓말하지 않는가, 키가 큰가 아니면 크지 않는가?
이중가 논리는 정확하다. 전부인가 아닌가, 중첩이 없다.
정확한 경계가 있다. 모서리를 깍은 단순함의 세계이다.
그러나 그것은 실재와 맞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경계를 깎아낸 것 곧 A 와 A가 아닌 것인 하나의
특수적 가치의 하나이다. 하나의 컵의 반은 차고 반은 비었다.
키 큰 사람과 키 작은 사람, 어떤 확실한 점에서 모두.
모든 것은 어는 정도에서 참과 거짓이다. 이중가 논리는 모든 것이 참이다.
4.2 퍼지 집합(Fuzzy Sets)
1905년에 로프티 자데(Lofti Zadeh)는 퍼지 이론을 다중가 논리에
대한 그의 작업에 응용하였다. 퍼지 논리는 그의 이름에서 제안한대로
정확성 보다 근사 값의 근거의 모드를 논리의 근거로 한다.
퍼지 논리의 중요성은 인간의 시성의 모드(양태) 특히 일반 상식(이성)이
자연에서 근사 값의 사실에서 유도되었다. (Zadeh 1992:2).
그의 퍼지 이론에 따르면 거의 대부분의 모든 특성은 퍼지 집합이며
다른 정도에 집합에 속한 요소들이다. 수학적인 조건에서 저지집합은
어떤 특정의 값에서 그것의 요소를 포함한다. 동일한 방식으로
특성은 키가 큼, 붉은 것 어떤 범위에서 그들의 집합에 속한 행복과 같다.
그런 것이 퍼지 집합을 정의한다. 사람은 키가 크거나 작은 것이 아니라
어는 정도의 범위에서 키가 크거나 크지 않거나이다.((Kosko 1994:292).
하늘이 푸르거나 푸르지 않다. 그러나 어떤 정도에서 푸르거나 푸르지 않는 것이다.
퍼지 집합은 견고한 경계선을 그리지 않고 A이거나 비-A 사이의 커브를 그린다.
퍼지 집합은 또한 언어학적 수학(계산법)이다.
집합의 앞에서 수식어는 커브를 올리거나 또는 낮춘다.
퍼지의 바로 앞에 있는 수식어는 커브를 나추며 한편,
집합 앞에 다소간의 수식어는 커브를 올린다.(Kosko 1994:146).
이중(二重)가적 논리의 견고한 선은 큰 값과 크지 않는 값의 전환을 설명할 수 없다.
퍼지 커브는 완만한 변화를 보인다. 그래서 이것이 실재에 보다 가깝게 하는
가능성을 개발한다. 지식 표명에 대한 전통적인 접근은 퍼지 개념의 의미를
표현하는 의미에 부족하다. 결론적으로 1차 논리와 고전적 확률 이론에 근거한
접근은 상식적인 지식의 표현을 취급하는 것에 대한 적절한 개념적 틀(구도)을
마련하지 못한다. 그러한 지식은 어휘적으로 부정확하며 비 분류적인 본질에 의한다.
퍼지 논리(이론)의 발달은 불확정성과 어휘적 부정확성의 이슈를 강조할 수 있는
개념적인 틀(구도)를 위한 필요에 의하여 다수의 측정에 동기가 부여된다. (Zadeh 1992:2)
퍼지 집합 이론이 신학적인 조건에 적용될 때 그것은 선택의 무한한 스펙트럼을 연다.
그래서 이것이 우리들의 신학의 이해 너머의 이성(합리성)을 넓힌다.
커다란 법위에 대한 신학적 합리성의 예리한 문제는 신학적 사상에서
설명적인 정당화의 가능한 역할에 중심을 둔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진리와 객관성의 정도의 어려운 인식론적 이슈들을 우리에게 강조하게 된다.
만약이라든가 우리들의 논제는 등과 같이 복잡하고 다양성, 광범위하고 지성
그 자체의 분야로서 넓은 범위이다. (Van Huyssteen 1993:436)
근본주의의 성경적 문자와 같은 이러한 감각에서 퍼지 논리는 신학의
근본주의적(fundamentalistic), 상대론적(relativistic) 그리고
변증법적 이해의 것 너머로 움직인다. 지식은 탄력적 수집,
또는 동등성 변수들의 수집에 대하여 퍼지적 억제로서 해석된다.
따라서 추론(추정, 추리)는 탄력적인 억제의 전달 과정으로의 견해를 가진다.
(Zadeh 1992:2). 근본주의의 성경적 문자주의의 반발,
비-근본주의와 연계된 상대주의는 결과적으로 합리성의 포스트 근본주의자의
개발을 이끌었다. (Van Huyssteen 1996: 111).
그것은 다른 학문 분야와 제휴하는 논의, 상호 주관적인 논의와
다중적인 가치의 실재가 신학적인 반영 안에서 표현을 발견할 수 있는
체험적인 인식론에 대한 평가로서 이 모델 안에 있다.
합리성의 포스트근본주의적 개념은 - - - 잠정적, 문맥상의 전후 관계
그리고 동시에 우리들의 이상과 진리, 객관성 합리성
그리고 과정을 유보시키게 하는 모든 인간의 지식의 잘못을 옹호한다.
(Van Huyssteen 1996:123).
개인적인 이해, 개인적인 체험 그리고 개인적인 헌신은 종교의 합리성을
가다듬는 가치가 되었으며 사실상 그것은 퍼지 집합에서 표현하는
개인적 가치의 개인적 가치의 이러한 다양성이다. 퍼지 집합으로서
본 하나님과 인간의 자유의 신적 의지는 완전 결정론과 절대적
인간 자유의 극단 사이를 이해하는 무제한의 가능성을 열었다.
하나님의 은혜와 그의 분노 사이를 이끌어 내는 견고한 라인은 없으나
순조로운 변화를 표시하는 커브가 있다. 그리스도 윤리학에서 사람은
올바르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 어떤 점에서는 옳고
그리고 어떤 점에서는 잘못되었다.
5. 인식론적 전환
(EPISTEMOLOGICAL SHIFT)
또 다른 최근의 논문에서 반 후스틴(Van Huyssteen (1993:430)은
신학과 과학 사이의 인식론적 관계에 대한 탐구의 중요성을 강조한바 있다.
만일 사실상 동일한 세상에 관하여 언어가 있다면
특별히 우리가 모든 경험의 고정된 해석을 찾는다면 관계가 없는 언어의
다수를 가진 내용이 되어야 함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그에 의하면 근본적인 인식론적인 질문은
그러므로 신학과 과학 두 가지 안에서 본질과 설명의 상태와 설명의
주석적 요청을 발굴하여야 한다. 그래서 그는 현대과학으로부터
신학적 교리를 직접적으로 끌어내는 인식론적 오류에 대하여 경고한다.
(예를 들면 빅뱅으로부터 창조라든가 필드(장)이론으로부터
하나님의 성령 또는 오메가 포인트 이론으로부터 종말론을 예로서
티플러 (Tipler, 1994 와 크리프톤(Clifton 1990) 또 사르페
(Sharpe 1992) 140 on scientific limitations)를 참고하시오.
이러한 복잡한 이슈에 대한 갈채를 받을 만한 인식론적 모델을
발견하려는 시도에서 우리는 이중 가치와 다중가치 논리 모델에
관한 지식에 대한 과학적인 요청을 실험한다. 이중가치(양면 가치)는
단순성과 작업에 있다. 그러나 과정에서 단순성에 대한 정확성을 다루어야 한다.
그것은 A 이거나 비-A, 예 아니오 흑 백, 참과 거짓의 이중가치로서 명제
또는 조건(용어)를 분명하게 결정하는 일을 하는 것이 훨씬 쉽다.
그러나 이중가치는 어떤 강제적 맞춤이나 도려냄을 요구한다.
정보시대는 이중가에 안착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호 체계와
마이크로 컴퓨터 칩에서 디지털 혁명에 안착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시간 안에서 부드럽게 변화는 양을 측정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컴퓨터의 2가적 1과 0으로 맞춘 이러한
신호를 샘플하거나 양자화하거나 다듬는다. (Kosko 1994)
정보 또한 우리에게 그림이나 실재를 형성하게 한다.
그것이(정보가) 우리의 정상적인 감각이거나
또는 확장된 감각(망원경, 현미경 기타) 또는 정보를 수집하는
특별화된 방법이든지 무엇이거나를 통하여 수집된 정보이든
그것은 우리들의 실재적 그림을 형성한다. 또 다른 모순은
우리가 수집한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들의 그림이 더 분명하며
더 한층 정확해 진다. 그러나 정확성이 증가하면 할수록 마찬 가지로
그림 안으로 더 많은 퍼지(fuzzy)가 천천히 접근한다.
시스템의 복잡성이 증가하면서 그것들의 행동에 관한 정확성과
의미적 성명을 만들려고 하는 우리들의 능력은 한계점(기준점)이
정확성과 중요(의미)가 거의 다중적으로 배타적 특성이 되어 가는 것
너머로 도달할 때까지 감소한다. 필연적 추론의 원리는 간단명료하게
곧, 실제적 세상의 문제를 더 가깝게 가서 보려고 하면 할수록
그것의 해답은 더 흐리게 된다는 것으로 간단명료하게 언급할 수 있다.
(Zadeh, in Kosko 1994: 148)
정보는 회색면을 경계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선은 그릴 수 없다.
선을 정확하게 그리려고 할수록 경계선은 더 한층 거칠어 지며
각각의 다른 것에 스며든다.
(cf Pekala 1992 and Novak 1992 on the margin of uncertainty
and vagueness accompanying knowledge)
그러나 이중(二重)가는 실선(hard line)의 그림을 요구한다.
그러나 아무도 (몇 몇의 극단주의자들을 제외하고)
그것을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결과는 부유하는 딱딱한 경계이다.
(Kosco 1994:152). 그것은 이중가의 예언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들 가운데서 다투는 바로 이유이다.
과학 철학자 윌라드 반 오르만(Willard Van Orman),
퀴인(Quine)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만일 용어집(term table)이
이중가와 화해를 한다면 우리는 정확한 경계를 놓아야 한다.
정확한 마지막 분자를 비록 우리가 그것을 구체화할 수 없을 지라도.
우리들은 하나의 분자를 제외하고 일치하는 물리적 대상이 있다는
것을 붙잡아야 한다. 그런 것은 하나는 테이블이고 다른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이다.
이중(二重)가는 실재를 일치시키지 못하는 방법 안에서 일관성이 없다.
이중가적인 신학은 그러므로 적절성 요구에 살아있지 못한 범죄이다.
반 아르데(Van Aarde(1995)는 교회와 신학 모두에 직면하는 매일의 실재와
그리고 교회에서 가르치는 말씀과 행위 사이에 확실한 상호의 유사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요청했다. 다른 말로 하면 교회는 일상생활의 빛과 요구에 요청과
행위를 모든 사람에게 분명하게 증명하는 그러한 방식 안에서
그 자체로서 수행하여야 한다.
다중가는 다른 한편으로 A와 A가 아닌 것으로부터 자연스러운 변화를 보여주는
퍼지 커브를 그린다. 이 해석은 견고한 선(실선; 띄우거나
그렇지 않거나) 더 한 층 실재에 참되거나 해서 정확 인위적 강제 맞춤 또는 필요에
따른 잘라냄 등이 없는) 해야 함을 요청한다. 그래서 더 한 층 적절해야 한다.
(cf Van Aarde 1995b:50). 퍼지 커브는 특정 요구에 형상을 갖출 수 있다.
다중가가 아닌 것에 나타난 사실에서 어떠한 범위는 100% A를 유지할 수 있고
다른 범위에서는 A가 아님에 100%를 유지할 수 있다.
A와 A-아님 사이의 실선(견고한 구분) 대신 경사는 변화가 그처럼 자연스럽지 않는
표시를 그린다. (경사가 더 가파를수록 퍼지 구간은 더 작다.)
이중가 논리에서 어떠한 문제에 대한 해답은 A이거나 A-아님 이다.
변증법적 사고(思考)에서 대안은 대단한 성공이 됨을 증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식론적 변증법적 계획(틀) 안에서는 A 또는 A아님뿐만 아니라 또한
A와 A아님을 유지할 수 있다. 각각의 위에, 각각의 안에서
다른 것에 삼킴을 당하는 것 없이 또는 다른 것을 제외하는 것 없이
두 개의 모순되는 조건은 각각을 다음에 놓을 수 있다. 변증법적 생각은
근본적인 진리가 닫아드려질 수 있거나 단순 구절 안에 구성되는 것이 없는
통찰에 승인이 주어지는 곳에 실천적 신학의 길이다. (Van Aarde 1995b:41).
더 나아가 그(Van Aarde 1995a:24, 26)는 우리에게 그것은 포스트모던
파라다임을 소개한 진정한 변증법적 신학이며
그것은 이러한 파라다임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끌 수 있는 변증법적 신학이
될 것이라는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들의 변증법적
사상의 넓힘과 확장이다(Bosch 1991 :353; Van Aarde 1995:26).
이러한 관점(실상)에서 실재의 다중가적 이해가 변증법적 인식론의 확산과
개발로서 품을 수 있다는 것이다. A와 A아님 사이의 변증법적 긴장은
제거되지 않고 선택의 무한한 스펙트럼 안으로 나뉘었다.
거의 동일한 방법 안에서 다중가는 확률 너머로 이동하였다.
그것은 변증법적 너머로 이동했다. 곧 접근, 변명, 떠받침에서
전체론적인 위치이다. 그러나 또한 확대와 화해 그리고 새로운
의미를 객관적 주관적 계획을 주는 것이다.(cf Bosch 1991 :355).
마틴(Martin)에 따르면 전체론적 해석학(hermeneutics)는 적어도
다음의 세 가지 특징을 나타낼 것이다.
(1) 각 시스템은 해석 과정에서 주관적과 객관적 두 개를 포용하는
상호간의 인식론을 채택하며 주관적과 객관적인 것은 변증법적으로
작용하며 마인드 시스템을 함께 구성한다.
(2) 그것은 교과서, 해석가들, 그리고 내용 등 그들 사회에서
모든 정치적, 그리고 정신적 실재를 구성하는 추론에 입각한
복잡성의 체계적 구조 해석을 채택한다.
(3) 그것은 참가하는 의식과 작용한다. 이 의식은 승인 안에서
표현하며 사회적 정치적 실재와 작업한다.(Martin 1987:379)
다중가 인식론적 시스템은 열린 시스템이지만 모든 것이 가는
연장(확장)에 떠있다. 포스트모던 파라다임 안에서 다중가적
인식론 역시 현대적 파라다임으로부터 선택적으로 떨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cf Van Aarde 1995:28).
이것 또한 마음의 변증법적 구도(틀)이 포기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보다 더 가능한 견해를 수용하기 위하여 넓힌다.
그러한 계획(틀)은 A와 A아님의 두 가지 극단 사이에서 언제나 작용한다.
임의적이며 전제적인 결과로부터 이러한 거리(간격)을 막기 위하여
코스코(Kosko)는 퍼지 근사 이론을 개발했다.
(Kosko 1994:167) a theore that works with weighted averages
and proposes principles instead of ~les or laws.
야누즈 카프즈키(Janusz Kacprzyk)는 또한 합의의 정도에
그의 이론을 연결하였다. (Kacprzyk et alI 992:274).
그러므로 규칙과 원리 사이의 차이는 문자와 법칙의 정신 사이의
차이로서 말할 수 있게 됐다. 규칙과 정확함, 흑과 백에는 예외가
없거나 전혀 없다. 원리는 모호하며 예외로 가득하다.
그리고 시간에 따라 문화가 포함됨에 따라 서서히 변한다.
(Kosko 1994: 178). 규칙(법칙)의 부피는 약간의 원리를 대체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원리의 완화로 알려졌다.
(cf Van Aarde 1995a:19, 21, 28" 32) Correspondingly
the exploitational and misfeasant nature of the modem era
can be substituted with a non-domination, non-paternalistic
nature and tempered through commiserational and communal service.
이것 역시 원리의 분권화로 알려졌다.
다중가 인식론은 반 아르켈(Van Arkel; 1988)이 간청하였던 상호작용,
상보성, 비-이중성, 전체적 그리고 확률의 메타-이론(Meta-Theory)를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반 후스틴(Van Huyssteen)이 경고한
근본주의에 대한 것을 안내한다.
더 나아가 그것은 사람 안에서 인지(cognitive), 감정
그리고 실존주의적 신학을 요구하는
반 아르데(Van Aarde)의 심각한 지적을 취하여야 한다.
이것은 21 세기의 한계점(경계점)을 너머 신학을 다루는 정직한 시도이다.
6. 양자 신학 (QUANTUM THEOLOGY)
합리성은 확장되어야 한다. 확장하는 하나의 방법은 언어란
절대적으로 정확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인식하는 데에 있다.
그것은 과학적인 법칙 또는 신학적 진리 어느 것이나 최종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인식이 은유, 신비, 유추,
기타 그러한 것들의 역할을 재평가하며 신비적 감각과 환희 등의
재발견하는 것으로 이끌었다.(Bosch 1991 :353).
은유, 신비 그리고 유사한 연설은 과학적 그리고 신학적 이론 양편을
창조하는 필수적인 역할을 했다. 사실, 과학은 종교가 하는 것보다
더 은유적 사상을 더 이상 분배할 수 없다. 과학의 본질 그 자체는
옛 이론을 재해석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은유의 사용에 의존한다.
무지(無知)의 것을 설명하는 것에서 과학은 잘 이해할 수 있는 조건을
발견하여야 하나 아직도 그것에 너머에 있다. (Norris 1991:274).
은유 그 자체의 본질은 과학과 신학에서 합리성의 모양에 필수적
개념적 도구를 만든다. 은유는 충격을 주는 능력에서 그리고 유사하지 않는
특성(본질), 구조 또는 아이디어의 병행에 의한 제안에서 독특하다.
은유는 청취자 안에서 일어나는 놀람과 긴장에 의하여 특성화된다.
은유는 청취자들 안에서 일어나는 그것의 충격과 긴장에 의하여 특성화된다.
은유는 처음에 황당해 보이는 새로운 의미를 제시한다.
그러나 더 나아가 반향에 자신과 유사한 인식(지각) 또는 체험을 제안한다.
상징과 은유적 성명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점의 하나는
후자가 항상 속삭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 곧, 이다와 아니다 이다. (Norris 1991 :274)
6.1 퍼지 집합으로서의 은유(Metaphors as fuzzy sets )
불확정, 잠정적, 시사 그리고 가능성으로서의 과학과 신학에서 인식론적 상태와 설명의 본질
그리고 설명적 요청이 은유적 특성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은유가 포스트모던 양자 신학 안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방편이다.
(cf Van Aarde 1995b).
A와 A아님 사이의 무한한 선택의 수를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은
차례로 표현에 대한 은유에 무겁게 의존할 것이다.
그러므로 은유는 퍼지 집합으로서 보여진다.
그들 각각의 모양과 교통할 뿐만 아니라 또한 은유의 사용에 대한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다는 견해에 의존한다.
(Van Aarde 1995b는 은유, 신비, 해석학 사이의 관계를 설명했다.
and therefore I only refer to metaphors when indeed this interrelation is supposed.)
확장된 은유로서 작용하는 우화(비유)는 퍼지 시스템으로 보여질 수 있다.
(퍼지 시스템은 문장이 단어들과 관계하는 동일한 방법 안에서
문장의 그릅은 퍼지 집합을 포함하며 퍼지 시스템을 갖춘다.
이것 역시 우리들의 생활 코람 데오(coram Deo) 안에서 진리에 대한 탐구로서
존재의 요소에 대한 합리성의 확장, 새로운 열림과 신나는 가능성으로서 보여질 수 있다.
6.2 전세계적 교회의 신학(Ecumenical theology)
다중가적 양자 신학은 높은 우선순위로서 전-세계적 교회 신학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잠정적으로서 인식론의 본질 그 자체는 다양성을 수용하기,
다양성을 견디기, 다양성을 이기기 그리고 다른 것 위에 확신의 우위를
이기기를 선전하며 선포하는 것이다.
반 아르데(1995)는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더불어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영적 교감으로서 전-세계적 교회 신학의 목표를 설명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연합과 공유는 다양성에 상관없이 팽배하였다.
그것은 초대형 교회의 구조 안에 자리를 잡은 것이 아니라 도리어
믿음 안에서 포용하는 구조 안에서, 판단하는 대신 배우는 수행 안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가 거주하는 다문화 다양성 또는 그로발 마을은
세계 종교 가운데 평화를 위한 투쟁에 새로운 기세를 요구한다.
위에서 언급한 동일한 원리가 자연스럽게도 이러한 이슈를 심사숙고하는 데에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 종교 사이의 대화는 종교적 혼합을 용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한 그로벌적 책임, 종교적 평화, 윤리,
이교간의 대화, 상호 존중, 인간 welt-bing, 사회적 고양 등으로서
일반적인 이슈에 상호 동의를 찾는 것이다. (cf Kung 1988, 1991).
이러한 점에서 반 아르데(Van Aarde, 1995)에 의하여 제안된 매개체를
바라보는 것이 의미심장할 것이다. 다른 종교 사이 대화 안에서
1) 교정적 법증법 관점에 대한 증명
2) 그로벌과 복수적 포스트모던 문화의 도전을 수용
3) 하나님은 전체론적 타자이며 그러므로 은유적 성경 신학으로 사역하기
4) 은혜에 대하여 역사적 예수의 탐구의 가치를 취하지 않을 것
5) 그리스도 신앙의 독특한 교의(신조)를 변절하지 않을 것을 인식한다.
6.3 윤리 (Ethics)
양자 신학에서 원리는 실선을 그을 수 없다는 것을 유지한다.
이것은 윤리적 이슈에서도 마찬가지로 관계된다. 도덕과 윤리는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손에 닿는 사물의 재평가와 재구성을 요청한다.
사람은 어느 정도 의도적이며 결정적 윤리적 그리고 비-윤리적이다.
사람은 어느 정도에서는 옳고 어는 정도에서는 옳지 않다.
한 번 더 정보는 추가되지만 선은 커브 안으로 흩어지고 흑백은 회색으로 변한다.
이것은 윤리가 낙태, 안락사 그리고 간통관계가 논쟁이 될 때 일어난다.
예를 들면, 생명과 비-생명 사이의 선은 분명하지 않고 삶과 죽음,
성인과 비-성인 등 사이의 선과 같이 완만한 퍼지 커브이다.
반대하지 않는 모든 사람은 견고한 선을 그리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것을 위하여 멈추어서 싸우기를 준비하는 사람은 적다.
왜냐하면 이중가적 논리는 사실에 부합하지 않으며 일관성 안에서 허망함을 얻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확정성 사이에서 양자 신학은 해답을 마련하고 있다.
변증법적 원리는 해답이 질문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유지한다.
다중가적 논리는 불확정성을 취급하기 위하여 개발된 시스템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또한 불확정성을 수용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윤리적인 문제를 취급할 때 많은 것들 가운데 원리는 규칙 위에 있다.
가중적 평균 원리는 예를 들면 그리고 합의의 연약 정도의 원리,
퍼지 근사법의 원리,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과 사면은 윤리적
이슈를 사색할 때 안내로서 완벽한 조화 안에서 발견될 것이다.
6.4 사회적 응용(Social applications)
반 아르데(Van Aarde; 1995)는 그리스도인 신앙의 사회적 위상을 강조하였다.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사건에서 교회는 그 자체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세계 모두를 선포하고 상기 시켰다. 사회의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차원 안으로
모험을 기도할 때 신학은 그러므로 근면하며 부차적인 태도를 선언해 왔다.
그로벌 마을의 다중가적 다양성 안에서 호소는 관용과 수용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사회는 또한 보다 위대한 책임에 소환되어야 한다.
다중가적 양자 신학은 분산과 규제 철폐 원리를 끄집어내야 한다.
- 원리는 보다 큰 위대한 사회적 책임 각성을 요구한다.
순서대로 합의의 연한 정도의 원리는 언어학적 수량사에 의하여 표시된 퍼지
과반수와 더불어 퍼지 선호 아래 그룹의 결정을 위하여 개발되었다.
(Kacprzyk et al 1992: 268
그리고 민주주의 견해에 대한 심오한 의미를 가진다.
양자 신학이 남아프리카에서 통상적 도덕적 언어 도달하기에는
다음 단계를 취하는 것이 가능한가? 모든 사람들이 말하는 감각에서는 아니다
그러나 시스템 안에서는 다양성을 수용한다. (cf Smit 1995a; 1995b).
7. 결론 (CONCLUSION)
퍼지 논리의 기본적인 가설은 2 진법/2 가 논리와 실재 사이의 맞지 않는다.
2진법 논리는 양자(quantum) 실재가 뾰족한 모서리의 세계와 부드럽게
변하는 양을 보여 주는 동안 그 사이에서 나온 경선(실선)와 더불어 진위 가치의
세계를 묘사한다. 수학의 법칙이 실재를 참조하는 한 확실하지 않다.
확실하면 실재를 참조하지 않는다((Albert Einstein quoted in Kosko 1994:3)
퍼지 논리는 어긋난 문제의 산물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다중가 인식론을
기반으로 한 이것은 공학, 컴퓨터 과학, 전자 장치(진공청소기에서
로켓트 발사장치), 신호기, 중성 네트워크와 기타 많은 것들에
성공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cf Kosko 1994; Zadeh 1992; Yager 1992)
퍼지 논리의 성공은 크게는 그것이 일하는 단순한 사실의 탓으로 돌린다.
다중가 인식론은 또한 사회과학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사회에 대한 포스트 모던 문화을 그려내면 우리의 미래는 불확실,
다양성과 퍼지로 나타난다. 그러나 다중가 논리는 순간에 대한 일 산물인 해답을 제시한다.
시공에서 포스트모던 순간이 지속하는 한 기회 안으로 다양성과 확률과
작업한 산물을 가진다. 동시에 새시대, 새로운 교량 설치, 새로운 책임 수용과
또한 새로운 도전의 새로운 조우에 직면하는 산물을 가진다.
이런 것들이 양자 물리학과 인간 의식(인식) 사이의 인터페이스의
신학적인 관련성을 평가하기 위한 도전이다. (cf Basti 1992; Penrose 1994).
우발성과 예측불허의 분류의 재 천명 (cf Russell 1988; Hedman 1989;)으로
판너버르그(Pannenberg 1991)는 the notion of change -the belief
that things can be different, that it doesn't have to be this way
-are again recognised as both scientific, theological and sociological categories.
This has, in the words of the late David Bosch (1991 :356) ' ...
creat[ed] almost boundless hope in the hearts of millions,
particularly among the less privileged ...
and at the same time giv[en] a new relevance to the Christian mission'.
끝 마무리(End Notes )
1. 힘의 특수법으로서 (이를테면 중력의 역제곱 법칙) :
뉴턴의 계획은 간결하게 번역하고 역학적 공식의 결정이다.
만일 여러 입자의 위치, 속도 그리고 질량이 한번에 언급된다면 위치와 속도
(그리고 질량 - 이것은 상수로 취급됨)는 나중에 모든 것에 대한 수학적으로 결정이 된다.
뉴턴 역학의 세계에 의하여 만족되는 이러한 결정론의 형태는 철학적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자유 승리의 질문, 인간 의식 등)(Penrose 1989:167)
2. 아리스토텔(Aristotle)의 아이디어와 갈릴레오(Galileo)
그리고 뉴턴(Newton)의 아이디어 사이의 커다란 차이는 아리스토텔은
어떠한 물체가 만일 어떠한 힘이나 충격에 의하여
유지되지 아니하면 휴식(정지) 상태를 선택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뉴턴의 법칙 곧 휴식의 특수 표준은 없다는 것을 따른다.
휴식의 절대적인 표준의 없음은 사람이 동일한 공간에서 동일한 시간에 일어난
다른 시간에서 발생한 두 가지 사건이 있든 없든지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공간에서 절대적인 위치사건을 줄 수 없고 사람의 위치가 다른 사람에게
선택되어질 이유가없다는 것이다. (Hawking 1988:17)
3. 1905년에 아인슈타인(Einstein)은 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을 가정하여
모든 관측자에게 빛의 속도는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설명하였으며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이 이론은 그렇지만 뉴턴의 중력의 법칙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곧 물체는 서로를 그들 사이의 거리에 달려 있는 힘으로 당긴다.
이것은 만일 한 물체가 움직인다면 힘은 즉각적으로 변한다.
대신 빛의 속도보다 낮은 속도에서 1915년 아인슈타인은
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제안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중력은
다른 힘과 같은 힘이 아니라 시-공간은 평면이 아니라는 사실의 결과이다.
(이전에 가정한 것처럼) 그러나 그 안에 있는 질량과 에너지의 분포에 의하여 휜다(굽어진다),
일반 상대론에서 물체는 비록 그것이 3차원 공간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우리에게 나타난다 할지라도 4차원 시-공에서는 직선으로 움직이다.
광선은 또한 시-공간에서 측지선을 따른다(굽은 공간에서 직선)
그리고 중력장에 의하여 굽어진다. (Hawking 1988:28-31).
일반상대론의 다른 예측은 시간은 지구와 같은 지량체 근처에서는
느리게 진행하는 것이 나타난다. 이것은 빛의 에너지와 그의 주파수
사이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클수록 주파수가 높아진다.
빛이 지구의 중력장 안에서 위로 움직일 때 에너지를 잃는다.
그리고 또한 주파수도 낮아진다.(이것은 하나의 파동의 정정에서
다음 정점 사이의 시간을 의미한다.) 어떤 것이 높이 오르기 위하여
그것은 모든 것이 낮아지는 것은 -- 이 일어나는데 시간이 걸림을 의미한다.
상대성 이론에서 특별한 절대시간이란 없다. 그러나 각 개인이
자신의 그가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 것에 달린 신간의 측정을 가진다.
(Hawking 1988:33)
4. 1900 년에 독일 과학자 막스 프랭크(Max Planck)는
전자장파(라듸오파, 광선, X-ray 등)(Quld는 뜨거운 물체(예를 들면 별)로부터
임의적인 속도로서 방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퀀타라고 부렸다.
더 나아가 어떤 패켓에서 각 양자는 파동의 보다 높은 주파수인
상당량의 에너지를 가진다. 그래서 충분히 높은 에너지에서
단량자(single quantum)의 방사는 가능한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이런 것이 높은 주파수에서 복사는 감소되고 그래서 에너지를 잃은
물체(몸체)는 유한하게 된다.(Hawking 1988:54).
5. 입자의 미래의 위치와 속도를 예측하기 위하여 사람은 현재의 위치와 속도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행하기 위한 분명한 방법(길)은 입자에다
빛을 비추는 것이다. 빛의 파동 중 일부는 입자에 의하여 분산되고 이것이
그 입자의 위치를 표시할 것이다. 그러나 빛의 파장 사이의 거리보다 더 정확하게
입자의 위치를 결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입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하여 단파장의 빛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프랭크의 양자 가설에 의하여 임의의 빛의 작은 량을 사용할 수 없다.
이러한 양자는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입자를 방해하며 입자의 속도를
변하게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위치를 더 정확하게 측정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짧은 파장의 빛을 필요로 하며 여기서 보다 높은 단량자(single quantum)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게 된다. 그래서 입자의 속도는 보다 많은 량에 의하여
방해를 받게 될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입자의 위치를 더욱 정밀하게
측정하려고 할수록 입자의 속도를 덜 정확하게 측정하게 될 것이다.
그 반대도 성립한다. 하이젠버르그(Heisenberg)의 불확정성 원리는
기본이며 세상의 불가피한 특성이다. (Hawking 1988:54)
6. 빛이 파동으로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프랭크의 양자 가설은
어떤 방법에서 그것이 마차 입자로 구성된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파동이 패켓이나 또는 양자들 안에서만 방출 또는 흡수된다.
이와 같이 하이젠베르그의 원리는 입자가 어떤 점에서는 파동과 같이 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곧 그 입자들은 한정된 위치를 가지지 않으며 어떤 확률적 분포로 사라진다.
그래서 양자 역학에서는 파동과 입자 사이의 이중성이 있다.
왜냐하면 어떤 목적에서는 입자를 파동으로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되고
또 다른 목적에서는 파동을 입자로 생각하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다.
이것의 중요한 결과는 이른바 파동과 입자의 두 셋트 사이의 간섭이란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간섭의 현상은 원자들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매우 중대한 것이다.
(Hawking 1988: 56)
7. 쉬뢰딩거(Schrodinger)의 공식(파동 역학에서 물리적 시스템의 혁명을
다루는 기본적인 미분방정식이다.)에서 파동 다발의 붕괴는 어윈쉬뢰딩거에
의하여 도입된 유명한 사상의 실험에 의하여 설명된다.
쉬뢰딩거의 고양이 역설(the paradox of Schrodinger's cat):
고양이가 안에 있는 밀봉된 상자(그래서 물리적인 영향이
안으로나 밖으로 통과 할 수 없는)를 상상하자.
양자 사건에 의하여 방아쇠가 당겨지는 (방사선 원자의 붕괴 또는 광량자에
의한 포토-셀의 방아쇠) 같은 장치가 있다. 만일 그러한 사건이 발생한다면
장치는 시안화물을 담고 있는 작은 유리병을 깨어버리고
고양이는 죽게된다. 만일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고양이는 살아 있을 것이다.
두 가지가 대안이나 밖에 있는 관측자에 따르면 양자 선형 중첩의 부분으로 동일하게
다루어야 한다. 고양이는 죽었거나 살아 있는 선형 중첩 안에 있다.
그것은 상자가 열렸을 때만 파동 다발(wave packet)이 붕괴하고 고양이는
죽었거나 살아거나 하는 것이다. (See Polkingho,-ne 1989:62-69
and Penrose 19~9:293-301 for various attitudes
in existing quantum theory on this experiment).
8. 봄(David Bohm; 과학- 철학자)의 제안 이후 수정된 실험으로
단순화된 버전(번역)은 다음과 같다. 입자가 실험 장치 안으로 들어간다.
그 입자는 스핀을 할 수 없고 반으로 쪼갤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다른 방향으로 향한 각 반으로 나눈다. 반은 한 길로 스핀을 하고 있으며
다른 반은 반대 방향의 스핀을 하고 있다. 두 개의 반들의 총 스핀인 모체가
제로 스핀을 가지고 있는 - 갈라지는 점에서 스핀의 보존에 의하여 제로(0)이어야 한다.
그리고 같아야 하나 두 개의 반은 반대의 스핀은 다른 것을 취소한다.
두 개의 반은 약간의 거리에 떨어저 있을 때 하나는 스핀을 바꾼다.
질문은 다른 반의 스핀에는 무슨일 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순간적으로 변경되며 그래서 스핀의 보존은 유지된다.
다른 반 입자는 스핀을 바꾸어졌다는 것을 무엇이 말하고 있는가?
(Sharpe 1992: 138)
9. 1965년에 로프티 자데(Lofti Zadeh)는
UC Berkeley's electrical engineering department의 의장으로서
정보와 통제라는 잡지에서 퍼지 집합을 발행했다.
논문은 루카캬비츠(Lukasiewicz)의 목표물(주제)의 다중가 논리를
설정하거나 그룹을 적용한다. 자데(Zadeh)는 이러한 모호한
또는 다중가 셋트에 퍼지 라벨을 달았다. 셋트의 요소들은
다른 정도에 대하여 그것에 속한다. (Kosko 1994:9)
10. 화률 이론에 따르면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이 결정된다.
그것은 또한 임의 이론 또는 경우의 이론으로 불린다.
불확실하면 언제든지 확률을 이야기 한다.
곧, 그녀가 아마도 그 드레스를 살 것이야.
확률은 행동 안에서 결코 잡히지 않는다. 오직 임의적 실험의 결과 이후에 발견한다.
성공의 확률은 상대적인 빈도 또는 성공 비율로 부르는 딸린 부분
(트레일)의 총 수량에 의하여 나누어진다. 다중가 논리 또한 확률과 작용한다.
그러나 설명의 확장에서 확률론 너머로 간다. 정보는 퍼지를 증가시킨다.
퍼지 논리는 미래의 사건이 일어날 것에 대한 정도를 설명할 뿐만 아니라
또한 사건이 발생하는 것에 그리고 일어난 것에 대한 정도를 설명한다.
확률은 퍼지 논리의 확장된 모델 안에 포함된다. 상대적 빈도 또는
성공률은 부분집합 A(성공집합)가 전체 X(뒤따르는 집합)를 포함하는 것에
대한 정도이다. (Set of Successes) 또한 부분에서 전체의 퍼지 원리로서
알려졌다. (Kosko 1994:44-64).
11. 깨달음에 의하여 지지하므로 자연의 구체화와 인간 마음과 의지에 대한
물리적 세계의 우승자는 비참한 결과를 가졌다.
그것은 닫히고 필연적으로 완성되고 불변의 견고하게 프로그램된 기계인
세계 안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그리고 역설적으로 인간을 자유롭게하는 것 대신
그들을 노예화 시켰다. 생산은 인간의 최고한 목표가 되었다. 그리고 인간 안에서
기술의 자율적 제단에서 경배를 하게 되었다. 더 재앙스러운 결과는
오늘날 생태학적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사람들은 지구를 무감각한 사물로 취급하므로 악하 시켰다.
이제 그것은 손에서 죽어가고 있다.
개화된 문화는 인간성과 자연 모두를 어떤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근본적이고도
전반적으로 오해(잘못 해석)했다. 근본적인 재-오리엔테이션은 사람은
분석적인 것보다 전체적으로 생각해야 하며, 거리를 두는 것보다 함께하는
것을 강조하며 마음과 몸의 이중성을 통하여 개선해야 하며 주관과 객관,
공생을 강조한다. 그것은 자연과 특별히 사람은 단지 사물이라든가
타인에 의하여 조정되고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Bosch 1991 :355)
12. 퍼지 근사치 이론(FAT; Fuzzy Approximation Theorem)
(FAT는 근본적으로 프로세스 모델과 기계 IQs를 증진시키기 위하여
개발되었으나 이와 같이 본 논문의 목적을 위하여서도 사용되었다)
FAT의 개념(아이디어)은 단순한 기하학적이다.
커브는 퍼지 patch의 유한 숫자에 의하여 커버된다.
인각 지식의 단편, 형태의 각(퍼지) 규칙,
만일 이것이면 그렇게 된다는 다발(patch)을 정의한다.
모든 퍼지 규칙은 꿈틀거리는 커브를 커버하기 위한 다발을 정의한다.
다발이 커브를 더 잘 커버하면 할수록 시스템은 더 한층 스마트해 진다.
더 많은 지식은 더 많은 퍼지 규정을 의미한다.
더 많은 퍼지 규정은 더 많은 다발과 더 좋은 커버를 한다.
규정의 불확실 하면 할수록 더 큰 patch가 필요하다.
퍼지의 규정이 적을수록 더 작은 다발이 된다.
만일 규정이 매우 정교하면 퍼지가 아니며 다발은 어떤 점으로 붕괴한다. (Kosko 1994:158)
FAT는
FAT works with the concept of 'fire all (fuzzy) rules parallel
and paTtiDlly' (depending on your specific goal),
thus creating a fuzzy weighted averag~.
In making or defending a decision, each reason is a fuzzy patch,
a matter of degree, with a fuzzy weight.
No ODe reason throws the decision,
but they all add up to approximate your choice with a fuzzy weighted average.
Fuzzy weighted averages proposes principles instead of precise rules.
13. 이 원리에 따르면 언어적인 논리기호(대부분, 거의, 전부, 약간 등에 의하여
예증된)와 더불어 퍼지 논리가 그릅 의사 결정에 사용될 수 있다.
한정기호는 퍼지의 대부분, 개별성을 가정하는 대부분
그리고 사회적 호혜 관계를 대표한다. 이것은 그룹 의사결정에서
개념의 재정의, 합의의 새로운 정도를 표시하는데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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