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점에서 서출동류의 물줄기 따라 가는 첫번째 구간 (황점 - 강선대구간)
황점
북상면의 서쪽 끝자락이며 남덕유산의 아랫자락인 황점은 옛날 황봉대산 밑에 쇠를 다루는 대장간이 여러 곳에 있었다 하여 마을이름을 黃店이라고 불리어졌답니다.
하늘아래 첫 동네이며 거창의 대표적인 서출동류 물줄기의 발원지인 삿갓골 샘의 물줄기가 산 아래로 내려와 처음으로 흘러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삿갓골은 전북 무주군 안성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로서 옛날 이곳에서 월성의병들과 왜군들이 치열한 전투를 치루었던 곳이며 그 모양이 삿갓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마을 앞으로 난 도로는 함양군 서상면과 이어지며 영각사와 덕유연수원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남령(南嶺)재라고 하는데, 온 산이 우거져 그 색깔이 진한 녹색이라 하여 녹색 물을 들이는 쪽람(藍)을 넣어 남령(藍嶺)이라고도 한다지요?
깊고 깊은 골짜기의 마을에서 이제는 수많은 등산객들을 반기는 마을로 바뀌면서 마을 대부분이 민박을 하고 있으며, 길가의 동네가게에서 마시는 동동주는 기가 막히다고 하니, 어찌 다시 또 오지 않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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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대
황점에서 월성 가는길 중간에 있는 사선대는 여름이면 수많은 피서객들로 둘러 쌓이는 명소입니다. 조선 후기 명필가인 동춘당 송준길 선생이 이곳에 머물렀다하여 송기(宋基) 또는 송대(松臺)라고도 불리었다고 전해집니다.
1909년 고종의 5남인 ‘의친왕 강’이 나라가 어지러울 때 승지를 지낸 정태균(동계 정온선생 후손)을 찾아와 머물면서 북상 위천 지방의 우국청년들과 만나 사선대 일대를 뒷날 의병의 근거지로 삼으려고 준비하던 곳이라 하여, 이 바위를 왕실의 선원(璿源)을 기린다는 뜻으로 사선대(思璿臺)라고도 불렀다니 왕실을 위한 마음이 이 천리 먼 길까지... (여기서 ‘선원’이란 ‘임금의 집안’이라는 뜻이라고 함)
전해지는 이야기의 또 다른 이름은 바위의 포갬이 4층으로 이루어졌고, 돌 위에서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로 사선대(四仙臺)라고도 부르고 있답니다.
바위의 맨 아래면에는 전서로 사선대라고 새겨진 곁에 경상감사 김양순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맨 위 바위 모양은 마치 봉황새 모양 같기도 한데 보는 사람의 각도에 따라 거북이 같기도 하다고 한다는데... 봉황새 모양은 다리에서 바라보면 그렇게 보이기도 합니다.
사선대는 송대라는 제목으로 18세기의 화가 진재 김윤겸과 김희성이 그린 담채 수묵도가 동아대학박물관과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사선대 주위에는 등산길에 오를 수 있는 작은 오솔길이 있습니다. 이 오솔길을 거닐면서 사선대 앞의 희디흰 너럭바위와 바위덩이 위를 흐르다 고이면서 이루어진 사선담의 물안개를 바라보면서 신선이 되어 보기도 함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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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
달빛이 곱고 별빛이 곱다는 월성마을은 거창군내와 함양군, 전라도로 통하는 길이며, 월성을 드나드는 8개의 통로가 있어 ‘월성팔문’ 이라 하였고, 월성리의 중심지에 있는 큰 마을을 월성이라 하고, 흔히는 ‘양지’라고 부른답니다.
거창시내를 흐르는 영천과 영천이 흘러 황강으로 가고 황강은 또 다시 동쪽으로 동쪽으로 낙동강을 향해 가는데 그 물줄기의 발원인 삿갓골샘의 물을 안고 흐르는 계곡이 월성계곡이며 이 월성마을을 가로 지르면서 곳곳에 절경을 빚어내고 있습니다.
구한말 월성의병 사십여 명이 나라 위해 싸웠으며 그 흔적으로 1969년 세운 월성의거사적비가 성천 마을 숲에 서 있습니다.
월성리에서 어은골을 바라보고 100여m오면 달 속의 계수나무와 같이 생긴 마을과 같다하여 ‘내계’마을이 있으며 내계마을을 지나 산길을 가다보면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시키는 ‘내계폭포’가 나무꾼과 선녀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안고 있습니다.
곳곳이 아름다운 비경으로 이루어진 월성계곡을 안고 있는 월성마을은 지금 마을 전체가 민박촌을 이루고 있으며 마을회관과 함께 북상월성체험마을로 지정이 되어있는 곳으로 농촌체험을 하기위해 도심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마을입니다. 감자도 캐고 옥수수도 따고, 버섯도 따면서 이제는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과 함께 맛있는 사과를 수확하는 체험을 할 수 있어서 더 아름다운 곳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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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바위
북상면 산수리의 물 나들이 맞은편의 산줄기 위에 댕강 서 있는 장군바위는 성천과 산수천을 굽어보며 마치 양 날개로 병정들의 사열을 받고 있는 듯 당당한 위풍으로 서 있습니다.
장군바위 아래에는 월성에서 내려오는 성천과 산수마을에서 흘러내리는 산수천이 만나 한줄기로 흐르는 곳이며, 주변 경관은 거창의 소금강을 이루고 있습니다.
장군바위에는 삼국시대 병사와 장군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답니다.
백제와 신라가 대립을 할 때 이 바위가 있는 부근에서 접전을 치루고 있었다고 합니다. 신라가 백제군사에게 전투에서 지려고 할 때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 “산꼭대기에 있는 바위를 칼로 두 동강 내면 이길 것이다!” 하여 이 소리를 들은 신라장군이 전력을 다해 말을 달려 산꼭대기에 있는 바위를 쳤겠죠? 그러자 참으로 이상한일이 벌어졌다는데... 갑자기 잠잠하던 하늘은 뇌성벽력을 치고, 그동안 기력을 다했던 신라 군사들이 신기하게도 갑자기 힘이 나서 백제 군사를 물리쳤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장군바위 아래에는 절벽에 반달 같은 바위가 있는데 이름 하여 ‘투구바위’이며 신라장군이 바위를 치기위해 달리다가 떨어트린 투구라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져 오고 있답니다. 흐~흥 투구 같이 생겼다니깐요~~ 아주 오랜 옛날의 사건들은 달빛에 바래고 별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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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설담
월성계곡의 심장에 자리하며 소금강을 이루는 주변의 산세와 어울려 암반을 타고 흐르는 물 흐름이 마치 눈이 흩날리는 듯하여 분설담(噴雪潭)이라고 합니다.
분설담을 에워싸고 있는 산은 흡사 책을 포개어 쌓아 올린 듯한 채석강과도 같고, 성천의 물결에 패이고 패여 물고기 비늘 형상을 이루는 분설담의 너른 암반위에는 여인의 기도처인 성혈(기자소)들이 간절한 소망을 안고 밝은 달빛 아래서 물을 채우고 있습니다.
거창의 소금강이라고도 하는 분설담 너럭바위에는 동춘당 송준길선생의 글씨로 ‘제일동산(’산‘은 지금 마모되어 없어졌음),’분설담‘이라 새겨져 있으며, 또 분설담 아래 바위에는 경상감사 김양순의 이름이 새겨있고, 위에서는 장군바위가 굽어 내려보고 있는 가운데 성천의 맑은 물은 바위위에서 부서지면서 분설담을 새긴 글자를 마모시키며 흐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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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대
고사목이 되어있는 노송과 함께 푸르른 소나무에 둘러쌓여 있는 바위에는 ‘강선대’라고 음각되어 있는데 옛날 신선이 내려와 노닐었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습니다. 대의 맞은편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데 이곳의 바위에서 신선들이 내려와 바둑을 두었다고 하지요? 대의 맞은편 위쪽은 모암 임지예 선생을 기려 세운 정자인 ‘모암정’이 있는데 활주의 기단은 팔각이며 여기에 거북이와 꽃들을 새겨 특이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데 아쉽게도 주인이 바뀌어 개인소유가 되어 있습니다.
강선대 앞을 지나 산길로 꼬불꼬불 한참을 들어가면 모리재가 나옵니다. 화엽루라는 아름다운 누각이 있는 이곳은 조선조 인조때 척화를 주장하던 문신이며 충신인 동계 정온선생이 화친조약이 맺어지자 남한산성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남은 여생을 미나리와 고사리를 캐며 보낸 곳 이라고 하는데 강선대는 모리재의 초입에 있습니다.
주변에는 민들레울 이라는 허브 농장이 있으며 수많은 허브종류가 제각각 향기를 내뿜고 있는데, 허브차를 마시며 즐기는 주변경관은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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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사전 답사 길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서출동류 물줄기를 따라 거니는 길이 행복한 시간으로 채워지시길 기원합니다.) - 맹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