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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선에서 종군 -1-
종군기간 :1971.7.17~1972.7.4 종군 부대 : 맹호사단 1연대 1대대 4중대 <관측장교 5개월> 맹호사단 60포병 대대 A포대 <전포대장 7개월>
종군장소 : 베트남 퀴논 풋캇 비행장 북쪽에 주둔한 1연대 1대대 4중대 베이스 / 풋캇 월남군 훈련소 에서 10km지나 프랑스1개 연대가 베트콩에게 몰살 당했던 죽음의 계곡 입구 맹호부대 1연대 1대대 주둔지역 내 맹호사단 60포병대 A 포대 주둔지
대한민국 정부가 [하기]에게 수여한 월남 참전기장과 베트남정부가 수여한 베트남 참전기장
*스캔에서 사진 복사 하여 편집 한것임* 2007.12.12 하기
맹호 17호 작전에 참가 한후 8 일간을 고보이 평야 습지대에서 매복 전투 작전을 마치고 헬기를 타고 귀환한 모습...침투되지 않고 주둔지에서 우리들을 도왔던 연락장교가 우리를 맞아 주었다 바로 이 작전지에서 6 일째 물이 떨어져 나는 오줌에 커피를 타서 크레모아 화약에 불을 ?여서 끓여서 먹어야했던 극한 상황속에서도 나와 병사2명은 살아 돌아올수있었다.지금도 물이떨어져 먹는 물과의 사투를 벌려야 했던 전투를 잊지를 못한다. 정말 자랑스런 전투를 우리는 하고왔다 < 송정학 중위 (4중대 관측장교) 김상호대위 (1대대 연락장교) 김병태중위 (3중대 관측장교) >
3 중대 관측장교 중위 김 병태/4 중대 관측장교 중위 송정학/5 중대 관측장교 중위 성희경
맹호18호작전[고보이 평야 매복소탕작전]을 6일간 마치고(소총중대 관측장교 마지막임무) 기지로 무사히 귀환한 모습들이다. 습지를 파고드는 性器 처럼 그렇게 치열하게 싸웠다. 죽어가는 전우가 후송되는 긴박함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어야 하는 전쟁터의 생리를 체험 했던 작전이었다.이제야 큰 고비를 넘긴 셈이다. 극한 상황을 3번 넘긴 그렇게 길었던 5개월 동안의 관측장교 근무였다. 12회에 걸쳐 보병 소총 중대장에게 포병화력을 제공하며 작전을 잘 마무리하게 하였다. 이제 보병소총중대 관측장교 생활을 마치고 포병장교의 본연의 임무 를 수행하러 맹호사단 제60 포병대대 A포대 戰砲隊長 으로 보직을 받아 자리를 옮기게 됐다
베트남 전쟁터에 파병될때 부친께서 당부 하셨던 3가지 말씀이 있었다. 첫째,돈에 욕심 내지 말고. 둘째,여자를 조심하고, 셋째,병사를 핏줄처럼 아끼라는 것이었다. 이 말씀을 늘 잊지를 않고 베트남 전쟁터에서 생활을 했다.
주월 맹호사단 1연대 1대대 4중대 관측장교 임무 수행시 모습들
2020.5.9. 편집. 하기,송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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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퀴논 북방 고보이 평야습지에서 실시된 맹호18호 작전에
맹호1연대 1대대 4중대 관측장교로 참전 했을때 였었다.
D+6째되던날 작전지에서 물이떨어져 참고,참다가 못이겨내고
C-레션 깡통에 오줌 받아서 크레모아 장약으로 커피와 끓여서
목을 적셔가며 먹어야 했던 극한상황에서 아련함이 전율되어 온다
저 모습들을 보노라면..고생많이 했었다.그래서 나는 지금껏 어려움을
견디어 예까지 왔다.여지껏 베트남 여행을 미룬것은 그때의 시련때문인가보다.
그 때. "습지를 파고드는 性器처럼 그렇게 싸우다 가는게 남자요.군인이 잖아"라는
문귀를 늘 머리맡에 두고 긴장했던 때....그때,내 나이는 스물 다섯살 때 였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