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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문화 원고 - 예공유영(藝空游泳)01
예술의 섬, 여수 진섬[장도(長島)]
최이해
내 유년의 바다는 늘 창밖이었다.
바람도 불지 않고, 출렁이지도 않았다.
나는 교실에서 정물의 바다를 마주하며 체육시간을 견디고는 하였다. 다리가 많이 아파서, 할머니 등에 업혀 학교에 왔으니, 선생님은 체육시간에 교실을 지키라는 업무를 주곤 했다. 처음에는 그저 책을 읽었다. 읽을 책이 없던 날이었던가, 창밖에 멋진 그림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외항선과 화물선이 닿는 항구, 사람들은 여객선과 어선들이 빽빽한 도심의 항구와 구별하기 위해 여기를 ‘신항(新港)’이라고 불렀다. 그 신항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오동도는 그 위에 놓인 그림이었다. 하얀 등대가 선명하게 섬 한 가운데 꽂힌 듯 서 있었다. 그 위에는 수평선이 길게 그어져 있어서 마음의 평화를 대변하고. 나는 지금도 마음의 평화가 필요할 때면, 이 풍경을 기억 속에서 꺼내곤 한다.
그런 그림같은 바다를 시로 쓴 시인이 있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정일근 시인. 형제섬과 수평선과 바다가 얼마나 선명한지 참말로 깨끗하게 유리창 청소를 해 놓은 아이(열이)의 이야기를 동시처럼 써서 내 유년의 기억을 살려줬던 것이다.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진학하면서 바다와는 멀어졌다. 대학을 마치고 선생님이 되어 다시 만났을 때는 얼마나 반가웠던지. 다시 3년 만에 이별, 바다는 기억의 창밖에 있게 되었다.
그러고 30년, 그 사이에 여수 엑스포 구경, 충무공 투어, 결혼 30주년 기념 여행을 통해 얼핏얼핏 바다를 만났다. 한번은 국회 전시장에서 열린 여수 출신 작가들의 전시회를 다녀온 제자가 그 전시회에 걸린 미술 선생님 유상국 작가의 연락처를 알게 해주었다.
참으로 인연이란 모래성 같이 씻은 듯 지워졌다가도 해무처럼 느닷없이 드러나는 것일까. 몇 차례의 전화로 불식의 장벽이 허물어지더니 급기야 아니 만나면 큰일날 것처럼 만났던 것인데, 여수는 생각보다 정말 많이 변했고 또 변하고 있는 중이었다. 유상국 작가는 곧장 장도로 가자고, 보여줄 만하다고 강권했다. 그렇게 진섬은 내게로 왔다.
변하는 여수의 풍경들, 그 중에 새로 생긴 문화공간 ‘예울마루’는 여수에 다시 살러 올까, 그래도 되겠네, 기대심리를 부풀리게끔 자랑스러웠다. GS칼텍스. 예전에는 ‘호남정유’라고 불렀던가. 그 기업이 지역사회를 위해 설립한 공연과 전시의 현대식 공간 이름. 이 재단법인이 야심차게 개발한 섬이 ‘예술섬 장도’인데, 예울마루 본 건물이 산자락 골짜기에 숨어들 듯 지어졌다면 장도는 툭 불거진 채로 새 단장을 한 셈이다.
장도는 살던 사람들이 ‘진섬’이라고, 진을 길게 발음하곤 했다. 섬이니 배로 들어가야 할 것인데, 진섬은 물때를 가려 징검다리를 건너 들어갈 수 있어서 특별했다. 뭍에 있는 밭을 갈고 소를 몰고 섬으로 귀가하는 주민의 영상을 충분히 기억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때를 만나면 ‘홍해가 갈라지는’ 풍광을 연출하는 또 하나의 섬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 섬에는 다섯 가구의 주민들이 살았다. 예울마루와 음양의 조화를 기가 막히게 살려내는 진섬을 예술섬으로 만들기 위해 여수시는 75억 원을 들여 땅을 구입했고, 예울마루는 이 섬을 다듬는데 상당한 금액을 투자하여 환골탈태, 아주 멋진 짝을 지웠던 것이다.
장도로 들어가는 다리. 진섬다리. 느릿한 굽음. 이 곡선은 원래 놓였던 징검다리를 그대로 재현했다고 한다. 물살이 들고 남에 순응하여 생긴 곡선을 건들지 않았다는 것. 물이 들면 잠기게 하여 섬에 들고 나는 권한을 바다가 갖도록 두었다는 것. 다리 아래 물이 흐르도록 통수(通水) 구멍을 두었는데 양(陽)의 수 9를 곱하기 한 81개가 되었다는 것 등등의 이야기를 나중에 듣게 되었는데, 우선은 물때가 맞아 걸어서 들어가는데 바위 여기 저기에 ‘쉬운’ 조각들이 배경을 건들이지 않고 가벼운 듯 서서 손님을 맞는다. 전구 모양, 꽃게 모양이 눈에 들어온다. 자연을 딛고 선 쉬운 조각들이 정말 싱싱하다. 다리의 스리슬쩍 구불거림을 즐기며 걷는 동안 바다는 아주 조용하다. 게들이 바람결에 두 눈을 감추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으려나 싶게. 나오는 사람들 중에 한 커플이 보인다. 사랑의 맹세를 들었을까, 이 섬 끄트머리에 사랑의 고백 장소가 만들어져 있다던데.
다리를 다 건너면 갈림길이다. 섬을 왼쪽으로 돌든지, 오른쪽으로 돌든지, 아니면 언덕길로 오르든지. 오른쪽 길을 선택하란다. 곧이어 몇 동의 흰색 건물들이 나온다. 마을이 있던 자리에 예술가들을 위한 작업실을 지었단다. 마을은 살리고 예술 창작촌을 덧입힌 셈이다. 여기에서 작업중인 화가 이만희 님과의 만남은 별도로 적어 두었다.
조금 더 들어가니 오르막길 언저리에 커다란 팽나무가 있고, 동그마니 샘이 있다. 그 곁에 조각품과 비석 두 개가 서 있다. 섬에 샘이 있으니 유인도였을 것이다. 이 샘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았다니, 그래서 뭍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져서 가뭄을 견디게 했다니 참 장한 샘이다. 샘에 뿌리가 닿았는지 팽나무의 푸르름이 유별나다. 울퉁불퉁 불거진 알통이 드러나 보인다. 그 곁에 비석 둘. 이 마을 주민들을 위한 비망록인데, 이 지역 문인 김양호 시인의 노력으로 세워진 것이라고 했다. 김 시인의 이야기도 별도로 정리해 두었다. 사랑의 고백 장소는 일단 보류, 곧장 오르막으로 해서 아트카페로 향한다. 오랜 시간 만들어진 상록수림이 언듯언듯 바다를 보여준다.
아트카페는 전시장과 겸하여 거북의 머리부분에 숨듯이 지어져 있다. 섬의 동산을 살리면서 카페 부분만 통유리로 창을 내었다. 꽃댕강 생울타리가 둘러쳐지고, 바다는 소나무 사이로 요트 한 척을 밀어내고 있다. 꽃을 탐하는 벌새를 만나다니. 가을 양광이 선명한데 흰색 건물이 시원하다.
건물로 들어서니 복도를 가운데로 유리창 쪽이 카페요, 반대편은 전시실이다. 전시장 행사 안내판을 먼저 읽고, 우선 카페에 들린디. 커피가 고팠다. 바다가 보이는 통유리창 안에서 달콤씹살 커피라니, 참 명당자리에 앉은 기분이다. 귀에 익은 쇼팽의 음악을 누군가가 연주하고 있다. 그랜드 피아노. 여린 팔인데도 힘이 좋다. 커피가 주는 위안에 힐링을 더했다고 해야겠다. 이혜란 피아니스트, 님에 대한 인터뷰 내용도 별도로 정리해 두었다.
유상국 작가의 작품을 이곳에서 만난다. 복도에는 타자기 작품이 있고, 벽에는 드로잉이 있고, 편지 엽서 속에도 그의 작품이 있다. 여수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공예품도 있고, 문인들의 시집이며 여러 권의 책도 있다. 판단다. 전시장으로 가서 상당히 넒은 공간에 한두 점씩, 여러 작가들을 작품으로 만난다. 코로나 시국인데도 조심조심 예술행위를 진행해가는 손길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한참을 아트카페에서 머물렀다가 퇴로 삼아 동산에 꾸며진 야외 전시장으로 오른다. 조각 작품들이 30여 점 늘어서 있고, 그 사이로 관람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금년 5월 정식 개장했으니 아직은 새 맛이 상콤하다.
바다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본다. 바다는 검푸르다. 남해의 바다 중에 이토록 짙은 색으로 검어 보이는 바다는 외해(外海) 아니고는 없으리라. 그래서 가막만. 양식장이 여기 저기 널려 있음을 운동장 트랙 표시 같은 부표들로 알 수 있다. 배들은 이 사이로 난 길을 용케도 잘 찾아서 오고 간다.
이 섬, 진섬을 벗어난 주민들은 어떻게 살아가나. 어업권은 주민들에게 있다는 표지판을 본 것도 같은데, 상당한 보상금으로 전혀 생소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렇다면 예술이 자연을 쫒아낸 셈인데, 피아니스트는 무대가 자연으로 옮겨왔다고 날마다 설렌다는데…. 물때를 맞춰 찾아드는 관람객들에게 진섬다리를 휘감는 물결의 옛이야기는 들려지기나 할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또 문다. 나는 다시 유리창 너머의 바다를 정물로 바라보는 유년으로 돌아간다.
김양호 시인. 이 고장에서 생장했고, 이곳 한영대학에서 오랫동안 강단에 섰고, 지금은 여수문화원 부원장이다. 김 시인은 진섬의 역사성을 시비에 새겨 세우며 다섯 가구의 진섬 사람들을 기억하는 역할을 맡았답니다. 바람을 등지듯 마을이 있던 자리에는 예술가들을 위한 레지던스가 들어섰고, 마을의 샘물과 오래된 팽나무를 그대로 유지시켜 그 곁에 기록비를 세웠습니다.
섬을 노래하는 시인은 몇 년 후 2026년에 열리는 ‘섬과 섬’ 국제 뱍람회를 앞서가는 향토시인입니다.
이민하 작가. 이곳 레지던스 작업실 입주 허가를 받은 현지인입니다. 그는 여기 작업실이 좋다는 생각에 앞서 작업을 응원하는 월정액의 생활지원금이 ‘매력적’이라며 웃습니다.
무엇을 그릴건가, 내게 ‘입주기간’은 ‘동기부여’이기도 하다, 그 기간 안에 이곳 전시장에서 그간의 작업을, 결과물을 전시해야 한답니다. 입주시에 약속한 바와 같이 여섯 달은 어느새 절반을 훌쩍 지나가고 있다네요.
“태풍이 온다네요. 우리 한반도에 폭풍우를 가져다주는 타이푼. 이번에도 지난 번 7호와 비슷한 진로를 유지하고 올라온답니다. 옳거니, 놈들을 그려보죠. 지난 번에 놈들의 꼬리를 놓친 우(愚)를 극복하리라, 여기 진섬에서 서풍을 맞이하면서. 태풍의 이름은 하나이지만 우락부락 몰려다니는 어떤 괴한의 무리 같다는 느낌을 받았거늘, 놈들이 또 몰려온다니 결코 놓치지 않으렵니다.”
남쪽 제주로부터 오는 꽃소식은 곧바로 북진한다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폭풍우는 풍물꾼의 상모 돌리기 처럼 느린 원을 그리며 뱅뱅 서풍을 타고 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답니다.
이혜란 디자이너. 예술의 섬 장도를 예술로 꾸며내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본래 정통 피아니스트. 중 고교와 대학 대학원의 전공인 피아노를 독일 유학으로 이어갔고, 무대에 올라 활동하다가 어느 날 문득 ‘자연’ 곁으로 가자는 생각에 무대를 내려왔습다. 여수에 정착하면서 초창기에는 광주 등지로 강단에도 섰으며, 무엇보다도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쇼팽을 치는 일을 위해 선구점이 늘어선 중앙동 부둣가 건물 2층에 복합문화공간 ‘해안통’을 열었습니다. 이곳 장도에 오기 전까지 5년여를 공연과 전시는 물론 토크쇼 등 종합예술공간의 운영자로서 독특한 기능을 발휘했습니다. 지역 유명 인사들을 거의 알고 지내는 동안 자신 또한 유명 인사가 되었답니다.
남해안 문화 발전 연구소, 어디나 있을 법한 유명무실한 단체 같은데, 이혜란 님이 이사장으로 2년 동안 왕성한 활동을 펼친 이 지역의 자생 단체랍니다. 해안통과 연구소의 경력을 인정받아 예울마루가 ‘디자이너’로 특별히 모신 것이죠.
주요 활동 공간은 아트 카페. 큰 원통형 동그라미 공간입니다. 바다를 향해 뻗은 진섬의 머리 부분, 통유리를 둘러 세워 호수 같은 가막만을 차경(借景)했습니다. 일출부터 일몰까지 잠잠하거나 너울대거나 바람은 창을 간지럽힐 뿐이죠. 그랜드 피아노를 창 쪽에 배치하여 연주자는 자연스레 바다를 배경으로 하게 되고요.
이혜란 님은 장도 아트 카페를 아주 좋아합니다. 정말 자연스럽답니다. 2주 간격으로 물이 들고 나는 것, 달이 차오르고 이지러지는 것은 항상 똑 같으려 애쓰는 사람들의 겉과, 잠시도 변하지 않으면 심심해 하는 사람들의 속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공간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자신이 지향하는 자연적인 이런 공간에 머무르면서 매일 출퇴근 시간의 변화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데, 생각해보묜 여성들의 멘스트루에이션Menstruation 역시 닮았다는 것입니다.
며칠 전, 코로나 사태가 약간 진정 국면일 때, 제게 온 알림장 하나, 들여다 보니 글쎄 연주회를 한다는군요.
피아노 리사이틀 ‘쇼팽의 블루 노트’
12월 3일 저녁 7시, 예울마루 소극장
정나란 오이리트미스트와 함께
‘오이리트미스트’란 새로운 개념인데, 음악을 온몸으로 재해석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예공유영을 함께한 유상국 작가. 그는 여수에서 태어나 여수에서 학생들을 가르쳣고, 2013년에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미술로만 밥벌어 먹고 살겠다, 지금은 자신이 연금생활자로서 근근히 미술재료를 구입하는 가난한 예술가에 자나지 않음을 깨닫고 있답니다. 그래도 그는 별도의 작업실을 갖고 있고, 꾸준히 작업을 하고 있으며, 자문자답이긴 해도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궁구합니다. ‘세상에 같아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생뚱맞은 대답입니다. 하지만 거듭할수록 맞다는 생각이 든답니다. ‘사랑’은 같아지게 할 수 있다 – 아직 결론이 안 난 대안이라네요.
‘대체(代替)불가(不可)’한 작품이 예술성을 담보한다. 그렇다고 비싼 다이아몬드를 화폭에 깐 외제(外製)처럼 작업할 수는 없는 일이니, 과연 어떻게 나만의 작품을 낳을 것인가, 이런 궁리로 여러 작업을 해오고 있답니다.
타이프라이터 표면에 점묘(點描) 화풍으로 입체화된 작품이 유독 유상국 작가만의 것처럼 느껴집니다. 예술의 섬 아트 카페에 놓인 것 말고도 개인 작업실에, 여수 엑스포 전시장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입체는 다르나 기법은 비슷한 작품들이 여럿 보입니다.
그가 이혜란 님의 해안통 공간에서 토크쇼를 이끌었다는 것도 예술의 복합성을 이해한 작업의 하나였답니다. 그는 또 특별한 ‘1인 잡지’를 만들었습니다. 필자는 하나, 자기 자신이고, 글 꼭지는 여럿인데, 자기 작품의 조명은 물론 여수에서 활동하는 예술의 여러 분야를 취재하듯 꾸민 유니크한 내용과 형식으로 지역민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토크쇼는 코로나 시국이 누그러들면 범민문화재단의 행사로 기획되어 있고, 잡지는 이제 좀더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분배, 가령 이 지역의 호텔 객실에 비치하도록 한다든가 하는, 방식을 도모하고 있답니다.
여전히 ‘해안통’에서의 협업을 연장시켜 장도의 아트 카페에서의 예술성 높은 행사들에 아이디어를 모으고 또 직접 실천하고 있는데 가령 손편지 쓰기라든지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을 문화상품으로 개발하는 일 등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번 잡지 이전에 <표정>이라는 개인 사화집을 그림 위주로 펴낸 바 있는데, 2년 정도 후면 시가 곁들여진 시화집을 낼 수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그림과 수필, 그림과 시 등 토탈 아티스트답게 살아가는군요. 그리고 또 한 5년 더 지나면 일기를 수필처럼 써서 그림과 함께 엮어 또 하나의 사화집을 내겠답니다. 지금부터 일기를 한 편의 수필처럼 쓴다네요. 그 다음은 뭐냐고 물었더니 75세가 넘으면 무얼 장담하겠느냐며 웃습니다.
* 예공유영(藝空游泳) - ‘예술공간을 헤엄치다’의 내용으로 국내 예술공간을 감성 터치로 거닐어볼 요량으로 여행 수필을 시작해 봅니다.
최이해(崔伊海) 여행작가, 시조시인,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