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의 그림
한때 그림을 그리는 연예인들은 미술계에서 찬밥 신세였다.
`영화나 찍고 노래나 부르지, 뭐하러 좁은 미술판까지
왔느냐`는 배타적인 시선이 존재했다. 물론 지금도 그런 시선이
완전히 없어졌다고 보기에는 무리다.
그러나 이른바 예술하는 연예인들을 지칭하는
`아트테이너(아트와 엔터테이너 합성어)` 저변이 확대되면서
이들 파워를 다소 인정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실제 국내 아트페어에서 연예인 그룹 전시는 이제 `
약방에 감초`처럼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연예인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관람객 흥행에 비상이 걸린다. `
아트테이너`들은 20~30명 정도로 그 층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
하정우 유준상 구혜선 최백호 강석우 임혁필 김영호 등 그 외연이 의외로 넓다.
강석우
김민서
김민선
김애경
김영호
외국에서도 앤서니 퀸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작가로서
다재다능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를 열고 있는 영화 감독 팀 버턴도 같은 맥락이다.
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종근 미술 평론가는
"사회적 시선에 익숙한 연예인들이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내면을 바라보는 추세"라며
"인기 부침에 대한 불안감을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식으로 해소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물론 이들이 그리는 그림들은 조형적으로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지는 못한다. 그러나 일반 화가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의식과 언어가 나온다는 평가도 있다.
아트테이너 못지않게 연예인 컬렉터 그룹도 저변이 확대되는 추세다.
갤러리에서 자주 눈에 띄는 연예인으로는
이정재 정우성 고현정 장동건 고소영 바다 배용준을 꼽을 수 있다.
나얼
남궁옥분
서인국
솔비
송경아
예전에 인터뷰로 만난 한 배우가 “연기로는 해소되지 않는
마음속 무언가를 꺼내 내려놓기 위해
일상 속에서 여러 시도를 한다”는 말을 들려준 적이 있다.
이상하게도 그 말이 오래도록 맴돌았다.
이후 다른 연예인들을 만나면서 비슷한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어렴풋하게나마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꺼진 뒤
그들의 삶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언제나 자신을 따라다니는
대중의 시선을 의식하며 보이지도 않는 인기에 기대어
살아야 하고, 수시로 불쑥불쑥 올라오는 공허함과 불안감을
다스리며 견뎌야 하는 일상들. 그래서일까.
연예인들 중에는 연기나 노래 이외에 자신을
쏟아낼 수 있는 다양한 ‘외도’에 빠져 있는 이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최근에는
그림에 매력을 느끼는 스타들이 늘고 있다.
단순한 취미를 넘어 개인전을 여는 등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이들도 생겼다.
‘미술’로 또 다른 자신을 그려 나가고 있는 ‘스타 아티스트’들의
특별한 작품 세계를 찬찬히 들여다봤다.
심은하
임혁필
정려원
최백호
조영남
2년 전 서울 청담동으로 가수 조영남 자택을 찾은 적이 있다.
영동대교와 한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아파트 거실에는 뜻밖에도
이젤이 세워져 있었고
그가 그린 `화투 그림`들이 거실 곳곳을 채우고 있었다.
그는 시간이 아까운지 쉴 새 없이 물감 튜브를 짜내 붓질을 했다.
자칭 `화수(畵手ㆍ그림 그리는 화가)`라고 부르는 그의 일상은
의외로 진지해서 적잖이 놀랐던 경험이었다.
그가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전시회를 연다.
조영남은 그림을 그리는 원조 연예인이다.
매년 국내 최고 아트페어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 작품을
낼 정도로 베테랑이다.
호당 가격은 30만원 선으로 100호 가격이 2000만~3000만원에 거래된다.
어느 정도 미술계에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구혜선
올해로 서른. 톡톡 튀는 발랄한 이미지와는 달리 주변 사람들로부터
‘애늙은이’로 불린다는
구혜선은 또래 배우들과는 조금은 다른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로 큰 인기를 얻고 2009 야후 아시아 버즈 어워드
최고 아시아 여배우로 선정되는 등
‘한류 스타’로서 입지도 탄탄히 다졌으나,
이후 그녀는 트렌디 드라마에 출연하는 대신
혼자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직접 쓴 시나리오로 단편영화를 찍어 연출에 입문했고,
장편영화 ‘요술’과 ‘복숭아나무’ 등을 통해 ‘감독’으로서 관객과 만나기도 했다.
다방면으로 에너지를 쏟아내느라 바쁜 생활속에서도
그녀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바로 언니가 운영하는 카페 아래층에 자리한 작업실이다.
뭐든 한 번 손대면 무섭도록 추진하는 성격이라
그림 또한 순식간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주로 펜이나 유화로 추상적인 이미지를 그리는데,
대체로 몽상적이면서도 우울한 느낌이다.
직접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쓴 소설 「탱고」에
삽입된 일러스트를 바탕으로 갤러리 라메르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지난해 9월에도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유준상
영화, 드라마, 뮤지컬을 넘나들며 누구보다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유준상은 연예계 대표
‘팔방미인’으로 손꼽힌다. 취미는 재즈댄스, 악기 연주,
그림 그리기라 말하는 그는 영화 속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에서
직접 즉흥곡을 들려주기도 하고, 무대 위에서는
관객을 사로잡는 노래를 선물하기도 한다.
그동안 20년 넘게 꾸준히 써온 배우 일지 겸 일기장을 엮은 에세이집을 내기도 했다.
특히 그는 작품을 할 때마다 실제 촬영장에서의
일들을 글과 그림으로 담아내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렇게 모아둔 일상의 기록들은 그에게 더욱 행복한 삶을
찾아가게 해주는 이정표가 되어주기도 한다.
동료들과 함께 주로 그룹전을 열어온 그는 지난달 열린
‘제1회 아트아시아 2012’에 직접 그린 그림 20여 점을 출품하며 관심을 모았다. 그중 한 점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설치미술에 도전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언제나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꿈을 꾸는 유준상에게 그림은 그가 가진 또 하나의 ‘놀이’다.
리사
가수 리사는 그림을 그리며 노래하고, 노래를 하며 그림을 그린다.
노래와 그림, 두 바퀴는 함께 움직인다. 같은 무게와 같은 방향,
같은 속도로 나아가는
두 바퀴는 결국 리사 자신이 생각하고 꿈꾸는 세계를 견인한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리사는 가수 활동을 하면서도
마치 일기를 쓰듯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며 스스로를 치유하기도 하고 감정을 가다듬기도 한다.
인물 스케치부터 추상화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그녀의 작품은 모두 진심을 담아 완성된 것들이다.
틈틈이 작업한 그림으로 동료들과 단체전을 열어 교류를 시도하기도 하고,
2009년 ‘마이 멜로디’와 2011년 ‘나우 앤 포에버’라는 이름의 개인전도 열었다.
2003년 데뷔 이후 발매한 석 장의 정규 앨범과
다수의 싱글 앨범 재킷에는 직접 그림을 그려 넣었다.
요즘 리사는 ‘뮤지컬 배우’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뮤지컬 ‘밴디트’, ‘대장금’, ‘헤드윅’, ‘광화문연가’,
‘에비타’ 등 연이어 굵직한 작품에 참여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무대 위에서의 표현력이 뛰어난 그녀의 특징은 그림 안에서도 드러난다.
밝고 경쾌한 색채가 돋보이는 리사의 그림은 자유로우면서도
섬세하고 친숙하게 다가오면서도 새롭다.
조재현
최근 대학로 연극 무대에 오르고 있는 조재현은 중학생 시절,
한때 화가를 꿈꾼 적이 있다.
서울예고 시험에서 낙방하는 바람에 바라던 대로 미술을 전공하지는 못했으나,
그즈음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접한 연극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그는 결국 진로를 바꿔 배우가 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게 됐고,
덕분에 우리는 그의 진솔하면서도
울림 깊은 연기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 그가 몇 년 전부터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섬세한 근육의 표현과 개성 있는 선이 인상적인 누드 크로키를 주로 그린다.
인체의 육감이 잘 드러난 그의 크로키는 과감하고 독특하면서도
풍부한 감정이 들어 있다.
마치 오스트리아 표현주의 화가 에곤 쉴레를 연상시킨다.
얼마 전에는 페이스북을 통해 직접 그린 누드 크로키 작품을 공개하기도 했다.
‘다시 그림을 그리다 보니 한동안 어설프게 ‘겉멋’이 들어 있었는데,
최대한 멋을 빼고 힘을 빼보니
조금은 나아진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 더 마음을 비우고 솔직하게,
순수하게 그려야겠다는 다짐을 했다는
그가 아마도 앞으로 연기만큼 인상적인 작품을 내놓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하정우
요즘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 ‘대세남’ 하정우는
2010 ‘하정우 초대전’을 비롯해 벌써 세 번이나
개인전을 열만큼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실력파 ‘아티스트’다.
미술계의 거장 김흥수 화백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그의 작품은 국내외 각종 아트페어에 초대되는 등 기량을 인정받고 있다.
따로 전문교육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영화를 통해 느낀 영감에
마음이 움직여 붓을 잡게 됐다는 하정우는 주로
영화 속 역할에 대한 이미지와 심리 상태를 담은 그림을 그린다.
대상을 묘사하기보다는 손길이 가는 대로 그림을
채워나가는 것이 좋았다는 그는 영화 ‘추격자’에서
그림과 조각을 하는 ‘지영민’ 역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그림에 빠져들었다.
영화 ‘황해’에서는 직접 그린
그림이 미술 소품으로 쓰이기도 했다.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한 ‘피에로’ 시리즈는
특히 많은 이들의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하정우에게
그림은 그저 하나의 취미생활이 아닌
자신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축이다. 그는 그림이 자신을 회복시키고
다시 연기에 정진하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연기가 쌀로 밥을 짓는 일이라면, 그림은 그 찌꺼기로
술을 담그는 일 같다”라고 설명하는 그에게
배우와 화가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다른 얼굴인 셈이다.
그의 작품 가격은 호당 15만~20만원 수준이며
100호면 1500만원 정도 가격이 형성돼 있다.
아버지 김용건 씨는 오치균을 좋아하는 미술계 소문난 컬렉터이기도 하다.
김혜수
2008년에 그린 콜라주 기법의 ‘눈부심·혼란(Dazed & Confused)’은
본인이 강한 애착을 보여 판매를 거부했다고 한다.
캔버스에 붉은색 물감을 칠한 뒤 사진작가 클리포드 코핀(Clifford Coffin)의 이미지를 원근법 느낌으로 붙인 작품이다.
작품 옆에는 ‘김혜수 작업노트’라는 제목 아래 각 작품에 대한 해설이 있다.
‘Dazed & Confused’는 영국의 라이선스 매거진 「Dazed & Confused」의
인터뷰를 위해 작업한 작품으로,
평소 매거진의 문화적 다양성과 파격을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고 밝혔다.
이 밖에 ‘Raining Again’, ‘Into the Deep’은 모두 음악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실제 작업하는 동안
동명의 곡을 틀어놓고 작업했다고 한다. 오일 페인트에
역시 콜라주 기법을 가미한 ‘Into the Deep’,
그리고 ‘나무’ 연작 등 작품 가격은 5백만~7백만원으로 책정돼 있으며,
이는 김혜수의 작품이 그만큼 수준이 높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