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인형 /류시화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네
류시화 (안재찬)
출생 1958년 출신지 충청북도 옥천 직업 시인
학력 경희대학교
경력 1980년 시운동 동인 수상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분 당선
Back to Heaven(귀천)-천상병
I'll go back to heaven again.
Hand in hand with the dew
that melts at a touch of the dawning day,
I'll go back to heaven again.
With the dusk, together, just we two,
at a sign from a cloud after playing on the slopes
I'll go back to heaven again.
At the end of my outing to this beautiful world
I'll go back and say: It was beautiful. . . .
귀천(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부인 목순옥 여사와.
출생 1930년 1월 29일.사망 1993년 4월 28일. 출신지 일본 .
직업 시인. 학력 서울대학교. 데뷔 1949년 문예 '갈매기' 등단. 수상
2003년 은관문화훈장. 대표작 아름다운이세상소풍끝내는날, 요놈요놈 요이쁜놈,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위키백과 천상병(千祥炳
<새> 천상병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 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고 천상병시인 부인 목순옥 여사 별세
‘귀천(歸天)’의 시인 故 천상병(1930~1993) 선생의 부인 목순옥 여사가
2010.8.26일 오후 3시16분 서울 강북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5세.
천상병기념사업회측은 이날 “23일 복막염에 의한 패혈증 증세로 강북삼성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1935년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난 목씨는 오빠의 친구였던 천 시인과 1972년 결혼한 뒤 평생
무직으로 살았던 천 시인을 뒷바라지했다. 1985년부터 인사동에 차린 전통찻집
‘귀천’은 문단의 사랑방이었다. 2008년 천상병기념사업회를 만들어 고인을 추모하는
사업도 펼쳐왔다. 유해는 “남편과 합장해 달라”는 고인의 뜻에 따라 천 시인의 묘를
의정부시립공원묘지(경기 양주시 광적면 소재)로 옮겨 합장한다.
歲月이 가면 情人도 가고.. 눈물 자국만 남는게 人生이던가...
노 천명 프로필
출생 1912년 9월 1일 사망 1957년 12월 10일 출신지 황해도 장연 직업 시인
학력 이화여자전문학교 경력 1955년 서라벌예대 출강
1946년 부녀신문 근무 대표작 나비, 모가지가길어서슬픈짐승이여
위키백과 노천명(盧天命 1912년 9월 2일 ~ 1957년 12월 10일)은 한국의 시인이다...황해도 장연 출생이다.
본명은 노기선(盧基善)이나 어릴 때 병으로 사경을 넘긴 뒤 개명하게 되었다.
들국화 / 노천명 -
들녁 경사진 언덕에
네가 없었던들
가을은 얼마나 쓸쓸했으랴
아무도 너를 여왕이라 부르지 않건만
봄의 화려한 동산을 사양하고
이름도 모를 풀틈에 섞여
외로운 계절을 홀로 지키는
빈 들의 색시여
갈꽃보다 부드러운 네 마음 사랑스러워
거친 들녁에 함부로 두고 싶지 않았다
한아름 고이 안고 돌아와
화병에 너를 옮겨 놓고
거기서 맘대로 자라라 빌었더니...
들에 보던 그 생기 나날이 잃어지고
웃음 거둔 네 얼굴은 수그러져
빛나던 모양은 한 잎 두 잎
병들어 갔다
아침마다 병이 넘는 맑은 물도
들녁에 한 방울 이슬만 못하더냐
너는 끝내 거치른 들녘
정든 흙냄새 속에
맘대로 퍼지고 멋대로 자랐어야 할 것을
뉘우침에 떨리는 미련한 손은
이제 시들고 마른 너를 다시 안고
푸른 하늘 시원한 언덕 아래
묻어 주러 나왔다
들국화야
저기 네 푸른 천장이 있다
여기 네 포근한 갈꽃 방석이 있다
들녁 경사진 언덕에
네가 없었던들
가을은 얼마나 쓸쓸했으랴
아무도 너를 여왕이라 부르지 않건만
봄의 화려한 동산을 사양하고
이름도 모를 풀틈에 섞여
외로운 계절을 홀로 지키는
빈 들의 색시여
갈꽃보다 부드러운 네 마음 사랑스러워
거친 들녁에 함부로 두고 싶지 않았다
한아름 고이 안고 돌아와
화병에 너를 옮겨 놓고
거기서 맘대로 자라라 빌었더니...
들에 보던 그 생기 나날이 잃어지고
웃음 거둔 네 얼굴은 수그러져
빛나던 모양은 한 잎 두 잎
병들어 갔다
아침마다 병이 넘는 맑은 물도
들녁에 한 방울 이슬만 못하더냐
너는 끝내 거치른 들녘
정든 흙냄새 속에
맘대로 퍼지고 멋대로 자랐어야 할 것을
뉘우침에 떨리는 미련한 손은
이제 시들고 마른 너를 다시 안고
푸른 하늘 시원한 언덕 아래
묻어 주러 나왔다
들국화야
저기 네 푸른 천장이 있다
여기 네 포근한 갈꽃 방석이 있다
사슴
- 노 천 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冠)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曠 野 (광 야)
이 육 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 곳을 범하진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 : 1904-1944. 시인. 독립운동가. 본명은 源龜(원구) 또는 源綠(원록)
혹은 源三(원삼) 어렸을 적 이름은 英達(영달)이었고, 통명은 活(활).
일제의 형무소에서 복역할 때의 감방 번호가 264호실이므로
호를 "이육사"라 했다. 투옥되기 무릇 17번.
<자오선>동인. 34편의 시를 남겼다. 조국 광복 후에 유고 시집으로
<육사 시집>(1946)이 간행되었다.
청 포 도
이 육 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서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니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국화 옆에서
- 서정주 -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귀 촉 도
- 서정주 -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임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리
흰 옷깃 여며여며 가옵신 임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
신이나 삼아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구비구비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임아.
- < 춘추 >(1946) -
서정주
출생 1915년 5월 18일 사망 2000년 12월 24일 출신지 전라북도 고창 직업 시인
학력 동국대학교 데뷔 1936년 동아일보 '벽' 등단 경력 1971년 문인협회 부이사장
1959년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 교수 수상 2000년 금관문화훈장
1987년 제22회 5.16민족상 대표작 화사집, 서정주시집, 견우의노래, 태교를위한수필
서정주(徐廷柱 일본식 이름: 達城靜雄 1915년 5월 18일 ~ 2000년 12월 24일)
유치환 (柳致環)
출생 1908년 7월 14일. 사망 1967년 2월 13일. 출신지 경상남도 통영. 직업 시인
학력 연희전문학교 데뷔 1931년 문예월간 시 '정적' 발표
경력 1957년 한국 시인 협회 초대 회장
1946년 청년 문학가 협회 회장 역임 수상 서울시문화상수상
1947년 제1회 청년 문학가 협회 시인상 수상 대표작 행복, 그리움, 바위미루나무와 남풍, 낙엽 바위, 애정일기, 쫓겨난 아담 위키백과 유치환(柳致環 1908년 7월 14일 ~ 1967년 2월 13일)은 시인이자 교육자이다.
호는 청마(靑馬)이며 경남 통영시에서 태어났다. 극작가 유치진의 아우이기도 하다.
깃 발
- 유치환 -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理念)의 푯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白鷺)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 <조선문단>(1936) -
김춘수
출생 1922년 11월 25일. 사망 2004년 11월 29일. 신체 키170cm, 체중50kg .출신지 경상남도 통영 직업 시인
학력 니혼대학교 데뷔 1946년 사화집 '애가' 등단 경력 1991년 KBS 이사
1986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수상 1958년 제2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위키백과 김춘수(金春洙 1922년 11월 25일 ~ 2004년 11월 29일)는 대한민국의 시인으로 1922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21세기의 한국 시인들을 이끈 인물 중 하나이다.
꽃
- 김춘수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현대문학>(1955) -
도종환
출생 1954년 9월 27일.출신지 충청북도 청주 .직업 시인. 학력 충남대학교대학원 . 데뷔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 시 '고두미마을에서' 발표
경력 2008년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2006년 7월 제4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 수상 2006년 거창평화인권문학상
충북 청주에서 출생하였고 충북대 국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
여 백
- 도 종 환 -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 도종환 시집 '슬픔의 뿌리' (실천문학사, 2002)
접시꽃 당신
시 / 도종환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육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 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서시<序詩>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프로필
출생 1917년 12월 30일 사망 1945년 2월 16일 직업 시인 학력 연희대학교
데뷔 1936년 가톨릭소년지 동시 '병아리' 발표
경력 1946년 유고인 '쉽게 쓰여진 시' 경향신문에 처음 발표
1943년 사상불온,독립운동의 죄목으로 일본경찰에 피체.
교토 우지강에서 열린 윤동주 송별회 사진. 현존하는 윤동주 최후의 사진으로 알려져 있다.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윤동주. 이 사진으로 윤동주와 인연을 맺은 우지시의 시민들은
인근 우지공원에 윤 시인의 기념비를 세우고자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안도현
출생 1961년 12월 15일 .출신지 경상북도 예천 .직업 시인,대학교수
학력 원광대학교. 데뷔 1981년 대구매일신문 '낙동강' 등단
경력 장수산서고등학교 교사
2004년 9월 우석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수상 2007년 제2회 윤동주 문학상 문학상 부문
2005년 제12회 이수문학상 .
연탄재 /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더냐.
강은교
1.사 랑 법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있는 누워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2.우리가 물이 되어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작가소개]
강은교(1945 ~ ) 함흥 홍원 출생.
연세대 영문과와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68년 『사상계』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
시집:<허무집>,<풀잎>,<빈자일기>,
김소월 (김정식)
출생 1902년 8월 6일 .사망 1934년 12월 24일. 출신지 평안북도 구성 .직업 시인
학력 배재고등학교 데뷔 1920년 창조지 '낭인의 봄', '야의 우적', '우과의 읍' ,'그리워' 발표
경력 1926년 동아일보 정주지국 개설, 경영
1924년 영대(靈臺) 동인 수상 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가는 길
- 김소월 -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저 산에도 가마귀, 들에 가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강물, 뒷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 <개벽>(1923.10)
산 유 화
- 김소월 -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山에
山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이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 <진달래꽃>(1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