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5년 1월 11일 수요일 맑음.
매우 춥다. 어제 저녁에 혼자서 짐을 챙겼다. 매장은 기사와 대충 얘기를 끝내고 집에 와 배낭을 챙겼다. 여권, 국제면허증, 카메라, 내의 3벌, 양말 3켤레, 세면도구, 안내책자, 상비약, 우산, 아내의 짐들, 손수건, 사전, 츄리닝, 숟가락, 젓가락, 필기도구, 청바지, 면바지, 난방, 조끼, 신용카드 등 체크해가며, B가 주신 반찬 캔과 라면, 김 200여장을 넣어보니 배낭이 꽉 찼다.
집을 15일 동안 비울 것을 대비해서 가스를 점검 후 잠그고 싱크대 정리, 냉장고의 음식 정리, 아파트 대문 우유통로 잠그기, 그리고 베란다에 있는 식물에 물을 가득 주었다. 내 맘에 맞도록 정리 한 후 집을 나섰다. 1월 10일 밤 10시 50분경에 트럭을 몰고 B 집으로 갔다. 출발 기차 시간(0시5분)이 좀 남아대화를 나눈 후 B의 장모님께 기도를 부탁해 모두 기도 한 후 트럭을 타고 역전으로 향했다. 바깥 날씨는 무척 추웠다. 그러나 마음은 가볍고 기분은 좋았다.
트럭을 역전에 세워두고 서울행 기차 무궁화호를 탔다. 트럭은 내일 아침 기사가 와서 가져가기로 했다. 추울 줄 알았던 열차 속이 생각 외로 따뜻했다. 우리가 출발한 밀양에서 대구에 도착하기 전에 잠들어버렸다. 눈을 떠 보니 수원을 통과하고 있었다. 잠을 잘 잤다. 서울역에 새벽 4시 45분에 도착했다. 배낭을 챙겨 기차에서 내리니 서울의 새벽 공기가 무척 차다. 역을 빠져나와 광장으로 나온다. 새벽인데도 인파들이 붐비고 시끄러웠다. 호객하는 택시운전사들이 늘어서서 삶의 경쟁을 보여주었다.
택시를 흥정해서 삭은동까지 8000원에 가기로 했다. B의 친척집이다. 친척의 아파트는 옛날 한영중학교 옆이다. 친구 상진이가 다니던 중학이다. 상진이의 검은 모자와 교복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따뜻한 방에 이불을 덮고 앉았으나 할 일이 없다. 목욕탕을 찾아가 목욕을 했다. 아침식사를 깔끔하게 대접 받고 그랜져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아침 9시에 출발했다.
오전 10시 10분에 국제선 제1청사 앞에 도착했다. 공항으로 들어가 캐나다에서 보내 온 수표를 바꾸고 그곳에서 환전하여 미화로 1500달러를 바꿨다. 아래층에서 아내를 만나 우리 일행은 모두 모이게 되었다. 출입국신고서를 작성하고 비행기 좌석 표를 받았다. 그러면서 우리의 배낭을 부쳤다. 비행기는 12시 45분에 출발하게 되어 있었다. 무든 수속을 마치고 여권 검사와 출국신고서 검사를 한 후 탑승 게이트로 갔다. 주위에 있는 면세점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어린애 같이 들뜨고 흥분되는 순간들이다.
12시 45분에 10번 출구에서 드디어 비행기를 탔다. 우리비행기는 싱가포르 항공이다. 캐나다를 갈 때 이용했던 비행기와 안내원들이라 낯설어 보이지 않아 좋았다. 2시간 10분 정도를 날아가 예상치 않았는데 대만에 착륙했다. 대만을 경유해서 싱가포르에 간단다. 약 40분 정도 쉬었다가 간단다. 모두 짐을 챙겨 내렸다. 대만 가는 사람들은 오른쪽으로 나가고 싱가포르로 가는 사람들은 책받침 반 만 한 표시를 받고 왼쪽 출구로 나갔다. 몇 번 출구에서 탄다는 표시가 되어 있다. 대만 땅에 처음 내려 보니 기분이 괜찮다. 많이 경험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대만의 첫인상은 붉은 색이다. 높지 않은 낮은 건물들이 보인다. 어딘지 모르게 뒤쳐져 보이는 주변 모습이다.
3시 15분에 다시 비행기에 탑승하여 싱가포르로 간다. 4시간 정도를 날아가 싱가포르 창기 공항에 도착했다. 한국 시간으로는 8시 35분이다. 공항은 잘 정비되어있고 깨끗하고 훤하다. 푸른 녹색의 풀과 반짝 빛나는 대리석으로 아주 깨끗하다. 싱가포르 달러로 환전하고 짐을 찾고 ⓘ에서 지도를 얻어 공항 안의 표지판을 익혀가며 버스를 타기위해 지하로 내려갔다. 창기공항은 김포공항에 비해 너무 깨끗하고 넓고 현대식이었다.
지하에서 버스 23번을 타고 벤쿨렌 거리를 향해 갔다. 밖은 어두웠고 더웠다. 겉 파카를 벗어도 더웠다. 버스는 에어컨이 나와 불편은 없었다. 밤 풍경은 나무가 많고 아파트도 많이 보인다. 고층 빌딩이 줄지어 있다. 이리저리 방향도 모르고 약 30분을 달려 벤쿨렌 거리라고 말해주어서 내렸다. 오차드 거리의 YMCA 앞이었다. 무척 덥다. YMCA에 가서 방이 있냐고 물으니 모두 풀이란다. 예약을 하지 않고 온 것이다. 가격도 비싸다.
싼 숙소가 많다는 벤쿨렌 거리를 찾아갔다. 거리는 생각보다 지저분하고 어둡고 건물도 낡았다. 여기 저기 헤매다가 Peony Mansion이라는 호스텔을 찾아갔다. 10층이 넘는 건물이다. 도미토리 형태의 4층이다. 오랜 피곤을 풀기에는 약간 부족해 보였다. 여러 곳에서 모인 아프리카인 , 인도인, 유럽인 남여가 섞여 있고, 지저분하게 흩어져 있는 담요와 침대가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9층에도 호스텔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또 올라갔다. 정신이 왔다 갔다 하는 서양 여자가 관리자인 것 같다. 무척 친절하였으나 지나쳐 보인다. 방 하나를 빌려 여자 둘이 자고, 또 하나를 빌려 침대 하나에서 남자 셋이서 가로로 잠을 잤다. 매미나 개구리 소리만큼 시끄러운 에어컨을 겨우 고쳐 수리해서 그나마 더위를 식히며 잠이 들었다. 우연히 공항에서 한국 청년을 하나 만나서 동행하게 되었다. 호주 여행을 마치고 싱가포르를 경유해서 한국으로 돌아가려는 총각이다.
여기서 배운 단어가 No Function! 이다. 에어컨이 고장 났다는 말이다. 또 하나의 단어는 Diposit 다. 방 열쇠를 주면서 방 값보다 더 돈을 요구하였는데, 열쇠 보증금이 포함된 것이다. 나중에 돌려주는 돈이다. 4층 숙소보다 좋았지만 잠자리가 불편했다. 그래도 생판 모르는 이국땅에서 헤매다가 눈을 붙일 수 있는 곳을 찾았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홀에서 늦게까지 떠드는 소리를 뒤로하고, 한국에서 온 여학생 둘과 우리 일행이 모여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7명이다. 서울 단국대 학생인 여학생 둘은 태국에서 말레이시아를 거쳐 싱가폴을 경유하여 인도네시아를 간다. 제법 영어도 잘 하고 환경에 잘 적응하여, 외국의 어떤 사람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는 야무지고 당차보였다. 30여일은 배낭여행 한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모습이 좋았다.
우리들이 꺼내 준 김치와 오이지를 밥도 없이 한 통을 다 먹어버린다. 역시 한국인은 김치가 최고라는 것을 느꼈다. 호주 총각 얘기, 일본인과 사운 이야기, 버스로 동남아시아를 돌아다닌 이야기 등을 나누며 밤이 깊도록 떠들었다. 내일은 준비해서 잠을 청했다. 침대에 남자 셋이서 가로로 자며 싱가포르의 첫 날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