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陷穽과 錘
에드가 앨렌 포우[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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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 앨렌 포우[Edgar Allan Poe (1809.1.19 - 1849.10.7)]/시인, 평론가, 단편 소설작가주요작품; <검은 고양이>, <어셔가의 몰락> 등 다수.
"흉악하고 무시무시한 무리들은 무고한 피를 마시려는 오랜 열망을 채우기 위해 이곳에 모여 들었다. 복된 나라에 그러나 인제는 공포의 소굴이 파괴되었도다.
일찍이 죽음이 즐비하던 곳에 생기와 평화가 깃들어 있도다." -빠리의 자꼬방 클럽이 있던 곳에 세운 시장의 문에 새기기로 된 사행시
나는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죽게 될만큼 쇠약해졌다. 내 몸에서 사슬이 풀려 앉아도 좋다고 말할 때, 이미 감각이 없었다. 그것은 무서운 사형선고의 소리였다. 이어서 종교 재판소 판사들 말소리가 꿈결처럼 몽롱하게 들려 왔다. 그 말 소리는 내 마음에서 무엇이 회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일게 하였는데, 아마 머리 속에서 물방아 바퀴 소리를 생각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한순간의 일이고, 그 후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한순간이라 하더라도 얼마나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검은 옷을 걸친 판사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내 눈에는 그 입술이, 지금 이글을 쓰는 종이보다 더 하얗게 보였다. 그리고 그 입술은 놀라울만치 얇고, 거기에는 확고한 의지와 부동의 결의와 인간의 고통에 대한 멸시가 빤히 나타나 있었다. 나는 나의 죽음을 선고하는 소리가 그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무서운 문구로 하여 그 입술은 벌름거리고 있었다. 그 입술이 내 이름의 음절을 하나하나 발음하였으나, 다음 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아 내 몸이 마구 떨렸다. 그리고 이 무서운 순간에 방 안 벽에 둘러친 검은 커튼이 약간 흔들렸다.
나는 책상위에 놓인 일곱 개의 긴 촛볼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그 촛불이 무척 자비롭게 보여, 마치 나를 구출해 줄 흰 옷을 입은 아름다운 천사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나는 금새 머리가 어지러워, 전지(電池)의 줄에라도 부딪친 것처럼 전신이 떨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천사처럼 보이던 그 촛불의 모습은,머리에 불꽃을 단 어떤 유령이 되어 구원을 베풀 것 같지 않았다. 이어서 내 머리 속에는 무덤에는 아름다운 음악과 같은 즐거운 휴식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은 몰래 스며 들었으므로, 얼마후에야 비로소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알아 차리고 향락하게 되자, 불꽃도 아주 꺼졌다. 이어서 어둠이 오고, 모든 감각은 마치 혼령이 지옥에라도 빠진 것처럼, 마비되었다. 그러자 침묵과 고요와 어둠만이 지배하는 세계가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넋을 잃어 버렸다. 그렇다고 의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 의식이 얼마나 남아 있었는지는 알고도 싶지 않고, 따라서 쓰고 싶지도 않다. 아무튼 넋을 잃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깊은 잠에 들었을 때나, 정신 착란에 사로잡혔을 때, 또는 기절하였거나 죽어서 무덤에 묻혔을 때에도 의식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에게 불멸이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깊은 잠에서 눈을 떴을 때, 엷은 머미줄 같은 꿈을 깨게된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이 거미줄은 너무 엷어서)그 꿈 꾼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기절했다가 깰 때에는 두 가지 단계가 있다. 첫째는 정신적 또는 영적(靈的)인 존재를 의식하는 단계이며, 둘째 단계에 이르렀을 때, 첫째 단계의 인상을 환기할 수 있다면 그것이 먼 심연의 기억을 대변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 심연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그 심연의 그림자와 무덤을 분간할 수 있을까. 그러나 첫째 단계의 인상이 잘 환기되지 않더라도, 그것은 오랜 시일이 지나면 저절로 나타나게 되지 않을까.
졸도해 본 일이 없는 사람은, 타오르는 숯불에서 이상한 궁전이나 친한 사람의 얼굴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볼 수 없는 비애의 환영이 공중에 떠 있는 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 이런 사람은 어떤 귀한 꽃 냄새를 맡으면서 명상에 잠기는 일도 있을 것이다. 또한 그는 일찍이 한 번도 유의해 본적이 없는 어떤 음률의 의미로 해서 마음이 산란하여지는 일도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심령이 빠진 표면상의 허탈상태의 증거가 될 만한 것을 수집해 보려고 무던히 애쓴 끝에 뜻을 이룬 적이 있다. 나중에 정신이 멀정할 때 생각해 보니, 이 무의식 상태의 기억을 환기시킬 수 있는 시기가 매우 짧기는 하지만, 있기는 있었던 것이다. 이런 기억을 더듬어 보는 가운데 키가 후리후리한 사람들이 나를 쳐들고, 말없이 아래 켠으로 냐려갔는데, <이렇게 자꾸 내려가도 괜찮다면>하고 생각하였을 때, 내 머리가 어지러워진 것이 희미하게 머리에 떠오른다. 그리고 나는 마음이 유난히 평화스러워, 막연한 두려움을 느낀 것을 기억한다. 또한 모든 것이 정지된 것 처럼 생각되었다. 나는 나를 운반하는 자들이 아래로 자꾸 내려가 무한한 끝에 이르러서, 지친 나머지 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단조롭고 축축한 무엇이 기억나고, 이어서, 엄금된 무엇을 굳이 생각해 내려는 미친 수작이 머리애 떠 올랐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갑자기 운동과 음향이 일어나, 심장이 뛰고 소리가 들려왔다. 그 후에 다시 잠잠해지고 모든 것이 백지로 돌아갔다. 이윽고 다시 음향과 운동과 지끈거리는 감촉이 온몸에 퍼지더니, 아무 생각도 없이 단지 살아있다는 의식만이 오래 지속되었다. 다음에 나는 두려움에 떨며 참된 내 모습을 알아보려고 노력하다가 그냥 무감각 상태에 이르러는 충동을 느꼈다. 그 후로 갑자기 연혼이 부활하여 동작을 하더니 재판, 판사, 검은 커튼, 사형선고, 현기증, 기절 등등의 기억이 분명히 되살아나고, 나중에 생긴 일은 다 잊어 버려, 후에 애써서 간신히 기억해낼 수 있었다.
나는 그 때까지 눈을 뜨지 않았다. 사슬이 풀린채 쓰러져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팔을 펴니 무슨 축축학 단단한 것에 닿는 것이었다. 나는 한동안 팔을 그냥 펴고서 내 골을 생각해 보려고 하였다. 눈을 뜨려고 하여도 되지 않았다. 주위에 있는 물건들을 보는 것이 두려웠다. 그 물건이 무서워서가 아니고,아무것도 볼 것이 없을 터이니 두려웠던 것이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얼른 누을 떴다. 과연 내가 두려워한 것이 눈에 띄었다. 거기 영원한 밤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숨을 내쉬려고 하였으나 어둠이 나를 짓눌러 숨이막힐 것 같았다. 공기가 못견디게 탁하였다. 나는 누워서 생각에 잠기려고 하였다. 종교 재판을 상기하고, 내가 처한 현재의 위치를 추측하려고 하였다. 사형 선고는 분명히 내려진 것이다. 그 후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나는 그 동안에 죽은 기억이 없었다. 이러한 상상은 내가 평소에 소설에서 많이 읽었는데도 실제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어디에 어떤 골을 하고 있는가?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은 대개 선고와 동시에 죽이는 줄로 나는 알고 있었으며, 사실 그 중의 한 사람은 내가 심문을 받던 그날 밤에 처형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다시 감옥에 갇혔다가 몇 달이 지나사 집행되는 처형을 기다랴야 하는가? 그러나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다. 희생자를 곧 내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내 감방은 토레도의 감옥처럼 돌바닥이고 햇볓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별안간 공포가 치밀어 한동안 의식을 잃었다. 다시 깨어나자 나는 전신을 벌벌 떨며, 팔을 온통 휘저어 보았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한 발작도 떼어놓기가 싫었다. 무덤의 벽에 부딪힐 것이 두려웠다. 온몸에 땀이 흘러 이마 위에 방울졌다. 나는 불안한 나머지 팔을 벌리고 희미한 빛이라도 보려고 눈을 뜨고 몇 발작 내디뎠다. 그러나 어둠과 공허 뿐이었다. 나는 자유롭게 숨을 쉬었다. 적어도 나는 무서운 처형은 당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걸어 나갔다. 그러자 토레도에서 행하는 무서운 참극에 대한 소문이 머리에 떠 올랐다. 이 감옥에 대하여는 괴상한 말들이 퍼져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곧이 듣지 않았다. 그것은 너무 끔찍하고 처참하여 큰 소리로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나는 이 암흑의 땅속에서 굶어 죽을 것인가. 아니면 더 무서운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어차피 결과는 죽음일 것이다. 그나마 고통이 심한 죽음일 것이다. 판사의 성격으로 보아 이것은 사실이다. 어떻게 어디서 죽을 것인가―― 이것이 나를 괴롭히는 전부였다.
드디어 내 팔이 어떤 견고한 장애물에 닿았다. 그것은 돌벽으로, 미끄럽고 끈적거리며 차가웠다. 나는 벽을 의지하여 따라가면서 어떤 옛이야기의 가르침을 조심스레 상기하였다. 그런데 그것으로 감옥의 넓이를 알 수는 없었다. 벽의 주위를 돌아 처음에 떠난 자리로 되돌아 온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벽은 똑같이 되어 있어던 것이다. 나는 재판정에 들어갈 때 갖고 간 창칼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그 칼은 이미 없어져 버렸다. 내 옷은 거친 서어지 내리단이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출발한 지점을 알기 위해 돌 틈에 창칼을 꽃아 놓으려고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애로는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정신이 산란하여 좀 어려웠지만, 옷끝의 일부를 찢어서 벽에서 직각이 되도록 길다랗게 펴 놓았던 것이다. 나는 이라하여 감옥의 주위를 한바퀴 다 돌면 그 헝겊에 닿게 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나는 감옥의 넓이와 쇠약한 육신을 미쳐 생각하지 못하였다. 감옥의 바닥은 축축하고 미끄러웠다. 나는 한동안 비틀거리며서 걷다가 갑자기 걸려서 넘어졌다. 지칠대로 지쳐 있었으므로 그대로 누워 있었더니 곧 잠들어 버렸다.
잠에서 깨어나 팔을 더듬어 보니 옆에 빵 한조각과 물주전자가 놓여 있었다. 나는 귿도로 피로하여 이것저것 생각할 경황도 없이 넋없이 먹고 마셨다. 이윽고 나는 다시 감옥 주위를 돌다가 겨우 서어지 조각에 닿게 되었다. 내가 넘어질 때까지 쉰 두 발작, 다시 걷기 시작하여 마흔 여덟 발자국 만에 헝겊에 닿은 것이다. 모두 합쳐서 백 여덟 발자국 째였다. 두 발자국을 1야드로 치면, 감옥의 둘례는 50야아드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 벽에서 여러 귀퉁이를 거쳤으므로 나는 이 지하실(나는 이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이 어던 모양으로 되어 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내가 이런 답사를 한는 이유란 아무것도 아니었다. 거기무슨 목적이나 희망이 있을 수 없었다. 단지 막연한 호기심에서 그랬던 것이다. 나는 벽을 떠나 움 안의 면적을 횡단해 보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바닥은 튼튼하지만 진흙이 미끄러워 위험했던 것이다. 그러나 드디어 기분을 내어 대답하게 똑바로 걸어갔다. 열두어 발작 쯤 걸어 갔을 때, 옷을 찢어낸 나머지 자락이 발길에 감겨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그바람에 나는 놀라운 장면을 곧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그러나 2,3초후에 그냥 넘어진 채 그것을 짐작하게 되었다. 즉 턱이 감옥 바닥에 닿았는데, 입술과 얼굴의 상부는 턱보다 낮았지만 아무것도 닿아 있지 않았으며 이마는 습기찬데 놓였던가 보아, 썩은 버섯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러자 나는 팔을 더듬어 내가 둥그스럼한 어떤 구멍의 가장자리에 넘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전율을 느꼈다. 그 구멍이 얼마나 넓은지, 분명히 알 수는 없었다. 손으로 가장자리 밑에 있는 돌벽 하나를 빼내어 구멍속에 내려뜨렸더니, 몇초 동안은 가장자리의 벽에 부딪치면서 떨어지다가 드디어 풍덩하고 음침한 소리를 내면서 물속에 떨어졌다. 이어서 머리 위에서 재빨리 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렸으며, 문을 열 때 한 줄기 가느다란 빛이 어둠 속에 비쳐 왔다.
나는 나를 기다리는 운명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다행히 알맞게 일어난 사건으로 인하여 뜻밖에 목숨을 건지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였다. 만일 내가 넘어지기 전에 한 발작만 더 앞으로 나갔던들, 나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내가 지금 간신히 면한 죽음은, 전에 종교 재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꾸며낸 그런 우서운 것이었다. 이 참혹한 희생자에게는 양자 택일의 과제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즉 육체적인 고통으로 하여 죽어 버리거나, 정신적인 고통으로 죽는 것이다.
나는 후자의 케이스로 지금까지 살려둔 것이다. 나는 오래 시달려 왔으므로 신경이 마비되어 내 목소리에도 떨 지경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여러모로 내개 내려진 고문에 고스란히 녹았던 것이다. 나는 벽까지 되돌아왔다. 우물에 빠지느니 여기서 그대로 죽자고 하였던 것이다. 나는 지옥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이런 함정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내가 만일 지금과 같은 정신 상태만 아니라면, 이 깊은 우물에 빠져, 즉시 아런 비참한 꼴을 청산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무척 비겁하다. 나는 이런 함정에 대하여 읽은 것이 기억났다. 그들의 계획 속에는 별안간 목숨을 끊게 하는 것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나는 몹시 흥분하여 있었으므로 오랬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간신히 눈을 붙였다가 깨어보니, 전과 마찬가지로 옆에 빵과 물주전자가 놓여 있었다. 나는 심한 갈증으로 단숨에 주전자를 비었다. 물에 약을 탔던가 보아, 나는 곧 죽음같은 깊은 잠에 빠졌다. 몇시간이나 잤는지 물론 알 수 없었다. 잠에서 깨어났더니 주위의 물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강한 유황빛 같은 것으로 말미암아, 나는 감옥의 넓이며 됨됨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감옥의 규모에 대하여 착각을 했던 것이다. 벽의 둘레는 25야드를 넘지 못하였다. 나는 그동안 괜한 수고를 했던 것이다. 내 처지에 감옥의 크고 작은 것이 문제가 될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소한 일에 커다란 흥미를 느끼고 내 측량이 잘 못 된 까닭을 알아내려고 애를 썼던 것이다. 그리하여 드디어 그 곡절을 알아내었다. 즉 첫 번 탐험에서 내가 넘어졌을 때는 쉰 두 발자국 째였는데, 그때에는 서어지 허겊조각까지 한 두 발짝 앞에 가가이 왔을 것이며, 그것은 실제로 이 움 속을 한바퀴 돈 연후였을 것이다. 그리고 잠들었다가 다시 왔던 길을 되돌고 감옥의 주위를 실제의 갑절로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내가 정신이 혼돈되어 처음에 벽을 왼쪽으로 돌면서 오른쪽으로 걸어간 것을 미쳐 생각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움의 모양이 상당히 불균형인 줄 알았는데, 그것은 캄캄한 어둠으로 혼동을 일으켰거나, 잠에서 깨어나 어떨떨하였기 때문이다. 모퉁이로 생각한 곳은 간격이 불규칙한 몇몇 흠이거나 벽시렁이었다. 감방은 대체로 내모꼴이었다. 내가 돌맹이로 생각했던 것은 지금보니 쇠붙이로, 이은 데가 패여 있었다. 쇠붙이로 된 벽에는 승녀들이 미신으로 만든 여러 가지 사나운 모양의 그림들이 새겨져 있었다. 뼈먼 앙상한 마귀들이 눈을 부라리는 그림을 비롯하여 사나운 그림들이 벽에 가득하였다. 잘 살펴보았더니, 이 괴물들은 윤곽이 분명하였으나, 내부는 습기 때문에 빛이 퇴색되어 있었다. 감옥의 바닥은 돌로 되어 있고, 복판에 내가 빠질 뻔한 둥근 구멍이 패여 있었다. 그것은 이 감옥 속의 유일한 구멍이었다.
이것들은 모두가 희미하여 간신히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자는 동안에 신변이 크게 변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나무 판대기 위에 놉혀 있었으며, 몸은 말가죽 끈 같은 것으로 동여 매어 있엇던 것이다. 그리고 그 끈은 내 몸과 손발에 칭칭 감겨 있고, 머리와 왼쪽 팔은 약간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겨우 애써서 옆의 상 위에 놓인 사기그릇에서 음식을 집을 수 있는 정도였다.
내가 놀란 것은 물주전자가 없어진 것이었다. 나는 무척 목이 말랐던 것이다. 이 갈증도 사실 박해자들의 농간이었다. 접시에 들어 있는 음식은 짠 고기였던 것이다. 나는 천장을 쳐다보았다. 천장은 머리 위에 3,40피이트 즘 덜어져 있었으며, 구조는 벽과 같았다.
나는 그 한 널판자에 그린 괴상한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시간을 나타낸 보통 그림으로 다만 손에 든 것이 낫이 아니고 옛날의 큰 추(錘)의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였다. 그런데 그 모양이 더욱 신기하게 보인 것이 보아하니 추는 바로 내 머리위에 있었으며 흔들리는 것첢 보였다. 사실 내 추측이 맞았다. 그 진동은 서서히 그리고 짦은 한동안만 일어났던 것이다. 나는 약간의 두려움과 상당히 이상한 호기심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더딘 움직임이 싫증이 나서 움 속에 있는 다른 물체로 눈을 돌려 버렸다.
옆에서 바스락 소리가 났다. 감방 바닥을 보니 커다란 쥐들이 마루를 지나가고 있었다. 쥐들은 오른쪽에 뚫린 작은 구멍에서 나온 것이다. 내가 보고 있는데도 고기 냄새를 맡고 궁거운 눈알을 데룩거리며 떼지어 몰려가고 있었다. 나느 그놈들을 쫓기에 꽤 애먹었으나 도 조심해야 했다.
그 후 반시간, 아니 어저면 한시간 쯤 지나서, (나는 시간에는 별로 유의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천장을 쳐다보았다. 나는 어리둥절하였다. 추의 움직임이 거의 1야드나 폭이 넓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속도도 한결 빨라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두려운 것은 추가 분명히 아래로 처진 것이었다. 지금 잘 살펴보니 그것은 아래 끝이 초생달 모양으로 된 번쩍거리는 강철이었으며, 두 끝은 한자나 되는데 위를 향해 있고, 면도날처럼 예리하였다. 나는 크게 놀랐다. 그것은 면도칼처럼 무겁고 단단하며, 위는 폭이 넓으나 아래로 내려갈수록 좁았다. 그놈이 놋쇠의 무거운 작대기 끝에 달려 허공에서 움직일 적마다 소리가 났었다.
나는 고문에 능숙한 승려들이 나를 위해 마련한 운명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었다. 종교재판소의 직원들은 내가 함정을 찾아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무서운 함정은 나와 같이 대담하게도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 자에게 주는 운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지옥과 같은 극형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우연히 이 함정에 빠지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감옥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망칙한 일들 중에서, 놀라거나 고민에 빠지게 하는 것이 중요한 몫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함정을 발견하고 거기에 빠지지 않았으므로, 그 속에 빠트리는 것은 이미 그들의 흉계로, 샘에 들 수 없었다. 그렇다고 뽀죽한 다른 방법도 없고 해서, 전보다는 한결 온전한 파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전보다 온전하다는 말을 되새기면서, 괴로움에 시달리면서도 가벼이 웃을 수 있었다.
내가 강철이 세차게 움직이는 것을 세고 있는 동안에 느긴 죽음보다도 더 큰 두려움에 대하여 여기 기록한 대야 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 추는 아주 조금씩, 그러니까 몇 10년이나 지나갔을 때에야 비로소 알 수 있을 정도로 아래로 처지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갔다. 아니 몇 십일이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드디어 그 추가 내 몸 가까이까지 쳐졌으므로, 강철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나는 기도를 하였다. 그 놈의 추가 좀더 빨리 내려오기를 신에게 빌었던 것이다. 나는 이 움직이는 반월형(半月形)의 칼날에 애서 몸을 부딪치려고 하였으며, 조용한 마음으로 마치, 장남감을 받은 어린애 모양, 번쩍이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웃으며 누워 있었다.
나는 다시 의식을 잃었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짧은 한때였다. 내가 의식을 회복하였을 때에는 추가 전보다 별로 더 처진 흔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꽤 긴 시간이 지났을지도 모른다. 악마들은 내가 기절하면 추의 진동을 얼마든지 정지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두루 살펴보니, 나는 몹시 쇠약해졌으며,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오래 굶은 것 같았다. 고뇌로 가득찬 이런 때에는 인간의 본성은 음식을 바라는 것이었다. 나는 애써 묶인 끈이 허락하는 한 왼쪽팔을 위로 올려 쥐가 먹다가 남긴 음식 찌꺼기를 집었다. 그것을 한 조각 입에 넣었더니, 약간의 기쁨과 희망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지금의 나에게 희망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극히 막연한 생각에 불과하였다. 인간이란 의례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이지만 결코 뚜렸한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는 그것이 기쁨과 희망이라고 생각되었지만 그것은 곧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나도 그것을 뚜렷이 머리속에 그려 보려고 하였으나 허사였다.오랫동안 시달려 오는 동안에 정신력을 잃어 우직한 바보가 되어 있었다.
추는 나에게 대하여 직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반월형의 칼날이 바로 내 심장을 지나도록 되어 있었다. 그것은 먼저 내 서어지 옷을 베는 작업을 되풀이할 것이다. 그 넓은 진폭(약 30피이트, 또는 이 이상이 될 것이다)과 아래로 내려오는 육중한 힘은 쇠로 된 벽을 쪼개고도 남음이 있을 테지만, 아직 몇 분 동안은 기껏해야 내 옷을 스칠 뿐일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중지하였다.더 이상 생각을 지속할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애써 여기까지만 생각하려고 하였다. 그렇게 되면 여기서 그 반월형의 칼날을 멎게 할 수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 칼날이 옷을 스치면 마찰하는 소리가 들려 몸서리치게 될테지. 나는 이빨이 시큰거릴 때까지 이런 어리석은 생각에 잠기고 있었다.
그 칼날은 끊임없이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그 내려오는 속도와 옆으로 흔들리는 속도를 비교하면서, 미칠 듯이 기뻐하였다. 좌우로 큼직하게 마치 저주받은 혼령처럼 또는 호랑이같이 내 심장을 향하여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두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그 어느 한편이 우세할 적마다 번갈아 웃기도 하고 소리를 치기도 하였다.
그 추는 아래로 아래로 영낙없이 바짝바짝 내려오고 칼날은 나 가슴 위로 세치쯤 떨어진 곳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미친 듯이 왼쪽 팔을 빼려고 기를 썼다.그러나 팔뚝에서 손까지밖에 움직일 수 없었다. 손을 펴서 접시에 담긴 음식을 입에 가져오려면 꽤 힘이 들었지만, 그 이상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팔뚝에 맨 끈을 풀수만 있다면 추를 잡아서 정지시킬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마치 눈보라가 치는 것을 중지시키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다.
추는 부단히 아래로 아래로 내려왔다. 나는 그 놈이 진동할 적마다 경련을 일으키는 것처럼 몸을 비꼬며 허덕였다.추의 움직임에 따라 눈은 부질없이 좌우로 움직인느 것이었다. 죽어 버리는 것이 얼마나 평안할까. 그것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느롯이다-하고 생각하면서도 칼날이 아래로 내려올적마다 나는 본능적으로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추가 조금난 더 내려와도 그 번쩍이는 날카로운 칼날은바로 내 가슴 위에 떨어질 것을 각하니, 정신이 아찔하였다. 하긴 아직도 한 가닥 희망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처럼 온 신경이 떨리는 것이라라. 희망은 종교 재판소의 감옥에 갇힌 사형수에게까지도 속삭거리는 것이었다. 형틀 위에서도 일종의 기쁨을 주는 것은 바로 희망이다.
앞으로 열 번 내지 열두 번 쯤 진동하면, 그 강철이 내 옷에 스칠 것이다. 그러나 한편 나는 더욱 강렬하고 절망적인 평안을 충만하게 느끼게 되었다. 나는 두어 시간 혹은 두어달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하여 생가해 보았다. 나는 하나의 가죽 혁대에 꽁꽁 묶여 있으니, 그 면도칼날은 맨 처음 그 가죽끈의 어느 부분에 닿아 그것을 끊어 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왼손으로 몸의 결박을 풀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 그 강철이 몸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 있다면 얼마나 무서울까.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목슴이 날아가는 것이다.
고문하는 형리(刑吏)들은 이것을 미리 짐작하고 준비를 해 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가슴을 동여맨 끈위로 그 칼날은 분명히 스치게 될까. 나는 가느다란 최후의 희망이 수포로 돌아갈까 보아 염려가 되어 고개를 들어 가슴을 살펴 보았다. 가죽 혁대는 사지를 꽁꽁 묶어 놓았으나, 무서운 칼날의 궤도(軌道)에만은 끈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머리를 본래의 위치로 가져왔다. 그러자 별안간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앞에서도 말한 적이 있지만 내가 목숨을 건지게 되리라는 희망은 반신 반의의 공상으로, 그것은 목이 말라 타는 듯한 입속에 음식물을 넣었을 때에 흐미하게 머리 속에 떠올랐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의 뚜렸한 생각-제 정신을 갖고 있었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이 떠올랐다. 나는 절망한 나머지 단말마(斷末魔)의 힘으로 이것을 황급히 실천에 옮기려고 하였다.
내가 누워 있는 널판자 옆에서는 전부터 쥐들이 들끓고 있었다. 그 놈들은 사납고 대담하고 욕심꾸러기였다. 그 붉으스레한 눈일은 내가 움직거리지만 못한다면 당당이라도 잡아 먹을 듯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놈들은 대관절 이 움 속에서 무엇을 먹고 사나 싶었다.
나는 놈들에게 접시에 담긴 음식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거의 다 빼앗기고 얼마 남지 않았다.처음에 나는 손으로 접시 주위를 부채질하듯 흔들어 보였으나 나중에 이것이 하나의 규칙적인 동작이 되어 별로 효력을 보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배를 잔뜩 주린 놈들은 그 날카로운 이빨로 내 손을 몇 번이나 깨물었다. 나는 손이 자라는 대로 남은 음식 가운데서 기름지고 맛이 있음직한 것을 조금 쥐어서 혁대에 바르고, 잠자코 누워 있었다.
처음에는 잔뜩 주린 놈들도 돌변한 현실에 어리둥절하여 즉 손이 흔들리지 않는데 놀라고 겁이 나서 도망가 버렸으나, 그것은 잠시 동안의 일이었다. 내가 놈들의 탐욕을 이용하려고 한 것은 잘 들어맞았다. 내가 잠자코 있는 보자 한 두 마리의 쥐는 널판자 위로 올라와 혁대의 냄새를 맡았는데 이것을 신호로 하여 다른 놈들도 일제히 뛰어 올라왔다. 구멍에서도 딴놈이 뛰쳐나왔다. 놈들은 몇 백씩 떼를 지어 널판자를 깨물기도 하고, 뛰어 넘기도 하면서 내 몸뚱아리 위에 기어올랐다. 놈들은 추의 지동같은 것은 조금도 겁을 내지 않고 추가 지나갈 적마다 몸을 피하면사 열심히 기름 묻은 혁대를 깨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내 배 위에서 떼밀고 떼밀리면서 산더미처럼 몰려 왔다. 놈들은 내 목 언저리도 쏘다니고, 싸늘한 주둥이로 내 입술을 빨기도 하고 무거운 압력으로 하여 나는 숨이 막힐 지경이며, 불쾌하기 작이 없었다. 몸을 육중하게 누르며끈적거려 가슴이 내려 앉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일분만 지나면 이런 괴로움도 끝날테지 하고 나는 생각하였다. 가죽 끈은 분명히 조금 느슨해졌다. 몇 군데 끊겼나 보다. 나는 인간으로서는 감당해낼 수 없는 결심을 하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
내 에상은 적중하였다. 그리고 내 인내도 헛되지 않았다. 나는 드디어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게 된 것이다. 가죽 끈은 몇 개씩 토막이 나서 내 몸에 늘어져 있었다. 그러나 추의 진동은 바로 가슴 위로 다가와 내 서어지 옷을 베고. 그 아래 내의도 비어내었다. 추는 두 번 더 진동하고 매서운 고통으로 하여 신경이 쑤셔 왔다. 그러나 구제될 순간은 찾아 왔던 것이다. 내가 손을 내저었더니 쥐들은 줄도망을 치고 말았다. 나는 조심스레 앞으로 몸을 움츠려 끊임없이 조금씩 움직이면서 진신을 감은 가죽 혁대에서 벗어나 칼날이 닿지 않는 곳으로 피하였다. 적어도 한동안이나마 나는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자유- 그러나 나는 종교 재판소의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 무시무시한 널판자에서 내려와 돌바닥을 딛는 순간, 지옥의 추는 진동을 딱 멎더니,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천장으로 끌려 올라가는 것이었다. 나는 커다란 절망을 느꼈다. 저들은 내 거동을 낱낱이 보고 있었던 것이다. 자유- 나는 다만 하나의 고통서르운 죽음을 피했을 뿐이며, 좀더 무서운 죽음에로 인도되었던 것이다. 나는 신경을 고두세워 나를 에워싼 철의 장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상도 하다- 감방 속에 처음에는 잘 눈에 드지 않던 변동이 일어났다. 나는 한동안 꿈결에 잠긴 사람처럼 방심하고 몸을 떨면서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윽고 나는 감방을 밝혀 주던 유황빛이 어디서 오는지알아내었다. 그것은 벽 아래 감방을 둘러싼 반 치쯤 되는 틈바구니에서 새어 나오는 것이었다. 이 틈바구니는 바닥에서는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 속을 들여다 보려고 하였으나, 그것은 물론 소용 없는 일이었다.
몸을 일으키자, 나는 감방 속이 변화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전에 말한 바와 같이 벽에 그린 그림은 그 윤곽을 잘 알아 볼 수 있었으나, 색이 흐려서 분명치 않았다. 그런데 그것이 이번에는 강한 빛을 받아 꼭 무슨 유령이나 악마처럼 보였다. 그것을 보면 나보다 튼튼한 신경을 가진 사람이라도 깜짝 놀랄 것이다. 잔인하고 사나운 악마의 눈알들이, 난데없이 곳곳에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불곷같이 반짝이는 사나운 눈알은 내가 아무리 머리 속에서, 있을 수 없는 괴물이라고 부인하려고 하여도 소용 없었다.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숨 쉬고 있는 동안에도 뜨거운 철펀 냄새가 코를 찌르지 않는가. 고약한 냄새가 감방에 가득차 있는 것이다. 나의 괴로움을 노려보고 있던 그 눈알들은 시시각각으로 더욱 밝게 희번덕거렸다. 붉은 빛은 점점 짙어지고, 피 냄새를 풍기는 무서운 그림으로 번져갔다.
나는 가슴이 헐덕거렸다. 숨을 제대로 쉬어 보려고 노력하였다. 고문자들이 못된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아, 얼마나 잔인한 악마 같은 놈들일까! 나는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쇠부치에 놀라, 감방 한복판으로 모을 피하였다. 나를 불로 지질 모양이로구나. 그렇다면 저 함정이 얼마나 시원한 곳일가 하는 생각이 향수 냄새처럼 마음 속에 떠올랐다.
나는 무서운 그 함정으로 뛰어가, 눈을 부릅뜨고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우물 귀퉁이 마다 불타 오르는 지중이 환히 보였다. 그 숨막히는 순간에, 나는 눈에 보이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기어코 내 시야에 비집고 들어와 두려움에 떠는 내 이성 속에서 불타고 있었다. 오, 말할 수 없는 공포! 이것 이외의 다른 어떤 공포도 좋다! 나는 크게 소리를 지르고 껑충 뛰면서 두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 그리고 엉엉 울었다.
열은 더욱 뜨거워졌다. 나는 학질이 시작될 때처럼 벌벌 떨면서 다시 얼굴을 쳐들었다. 감옥 속에는 또 하나의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은 형상으로 나타났다. 처음에는 무엇이간하여 알려고 애썼으나 허사였다. 그러나 곧 의혹이 풀렸다.
나는 두 번이나 죽음을 피했으므로, 종교 재판소는 복수를 하려고 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죽음을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감방은 전에는 네모꼴이었지만, 이제는 강철의 두 모퉁이가 예각(銳角)을 이루고, 다른 두 모퉁이는 둔각(鈍角)을 이루었다. 이 무시무시한 변화는 난데없이 나지막하게 끄르륵거리는 소리와 신음하는 소리로 하여 한결 돋보였다. 그리하여 감방이 갑자기 웬 괴물처럼 보였다.
그러나 변화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나는 이것으로 그치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그 시뻘겋게 달아오른 철벽을 원원한 평화의 옷으로 간주하려고 하였다. 나는 말 하였다.
「저 함정 속에 빠져 죽는 것 이외의 어떠한 죽음도 나는 달게 받겠다.」
바보! 나를 채찍질하여 그 함정에 몰아 젛으려고 쇠벽이 달아오른 것이다. 그것을모르고 있단 말인가. 내가 어떻게 그 뜨거운 철벽에 저항할 수 있겠는가. 설사 저항한다고 하더라도, 그 압력을 감당할 수 있는가. 이제 괴물 형상을 닮은 감방은 점점 더 사납게 압박해 온다. 그러므로 나는 더는 생각할 여유가 없다. 감방의 중심부가 입을 벌린 함정의 바로 위가 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몸을 뒤로 하여 잔뜩 오그렸다. - 그러나 고민하던 영혼은, 크게 그리고 길게 최후의 비명을 질렀다. 나는 깊은 함정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눈을 딴데로 돌려 보렸다.
사람들의 마소리가 떠들석하게 들려왔다. 크게 나팔을 부는 소리도 들렸다. 또 우레 소리도 들렸다. 불타 오르던 철벽이 우람하게 뒤로 넘어갔다. 내가 까무라치며 함정 속에 깊숙히 빠져 들어가려고 할 때 누가 팔을 벌려 내 팔을 덥석 붙잡는다. 그것은 라살르 장군의 팔이었다. 프랑스 군대가 틀레도에 쳐들어 왓던 것이다. 그리하여 종교 재판소는 적군이 점령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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